다른 분들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주위에는 독서가가 거의 없습니다. 저는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 작가의 전작이 읽고 싶어집니다. 좋은 작가의 다른 작품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요? 아마도 이런 습관은 만화책에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만화책을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학창시절 만화 대여점을 참새 방앗간 가듯이 거의 매일 들렀습니다. 좋아하는 작품의 신간이 나왔을 때의 기쁨.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항상 재미있는 만화책을 찾다보니 우연히 '좋은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좋다.' 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나 봅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요. 그래서인지 영화를 볼 때도 좋아하는 배우나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을 위주로 선택할 때가 많습니다. <서유기 선리기연>을 보고, 주성치의 영화를 모조리 봤었습니다. 주성치영화가 아니라면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래도 팬심으로 즐겁게 봤습니다. 영화 <스윙걸즈>를 보고 우에노 주리에 빠져서 우에노 주리의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주성치와 우에노 주리의 팬입니다.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했으니까요.
그렇게 만화책, 영화를 저자나 감독, 혹은 배우를 기준으로 선정해서 보았습니다. 물론, 작품을 기준으로 본 만화나 영화도 많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되면, 그 저자의 작품을 모두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하정우' 가 충무로의 흥행보증수표인 것처럼, 좋은 작가는 제게 확실한 보증입니다.
전작을 읽고 싶어지는 작가를 알게되는건 큰 기쁨입니다. 단 하나의 문제는 좋은 작가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너무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아직도 그의 모든 작품을 읽지 못했습니다.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도 이제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그 작가의 전작을 읽는 것은 산술적입니다. 도저히 감당이 안됩니다.
그럼에도 어찌되었든 다 읽느냐 못 읽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권, 한 권 읽어나가는 기쁨이 있으니까요. 다 읽었다고 해서 기쁨이 배가되진 않습니다. 전작을 읽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 권, 한 권 읽는 것이 소중하면 그만입니다.
오늘 방금 막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읽었습니다. 얼마 전에 같은 작가의 <제노사이드>를 읽었습니다. <제노사이드>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전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노사이드>가 괜찮으니 다른 작품도 한 번 읽어볼까?' 라는 생각으로 <13계단>을 선택했습니다. 선정기준은 <13계단>은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상받은 작품을 좋아합니다. 상또한 제게는 하나의 보증입니다. 물론 상받은 작품이 모두 좋지는 않습니다. 언제나 예외는 존재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다카노 가즈아키의 전작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13계단>은 처녀작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습니다. 집필에 2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품마다 테마에 관한 전반적인 참고문헌 검토와 세부문헌과 취재를 병행하였다고 합니다. 그만큼 충실한 작품입니다. <제노사이드>에서도 느꼈지만 자신이 쓰고 싶은 테마에 대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조사해서 소설을 씁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그 테마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배우게 되고, 함께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소설들이라면 모조리 읽을 만합니다. 재미도 있고, 유익하기도 합니다.
<13계단>은 '사형제도' 를 테마로 다뤘습니다. <제노사이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집단학살" 을 테마로 다룹니다. 이 외에도 "인공유산" 을 테마로 다룬 <K.N.의 비극>, "자살" 을 다룬 <유령 인명 구조대> 읽어보고 싶습니다. 작가의 두번째 작품 <그레이브 디거>과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도요.
벌써 기대가 됩니다. 아마도 다카노 가즈아키는 저를 실망시키지 않을겁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정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