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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ㅣ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6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레이먼드 챈들러를 무척 만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레이먼드 챈들러를 자신의 영웅이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에 레이먼드 카버도 만나고, <위대한 개츠비>도 만나고, 에드거 앨런 포우도 만나고, 다양한 소설가와 그들의 작품을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 레이먼드 챈들러를 만난 것도 크나큰 수확이었다. 앞으로 그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모두 보고 싶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글은 읽기 매우 편했다. 655페이지의 두꺼운 책이지만,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어딘지 모르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와 비슷한 느낌이 낫지만 레이먼드 챈들러만의 오리지널리티는 분명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글쓰기의 이상으로 챈들러와 도스토옙스키를 한 권에 집어넣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레이먼드 챈들러는 추리소설, 탐정소설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무라카미 하루키, 스티븐 킹 등 수많은 작가들과 탐정소설에 영향을 끼쳤다.
"위대한 미스터리는 캐릭터 그 자체" 라고 챈들러는 말했다. 셜록 홈스를 떠올려보면 절로 고개가 끄떡여진다. 챈들러의 필립 말로 또한 위대한 캐릭터였다.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라도 다른 시리즈를 보고 싶다. 필립 말로는 왠지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같은 느낌이 난다. 고독하고, 독자적이다. 그리고 인간적이다. 평범하지만 명석하고 혼자서 거대한 적들에게 맞서는 영웅이다. 그는 권력과 돈, 폭력 앞에서 결코 흔들리거나 굴하지 않는다. 초연하다. 그의 동기는 정의와 진실, 그리고 우정이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다. 신변의 위협이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그는 당당하고 멋지고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다.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강하다.
보통 탐정소설에서는 콤비가 등장한다고 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 <투캅스>가 떠오른다. 하지만 챈들러의 소설 속 탐정은 필립 말로 혼자다. 누구와도 콤비를 이루지 않는다. 혼자서 판단하고 행동한다.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그렇다.
<기나긴 이별>은 여러모로 정말 훌륭한 작품이었다. 스토리도 치밀하고, 캐릭터들도 확고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학성이 높다. 문장들이 너무 좋다. 필립 말로의 냉소적이고 위트있는 독설뿐만 아니라, 챈들러의 날카로운 비유나 묘사, 대사들도 너무 좋다. 정말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소설 속 멋진 문장과, 챈들러의 후기를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친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한 마디
나는 이것을 내가 원하던 대로 썼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럴 수 있게 됐으니까요. 난 미스터리가 공정하고 명료한지 아닌지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내가 관심을 가진 것은 사람들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기묘하고 타락한 세계, 그리고 정직해지려고 애를 쓰던 어떤 사람이라도 결국에는 어떻게 감상적으로 또는 단순한 바보로 보이게 되는가였습니다. 어떤 스타일로 글을 쓰는데 그것이 계속 모방되고 심지어 표절하는 이까지 있을 때, 마치 나 자신이 나를 흉내 내는 이들을 흉내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가야 하지요. 위험은 독자들도 따라올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