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짜 스피킹 테스트가 있는 날이었고, 내가 첫번째 학생이었다. 점수에 반영되는 것이고 이번 학기에 대한 점수라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지만, 어쨌든 마쳤다. 선생님께 점수를 물어보니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모의 테스트는 바로바로 점수를 알려줬었는데 진짜 시험은 안알려주는구나. 오늘 스피킹 시험을 봤고 다음주 월요일에는 리스닝, 스피킹, 라이팅 시험이 있다. 그걸 다 보고나면 일주일 후쯤 이메일로 결과를 통보해준다 했는데, 아마도 그 때 알 수 있을 것 같다. 으 떨려..
얼마전에는 한국어 모임에 참석했다. 싱가폴 현지인과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만나는 모임인데, 싱가폴에는 이런 커뮤니티가 진짜 많다고 했다. 처음엔 스페인어 모임을 갈까 했는데 스페인어 모임은 참석자가 너무 많은 거다. 흐음, 처음이니까 참석자 두 명인 한국어 모임에 원어민으로 가자 싶었다. 네이티브 스피커가 할 일이 있겠지. 그런데 약속 날짜인 토요일이 다가올수록 두 명이 세 명이 되고 여섯명이 되고 아홉명이 되고... 그리고 한국사람이 너무 많아진거다. 그래서 고민했다. 가, 말어? 한국 사람이 많은데, 내가 가서 뭘하지? 그러나 이미 참석하겠다고 버튼을 눌렀는데, 흐음, 그래 일단 가보자. 가면 뭐가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참석했는데,
와, 일단 주최자는 일본인이고 한국어를 잘 했으며 한국어로 된 책도 읽고 있었다-권여선의 책이었다- 그리고 참석자들은 싱가포리아인, 말레이시아인, 베트남인들이 있었고 그리고 한국인도 몇명 있었다. 사람들이 대부분 다 친절하고 좋았는데, 하... 한 한국남자가 너무.. 한국남자 스러웠다. 이미 내가 이곳에 6개월 있을거고, 학교 다니고 있고, 학교는 어디고, 요리를 자유롭게 하고 싶었고 기타등등 다 얘기했는데 그 남자가 그러는거다.
"학교가 거기면 방을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데가 있는데요."
그래서 내가 나 발품도 많이 팔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진짜 많이 하고 여기로 결정한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을 얘기하며, 거기 가봤냐고 하는거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내가 거길 갔는지 안갔는지 아는 곳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는 거기는 비슷한 조건에 월세가 더 싸다고 하는거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거지? 이미 살고 있는데.. 이사 가라는거야? 굳이 내가 덜 좋은 선택을 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 내가 도와달라고 한것도 아니고 지금 집 구한다고 한것도 아닌데, '너가 딱히 좋은 선택을 한 건 아니야' 라는 의도로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내가 이미 내린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그건 잘못됐다고 말하는걸까?
일전에 여자1, 남자1 그리고 내가 셋이 만나 밥을 먹을 때였다. 내가 싱가폴로 간다고 하자 여자1은 오, 좋다고, 정말 잘했다고, 싱가폴 좋다면서 좋은 선택이라고 했다. 만약 내가 몰타로 간다고 했다면, 그 친구는 역시 또 좋은 선택이라고 했을 거다. 그러자 남자1이 그랬다. 자기도 예전에 어떤 선택을 한 뒤에 여자1에게 말했는데, 여자1이 잘했다고 하면서 응원해줬다는거다. 다른 사람들은 걱정을 했는데 여자1은 잘했다고 해주었다고. 그러자 여자1이 말했다.
"이미 결정을 한거잖아, 그런데 거기에 대고 그게 잘못됐다고 말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
나는 저 한국남자가 내게 한 말은 맨스플레인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국어 선생님에 도전해보라는 얘기를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고 얘기하자 그는 자기가 한국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들어보니 학교가 아니라 사설 학원에서 직장인 대상으로 하는것 같았는데, 그러면서 내게 한국어 할 수 있다고 한국어 선생님 할 수 있는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당연히 나도 알고 있다, 어떤 라이센스가 필요할지 모르겠지만, 당연히 한국어 한다고 선생님이 되는건 아니지 않냐, 라고 말했고 그러자 그는 '내가 다니는 곳은 자격증 같은건 필요 없지만, 왜 그런 조사를 쓰는지 다 알아야 한다'고 하는거다. 아니.. 선생님이면 당연한거 아니야? 그러더니 갑자기 내게
'은/는/이/가 에 대해 설명해보세요.'
이지랄 하는거다. 미쳤나 진짜.. 그래서 내가 너는 그런거 알고 들어갔냐고 하자, 아니라고 자기는 공대 출신이라고, 그런데 교과서 받고 혼자 공부해서 알아서 가르치는거라고 했다. 이 씨발놈이..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니가 했는데 내가 못할까? 나 작가야 이 새끼야. 내가 교과서로 공부하면 너보다 잘하면 잘했지 못하진 않아.'
내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에서 임원한테도 개겨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 무서운게 없는 사람인데, 이 모임에서 그 놈한테 진짜 저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처음에 집 얘기 할 때부터, '그래서 어쩌라고? 나 등신짓 했다고? 계약 깨?'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하아- 나는 그 날 처음 온 사람인데다가 거기에 온갖 국적의 사람들이 다 모여서 한국어 듣고 말하고 있는데... 하- 분위기 좆망으로 만들까봐 꾹 참았다.
한국남자가 진짜.. 너무 싫다 진짜 너무 싫어. 특히 저 남자는 개싫었어. 와- 여기 와서 오랜만에 또 맨스플레인, 한국남자의 전형을 만나네. 그 남자는 중간에 먼저 갔는데, 진짜 저렇게 말하는 놈이면 친구도 애인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 너무 싫어. 다른 사람들은 좋았는데, 그날 저녁을 먹으면서 싱가포르인 남자가 내 밥값을 내줬다. 내가 준다고 하는데도 아니라고, 처음 온 사람인데 자기가 사겠다고 하는거다. ㅋㅋ 그래서 맛있는 밥 얻어먹고, 2차 갈 때는 집에 간다고 했다. 생리통이 너무 심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 '이 모임 이제 안나와, 아니 이제 그냥 이런 모임 같은거 굳이 안나갈래, 그냥 나 꼴리는대로 혼자 지낼래' 하게 되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브런치에 -> https://brunch.co.kr/@elbeso77/123
'폴라 호킨스'의 [블루 아워]를 다 읽었다.
이름 있는 화가의 조소 작품에서 인간의 뼈가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가 알고 그랫을까 모르고 그랬을까, 그리고 그 뼈는 누구의 것일까, 를 흥미있게 풀어내기 때문에 책장이 잘 넘어간다. 등장인물이 예술가인 만큼 예술에 관심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는 언제나 예술에 대해서라면 뭐랄까, '내가 잘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그래서 예술을 잘 알고 즐기고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좀 감탄하는 편이다. 물론 책도 예술이고 음악도 예술이지만, 내가 즐기는건 지극히 미미한 부분이랄까. 난 예술을 잘 즐기는 사람이 참 그렇게나 부럽다. 그림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이 경이롭다.
제 어머니는 재능 있는 수채화가였습니다.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아이가 생기자 중퇴했죠. 어머니는 다시 공부할 작정이었지만 아버지-저는 얼굴도 모릅니다-가 지원해주지 않았어요. 그 당시 이미 할아버지와 사별한 할머니에게는 우리 세 식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었으니 어머니가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죠.
어머니는 비스터 도심의 슈퍼마켓에 취직했는데, 같은 블록에 해리웨스트아트라는 갤러리가 있었어요. 선생님도 아실 거라고 확신합니다만, 버네사의 작품을 처음으로 전시한 곳이었죠. 어머니는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종종 그 갤러리를 찾아가 버네사의 작품을 감상했어요. 한번은 8*5인치 크기의 조그만 유화를 사가지고 오셨고요. 일주일 치 주급과 맞바꾼 거라 할머니와 대판 싸우셨답니다.
산울타리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강렬한 초록색에 보라색과 노란색 야생화가 점점이 박히고 여름의 향기가 피어올랐어요. 작가가 이런저런 것-풀씨와 꽃잎-을 그림에 박아넣었더라고요. 거기서 무지개빛 곤충 날개를 발견하고 놀란 동시에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긴 했지만 아무리 봐도 절대 질리지 않는 작품, 들여다볼 때마다 뭔가 다른 선물을 주는 그런 작품이었어요.
어머니는 그걸 침대 옆 벽에 걸어놓으셨죠. -p.80-81
주인공 '베커'의 어머니는 대학생일 때 임신하는 바람에 재능이 있음에도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그런 그녀가 먹고살기 위해 슈퍼마켓에 취직했는데, 그런 삶속에서도 여유시간에는 갤러리에 가 그림을 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그림을 사온다. 형편이 좋지 못한 상황이니, 베커의 할머니가 그림에 돈을 들였다는데에-그것도 일주일치 주급이라고!- 화를 내는 것도 당연히 이해가 된다. 그 돈이면 우리가 먹을 수 있는게 얼만데,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데, 그런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림을 산다고?! 나는 사실 대부분의 평범한 가정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림 전시를 보고았다고 말했을 때 우리엄마도 나에게 '그거 돈 주고 보는거냐'고 물었더랬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은 '돈들일만한 것' 이 아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여유롭지 않다면? 세상에, 그림을 보는데 혹은 사는데 어떻게 돈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돈을 힘들게 번다는 것, 힘들게 일해봤자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번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 당사자인 베커 엄마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그림이 일주일치 급여라는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게 베커 엄마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그림에 반하고, 그 그림을 침대 옆에 걸어두고 싶어서 기꺼이 돈을 들이는 그 마음, 그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나는 돈이 많지 않아, 그런데 이 그림이 너무 좋아, 이 그림을 보고 살아야겠어, 하고 사가지고 오는 그런 마음. 집에 오니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보고 싶은 그런 마음.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때문인지, 베커 역시 그 그림이 '들여다볼 때마다 다른 선물을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그림을 보고 들여다볼 때마다 다른 선물을 준다고 느낀다는 거, 정말이지 너무 경이롭지 않나.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영화 [타인의 삶]이 떠오른다. '비즐러'가 타인의 삶을 감시하던 중에, 그들의 연주에 감탄해 마냥 듣던 장면. 아, 영화 [프리티 우먼]에서 줄리아 로버츠도 처음으로 오페라 구경을 갔다가 감탄해 눈물을 흘린다. 그런거, 정말 너무 경이롭지 않나.
나에게도 물론 그런 경험이 있기는 하다. 예술의 전당에 샤갈의 그림을 보러 갔다가 눈물이 났었고-나는 아직도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뉴욕의 작은 갤러리에서 클림트의 그림을 봤을 때도 감탄을 해서 오래 머물렀더랬다. (그 작품은 dancer 였다). 그런 일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내 돈을 들여서 그림을 사다 걸어놓진 않았다. -엽서는 샀다- 어떤게 그림을 '잘 감상'한다는건지 모르겟지만, 그 때 내가 분명 감동했으나 내가 그림을 잘 감상하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재능이 있음에도 대학을 중퇴할 수밖에 없었던 베커의 엄마가 안타깝고, 고된 밥벌이를 하면서도 틈나는대로 갤러리를 찾아가 그림을 감상했던 그 열정이 경이롭다. 돈을 들여 작품을 사다 걸어놓은 그 예술에 대한 애정은 어떻고. 나는 이런 부분을 만나면 참 그렇게나 좋은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 내가 하지 못한 것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으레 나오는 순수한 존경이랄까.
지난주말에는 이곳에서 국립미술관에 갔었다. 많은 그림을 보았지만 막 멈춰서서 감탄하는 그런 그림은 없었고, 그런데 인상 깊은 그림이 있어서, '이 화가는 좀 찾아봐야겠네' 생각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겠다. 오늘 페이퍼가 너무 길어..
오늘 첫번째 테스트 보는 자였으므로 일찍 끝나서 스타벅스에 와있다.
다음주 있을 시험 준비 해야하는데, 그건 주말에 하도록 하고 오늘은 좀 놀아야겠다. ㅋㅋ
아침 먹고 학교왔는데 화장실 한 번 다녀오니 금세 출출해져서 이곳에서 간식 먹었다.
간식 먹으면서 놋북 꺼내 글 쓰는데, 문득 창밖을 보면서,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아팠다. 이런 마음 알아요?
아, 너무 좋아. 난 이게 뭐라고 이렇게 좋지.
이곳에서는 내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데 왜이렇게 좋은걸까.
자꾸만 창밖을 보고, 또 본다.

(저거 에그마요 크로아상인데 도대체 왜 크로아상을 저렇게 눌러놓은건지 모르겠네? 맛은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 개천절이라 다들 휴무라면서요?
여동생이 오늘 개천절이라 휴무고 연휴시작이라고 해서 오!! 했다. 여기있으니까 아예 몰랐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e 도 회사 안갔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도 생각하면 화가 나고요. 삶의 공간이 그런 식으로 더럽혀지다니..... 원래 저지른 폭력에 추가되는 또다른 폭력이잖아요. 늘 그런 식이에요. 어딘가를 걷거나 수영을 하거나 달리기를 하거나-뭐가 됐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어떤 아름답고 오염되지 않은 곳에 가서 사랑하는 그 일을 하는데 누군가가-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대개 남자일 때가 많죠- 나타나 거길 끔찍한 곳으로 만들어버려요. 그러면 다시는 그곳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없어요. 나도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고. 그 공간도 달라지고 나도 달라지죠. 둘 다 더 안 좋은 쪽으로." - P210
하고 싶은 말을 내뱉기는 쉬워도, 그러고 나면 그 결과를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집을 나설 때의 자신과 돌아갈 때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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