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문화
C.P. 스노우 지음, 오영환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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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 책의 간략한 소개글을 보자.

 

<두 문화>는 1959년에 5월 7일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전통적인 연례 리드 강연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당시 스노의 강연 제목은 <두 문화와 과학 혁명>이었다. 이 강연의 내용을 1부로 싣고, 2부는 4년 뒤인 1963년의 시점에서 앞의 강연과 관련하여 그때까지 제출된 논평과 반응, 비판들을 지은이가 직접 정리하고 해명하고 추가한 글을 실었다. 또 마지막 3부에는 90년대의 시점에서 스노의 강연을 바라본 스테판 콜리니의 해제가 실려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1959년의 C.P.스노우의 케임브리지 대학 강연을 책으로 엮고, 그에 대한 지은이와 다른이의 해설, 해제를 함께 수록한 책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이도 하다. 하지만 나쁘진 않았다. 강연 부분만 봤을 때는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뒷부분에서 설명해줘서 좋았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리드 강연의 내용은 논쟁적이었다. C.P.스노우는 1950년대에 벌써 혹은 처음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멀어지고 있으며 이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교육에서 이 둘을 분리해서 교육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시 되는 이야기이다. 아니다. 이것을 아직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 지금은 학문의 통섭,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학계에서 장려하고 중요시하는 분위기이지만,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머나먼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다치바나 다카시의 <뇌를 단련하다> 라는 책에서 본 것 같다. 혹은 <도쿄대생의 바보가 되었는가>에서 본 것도 같다. 아무튼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대 강의에서 일본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지고 점점 문과는 이과과목을 덜 공부하고, 이과도 문과과목을 덜 공부하면서 그 괴리감이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이는 C.P.스노우가 지적한 문제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학문은 점점 전문화되었다. 점점 전문화의 영역으로 나아가다보니깐 각 학문간의 거리가 멀어지고 의사소통까지 힘들어졌다. 같은 대학내에서도 물리학자와 생물학자 간의 대화는 줄어들고 어려워졌다. 같은 과학계내에서도 소통이 어려워질 정도이니 과학계와 비과학계 사이의 소통은 오죽했을까. 그리고 그 문제는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문과생은 수학과 과학을 잘 모른다. 이과생은 문학,역사 등에 대해 잘 모른다. 나는 다행히도 6차 교육과정의 끝세대였다. 때문에 사회탐구영역과 과학탐구영역을 함께 시험을 봤다. 나는 이과였지만 사회탐구영역도 공부했고, 언어영역도 공부했다. 나는 문과영역 공부도 재미있어서 즐겁게 했다. 하지만 7차로 넘어가면서 이과생들은 수능에서 사회탐구 영역을 시험보지 않게 되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스스로 균형잡힌 뇌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과학과 인문학 모두를 좋아한다. 그리고 현대에서는 이 둘이 분리되지 않는다. 철학자도 진화론을 공부하고(데니얼 데닛), 과학자도 철학,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슈뢰딩거, 칼 세이건, 아인슈타인 등). 나는 인문학 모임을 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모임원 중에서 나만 이과생이다. 때문에 이따금씩 문과와 이과생의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내게는 가끔 지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혹은 지적 공포로. 어떤 이는 운동량과 작용과 반작용의 개념을 모르고 있다. 대부분 진화론에 대해서 초등학생 수준 이상을 알고 있지 않다. 사실 진화론은 고등학교 때 배우는 것이 아니라서 이과생들도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진화론은 또한 상당히 어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개념이다. 진화론에 대해 모르니,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사람이 있다. 물론 진화심리학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진화심리학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해 부정적인 것이 이성에 의해 부정적인 것이라면 나도 적극 찬성하지만 감정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큰 문제다. '진화론 흐음, 진화심리학 흐음~ 왠지 싫은데?' 이런 식이라면 곤란하다. 왜냐하면 서로 대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다방면에 잡다한 지식, 상식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 백과사전식 지식은 나도 쓸모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문의 기초적인 지식들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현대사회의 교양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지금은 지구가 누구나 둥글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뉴턴식 중력이 무엇인지 안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상식, 즉 교양인 것이다. 시차가 무엇인지 안다. 세계가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하지 않고, 우주가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안다. 나는 현재에는 시차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상식이듯 미래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시간차이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상식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비행기를 탈 때 시차를 생각하듯이 먼 미래에는 우주여행을 할 때 시간차이를 당연하게 고려하게 될 것이다. 시간의 흐름도 속도와 중력에 의해서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씨는 인문학보다 과학이 현대사회에서 더 중요한 지식이며 교양이다고 이야기한다. 나도 어느정도는 동의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수학이나 과학을 몰라도 재밌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적대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채사장의 <지대넓얕> 2권과 <시민의 교양>을 추천해드리고 싶다. 현재사회에 필요한 지식, 상식, 교양이 아주 쉽고 간결하게 잘 정리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교양>도 최근에 읽었는데, 생각 외로 훌륭했다. 시민에게 꼭 필요한 교양이 담겨있었다. 경제, 정치, 교육분야에 대해 필수적인 교양지식이 닮겨 있다. 제태크 경제 책으로도 훌륭하니 꼭 보시기 바란다.

 

 과학과 인문학 두가지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육에서도 이 두가지를 균형있게 가르쳤으면 좋겠다. 혹은 한쪽에 치우치더라고 다른 쪽의 기초적인 지식들은 가르쳤으면 좋겠다. 시인의 감성을 가진 과학자와 과학을 노래하는 시인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세상이 조금 더 합리적이 되고, 그리고 인간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분명 끝없이 인용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보고 한번쯤 고민해봐야할 문제를 다루고 있는 고전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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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21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에는 과학자가 철학자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22 10:44   좋아요 0 | URL
지당하신 말씀입니다ㅎ 아이작 아시오프의 책에서 최초의 과학자에 대한 에세이가 있었는데, 뉴턴도 그 당시에는 과학자로 불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 당시에도 과학이란 용어는 쓰이지 않고 자연철학이란 말이 쓰였다고 하더라고요.

cyrus 2016-03-21 1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노우가 다치바나 다카시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저도 다카시의 《도쿄대상은 왜 바보가 되었는가》를 보고, 스노우를 처음 알았습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21 19:2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습니다. <두문화>에서 cyrus님의 리뷰나 페이퍼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