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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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동안 책 리뷰를 못 썼던 것은 이 놈, 바로 이 책 때문이었다! 이 책의 리뷰를 어떤 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좋았다. 너무 재미있었다. 인상깊었다. 이런 상투적인 표현들 말고, 쓸데없는 줄거리 요약이나 소개말고 이 책의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이 책이 막히니 병목현상처럼 다른 책들은 기약없이 차례를 기다려야했다.

 

 리뷰를 못 쓴 또다른 이유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붉은돼지님과 곰곰생각하는발님의 리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두 분의 리뷰가 머리 속에 남아있다보니 내 리뷰를 쓸 수가 없었다. 좀 다른 리뷰를 쓰고 싶었다.

 

 그러다 최근에 읽은 김영하작가의 <읽다>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바로 비극과 희극의 개념에 대해서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은 잘난놈이 추락하는 이야기고, 희극은 모자란 놈이 잘 되는 이야기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못난 놈이 추락해봐야 얼마나 추락하겠는가? 잘난 놈이 잘나가다가 자만과 오만때문에 폭삭 추락해야지 비극적이지 않겠는가? 잘나고 똑똑한 한 나라의 왕이 살인자를 추리하다 자신이 살인자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한 죄인임을 깨닫는 정도는 되야 비극이 아니겠는가? 또 잘난놈이 잘되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좀 모자란 놈이 잘되야 희극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소설 <오르부아르>는 비극과 희극이 공존한다. 비극적 요소와 희극적 요소가 둘다 있다. 덕분에 못난 나도 이 소설의 리뷰를 쓸 힘을 얻었다.

 

 두꺼운 책. 말머리의 괴기한 책 표지. 도서관에서 이 책은 단연 눈에 띄었지만, 어떤 책인지 몰랐었다. 붉은돼지님의 리뷰를 통해서 이 책이 공쿠르상도 받고, 프랑스에서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로맹 가리에게 바치는 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로맹 가리 외 20명 이상에게 바치는 책이지만) 이정도면 충분히 읽어봄직하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책 내용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소설의 배경은 세계 1차대전 막바지의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전선. 곧 끝날 무렵의 전쟁. 병사들도 이 빌어먹을 전쟁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부터 죽음은 그야말로 개죽음이다. 병사들은 당연 죽고 싶지 않다. 몇 일 후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누가 총질을 해대고 싶겠는가. 그런데 야욕에 눈이 먼 미친 장교가 공격명령을 내린다. 소설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로 만들어도 정말 재미있고 좋은 영화가 나올 것 같다. - 역시나 영화화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네 명이다. 전쟁에 참여한 2명의 병사, 그리고 야욕과 탐욕에 눈 먼 장교 1명, 마지막으로 2명의 병사 중 한 명의 아버지. 2명의 병사 중 한 명은 가난하고 소심한 알베르이고, 다른 한 명은 부잣집 아들이나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에두아르이다. 알베르는 이 소설에 유머를 비롯한 희극적 요소를 가미해주고, 에두아르는 비극을 향해 맹렬히 달려간다. 장교는 욕심부리다 화를 자초하고, 아버지는 스스로 비극적 결말을 종결짓는다. 하지만, 묘하게도 그 결말이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다.

 

 설연휴는 이 책과 함께 했다. 틈만 나면 이 책을 펼쳐들고 읽었고 책에 빠져들었다. 유머러스한 문체도 좋았고, 세상을 향한 조롱과 풍자섞인 글들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의 전개가 흥미진진해서 다음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꼭 보고 싶다. 사실적인 표현들도 좋았다. 가감없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표현했다. 주인공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개성도 뚜렸하다. 특히나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바로 에두아르와 알베르이다. 굉장히 다른 두 명이지만 서로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엮이게 된다. 두명이 동고동락하는 모습이 참 인간적이다.

 

 알라딘 책 소개에서 처럼 이 책은 정말 "희귀해진 종류의 비극" 이다. 희극을 내포한 비극이며, 희극적인 비극이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다. 웃기고 처절한 이야기다. 빌어먹을 국가에 거대한 엿을 날리는 이 소설. 이런 소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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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3-07 1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김영하의 비소설을 좋아합니다. 요점 정리에 대해서 참 재주가 많습니다. 김영하 작가 말이죠... 그가 멜로드라마에 대해 정의한 것도 정말 기가 막혔죠. 멜로는 어긋남의 미학이다.텔레토비처럼 오고가다 자주 만나면 그것은 멜로가 아니다.. 뭐 이런 식이었는데 말이죠.. 탁월...

이 소설도 참 좋죠 ?


김영하 비극 희극 기준..좀 따겠습돠.. 아주 명쾌한 정의라서 말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6-03-07 23:39   좋아요 0 | URL
이 소설 참 좋았습니다ㅎ

저도 김영하씨의 비소설은 참 읽을만하다고 생각하고 좋아합니다.

비극과 희극의 개념정의도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모든 비극의 원인은 자만과 오만이라 하더군요.
저도 조심해야겠습니다ㅠㅋ

cyrus 2016-03-08 1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일 재미있게 읽은 책이 서평을 작성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

고양이라디오 2016-03-08 14:25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표현력도 부족하고 잘쓰고 싶은 마음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은탱이 2017-02-02 08: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생한 후기네요 저도 구매해서 읽어봐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02-02 20:45   좋아요 1 | URL
두껍지만 자꾸 손이 가는 소설이었습니다.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많이 부족해서 부끄럽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딱 1년 전 작년 구정에 읽은 책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