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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분노해야 하는가 - 분배의 실패가 만든 한국의 불평등 ㅣ 한국 자본주의 2
장하성 지음 / 헤이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좋은 책이란 자신의 주장을 뒤받침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많이 확보한 책이다. 풍부한 통계자료들을 통해 설득력을 갖추면 자신의 주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근거들은 주장에 객관성과 설득력을 부여한다. 주장은 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는 몇 백 페이지에 달할 수 있다. <총, 균, 쇠> 가 그랬다. 책을 통해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하고 싶었던 주장은 "문명의 격차는 인종간, 민족간의 우월성의 차이때문이 아니라 지리적, 환경적 요소들 때문이다." 였다. 이 한문장을 위해서 그는 750p를 써야했던 것이다. 장하성교수의 주장 역시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장에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수많은 통계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때문에 초중반부에 책이 조금 지루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감내해야 한다.
장하성 교수는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원인을 탐구해냈다. 그리고 불평등을 해소할 대책을 이야기하고, 그 대책을 실현할 주체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세가지에 대해 간단히 요약해보겠다.
일단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장하성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6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던 산업화 과정에서 기간마다 차이는 있을지라도 적어도 1980년대까지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는 소득분배의 형평성이 오히려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1997년 외환 위기이후 불평등은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그 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소득분배의 균형은 완전히 상실되었고, 이제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해진 나라가 되었다. 불평등의 악화는 단지 소득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일자리 간의 불평등, 노동자 간의 불평등, 기업 간의 불평등, 세대 간의 불평등 등 거의 모든 지표에서 한국은 세계 최악의 위치로 떨어지고 있다. 거기에다가 경제성장의 하락이 뒤따랐다. -p19
현재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로 대기업과 재벌(초대기업)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국민들은 갈수록 가난해졌다. 비정규직이 늘어났으며, 일자리는 줄어들었다. 삼성, 현대, 국민은행 등의 재벌기업들의 임금은 높아졌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성장의 과실을 분배받지 못했다. 낙수효과는 허구였다. 이 참에 한국 경제 위기설을 주장하는 대기업, 친재벌 정권의 허구도 파해쳐보자.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OECD 국가의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 동안 평균 누적 성장률은 2.7%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같은 기간 동안에 17.1% 성장했고, 이것은 OECD 국가 중에서 네 번째로 높은 것이다. (중략) 2001년부터 2013년까지에도 한국은 누적 성장률이 68.3%로 OECD 평균의 2배를 상회하며,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p332
이렇듯 한국경제는 충분히 잘 성장했지만, 국민들의 삶은 그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업은 그 이상으로 나아졌다. 더이상은 이명박근혜정권이 주장하는 대기업이 잘되면 우리나라 경제도 살아나고 국민들도 잘살게 된다는 논리에 현혹되어서는 안된다. 대기업이 잘되면 대기업만 잘된다. 그리고 대기업경제만 살아나고 대기업의 근로자들만 잘살게 된다. 이 책은 이에 대한 수많은 근거를 보여준다.
일단 현실을 즉시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 책에 나온 자료들을 소개하겠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에서 네 번째로 임금 불평등이 심하다. (1위 미국, 하지만 이 통계는 상용 근로자의 임금만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때문에 임시직 노동자의 임금을 포함할 경우 훨씬 더 심각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추청된다.) 저임금노동자가 OECD 국가 중에서 두 번째로 많다! (1위 미국) 임시직 노동자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다! (하지만 이 통계 역시 임시직 노동자에서 비정규직 중 일부 무기계약직같은 사람들은 빠져있어서 이런 사람들을 고려할 경우 '세계 1등'이 될 것이다.) 한국은 임시직의 영구직 전환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1년 후 영구직 전환율 11.1%, 3년 후 22.4%) 왠지 자꾸 1위를 차지해서 뿌듯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아직 나는 배고프다. 한국은 근속 기간이 가장 짧은 나라다! (평균 5.5년) 그리고 한국은 노동자 회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한국 63.7% 2위 터키 48%) 다 소개하려면 끝도 없기 때문에 자세한 사항은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아무튼 각종 지표와 통계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고용환경은 최악이며, 임금불평등또한 심각하다. 위에 소개한 지표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문제는 바로 이런 고용불평등과 임금불평등이다. 장하성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의 불평등 근원은 재산의 격차보다는 소득의 격차이며, 소득의 격차는 임금의 격차로 만들어진 것이다. 임금의 격차는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에서 찾아야 하며, 고용의 격차와 기업 간 불균형의 책임은 재벌 대기업에게 있다는 것을 이 책에서 논증하고 있는 것이다. -p28
그렇다. 문제의 근원은 재벌대기업에 있다. 1990년대부터 2014년 까지 가계소득은 8% 감소하고, 기업소득은 8%증가했다. (정부소득은 그대로이다.)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 평균임금의 62.3%이다. 1980년대에는 중소기업 평균임금은 대기업의 90% 수준이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같은 초대기업과의 임금격차는 더욱 크다. 대기업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의 57%, 현대자동차의 60%수준이고 중소기업의 평균 연봉은 삼성전자의 35%, 현대자동차의 37% 이다. 원청기업과 하청기업간의 임금 격차도 이와 유사하고, 비정규직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55.8% 수준에 불과하다. 그만큼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자영업자의 평균소득은 임금노동자의 평균임금의 60%에 불과하고 2000년부터 2014년까지 14년 동안 한국 경제는 73.8%포인트 성장했는데, 소비자물가지수를 적용하여 실질 가치로 환산한 자영업자의 영업이익은 무려 17.3%포인트가 줄어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로 우리 주위에 치킨집이 그토록 많이 생겨나고 망한 것을 보면 이 지표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굉장히 지루하셨으리라 생각한다. 나도 그랬다. 이런 수많은 통계자료들을 보고, 또 그래프나 그림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참으로 고단했다. 사실 나도 '저자가 이렇게까지 많은 자료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핵심적인 것만 보여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고 방금 전까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또한 수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마음이 드디어 이해가 간다. 단순히 "우리사회는 굉장히 불평등해졌고 대기업-중소기업간, 정규직-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가 커지고 자영업자는 오히려 14년 전에 비해 무려 17%나 살기 힘들어졌다." 라고 요약하고 넘어가기에는 왠지 아쉽고 수많은 자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자 똑똑히 봐라. 우리 사회가 이렇단 말이다!" 라고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저자의 노고가 드디어 이해가 된다.
본래, 짧고 간결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리뷰를 지향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책은 책 내용들을 제대로 인용하고 요약해야 할 것만 같다. 그만큼 모두가 알아야할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조금만 참아주시라. 이제 7부 능선을 넘었다. 이제 결론부분으로 들어가겠다.
앞으로는 책 내용을 인용하지 않고 그냥 평소대로 생각나는 대로 요약하면서 이야기하겠다. 시간이 늦었고 힘도 든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는 분들도 충분히 고생이 많으셨으리라 짐작되기 때문이다.
불평등의 원인을 지적했으니 이제 해결책이 남았다. 저자는 해결책으로 소득재분배가 아닌 원천적분배를 주장한다. 복지정책으로 소득재분배를 실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문제의 본질에서도 어긋난다. 문제의 원인은 과도하게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구조(갑을관계)와 비정규직 문제 때문이니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임금격차를 줄이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야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런 해결책을 실현할 주체로 미래세대인 청년세대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그들에게 깨어나고 일어서서 참여와 행동으로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현재사회를 바꾸라고 말하고 있다. 여러가지 통계자료들로 50, 60대 기성세대와 20, 30대 청년세대 간의 인식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현 사회는 지역갈등만큼이나 세대갈등이 심화되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현재도 60대 이상의 70%가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고 답한 반면에 20, 30대의 80%는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 고 평가를 내린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기성세대는 대북정책이나 출신지역에 이념이 좌우되는 반면에 청년세대는 소득분배와 경제성장에 대한 태도가 이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청년세대는 대북정책이나 출신지역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총평과 비판을 하고 끝맺으려 한다. 장하성 교수의 글은 아주 읽기 편하고, 논리적이다. 편파적이지도 않고 간결하고 명확하다. 문체가 딱딱하고 지루하지 않다. 통계자료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잘 펼치며, 분배의 필요성을 다각도로 이야기한다. 너무나 많은 자료들로 인해서 힘들기는 했으나, 어느정도는 감내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사인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불평등한 현실과 불평등의 원인,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했고, 청년세대에게 희망과 조언을 건내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여기까지 훌륭하고 좋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있었다. 글이 길어지지만 아쉬운 점 몇가지를 말하고 마무리하겠다.
아쉬운 점은 크게 두가지이다. 첫째, 책 제목에는 분노가 있지만,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분노할 수 없었다. 너무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글이기 때문이다. 통계와 자료를 분석하며 이성적인 두뇌를 쓰느라 감성적인 두뇌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좀 더 감정에 호소하는 글이나 자료, 혹은 사례나 사진들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신 분들도 전혀 분노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 불평등이 세계 몇번째고 임금격차가 얼마나 심하고 이런 것들만으로 사람을 분노하게 할 수는 없다. 강렬한 사진, 가슴아픈사례 이런 것들이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흑인 인권운동을 크게 발화시킨 것은 한 장의 강렬한 사진이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사진은 시위 현장에서 경찰견이 달려들어 무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꿋꿋하고 의젓하게 서있는 한 청년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흑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사진이었고, 수많은 흑인들과 그리고 그것을 본 백인들의 각성을 일으키는 너무나 강렬한 사진이었다.
두번째, 다행히 저자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라고 하는 것은 이 책의 전체적인 논점과 조금 어긋나는 이야기이다. 책 후기에 저자의 변을 들어보자.
이 책의 목적은 현실을 바꾸는 데 있다는 점에 대한 자각과 되새김질을 반복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한국의 현실을 분석하는 것과, 청년세대에게 세상을 바꾸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두 가지의 결이 다른 이야기가 쉽게 이어지지 않았다. 이 책의 원초적인 집필 동기는 불평등 분석이 아니라 청년세대들에게 불평등한 현실에 분노하고,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해달라는 기대와 소망에서 출발한 것이다. -p456
그렇다. 한국의 불평등한 원인과 청년세대는 큰 관계가 없다. 장하성교수는 애초에 집필동기가 청년세대를 촉발하기 위해서 였다보니, 결국 어쩔 수 없이 자기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불평등의 해결주체는 청년세대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의무이며, 특히 기성세대의 각성이 더욱 요구되는 것이다. 청년 세대는 이미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 등록금 반값투쟁, 알바노조, '30분 배달제'폐지, 최저임금 등 참여와 행동을 실천하고 있다. 여기에 장하성교수는 "아직 부족하다. 좀 더 노력해달라." 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장하성교수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보기에 고정된 목적의식에 사로잡혀 문제의 본질을 놓친 건 아닌가 싶다. 진짜 문제는 기성세대에 있다. 장하성교수는 기성세대는 이제 틀렸다고 포기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잘못이라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시험 성적에서 평균을 올리기 위해서는 80점 맞는 과목을 90점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20점 맞는 과목을 30점 맞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쉬울 수 있다. 어쩌면 청년세대가 더욱 노력하는 것보다 일부 기성세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기성세대는 결국 청년세대의 부모이다. 기성 세대의 5%만 바껴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생길 수 있다. 기성세대 중 자신들이 경제성장에서 소외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5%만 깨닫고 각성하게 되어도 충분하리라. 대기업, 친재벌 정책을 옹호하는 정당에 계속 투표하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한국사회의 문제는 청년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며 청년세대만이 노력하고 바꿔야할 문제도 아니며 청년세대만이 해결할 주체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지금 고통받고 있는 청년들의 부모또한 함께 인식을 바꾸고, 각성해야 한다. 함께 바꿔나가야 한다. 이것이 더욱 쉬운 일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이다. 청년세대가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를 설득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설득하고, 대화해야 한다. 장하성 교수가 자신의 책을 이런 용도로 사용하라고 청년세대에게 이야기했으면 더욱 좋지 않았을까 싶다. 이 책은 그만큼 설득력있는 아주 좋은 자료다. 자식이 부모에게 보여줄 이런 좋은 책들이 더욱 많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