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신판이 없어서 구판으로 읽었다. 솔직히 신판 일러스트가 이쁘긴 하다.
시대는 달라도 자신과 같은 일을 했던 동류를 조조가 함부로 죽인 일이 음험한 원한으로 뒷시대의 학자와 문사들을 자극해 그 나쁜 쪽으로의 과장은 물론 왜곡까지 서슴지 않게 만든 것은 아닐까. 탁류인 환관 출신, 군벌, 정통성의 결여, 그밖에 그 어떤 조조의 단점보다도 그런 원한이 은연중에 대중들에게까지 옮아 오늘날의 조조상이 만들어진 것이나 아닐까. -p276
이문열은 조조가 나쁜 쪽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되는 이유로 조조가 문사들을 함부로 죽인 점을 꼽고 있다. 조조가 문사들을 함부로 죽여서 동류인 문사들이 조조를 폄하했다는 설명이다. 10% 정도는 일리 있고 90% 정도는 개소리다. 문사들이 과연 동류 의식을 느꼈을지가 우선 의문이다.
대중과 학자들이 조조를 사랑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부하나 백성을 함부로 죽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이문열은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이상한 논리를 떠올린다. 이문열은 조조를 두둔한다. 난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없다. 유비와 조조를 대비시켜보면 알 수 있다. 조조와 같은 상황이라도 정반대의 행동을 할 수도 있다. 난세가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조조에게 부당하게 죽임당한 사람들은 조조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까?
"짐은 도원에서 관우, 장비와 형제의 의를 맺을 적에 함께 살고 함께 죽기를 다짐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큰 아우 운장이 동오 손권에게 해를 입어 먼저 죽었다. 만약 그 원수를 갚아주지 않으면 옛 맹세를 저버리는 게 될 것이다. 짐은 온 나라를 기울여 군사를 일으키고, 동오를 쳐 역적을 사로잡은 뒤에 그 한을 풀리라!" -p326
"아우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만리의 강산을 얻은들 귀할 게 무엇이겠는가?" -p327
관우의 복수를 위해 유비는 오를 지키로 결심한다. 조운의 간곡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심을 꺽지 않는다. 천하를 생각하면 오를 치면 안된다. 유비는 천하보다는 관우와의 의리, 맹세가 더 중요했다. 유비는 유비였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가장 유비다운 행동이라 생각한다. 관우는 조조 밑에 있을 때 유비 소식을 듣자 한 걸음에 달려갔다. 관우가 유비를 생각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유비가 관우를 생각하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천하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관우의 원수를 갚지 못한다면.
이상하게 어리석을수록 빛나는 것이 있다. 충, 효, 사랑, 의 등의 감정이다. 사람들이 삼국지를 좋아하고 유비, 관우, 장비를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