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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9권 - 출사표
나관중 원작, 이문열 평역 / 민음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평점은 3.5점을 주고 싶은데 알라딘 평균을 고려해서 3점을 준다)
후반부로 갈수록 삼국지 재미가 떨어진다. 9권은 지금까지 삼국지 중에 가장 재미가 떨어졌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가 죽으니 확실히 재미가 확 떨어진다. 초반부터 함께 해왔던 인물들이 사라지니 누구에게 마음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9권의 주인공은 제갈량인데 왠지 제갈량에게 마음이 안간다. 계속 침착맨의 말이 떠오른다. '제갈량의 똥꼬쇼'
제갈량은 유비의 유지를 이어받아 북벌을 단행한다. 북벌 전 그 유명한 출사표를 유선에게 올린다. 출사표는 참 명문이다. 북벌 전 남쪽을 안정화시키려고 남만 정벌에 나선다. 맹획을 일곱번 사로 잡고 일곱번 놓아준다. 칠종칠금이다. 이 부분이 좀 지루했다. 맹획이 중요 인물도 아닌데 좀 질질 끄는 느낌이다. 제갈량을 띄워주려는 건 알겠는데 아무튼 좀 지루했다.
재미가 떨어지는 이유 중 또 하나는 이문열이다. 자꾸 중간중간에 끼어들어서 제갈량 등 촉의 인물들을 까기 바쁘다. 점점 노골적으로 자신은 조조를 좋아하고 유비는 싫어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아니 번역이나 잘할 것이지 소설의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다.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면 또 모르겠는데 자꾸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그 생각이 공감이 가거나 설득력이 있으면 또 모르겠는데 그렇지도 않으니깐 자꾸 나올 때마다 짜증이 난다.
이문열의 모습을 보면서 나또한 반성하게 된다. 독서모임하면서 유비를 두둔하려고 정사 이야기를 많이 끌어왔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싫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독서모임이랑 번역은 좀 다른 거 같다. 정사 이야기를 하는 건 괜찮은데 너무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거 같아서 싫다. 역시 강요는 하지 말아야겠다.
점점 제갈량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커진다. 연의에서 너무 제갈량을 버프시켜줘서 그렇지 실제로는 좀 아쉬운 부분이 많다. 정치, 내정은 잘 했지만 군략가, 군지휘관적인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일단 1차 북벌에서 위연의 제안을 거절한 게 조금 아쉽다. 위험한 수이긴 했지만 약간 투자를 해서 적의 허점을 찔러보는 것도 좋았을 거 같은데. 뭐 이건 그렇다 쳐도 제일 큰 문제는 역시 마속이다. 가정 수비는 1차 북벌에서 가장 중요한 수 였다. 위연이나 조운 등 마속보다 뛰어난 장수들이 있었을텐데 제갈량의 마속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컸다. 마속은 최고 지휘관 보다 참모 역할이 더 맞았을 거 같다. 통솔력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거 같다. 경험이 부족했다. 이론과 실제의 갭을 아직 몰랐던 게 아닐까?
어쨌든 마속의 등산은 부관인 왕평도 재차 만류했고, 연의 기준으로 장합, 사마의도 비웃었을 정도이고 결국 책임을 지고 목이 베였으니 명백히 잘못인듯 보인다. 유비가 죽기 전 마속을 너무 중용하지 말라고 했는데 역시 유비의 사람 보는 눈이 제갈량보다 한 수 위였나 싶기도 하다.
유튜뷰에서 가정의 모습을 봤다.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삼국지 당시의 모습과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생각했던 모습과는 달랐다. 우선 길목이 그렇게 좁지 않았다. 제법 넓었다. 그리고 산이 그리 높지 않았다. 길목만 지키면 안될 것처럼 보였다. 충분히 길목을 무시하고 적이 산을 넘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결국 산과 길목을 다 지켰었야 될 거 같은데...... 어쨌든 가장 큰 맹점은 마속이 물길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적에게 물길이 막혀서 병사들이 건조한 날씨에 몇 일 물도 못 먹고 물이 없으니 밥도 못 먹고 하니 제대로 싸울 수가 없었다. 적 입장에서는 스스로 물도 없는 산에 고립되어 있으니 포위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거였다. 연의에서는 마속이 배수의 진 느낌으로 병사들이 물이 없어 고립되면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라고 하는 장면이 있는데. 배수의 진은 유명해서 그렇지 사실은 하책이다. 배수의 진까지 안가게 하는 게 장수의 역할이고 배수의 진은 어쩔 수 없을 때 최악의 발악같은 거다. 처음부터 최악의 발악을 준비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그리고 그 최악의 발악도 생각처럼 안됐다. 병사들이 죽기살기로 싸워 적의 포위를 뚫고 산을 내려가야 되는데 연의에서 그게 안된 걸로 나온다. 병사들의 사기를 끓어올리고 돌파구를 뚫는 건 장수의 역할이다. 함께 최전선에서 싸워서 활로를 뚫어야 하는데 마속은 그런 류의 장수는 아니었을 것이다. 뒤에서 "진군하라, 진군, 후퇴하지 마라." 해봤자 병사들이 말을 잘 안들었을 것이다. 후퇴하는 병사들의 목을 베어서라도 진군하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또 그렇지도 못한 거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죽고 내가 싫어하는 인물들은 많이 남아있으니 소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제갈량의 북벌도 이미 결말을 다 알고 있고 제갈량의 실책 때문에 실패하는 것이니 긴장감도 없고 아쉽지도 않다. 거기에 이문열까지 깐죽거리니깐 더 정이 떨어진다.
그래도 10권까지 읽지 않을 순 없다. 만약 다음에 삼국지를 읽게 된다면 이문열 번역은 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