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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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 딕>보다 재밌는 소설은 많다. 하지만 걸작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것은 <모비 딕>이다. 유명한 고전을 읽게 되어 뿌듯하다. 앞으로 <모비 딕> 이야기가 나오면 반가운 미소를 띨 수 있으리라.
토요일 밤에 고기 시장에 가서, 두발 인간들이 길게 늘어선 네발 짐승의 사체를 바라보고 있는 꼴을 보라. 그 광경을 보면 식인종도 놀라서 입을 딱 벌리지 않겠는가? 식인종이라고? 식인종이 아닌 사람이 누구인가? 앞으로 닥칠 기근에 대비하여 말라빠진 선교사를 소금에 절여 지하실에 넣어둔 피지섬 사람들이, 최후의 심판 날에, 여러분처럼 개화되고 문명화한 미식가, 거위를 땅바닥에 매어놓고 그 간을 비대하게 살찌워 푸아그라를 즐기는 사람들보다 관대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p245
과연 우리가 식인종 원주민보다 나은 점이 있을까? 나는 한 때 무조건적으로 식인풍습을 비판했었다. 물론 인신공양은 무조건적으로 비판하지만 기근 등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의 식인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거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흉년 등 기근이 들면 인육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북한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서 인육을 먹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인육을 먹는 것과 먹을 것이 풍족한 상황에서 잔인한 방식으로 네발짐승을 먹는 것. 최후의 심판 날에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을까?
주인공이 탄 '피쿼드' 호는 항해 중 여러 배들을 만났다. 그 중 '제러보엄' 호를 타고 있는 광신자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지금도 세상에는 자신이 신이니 예언자이니 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그들은 믿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다. <컬트>란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고래 이야기 중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고래의 눈에 대한 이야기다. 고래의 눈의 머리 양 옆에 붙어 있다. 때문에 두 눈이 보는 광경은 전혀 다르다. 고래는 어떻게 세상을 보고 있는 걸까? 듀얼 스크린처럼 머리 속에 2가지 영상이 떠오르는 걸까???
<모비 딕>은 다양한 개성의 선원들이 등장하고 입담도 화려하다. 항해사 스터브가 보트의 선원들에게 노를 빨리 저으라고 독촉하는 장면을 보자.
"다들 잘 들어!" 스터브도 제 보트의 선원들에게 소리쳤다. "화를 내는 건 내 신조에 어긋나지만, 저 비열한 독일 놈은 씹어먹고 싶다. 자, 어서 저어라. 저 악당 놈에게 지고 싶지는 않겠지? 브랜디를 싫어하는 녀석은 없겠지? 좋아, 제일 잘한 놈에게 브랜디 한 통을 주겠다. 이봐, 한 놈쯤은 격분해서 혈관이 터져도 되잖아? 누가 닻을 내렸지? 배가 꿈쩍도 안 하잖아. 멈춰버렸어. 이봐, 여기 보트 바닥에서 풀이 자라고 있군! 맙소사. 저기 돛대에서는 싹이 났어. 이래서는 안 돼. 저 독일 놈을 보라고. 너희들, 입에서 불을 토할 거야 말 거야?" -p488
1등 항해사 스터벅이 선장 에이해브를 죽일까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스터벅은 에이해브를 죽여야 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을 거 같다. 파멸로 향하고 있는 줄 알면서도 배에서 내리기는 쉽지 않다. 파멸이 눈 앞에 닥쳐야 지난 선택을 후회하리라.
<모비 딕>에서 기가막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다. 바로 관이다. 퀴퀘그가 병으로 죽어가자 퀴퀘그를 위한 관을 만든다. 그런데 퀴퀘그가 갑자기 회복해서 관은 쓸모없어진다. 그러다 구명부표가 망가져서 관을 구명부표로 재활용하게 된다. 이 얼마나 멋지고 우스운 아이러니인가. 배는 관을 배 옆에 달고 항해를 계속 한다. 이 얼마나 해괴한 모습인가.
배가 침몰하면 서른 명이 관 하나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겠군, 태양 아래에서 그렇게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야! 자, 망치, 끌, 역청 단지, 그물바늘이 준비됐으니, 어서 일을 시작하자." -p699
허먼 멜빌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 타이피족과의 경험을 묘사한 <타이피>, <필경사 바틀비>를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