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4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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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읽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다. <무의미의 축제>가 첫 번째 작품이다. 둘 다 괜찮았지만 밀란 쿤데라의 책을 다시 읽기는 조금 애매한 정도다. 좋긴 했지만 다른 작품을 찾아 읽고 싶을 정도까진 아니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철학적이고 재밌는 작품이었지만 몰입의 기쁨을 선사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소설이든 영화든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때문에 외부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집중해서 보고 싶어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내부적으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 그의 다른 소설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앞서 읽은 두 작품은 그랬다. 지금까지 이런 소설은 없었던 거 같다. 소설 중간에 작가가 등장해서 소설 이야기를 하는 작품은 내 기억에 없었다. 예를 들면 소설 속에서 작가가 화자로 등장해서 '소설 속' 등장인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배경설명을 해준다. 음, 쿤데라 형님, 이건 좀 장난이 지나친 거 아니오?


 쿤데라가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로 분류되고 '키치' 를 거부하고 인터뷰에서도 전형적인 소설의 형식을 거부하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소설이 아닌 철학소설? (이 부분은 기억이 불명확하다 철학소설이라 했는지 철학작품이라 했는지 아무튼) 로 봐달라고 했다. 사실 뭐 본인이 본인 맘대로 쓰는 거고 다양한 실험을 할 수도 있고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문제될 것도 없다. 허나 개인적으로 이는 독자들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독자도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이 소설, 허구의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소설가가 창조한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순간에는 그것을 잊는다. 그것을 잊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고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 여기며 하나가 될 수 있다. 허구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허구의 인물들의 허구의 이야기를 '진짜' 로 느끼게 된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등장인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소설 속' 등장인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소설 원리주의자인 내 기준으로 볼 때 선을 넘는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이든 영화든 수많은 작품들은 독자가 작품에 깊이 몰입하기 위해서 상당한 노력을 한다. 허구의 이야기지만 허구로 느끼지 않게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많은 사실들을 고증하고 개연성을 고민하고 핍진성을 위해 노력한다. 전부 독자의 몰입이 깨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보자, 영화든 연극이든 중간에 갑자기 감독이나 연출자, 각본가가 나와서 "이 영화 속(연극 속) 등장인물은 이러이러한 연유로 창조되었습니다." 라고 하면 볼 맛이 나겠는가? 어차피 허구의 인물이니 죽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다. 몰입이 깨져버리는 것이다. 

   

 <무의미의 축제>에서도 이런 장치가 보이고 느껴져서 김이 샌 적이 있었다. 쿤데라의 다른 작품인 <농담>이나 <불멸>이 궁금하긴 하지만 당분간은 찾아 읽지는 않을 거 같다. 


 맘에 들지 않은 부분을 이야기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았다. 허나 나의 몰입을 방해하는 자는 쿤데라라해도 용서치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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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6-13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완독에 실패한 책이라는 -

언젠가 다시 읽게 되지 않을까요.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8:01   좋아요 0 | URL
프라하의 봄이라 제목으로 영화화 됐을 거예요ㅎ 영화 괜찮다던데 영화로 도전해보시는 건ㅎㅎ

새파랑 2023-06-15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쿤데라의 <농담>은 재미있습니다 ~!! 저도 이 책은 좀 그랬었습니다 ㅋ

고양이라디오 2023-06-15 17:23   좋아요 0 | URL
아, 새파랑님이 추천하시니 급관심이 가는데요? 이제 당분간 쿤데라 그만 읽으려고 했는데ㅎㅎㅎ <농담>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