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점 9
감독 다니엘 콴
출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 호이 콴, 제이미 리 커티스
장르 액션, 코미디, SF, 가족
(스포일러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화평론가 이동진씨가 5점 만점을 주고 극찬한 영화라서 보게 되었다. 유튜브 영상은 썸네일만 보고 영화를 보고 찾아서 다시 봤다. 이동진씨의 영화평은 참 좋다. 나와 영화 취향도 잘 맞고 영화 해석도 괜찮아서 즐겨 보고 있다. 간혹 억지스럽거나 작위적인 해석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감상은 모두 제각각이니까.
실제로도 영화나 문학평론가들이 '이런 부분은 창작자가 이런 의도로 표현한 거 같다.' 라고 할 때, 실제로 창작자는 '그런 건 전혀 생각 못해봤다.' 라고 할 때가 많다. 그리고 누군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아주 유명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론을 써보고 싶은데 부끄러워서 자기 이름으로는 못 쓰겠고 그래서 가명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한 평론과 해설을 써서 어느 출판사인가 잡지에 보냈는데, '당신의 평론은 너무 단편적이고 졸렬하다.' 라는 답장이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앞으로 이어질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영화는 멀티버스를 소재로 다룬다. 멀티버스를 위협하는 악당이 있고 그를 저지하려는 주인공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만큼 이 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정신없고 난잡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중심은 흐트러지지 않고 주제 또한 잘 표현한다.
영화 초반부는 매트릭스가 떠올랐다.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가 있고 주인공이 악에 맞설 수 있는 선택받은 자인지 아닌지 하는 혼란이 있다. 주인공의 각성. 세무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위기에 처하는 장면은 경찰조사를 받으러 갔다가 위기에 처하는 매트릭스를 닮았다.
이 영화는 장점이 참 많다. 특히 멀티버스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표현해낸 점을 꼽고 싶다. 그리고 예측을 벗어나는 전개라던지 예측을 한 번씩 꼬는 연출도 참 좋았다.
이 영화는 코믹적인 요소도 풍부하다. 주성치를 연상시키는 병맛 개그와 화장실 개그도 좋았다. 액션 역시 주성치 영화를 연상시켰다. 코믹하면서 화려한 중국식 액션이 좋았다.
이 영화의 중심철학은 불교에서 가져온 거 같다. 포스터도 불교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연이 얽혀있는 모습이 연기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자비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점점 각박해지고 진실한 소통이 적어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거기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은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자비심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도 떠오르고 항상 현재를 살라는 '카르페디엠'도 떠오른다. 주인공은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불만, 불평이 많다. 그리고 항상 다른 데 신경쓰느라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다. 지금 자신 앞에 있는 가장 중요한 사람을 소홀히 대하기 일쑤다. 남편, 딸과의 대화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멀티버스의 자기자신을 경험한다면 어떨까? 모든 가능성, 모든 감정, 모든 순간들을 경험하면 어떻게 될까? 이 영화의 악당은 바로 그 모든 것을 경험한 존재다. 모든 것을 경험하고 악당은 허무주의에 빠진다. 그리고 자기 파괴, 소멸의 길을 걷고자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멸의 길을 모든 것을 경험한 주인공과 함께 걷고자 한다. 주인공도 모든 것을 경험하면 자기를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주인공은 모든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악당과 같은 사상에 빠진다. 모든 것은 의미가 없고 무가치하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모든 것은 통계적 필연성을 갖고 결과는 정해져 있다. 바로 죽음.
주인공도 자기 파괴적인 감정을 갖는다. 인생에는 의미도 없고 특별할 거도 없다. 하지만 그런 그를 구원해주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장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남편이다. 남편은 자비심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마음, 진실된 마음. 그는 그런 마음으로 세상과 싸워왔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남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서. 그런 남편이 주인공을 구원하고 주인공은 악당인 자신의 딸을 구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지금 내게 필요한 뜻깊은 영화였다. 나도 요즘 사는 게 재미도 없고 삶에 의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세상이라도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다. 자기 자신과 남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돌보는 것. 그것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뒷자석에 앉은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목소리의 대화가 들려왔다. "뭐야, 이게 무슨 영화야? 무슨 내용이야?", "야 너 이걸 진짜 3번이나 본 거야?"
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3번이나 볼 정도로 좋은 영화일 수도 있다. 나는 명백히 후자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다. 감독의 실험정신과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