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하는 마음


 이 옷을 누가 입는가 헤아리며 손빨래를 한다. 이 옷을 입는 사람이 사는 터전은 어떠해야 좋을까 곱씹으며 비빔질을 한다. 빨래할 때뿐 아니라 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이 밥을 누가 먹는가 생각한다. 이 밥을 먹는 사람은 어떻게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면 좋은가 돌아본다. 내가 쓰는 글은 누가 읽으라고 쓰는 글인가를 되뇌어 본다. 내 어줍잖은 글 하나를 읽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무슨 일을 어떤 생각으로 펼쳐 나가면 좋은가를 가만히 톺아본다. 빨래하는 마음은 밥하는 마음이고, 밥하는 마음은 걸레질하는 마음이며, 걸레질하는 마음은 아이를 안고 동네마실을 하는 마음이요, 아기수레 아닌 어버이 품으로 아이를 보듬는 마음은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이다. 좋은 책 하나 찾아서 읽으려는 마음은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이고, 애써 글 한 줄 쓰려는 마음은 호미질 하는 마음이다. 호미질 하는 마음은 바느질 하는 마음이고, 바느질 하는 마음은 설거지를 하고 내 어버이 등과 허리를 부드러이 주무르는 마음이다. (4343.5.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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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재우는 마음


 더 놀고 싶어 하며 졸음을 억지로 참고 있는 아이를 재우기란 몹시 힘들다. 불을 다 끄고 아이한테 기저귀를 채우고 이불을 덮은 다음 토닥거리더라도 아이는 잠들지 않기 일쑤이다. 온 하루 아이하고 부대끼며 지친 아빠가 먼저 곯아떨어질 때가 있고, 아이는 어두운 방에서 홀로 깨어 옹알거리며 놀다가 잠투정을 하곤 한다. 그래도 어찌어찌 아이가 가까스로 잠들고, 간밤에 오줌 기저귀를 한 번 갈고 다시 토닥이며 재울 때 아이 잠든 옆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렇게 고되고 지치고 벅찬 아이키우기란 더없이 힘든 보람이라고 새삼스레 느낀다. 힘드니까 보람이 있다 할 수는 없고,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동안 시나브로 보람이 샘솟는다. 아이하고 부대낀 하루하루란 날마다 책 몇 권어치 이야기 넘치는 삶결이다. (4343.5.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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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 안는 마음


 스물한 달째 살아가는 아이를 가슴으로 안으며 다닐 때에는 팔이 떨어질 듯하다. 더욱이 애 아빠가 하는 일이란 책방마실이나 골목마실인 터라, 바깥에 한 번 나오면 예닐곱 시간은 우습게 돌아다닌다. 아이는 너덧 시간을 아주 신나게 놀더라도 지쳐 걸음이 더디거나 졸음에 겨워 하기 마련이다. 이때에는 애 아빠가 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고, 아이를 품에 안으며 재워야 한다. 아이 옷가지며 책이며 잔뜩 든 무거운 가방을 등에 메고 사진기를 목에 건 채 아이를 안고 걷자면 다리통이 퉁퉁 붓고 발바닥이 후끈거리며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내가 더위를 타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날이 쌀쌀하다며 나보고 왜 긴옷을 안 입느냐고 물을 때면 그저 빙긋 웃는다. 아이를 키워 본 분들조차 아이를 안고 다니면 얼마나 힘들고 더운 줄을 잊었을까. 아이를 수레에 태워 밀고 다니면 나처럼 땀 뻘뻘 흘리며 온몸이 뻑적지근할 일은 없겠지. 하루하루 아이 몸무게가 차츰차츰 늘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팔이 빠지고 고되리라 본다. 오늘은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가 넘을 때까지 아이하고 돌아다니며 똥 싼 바지를 빨고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이고 품에 안아 낮잠을 재우고 아이 손에 붙잡혀 여기저기 다니고 계단 오르내리기 도와주고 하면서 더할 나위 없이 힘에 부친다고 느낀다. 함께 골목마실을 하던 분들이 아이를 한동안 안아 주었기에 지쳐 쓰러지지는 않았는데, 배고프고 졸린 아이를 혼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한숨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래도 콩물 두 잔을 마시고 밥 조금 먹은 아이가 속이 든든해졌는지 투정을 부리지 않고 얌전히 아빠하고 있어 주어 고맙게 달래면서 토닥토닥 재웠다. 팔이 저린 채 아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며 아이를 수레에 싣고 걷는 다른 애 엄마나 애 아빠를 보며 오늘 하루만큼은 슬며시 부러웠는데, 부러우면서도 저이들은 팔 빠지고 팔 저리고 온몸 쑤신 어버이로 지내는 괴로운 기쁨을 모르겠구나 싶어, 나는 앞으로도 아이수레는 쓰고 싶지 않다. 힘에 겨우니까 이렇게 힘에 겨운 대로 살고 싶다고 할까. 힘에 겨우니까 힘에 겨운 짐을 내려놓는다기보다 힘에 겨운 짐을 더 단단히 붙잡으며 내 삶을 다스리고 싶다고 할까. (4343.5.3.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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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이 품는 삶은 골목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조촐히 느낍니다. 그러나 골목에서 살아가면서도 골목 삶을 못 느끼기도 합니다. 살아야 볼 수 있는 이야기인데, 살고 있어도 마음이 닿지 않으면 코앞에 있어도 느끼지 못해요.

- 2010.8.22. 인천 동구 송림1동. 

(왼쪽 작은 수풀 밑에 조그마한 빗돌이 서 있는데, 퍽 오래된 '숨은 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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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목과 글쓰기


 아이가 어젯밤부터 손목이 아프다며 “아야.” 하면서 운다. 오늘 낮까지 이렇게 울더니, 저녁때에 그 아프다던 오른손목에 시계를 차며 신나게 뛰어논다. 속으로 ‘내 아이이지만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싶다. 그러나 오른손목이 살짝 저릿한 아픔이 가셨으니 이렇게 놀 수 있겠지. 어제 밤 동안 아프다며 거의 삼십 분인가 이십 분인가 …… 틈틈이 “아부지!” 하면서 내 얼굴을 툭툭 치며 깨우더니. 그래, 생각해 보니 아이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며 아버지를 깨웠으니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밤잠을 못 자고 아이는 아이대로 밤잠을 못 잔 셈이다. 아버지로서는 새벽부터 쌀을 씻어 불려 놓다가 아침에 밥을 안치고, 또 찌개 하나 끓이며 빨래를 하고, 이러며 이부자리 개고 뭐 하고 밥상 차린 다음 밥 먹이고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하고, 가을녘 햇살 자리에 따라 마당가에 널어 놓은 빨랫대 자리 옮기고 …… 하면서 죽어나느라 나 혼자 졸음이 쏟아져 괴롭다 노래하지만, 아이 또한 손목이 아프다며 밤새 잠을 못 이루었으니 고단한데 손목이 아픈 탓에 제대로 놀지 못해 더 짜증스러워 투정을 부리고 하겠지. 참 어린 나이부터 애먹는구나. 돌 무렵에 밥상 모서리에 눈썹을 박으며 몇 센티미터 찢어져서 맨살에 마취주사 없이 꿰매지를 않나, 툭하면 넘어지고 박고 까지고. 그나마 아이가 손목이 아프다며 숟가락이나 젓가락을 쥐지 못하니 아빠랑 엄마가 떠먹이는 밥을 날름날름 잘 받아 먹어 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이제까지 함께 밥을 먹어 온 날 가운데 가장 빨리 밥상을 치울 수 있었다. 아, 늘 한 시간은 쉽게 걸리던 밥먹기를 이토록 일찍 끝마칠 수 있다니. 아이가 늘 아프다면 엄마랑 아빠 말을 잘 들어 줄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설핏 했지만,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니까 그렇게 밥을 먹으면서도 간지러운 몸을 어쩌지 못해 엉덩이 들썩들썩하면서 뛰어놀아야 맞겠지. 앞으로 몇 살 나이까지 이렇게 놀겠는가. 아버지로서, 어버이로서 조금 더 찬찬히 바라보고 마주하며 얼싸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한창 무럭무럭 크면서 말을 제법 익히는 때인데, 더 안고 더 어르며 더 따스히 말을 걸어야 한다고 느낀다. 아이가 어느 한 군데 아프기라도 하면 차라리 내 몸이 아프기를 바라는데, 아이가 아파해 보는 나날을 겪으며 제 몸이 아프듯 제 이웃과 둘레 사람들 몸도 아플 수 있거나 몸이 아플 때에 얼마나 괴로운가를 살갗으로, 온몸으로 잘 삭이거나 받아들여 줄 수 있기를 비손한다. 아이야, 모레까지이든 글피까지이든 늦게늦게까지 오래오래 잠자며 손목이며 다른 곳이며 아픈 자리 싹 씻고 다시금 말괄돼지처럼 개구지게 놀아 보렴. (4343.11.2.불.ㅎㄲㅅㄱ) 


(이렇게 까불며 놀다가 손목을 삐끗한 돼지 한 마리...-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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