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져야 할 시월 끝물에 피어난 꽃. 기차길에 꽃이 피는 줄 누가 알고 있을까. 

- 2010.10.28. 인천 중구 신흥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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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림과 글쓰기 3


 살림을 하는 사람이 글을 얼마나 쓰고 책을 얼마나 읽을 수 있을까.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사람이 살림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아이를 무릎에 앉히어 그림책을 읽히면서 ‘밥벌이를 하는 글’을 쓰거나 ‘내 마음밥 채운다는 책’을 읽을 수 있나? 다만, 골목마실이나 헌책방마실을 할 적에는 아이를 안고 한손으로 덜덜 떨며 사진을 찍곤 했다. 숨을 이십 초쯤 멈추고 손이 떨리지 않게끔 다스리면서 살며시 단추를 누른다. 사진 한 장 찍고 나면 히유 한숨이 쏟아지면서, 아이가 포근히 안겨 있는가 살핀다. 시골집에서는 아이랑 놀다가 지쳐 떨어져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아이가 춤추거나 노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이마저도 삼십 분이 넘어가면 그냥 곯아떨어진다. 아이는 아이대로 더 신나게 뛰어논다. 이제 아이를 재우고픈 마음에 등불 하나 없이 깜깜한 시골길을 손 잡고 거닐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눈다. 머잖아 동생이 태어날 텐데 언니 된 아이가 밥 잘 먹고 잠 잘 자며 마음껏 뛰어놀면 참으로 좋겠다고. 이렇게 등불 하나 없이 깜깜한 때를 ‘밤’이라 하는데, 이러한 밤에는 다들 코 자니 아이도 코 자야 한다고. 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안아 달라 할 때쯤 그만 걷고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닿으니 아이는 다시금 뛰어논다. 어른은 아이를 이기지 못한다. (4343.1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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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집 안쪽에 세워 놓은, 그러니까 한 층으로 된 골목집 옥상 자리에 박아 놓은 빨래줄에 빨래집게 잔뜩 집혀 있다. 뒤쪽 빨래줄에는 시래기가 나란히. 

- 2010.10.27. 인천 중구 신흥동2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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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을 깨는 마음


 낮잠 없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놀고 나서, 밤새 손을 잡자며 아버지를 깨우고 어머니를 깨우며 뒤척이다가는 이듬날 새벽같이 일어나는 아이를 어떻게 돌보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도무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아침나절, 아이가 함께 안 놀아 준다며 훌쩍훌쩍대는 낑낑 소리를 듣다가 게슴츠레하며 무거운 눈을 억지로 뜨고 일어서다. 능금 한 알을 씻어 칼로 껍질을 깎는데 자꾸 칼이 빗나간다. 무딘 칼이라 손을 안 베었지 잘 드는 칼이었다면 손을 몇 번 베었겠다. 아이 아빠는 능금을 껍질째 먹는데 아이한테 먹이자면 아직 껍질을 벗겨야 하니, 칼질 못하는 이 사람이 능금 깎기에 조금은 익숙해질 수 있을까.

 아빠가 부시시 일어나니 아이는 홀짝임을 그친다. 금세 방실방실 웃는다. 그렇지만 아이 아빠는 시무룩한 얼굴로 아이한테 이래라 저래라 한다. 아이는 그래도 좋댄다. 아빠 등에 기대어 뭔가를 아빠 목 둘레에 얹어 놓더니 엄마 웃옷을 입겠다면서 칭얼대고, 입혀 놓았더니 조금 뒤에 단추를 끌러 달라 하고, 얼마 뒤에 다시 입겠다고 비비댄다. 아이한테는 놀이가 일이라 하는데, 아이가 십 분쯤만 놀아도 온 집안은 어질러진다. 십 분 늘어놓은 갖가지 물건을 이십 분 동안 치워야 한다.

 갓난쟁이일 때에는 갓난쟁이일 때대로 아이하고 복닥이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금 크며 첫 돌을 지나고 두 돌을 지나니 이때에는 이때대로 부대끼며 잠을 들기 힘들다. 한 해가 저물며 네 살이 될 아이는 새해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제 아버지랑 어머니 잠을 앗아 먹으려나.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제 어버이 살과 마음과 몸을 나누어 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나 또한 내 어버이 살과 마음과 몸을 신나게 얻어 먹으며 자라 왔고, 아직까지 내 어버이한테서 살과 마음과 몸을 얻어 먹는다고 느낀다. 아마 우리 딸아이 또한 열 살이 되고 스무 살이 되며 서른 살이 된달지라도, 오늘 하루와 매한가지로 내 살과 마음과 몸을 살뜰히 앗아 먹을 테지.

 그러면 아이한테 더욱 기쁘게 내 살을 나누어 주어야 하려나. 아이한테 내 마음과 몸을 더 거리끼지 말며 신나게 도려내어 주어야 하려나. 그야말로 말괄돼지답게 춤추고 노래하며 놀다가 잠든 얼굴을 보면 ‘이 돼지 녀석!’ 하면서도 살며시 볼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어루만질밖에 없다. 잠을 깨야지. 잠이 오면 눈을 비비고, 비척비척 비틀비틀 해롱해롱이라면 한 번 더 기운을 내야지. 아빠가 홀로 책상맡에 앉아 글을 쓰니까 아이가 고맙게 혼자 노래하며 놀다가 책꽂이에서 그림책 몇 꺼내어 아빠 곁으로 와서 얌전히 앉아 책을 펼쳐 읽어 준다. (4343.1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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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5.
 : 아이와 함께 읍내 장마당 마실



- 어제 빈 수레를 끌고 마을 가게에 다녀온 뒤 오늘 다짐해 본다. 오늘은 무극(금왕읍) 장날이다. 아이랑 무극 장날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 보자.

- 혼자서 무극 읍내까지 달리는 데에는 이십 분이 조금 안 걸린다. 아이를 태우면 삼십 분쯤으로 잡아야겠지. 돌아오자면 얼마쯤 걸리는가를 헤아려 보며, 늦어도 낮 한 시에는 나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그러나 이래저래 살피고 자전거 손보며 가방을 꾸리다가 두 시가 거의 다 되어 길을 나서다.

- 두 시 무렵이면 아이가 졸릴락 말락 하는 때. 논둑길을 달리며 아이를 돌아보며 묻는다. “좋아? 좋아? 시원해? 시원해?” 아이는 대꾸를 거의 않는다. 틀림없이 졸리구만.

- 십일 월로 접어든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거의 안 보인다. 이제 잠자리들은 거의 모두 흙으로 돌아갔겠지. 고작 보름쯤 앞서만 해도 이 길에서 잠자리를 수백 마리나 마주했는데.

- 한길로 나온다. 이제부터 자동차가 많으리라.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리면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하고, 수레에 앉은 아이가 꽁알대는 소리만 듣는다. 한길로 나오고부터는 아이하고 얘기를 주고받지 못한다. 차소리가 참 시끄러우며 크다.

- 세거리 이음길에서 자가용 한 대가 끼어들려다가 멈추다. 자동차 모는 이들이여, 자전거라고 함부로 보지 말고, 제발 교통규칙을 잘 지켜 주소서.

- 신니면 광월리에서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로 살짝 접어들다가 금왕읍(무극)으로 들어서다. 일본사람이 지은 ‘금왕’이라는 이름이 싫으나, 관청에서는 읍이름을 ‘금왕’으로 붙였다. 이곳 읍내에 있는 학교는 ‘금왕’이 아닌 ‘무극’을 이름으로 삼고, 모두들 ‘무극’이라는 말을 훨씬 자주 쓴다.

- 예순터고개에 접어들기 앞서 시골버스 타는 곳에 할매 한 분 앉아 있다. 어, 시골버스 지나는 때인가. 예순터고개를 낑낑대며 오르니 무극 읍내에서 나온 거의 텅 빈 시골버스가 보인다.

- 예순터고개 한 구비를 넘고 내리막을 달리는데 차에 치여 죽은 짐승 한 마리 보인다. 자전거를 늦춘다. 천천히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이런. 누군가 일부러 차로 치지 않았나 싶은 모습이다. 너구리가 아닌가 싶은 이 들짐승을 차로 치어 놓고 가죽을 벗기다가 그냥 두고 간 자국이 고스란히 있다. 가죽을 얻으려 했을까, 고기를 얻으려 했을까, 둘 다일까. 자동차를 모는 모든 사람이 이와 같지는 않은 줄 안다. 자동차꾼이 더없이 슬프고 불쌍하다.

- 읍내에 닿다. 장마당 한켠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아이를 내린다. 삼십 분이 조금 안 걸렸다. 아이가 잘 와 주어 고맙다. 이제 아이가 더울는지 몰라 겉옷 지퍼를 내리고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가 “여기 까까 있네?” 하고 말하며 과자장수 옆을 지나고, 과일장수 옆을 지나며, 나물장수 옆을 지난다. 도토리묵 파는 집에서 도토리묵 하나를 사고, 옆 찐빵집에서 찐빵 이천 원어치를 산다. 아이한테 찐빵 하나 쥐어 주고 나도 하나 먹는다. 장마당을 한 바퀴 슥 돈다. 같은 음성군이지만 음성 읍내 장마당보다 사람이 훨씬 많고 장사꾼 또한 더 많다. 음성군에서는 무극이 외려 사람이 더 많은가 보다. 어쩌면 이곳은 나중에 음성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나.

- 귤과 능금을 파는 짐차 앞에 서서 오천 원어치를 산다. 작은 알을 산다. 아저씨가 여섯 알이나 덤으로 넣어 준다. 아이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장마당을 더 돌까 하다가 아이도 졸립고 더 볼거리는 없기에 동큐제과에 들른다. 퍽 오래된 시골 빵집이다. 이곳도 새끼가게이긴 할 텐데 이름난 몇몇 새끼가게보다 이 집이 좋다. 소시지빵하고 고로께하고 단팥빵하고 바게트빵을 하나씩 산다.

- 무극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을 두 병 산다. 다른 읍내는 장마당이 열리면 하나로마트가 파리 날리던데, 무극은 장마당이건 말건 사람이 참 많다.

-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한테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몇 번 외치는데 그닥 대꾸가 없다. 참 졸린가 보다. 찐빵 하나를 더 쥐어 준다. 부디 집까지 잘 견디어 주렴.

- 읍내로 오는 길은 할딱고개를 셋 넘기는 하지만 내리막이 많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할딱고개를 똑같이 셋 넘으나 거의 오르막이기만 하다. 페달이 무겁다. 그러나 다리에 더 힘을 준다. 아이하고 함께 달리는데, 아이가 뒤에서 볼 때에 아빠 궁디가 힘차게 펄떡펄떡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 할딱고개를 오르며 생각한다. 네 해 앞서였나, 서울로 책방마실을 하며 이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 백오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이와 비슷한 할딱고개를 지날 때마다 얼마나 낑낑대면서 달렸던가. 이렇게 달렸는데 자전거 체인이 용케 끊어지지 않고 잘 버티어 주었고, 이 자전거도 고맙게 잘 달려 주었다. 씽씽 자동차하고 대면 참 느림보 자전거이지만, 빈 수레일 때에는 한 시간에 삼십 킬로미터를 달렸고, 수레에 책을 담거나 아이를 태울 때에는 얼추 이십 킬로미터는 달리는 셈 아닌가 싶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하고 먼 나들이를 한다 치면, 하루에 백 킬로미터쯤 달려 볼 수 있을까. 글쎄, 백 킬로미터라면 다섯 시간인데, 사이사이 쉬거나 밥을 먹거나 아이가 걷도록 해 준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으려나. 백 킬로미터는 좀 어렵나. 아니, 백 킬로미터를 달릴 수는 있겠지만, 그냥 길을 내처 지나간다면 따분하지 않으려나.

- 드디어 할딱고개 셋을 다 넘고 내리막. 신나는 내리막에 앞서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거의 눈이 감긴다. 내리막을 달린다. 오른쪽에 숱하게 있는 공장 가운데 한 곳을 스치는데, 살짝 일손을 쉬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던 어느 일꾼이 손을 치켜들며 외친다. “멋져요. 자, 화이팅!” 어제 마을길에서 택배 짐차를 마주했을 때에도 ‘어, 어.’ 했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어, 어.’ 하다가 지나친다. 한창 숨이 턱에 차오르며 할딱고개를 지났기에 무어라 대꾸를 하거나 인사를 받거나 하지 못한다.

- 대원휴게소 옆을 오르며 생각한다. 난 이러한 인사말과 북돋움말을 들으려고 자전거를 타는가? 아이를 수레에 태워 달리는 까닭은 무언가? 자전거가 좋으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가? 아이하고 이렇게 놀아 주면 좋으리라 여기는가? 내 삶과 자전거가 잘 어울리니까 타는가? 내 몸을 튼튼히 지키고 싶어 자전거를 즐기는가?

- 음성군에서 충주시로 바뀌는 못고개 언덕받이에 이르다. 페달질을 늦추며 한숨을 돌린다. 시골버스 타는 데에 버스 한 대 서 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일까 궁금해서 버스 앞에 붙은 알림판을 보니 충주 시내로 간다고 되어 있다.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길에서 어찌어찌 할 수는 없어 조금 더 달려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이제 자전거에서 내린다. 수레 덮개를 내려야겠지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본다. 참 잘 자는구나. 찐빵은 먹다가 말았네. 먹다 만 찐빵을 떨어뜨렸고, 입가는 온통 팥앙금. 피식 웃음이 난다. 예쁘구나. 덮개는 못 씌우겠다. 낮이 저녁으로 바뀌는 이즈음 햇살이 곱고 바람이 포근하다. 아이가 이 햇살과 바람을 살살 맞아들이면 더 낫겠다고 느낀다. 자전거는 더 천천히 달린다. 비로소 조용한 논둑길을 달린다. 시원하구나. 가을바람이 따사롭구나.

- 어느덧 집에 닿는다. 아이 신을 벗기고 아이를 덮던 이불을 걷는다. 아이를 살그머니 품에 안는다. 아이 엄마가 문을 열고 아이를 받아 주려 한다. 가만히 아이를 건넨다. 아이가 갑자기 눈을 뜬다. 헉. 그냥 주무시지? 아이는 엄마 품에서 깨어나 저녁 아홉 시까지 잠을 안 잔다. 신나게 뛰어놀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아니, 아이라서 이렇게 대단한가. 아빠는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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