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1.20.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



- 토요일 무극 장날에 맞추어 읍내 마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이른겨울을 눈앞에 두었기에 한낮에 길을 떠나 일찍 돌아오자고 생각한다. 12시 27분에 집에서 나서다.

- 집에서 길을 나서기 앞서 읍내 마실은 좀 머니까 체인이며 자전거며 꼼꼼히 살피고 손질한다. 날이 추운 탓인지 수레를 달고 시골 오르막을 낑낑대며 오르다 보면 기어가 잘 안 먹곤 한다. 가는 길은 괜찮아도 돌아오는 길에 꼭 말썽이 생기곤 한다.

- 조금 쌀쌀하지만 반바지를 입고 길을 나선다. 긴바지를 입고 바지 아래쪽을 끈으로 묶곤 했는데, 한창 달리다 보면 땀이 차며 덥다. 사람들이 어떻게 보든 말든 수레를 더 잘 끌며 오갈 수 있도록 차려입어야 한다. 예순터 고개를 오를 즈음, 처음 길을 나설 때 생각했듯이 등이며 다리이며 후끈후끈하면서 땀이 흐른다.

- 멧기슭 우리 집에서 무극 읍내(금왕읍)로 가는 길은 네찻길. 이 네찻길을 오가는 차는 그리 안 많지만 우리 시골마을에서는 차가 가장 많이 오가는 길이다. 그래 보았자 도시로 치면 아주 한갓진 길이라 할 텐데, 신호에 따라 한 차례 차가 씽 지나가고 나면 귀가 먹먹하다. 아이도 아빠하고 마찬가지인가 보다. 차들이 씽 하고 지나간 뒤에 “빠방이 시끄러워.” 하고 한 마디 한다.

- 자동차 흐름이 끊어지고 아주 조용히 시골길을 달릴 때면, 길가 풀숲과 안쪽 산골짝에 깃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잘 들린다. 그런데 풀숲에 있던 자그마한 새들은 자전거가 달리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깜짝깜짝 놀라는지,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내뺀다.

- 예순터 고개를 다 오르고 내리며 바야흐로 무극에 들어선다. 읍내에 들어설 즈음, 고등학생 둘이 길가를 나란히 거닐며 수다를 떨다가 문득 과자봉지를 휙 내던지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아무렇지 않게 휙 내던진다. 갑작스런 일이라 멍하고 얼떨떨하다.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 어린 나이에 이렇게 손쉽게 과자봉지를 길에 함부로 버릴 수 있는가. 이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지? 이 아이들은 집에서 어떻게 지내지? 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무엇을 가르쳤을까? 이 아이들을 낳아 기른 어버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었는가?

- 무극 읍내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 한 병을 산다. 무극은 장날이어도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드글드글하다. 음성 읍내 하나로마트는 장날이면 하나로마트에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무극 읍내는 하나로마트 코앞에 높직한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으니, 이 아파트숲 사람들이 장마당까지 걸어가기 귀찮거나 자동차를 타고 가도 대 놓기 마땅하지 않아 하나로마트로만 가려나. 그러나 무극 읍내 개천가에는 차 댈 자리가 아주 넓다. 시골 읍내에 살아도 아파트가 살림집이라면 마트에 다니기가 수월하고, 장마당 둘러보기는 익숙하지 않으려나.

- 도토리묵을 사고 두부를 한 모 사며 찐빵을 이천 원어치 산다. 오늘은 찐빵이 하나도 따뜻하지 않다. 아이는 찐빵을 두 입 베어물다가 더는 안 먹고 아빠 먹으라고 자꾸 내민다. 따뜻하지 않은 찐빵은 아이가 먹기에도 맛이 없구나. 아빠가 다 먹어 준다.

- 짐차에 과일을 잔뜩 실은 아저씨가 파는 능금보따리를 하나 고른다. 오천 원짜리를 고르는데 능금 몇 알에다가 감하고 귤을 덤으로 얹어 준다. 고작 오천 원어치를 살 뿐인데 이삼천 원어치를 더 얹어 주는 셈. 고마우면서 미안하다.

- 아이 엄마가 사 오라 한 밤을 한 봉지에 사천 원을 주고 장만한다. 약국에 들러 쥐끈끈이 두 봉지 천 원에 산다. 저잣거리에서 그때그때 빚어서 파는 물고기묵을 오천 원어치 산다. 양파 작은 묶음을 삼천 원에 산다. 양파하고 능금은 수레 뒷칸에 싣는다. 가방이 묵직하다.

- 집으로 돌아오는 예순터 고개는 한결 힘겹다. 그렇지만 읍내로 올 때에는 제법 수월했으니 마땅한 노릇이지. 생각해 보면, 집에서 읍내로 나올 때에는 빈 가방이니까 조금 더 힘겨워도 괜찮고, 읍내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가방이 꽉 차니까 길이 한결 수월하면 좋으련만. 이쪽 읍내로 가든 저쪽 읍내로 가든, 언제나 집에서 나설 때에는 길이 수월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더 비알진 고개를 더욱 힘겹게 올라야 한다.

- 읍내를 벗어나 예순터 고개 두 번째 고비를 오를 무렵 뒤를 돌아보니 아이가 새근새근 잠들었다. 읍내 장마당부터 퍽 졸렸는가 보구나. 그래도 과일장수 아저씨가 건넨 작은 귤 두 알을 두 손에 하나씩 꼬옥 쥔 채로 잠들었다. 얼굴과 등판으로는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싱긋 웃는다. 고갯마루에 닿아 자전거를 세운다. 아이가 덮는 담요하고 두툼한 겉옷을 잘 여미어 놓는다. 수레 덮개를 내린다. 긴소매 웃옷 한 벌을 벗는다. 반소매 차림으로 달린다. 마지막 고빗사위 오르막을 지나 내리막을 씽 달리는데 퍼더덕 소리가 나면서 덮개가 말려 올라간다. 덮개를 제대로 안 덮었구나. 이제 막 잠든 아이가 춥겠다. 내리막에서는 좀 신나게 달리며 땀을 식히고 싶었으나 빠르기를 줄여 천천히 내려온다.

- 마을 어귀에 있는 보리밥집에 들른다. 땀도 식히고, 아이 엄마가 먹을 김치를 얻으며, 아이 까까를 하나 사기로 한다. 아이 까까는 보리건빵 한 봉지. 매운 밥을 못 먹는 나는 김치를 손대지 못하지만, 아이 엄마랑 아이는 김치를 무척 잘 먹고 좋아한다. 오늘도 김치를 고맙게 얻는다. 내가 김치를 못 먹다 보니, 집식구 둘이 김치를 좋아하는 데에도 김치를 담글 생각을 못한다. 매운 것은 건드리기조차 힘들다. 그렇다고 몸이 아픈 아이 엄마가 김치를 담글 수도 없고.

- 논둑길로 접어든다. 논둑길로 접어들어 달리면 좋다. 마주 달리는 차가 아주 드물게 있는데, 이때만 빼고는 이 논둑길은 언제나 자전거 차지라서 호젓하다. 호젓한 길을 달리며 생각에 잠긴다. 읍내를 다녀오며 달린 네찻길 국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기 힘들었다. 자동차가 그리 많이 오가지는 않아도 이 자동차들이 오가며 내는 소리 때문에 몹시 시끄러우니까 생각이고 뭐고 없다. 조용하고 호젓한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릴 때 비로소 무언가 생각을 할 수 있다. 자동차로 시끄럽거나 바쁜 국도라든지 도심지에서는 차소리 때문에 고단하기도 하지만, 자전거가 차에 치일까, 또는 신호라든지 길가에 마구 대 놓은 자동차 때문에 다른 데에는 마음을 쓰지 못한다. 도시에서는 나 스스로 차분히 자전거를 즐기지 못하고, 조금 더 느긋하게 자전거를 달릴 수 없다. 더군다나 어디에선가 불쑥 튀어나오는 오토바이가 좀 많은가. 자동차는 자동차대로 자전거를 고달프게 하고, 오토바이는 오토바이대로 자전거를 고단하게 한다.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은 더 빨리 달릴 생각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더 빠르고 더 곧은 길을 바란다고 느낀다. 더 느긋하며 더 호젓한 찻길을 바라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은 없겠지. 자전거꾼하고 나란히 느긋하며 호젓하게 달리기를 바라거나 꿈꾸는 자동차꾼이나 오토바이꾼이 있을까. 도시에서든 시골에서든 자전거꾼이라든지 두 다리로 걷는 사람한테 착하게 마음을 기울이는 사람을 만나기 참 어렵다. 게다가 시골에서는 짐승한테까지 곱게 마음을 쏟는 자동차꾼이란 아예 없다시피 한다.

- 달리는 자동차는 빠르기를 늦추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싶다. 네찻길에서 앞지르기를 하려고 빠르기를 높이던 자동차는 길가 한켠에 자전거가 아이를 태운 수레를 살살 끌면서 지나가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다. 참말 아슬아슬 스쳐 지나가며 매캐한 차방귀를 뿜는다. 빠르기를 살짝 늦추면서 옆 차 뒤에 서서 여느 자전거이든 수레를 단 자전거이든 걱정없이 달리도록 도와주는 자동차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고작 1초, 또는 2초, 아니면 3초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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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0.11.22.
 : 정작 추운 사람은 아빠



- 겨울을 앞둔 시골에서 읍내이든 큰길가 보리밥집이든 다녀올 때면, 아이는 수레에 앉아 꼼짝을 않는다. 처음 달릴 때에만 말 몇 마디를 하지, 이내 조용하다. 두 손을 담요나 아빠 겉옷 사이에 넣고 가만히 있는다. 오늘도 보리밥집으로 달걀이랑 아이 까까를 사러 다녀오는 길에 아이는 아무 소리를 않으며 얌전히 있기만 한다. 보리밥집에 닿아 수레에서 내리니 보리밥집 안팎을 신나게 뛰고 달리며 놀던데, 물건을 다 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또 조용하며 얌전하다. 마을길 오르막을 끙끙거리며 오르다가는 논둑길을 달려 집에 닿아 다시 수레에서 내리니 “엄마 엄마” 하고 부르며 집으로 달려 들어간다. 아빠는 수레와 자전거를 도서관 한쪽에 집어넣고 담요와 겉옷을 잘 개 놓은 다음 집으로 들어간다. 아빠가 아이하고 보리밥집에 다녀오는 사이 저녁은 거의 다 되었고, 아이 엄마가 모처럼 마련한 ‘집 된장 볶음 짜장면’을 먹는다. 아빠는 손발을 씻고 밥자리에 함께 앉아 밥을 먹는데, 얼굴이 얼얼하며 슬슬 썰렁하다고 느낀다. 어쩌면 아이는 담요 여러 겹과 아빠 두툼한 겉옷을 포근히 덮으며 제법 따뜻하고, 아빠는 시골길 오르내리막을 달리며 땀을 뻘뻘 흘리지만 외려 더 추운 셈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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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날 골목을 헤아려 본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니 여름을 떠올리는가. 그러나저러나, 어느 살림집이든 대문 앞이 꽃과 풀로 가득하다면, 집을 나서거나 들어올 때마다 푸른 내음을 즐거이 맡겠지.

 - 2010.8.14. 인천 동구 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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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까는 마음


 아이가 낮잠 잘 때를 넘겼다. 낮잠 잘 때를 넘겼는데 산에 간다며 웃집 할배 뒤를 따라 엉덩이 실룩실룩 하면서 산길을 오른다. 아이는 웃집 마당이며 멧기슭에서며 신나게 뛰어논다. 이제 슬슬 배고파 할 때가 될 텐데 싶어 걱정이다. 아이는 한 시간 남짓 뛰고 엎어지며 놀다가 아빠 손을 붙잡고 집으로 내려가자며 이끈다. 집에 닿으니 아이는 사탕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배고픈 아이한테 사탕을 줄 어버이가 어디 있는가. 게다가 아빠가 무슨 사탕 공장이라도 되니?

 어제 읍내 장마당에서 사 온 물고기묵으로 끓인 찌개를 내놓고 밥을 푸고 반찬을 차린다. 아이는 사탕 노래를 부르며 눈물까지 뚝뚝 떨어뜨리며 운다. 사탕이 그토록 먹고 싶니? 그러나 밥 한 술 안 뜨는 아이한테 어느 어버이가 사탕을 주겠니?

 읍내 장마당에서 함께 사 온 밤을 애 엄마가 구웠기에, 이 구운 밤을 애 아빠가 칼로 깐다. 아이는 밥은 쳐다보지 않고 울기만 한다. 밤을 세 알쯤 깠을 무렵, 드디어 아이가 밤조각 하나를 먹어 준다. 눈물은 그치고 냠냠 씹어 먹는다. 히유, 이 뒷북 돼지. 그러나 졸음이 쏟아지고 배까지 고팠던 아이는 이내 아빠 무릎에서 곯아떨어진다. 아이를 무릎에 눕힌 채 한동안 재운 다음 바닥으로 옮겨 눕힌다. 두 시간 즈음 곯아떨어져 잠든 아이는 벌떡 깨어나 다시금 사탕 노래를 부른다. 찌개를 덥혀 밥상을 차린다. 아이가 울며 사탕 노래를 부르거나 말거나 애 아빠는 또다시 밤을 깐다. 밤을 두 알쯤 까니까 이제서야 밤조각 하나를 먹어 준다. 아이가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물고기묵 한 조각을 먹어 준다. 밥도 조금 먹어 준다. 애 엄마가 달걀을 두 알 부쳐서 애 아빠보고도 하나 먹으라 했지만, 아이가 노른자만 골라서 두 알 다 파먹는다. 아빠는 모르는 척하면서 밥을 먹인다. 아이는 밥그릇을 4/5쯤 비운다. 찌개도 꽤 많이 먹어 주고 김치랑 밤도 함께 먹는다. 꽤 배가 불렀는지 더 먹지는 않고 사탕 노래도 부르지 않는다. 눈물바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제 활짝 웃고 떠들면서 방과 방을 뛰어다니며 논다. 그래, 너 참 잘났어. 누가 닮았니? 아빠 닮았니?

 그러고 보면, 애 아빠는 국민학교 삼 학년 적이었나 홍역을 앓으며 여러 날째 드러누웠을 때, 어머니(아이한테는 할머니)가 무얼 해 줄까 하고 물어 보셨을 때 “조립식 사 주셔요.” 하고 노래했다. 어머니는 다른 건 다 해 주어도 그런 건 해 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먹을거리라든지 옷이라든지 다른 무엇에는 예나 이제나 아무런 마음이 없다. 옷을 사 달라느니 신을 사 달라느니 사탕을 사 달라느니, 비싸고 드문 바나나를 맛보게 해 달라느니 하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았다. 뻔히 보아도 집살림이 넉넉하지 않은데 이런저런 노래를 부르며 칭얼거릴 수 없었다. 조립식 노래를 부를 때에도 어머니보고 사 달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다달이 받는 돈을 모아 조립식을 살 테니까 봐 달라는 소리였다.

 애 엄마는 애 아빠가 아이하고 자전거를 타고 읍내 장마당에 간다고 했을 때에 밤을 사 오라 말했다. 왜 그런가 궁금했는데, 밤을 먹으면 아이이든 어른이든 살이 오른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아이가 하도 밥을 잘 안 먹어 밤이라도 먹이며 무럭무럭 잘 자라도록 하려는 마음이란다.

 애 아빠는 아이가 칭얼거린다고만 말하거나 생각할 뿐, 이 칭얼쟁이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우거나 알뜰히 돌보아야 좋을까를 살피지 못한다. 어쩌면, 아이에 앞서 아빠부터 뒷북이 아니겠는가. 아이는 아빠를 닮아 뒷북이지 않겠나. 그러니, 애 아빠로서 사탕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밥상머리에 앉히고 천천히 밥술을 떠먹이면서 조용히 밤을 까서 한 조각 두 조각 가만히 먹일밖에. (4343.11.2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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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집에서 꽃그릇에 농사를 지어 거둔 배추를 햇볕에 말린다. 아마 하얀 속만 먹고 겉은 말래서 시래기로 쓰시려나 보다.

 - 2009.11.22. 인천 중구 신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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