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0.11.5.
 : 아이와 함께 읍내 장마당 마실



- 어제 빈 수레를 끌고 마을 가게에 다녀온 뒤 오늘 다짐해 본다. 오늘은 무극(금왕읍) 장날이다. 아이랑 무극 장날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와 보자.

- 혼자서 무극 읍내까지 달리는 데에는 이십 분이 조금 안 걸린다. 아이를 태우면 삼십 분쯤으로 잡아야겠지. 돌아오자면 얼마쯤 걸리는가를 헤아려 보며, 늦어도 낮 한 시에는 나가야 하지 않느냐 생각한다. 그러나 이래저래 살피고 자전거 손보며 가방을 꾸리다가 두 시가 거의 다 되어 길을 나서다.

- 두 시 무렵이면 아이가 졸릴락 말락 하는 때. 논둑길을 달리며 아이를 돌아보며 묻는다. “좋아? 좋아? 시원해? 시원해?” 아이는 대꾸를 거의 않는다. 틀림없이 졸리구만.

- 십일 월로 접어든 논둑길에는 잠자리가 거의 안 보인다. 이제 잠자리들은 거의 모두 흙으로 돌아갔겠지. 고작 보름쯤 앞서만 해도 이 길에서 잠자리를 수백 마리나 마주했는데.

- 한길로 나온다. 이제부터 자동차가 많으리라. 시골길이나 논둑길을 달리면 자전거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하고, 수레에 앉은 아이가 꽁알대는 소리만 듣는다. 한길로 나오고부터는 아이하고 얘기를 주고받지 못한다. 차소리가 참 시끄러우며 크다.

- 세거리 이음길에서 자가용 한 대가 끼어들려다가 멈추다. 자동차 모는 이들이여, 자전거라고 함부로 보지 말고, 제발 교통규칙을 잘 지켜 주소서.

- 신니면 광월리에서 음성군 생극면 오생리로 살짝 접어들다가 금왕읍(무극)으로 들어서다. 일본사람이 지은 ‘금왕’이라는 이름이 싫으나, 관청에서는 읍이름을 ‘금왕’으로 붙였다. 이곳 읍내에 있는 학교는 ‘금왕’이 아닌 ‘무극’을 이름으로 삼고, 모두들 ‘무극’이라는 말을 훨씬 자주 쓴다.

- 예순터고개에 접어들기 앞서 시골버스 타는 곳에 할매 한 분 앉아 있다. 어, 시골버스 지나는 때인가. 예순터고개를 낑낑대며 오르니 무극 읍내에서 나온 거의 텅 빈 시골버스가 보인다.

- 예순터고개 한 구비를 넘고 내리막을 달리는데 차에 치여 죽은 짐승 한 마리 보인다. 자전거를 늦춘다. 천천히 멈춘다. 사진을 찍는다. 이런. 누군가 일부러 차로 치지 않았나 싶은 모습이다. 너구리가 아닌가 싶은 이 들짐승을 차로 치어 놓고 가죽을 벗기다가 그냥 두고 간 자국이 고스란히 있다. 가죽을 얻으려 했을까, 고기를 얻으려 했을까, 둘 다일까. 자동차를 모는 모든 사람이 이와 같지는 않은 줄 안다. 자동차꾼이 더없이 슬프고 불쌍하다.

- 읍내에 닿다. 장마당 한켠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아이를 내린다. 삼십 분이 조금 안 걸렸다. 아이가 잘 와 주어 고맙다. 이제 아이가 더울는지 몰라 겉옷 지퍼를 내리고 손을 잡고 걷는다. 아이가 “여기 까까 있네?” 하고 말하며 과자장수 옆을 지나고, 과일장수 옆을 지나며, 나물장수 옆을 지난다. 도토리묵 파는 집에서 도토리묵 하나를 사고, 옆 찐빵집에서 찐빵 이천 원어치를 산다. 아이한테 찐빵 하나 쥐어 주고 나도 하나 먹는다. 장마당을 한 바퀴 슥 돈다. 같은 음성군이지만 음성 읍내 장마당보다 사람이 훨씬 많고 장사꾼 또한 더 많다. 음성군에서는 무극이 외려 사람이 더 많은가 보다. 어쩌면 이곳은 나중에 음성군에서 따로 떨어져 나오지 않으려나.

- 귤과 능금을 파는 짐차 앞에 서서 오천 원어치를 산다. 작은 알을 산다. 아저씨가 여섯 알이나 덤으로 넣어 준다. 아이와 함께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장마당을 더 돌까 하다가 아이도 졸립고 더 볼거리는 없기에 동큐제과에 들른다. 퍽 오래된 시골 빵집이다. 이곳도 새끼가게이긴 할 텐데 이름난 몇몇 새끼가게보다 이 집이 좋다. 소시지빵하고 고로께하고 단팥빵하고 바게트빵을 하나씩 산다.

- 무극 하나로마트에 들러 보리술을 두 병 산다. 다른 읍내는 장마당이 열리면 하나로마트가 파리 날리던데, 무극은 장마당이건 말건 사람이 참 많다.

- 집으로 돌아가자. 아이한테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몇 번 외치는데 그닥 대꾸가 없다. 참 졸린가 보다. 찐빵 하나를 더 쥐어 준다. 부디 집까지 잘 견디어 주렴.

- 읍내로 오는 길은 할딱고개를 셋 넘기는 하지만 내리막이 많고, 집으로 가는 길은 할딱고개를 똑같이 셋 넘으나 거의 오르막이기만 하다. 페달이 무겁다. 그러나 다리에 더 힘을 준다. 아이하고 함께 달리는데, 아이가 뒤에서 볼 때에 아빠 궁디가 힘차게 펄떡펄떡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어야지.

- 할딱고개를 오르며 생각한다. 네 해 앞서였나, 서울로 책방마실을 하며 이 수레에 책을 잔뜩 싣고 백오십 킬로미터를 달리며 이와 비슷한 할딱고개를 지날 때마다 얼마나 낑낑대면서 달렸던가. 이렇게 달렸는데 자전거 체인이 용케 끊어지지 않고 잘 버티어 주었고, 이 자전거도 고맙게 잘 달려 주었다. 씽씽 자동차하고 대면 참 느림보 자전거이지만, 빈 수레일 때에는 한 시간에 삼십 킬로미터를 달렸고, 수레에 책을 담거나 아이를 태울 때에는 얼추 이십 킬로미터는 달리는 셈 아닌가 싶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하고 먼 나들이를 한다 치면, 하루에 백 킬로미터쯤 달려 볼 수 있을까. 글쎄, 백 킬로미터라면 다섯 시간인데, 사이사이 쉬거나 밥을 먹거나 아이가 걷도록 해 준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전거 나들이를 할 수 있으려나. 백 킬로미터는 좀 어렵나. 아니, 백 킬로미터를 달릴 수는 있겠지만, 그냥 길을 내처 지나간다면 따분하지 않으려나.

- 드디어 할딱고개 셋을 다 넘고 내리막. 신나는 내리막에 앞서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거의 눈이 감긴다. 내리막을 달린다. 오른쪽에 숱하게 있는 공장 가운데 한 곳을 스치는데, 살짝 일손을 쉬며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던 어느 일꾼이 손을 치켜들며 외친다. “멋져요. 자, 화이팅!” 어제 마을길에서 택배 짐차를 마주했을 때에도 ‘어, 어.’ 했는데, 오늘도 어제처럼 ‘어, 어.’ 하다가 지나친다. 한창 숨이 턱에 차오르며 할딱고개를 지났기에 무어라 대꾸를 하거나 인사를 받거나 하지 못한다.

- 대원휴게소 옆을 오르며 생각한다. 난 이러한 인사말과 북돋움말을 들으려고 자전거를 타는가? 아이를 수레에 태워 달리는 까닭은 무언가? 자전거가 좋으니까 아이를 수레에 태우는가? 아이하고 이렇게 놀아 주면 좋으리라 여기는가? 내 삶과 자전거가 잘 어울리니까 타는가? 내 몸을 튼튼히 지키고 싶어 자전거를 즐기는가?

- 음성군에서 충주시로 바뀌는 못고개 언덕받이에 이르다. 페달질을 늦추며 한숨을 돌린다. 시골버스 타는 데에 버스 한 대 서 있다. 어디로 가는 버스일까 궁금해서 버스 앞에 붙은 알림판을 보니 충주 시내로 간다고 되어 있다.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왼쪽으로 몸을 기울인 채 새근새근 잠들어 있다. 길에서 어찌어찌 할 수는 없어 조금 더 달려 마을 어귀로 들어선다. 이제 자전거에서 내린다. 수레 덮개를 내려야겠지 하고 생각하다가 한참 물끄러미 아이를 바라본다. 참 잘 자는구나. 찐빵은 먹다가 말았네. 먹다 만 찐빵을 떨어뜨렸고, 입가는 온통 팥앙금. 피식 웃음이 난다. 예쁘구나. 덮개는 못 씌우겠다. 낮이 저녁으로 바뀌는 이즈음 햇살이 곱고 바람이 포근하다. 아이가 이 햇살과 바람을 살살 맞아들이면 더 낫겠다고 느낀다. 자전거는 더 천천히 달린다. 비로소 조용한 논둑길을 달린다. 시원하구나. 가을바람이 따사롭구나.

- 어느덧 집에 닿는다. 아이 신을 벗기고 아이를 덮던 이불을 걷는다. 아이를 살그머니 품에 안는다. 아이 엄마가 문을 열고 아이를 받아 주려 한다. 가만히 아이를 건넨다. 아이가 갑자기 눈을 뜬다. 헉. 그냥 주무시지? 아이는 엄마 품에서 깨어나 저녁 아홉 시까지 잠을 안 잔다. 신나게 뛰어놀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참 대단한 아이로구나. 아니, 아이라서 이렇게 대단한가. 아빠는 죽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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