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과 글쓰기


 엄마랑 아빠랑 마실을 나온 지 사흘째, 바깥사람을 잔뜩 만나며 아침부터 쉴새없이 놀던 아이가 저녁을 먹을 무렵 금세 곯아떨어진다. 아침잠이 거의 없고 낮잠은 아예 없다시피 하는 아이는 배가 꽤 고플 텐데 이렇게 밥자리에 앞서 곯아떨어지곤 한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밥집으로 들어선다. 스물아홉 달째 살아가며 키가 제법 큰 아이는 걸상 둘을 옆에 붙인 다음 머리를 아빠 허벅지에 올려야 비로소 눕힐 만하다. 한 시간 남짓 이렇게 눕혀 놓는데 허벅지 눌리는 무게가 퍽 나간다. 아이는 하루하루 새롭고 새삼스레 자랄 테니까. 허벅지 눌리는 무게를 가늠하면서 우리 아이가 어느 만큼 더 자랐는가를 곱씹고,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내가 이 아이 나이만 하던 어린 나날 내 어버이는 나를 돌보느라 얼마나 속을 썩이거나 애를 먹였을까 하며 돌아본다. 아이가 꽤 짓궂다 싶도록 말썽을 부린다든지 말을 안 듣는 모습이란 아이가 나쁜 넋이라서가 아니라, 아이 나름대로 힘들거나 고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추스른다. 아빠가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한결 살갑거나 따스히 해 주지 못하는 일이 많으니까. 집일을 하고 글쓰기를 한다면서 아이랑 더 놀지 못하는 한편, 아이 손을 잡고 멧길 따라 숲마실 하기도 제대로 못하니까.

 허벅지에 아무 느낌이 없을 무렵 아이 머리를 걸상에 내려놓는다. 고이 잠든 아이는 깨지 않는다. 함께 밥자리에 있던 분이 겉옷을 벗어 아이한테 씌워 주었다. 밥집에 들어왔기에 겉옷을 벗을 만하기도 했는데, 애 아빠는 따로 겉옷을 입지 않았다. 더위도 잘 타고 추위는 잘 안 타며 가방 짐이 무겁다면서 겉옷을 잘 안 입는다. 이러다 보니, 이렇게 겨울날 밖에서 아이가 잠들었어도 아이를 감싸 줄 너른 품 옷이 없다.

 아이도 알겠지. 제 아빠가 겉옷 없이 살며 제 몸을 한껏 따스히 보듬지 못하는 줄을. 아이는 아이 스스로 더 튼튼해지거나 씩씩해지거나 다부지게 살아야 한다고 시나브로 알아채겠지. 제 두 다리로 일찍부터 우뚝 서면서 제 길을 걸어야 하는 줄을. (4343.12.17.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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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와 글쓰기


 흔히들 ‘아끼거나 어루만지며 살아가기에도 짧은 삶’이라 하지만, ‘아끼거나 어루만지며 살아가기에 알맞춤한 삶’이 아닌가 싶다. 오래 산다고 더 즐겁지 않으나, 짧게 산다고 덜 즐겁지 않으니까. 예쁘고 착하게 살아가면 즐거운 나날이니까.

 내 삶을 들여다보며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는 가운데 맑게 웃으면 고맙다. 책이란 무엇이고 삶은 또 무엇이며 글쓰기는 참말 무엇이겠는가. 어머니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꾸리는 삶과 보듬는 사랑과 빚는 아름다움을 떠올린다. 어머니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 어머니들한테 하루란 어떠한 나날인가.

 얼마 앞서 아이랑 둘이 사흘 동안 서울마실을 하면서 자주 퍽 오래 안고 걸었다. 아이가 힘들어 하니까 안지 않을 수 없다. 아빠는 앞과 뒤로 멘 가방이 제법 무겁다. 어깨가 눌리는 무게를 느끼지만, 이렇다 해서 고단하여 걷기 힘들다는 아이보고 “힘들지만 더 걸어 보렴.” 하고 말할 수 없다. 삼십 분쯤 ‘아이가 앞을 보도록 안으’면서 걷다가는, 십 분쯤 아이보고 아빠하고 손 잡고 걷자고 말한다. 둘레 사람들은 날이 추우니 옷을 꽁꽁 싸매듯 입으며 걸어다니지만, 애 아빠는 겉옷을 훌러덩 벗고 싶다. 땀줄기가 등판으로 줄줄 흐른다.

 함께 마실을 오느라 애쓴 아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가까스로 잠든다. 시외버스 기사가 버스를 너무 거칠게 모느라 아이 속이 메스꺼울까 걱정스럽다. 아이를 아빠 무릎에 눕힌다. 사십 분 남짓 이렇게 있다가 내릴 즈음 아이를 옆자리에 눕히고는 가방을 챙긴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안 깬 아이였는데,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잠에서 깬다. 아빠는 속으로 생각한다. ‘녀석아, 이렇게 깨려면 좀 일찍 깨지. 네가 잠이 깰까 살몃살몃 안으며 내렸는데.’ 그러나 어쩌겠는가. 잠이 제대로 들자면 넉넉히 드러누워서 따숩게 있어야 하는데, 흔들거리는 버스가 잠을 잘 만했겠는가. 그나마 좀 잘까 싶던 버스에서 내리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했으니 아이가 깰밖에 없지 않은가.

 아이한테 얼음과자를 하나 사 준다. 아이는 아주 좋아라 하면서 야금야금 깨어 문다. 시골버스역에서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시골할매는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아이스크림을 먹누.” 하지만, 아이는 춥건 말건 얼음과자 노래만 부른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릴 적에 추운 겨울이건 더운 여름이건 얼음과자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집에서까지 냉장고 얼음칸에다가 설탕물을 얼려 먹지 않았던가.

 아이하고 살아가며 젊은 살결은 금세 쭈글쭈글해지고, 보드랍던 살갗은 어느덧 투박하며 거칠어진다. 잠자리에 들던 엊저녁, 내 손바닥 딱딱한 꾸덕살을 한참 만지작거렸다. 아이도 아빠 손바닥 꾸덕살을 살살 만져 본다. 아이는 나중에 제 아빠 나이만큼 자랐을 때에 제 아빠 손바닥 꾸덕살 느낌을 떠올릴 수 있을까. 나는 내 아이만 한 나이는 아니고, 열 살 무렵 즈음 어머니 손바닥을 만지작거리던 느낌을 곱다시 떠올린다. 아이하고 살아가며, 아니 옆지기랑 함께 살아가던 나날부터 내 어머니 젊은 날 손바닥 느낌을 늘 떠올린다. 글 한 줄 쓸 틈이 없는 어머니들 삶은 손바닥에 아로새겨진다. 책 한 권 읽을 겨를이 없는 어머니들 이야기는 손바닥에 차곡차곡 적바림된다. (4343.12.12.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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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하늘 등에 업는 빨래는 참 곱다.

 - 2010.11.26. 인천 동구 송림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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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와 글쓰기


 서울에서 이틀을 묵은 뒤 시골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남동 한켠에서 겨우 찾은 3만 원짜리 잠집에서 아침 여덟 시 이십 분에 나온다. 아빠도 아이도 일찍 일어나서 움직인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으로 가려 한다. 마을버스는 600원만 받는다. 여느 버스는 900원이던데 참 싸네. 시골에서는 요쯤 되는 거리를 달려도 1600원을 내는데, 꽤 눅네.

 아이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기에 걷지 않고 버스를 탔으나, 버스는 손님들을 태울 때부터 엉금엉금 거의 달리지 못하더니 연세대 앞문 쪽으로 가는 동안에도 거의 제자리걸음. 버스를 모는 일꾼은 사이사이 버스 앞길로 끼어들 뿐더러 버스가 서야 할 자리에마저 끼어들어 손님을 못 내리도록 하는 자동차꾼 때문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날선 말마디를 내뱉는다.

 도무지 버스로는 전철역까지 못 가겠구나 싶어 대충 아무 데나 내려서 걷기로 한다. 버스에서 내려 걸으니 후련하다. 조금 걷자니, 한손에는 서류가방을 든 아저씨가 한손에는 담배를 꼬나물면서 잰걸음으로 우리 앞을 가로지른다. 담배 내음은 고스란히 우리한테 훅 끼친다. “벼리야, 저 따위로 담배 피우는 사람들 참 싫구나.”

 담배 피우는 저 사람, 또 요 사람, 또 옆이며 뒤이며 둘레 사람들은 마음과 몸으로 스멀스물 기어드는 짜증스러움과 힘겨움과 갑갑함을 살짝이나마 털어내면서 차분해지려나. 그렇지만 당신들이 담배를 피울 때에 곁이나 둘레에서 캑캑거리면서 숨이 막힐 사람들은 알려나 모르려나 느끼려나 모르쇠이려나. 걸어다니며 담배를 피우든 한 곳에 서서 담배를 태우든, 하나같이 저만 알거나 저만 헤아리는 사람이다. 지식책을 읽든 문학책을 읽든, 책만 읽는 사람은 한결같이 제 밥그릇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논문글을 쓰든 기사글을 쓰든, 글만 쓰는 사람은 형편없이 제 이름값만 밝히는 사람이다. (4343.12.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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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과 글쓰기


 아침부터 보슬보슬 내리던 눈은 낮이 되니 가물가물합니다. 한낮을 지나면서 눈발은 새삼스레 굵어지고, 눈발이 굵어지면서 멧자락 나뭇가지에도 눈이 한 켜 두 켜 쌓입니다. 참말 겨울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고단한 나머지 낮잠을 잡니다. 실컷 잠을 자고 난 뒤 벌떡 일어납니다. ‘오늘 볼일 보러 마실을 떠나야겠어! 인천까지 가서 골목 사진을 찍어 볼까? 그때까지 눈이 안 녹으려나?’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으며 아이한테 물어 봅니다. “아빠하고 이야 갈래?” “아빠하고 갈래.”

 옆지기는 아이한테 옷을 입히고, 아빠는 짐을 꾸립니다. 시골버스 타는 때에 맞추어 일찌감치 집을 나서고, 천천히 아이랑 거닐면서 눈 펄펄 내리는 시골길을 사진으로 한 장 두 장 담다가는 아이하고 마음에 살포시 담습니다. 시골버스를 기다리며 아이랑 걸상에 나란히 앉습니다. 눈길 때문에 길이 막히는지 버스는 늦고, 자그마한 버스역은 꽤 춥습니다. 버스는 손님 두 사람을 태우고 들어옵니다. 막역이자 첫역인 광벌 버스역에서 아이를 안고 탑니다. 아이랑 함께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합니다. 시골버스는 눈 내리는 시골길을 천천히 천천히 달립니다. “이야, 벼리야, 저 눈 좀 봐. 온통 눈나라야. 나무에도 눈이고 하늘에도 눈이야. 산에도 눈이고 구름도 눈이야. 나뭇가지마다 눈이 가득 앉았지?”

 시골버스는 멧자락 사이 조그마한 길을 따라 달리고, 숯고개를 넘어 너른 못물을 지나 읍내로 들어섭니다. 읍내도 멧자락처럼 눈이 소복히 덮였으나 멧자락만큼 하얗지는 않습니다. 16시 30분에 동서울 가는 버스를 타야 하는데 16시 28분에 읍내 버스역에 닿습니다. 얼른 표를 끊습니다. 버스는 아직 안 들어옵니다. 1분 뒤 16시 29분에 버스가 들어오고, 표를 내고 자리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버스는 부릉부릉 하면서 움직이고, 찬찬히 달려 다른 읍내 두 군데를 거쳐 다른 손님을 태우고 나서 고속도로로 들어섭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동안 눈발은 더 굵어지고, 서울하고 가까워질수록 바깥은 하얀 눈나라 아닌 잿빛 시커먼 누리입니다.

 눈 때문에 길이 막히는 고속도로를 겨우 벗어나 서울로 들어섭니다. 아이는 버스역에 닿을 때까지 아빠 무릎에 기대어 새근새근 잠들어 줍니다. 가방을 메고 짐을 꾸려 아이를 안고 내리려 하니 비로소 잠에서 깹니다. 아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기에 내내 칭얼거립니다. 아빠는 아이를 안고 어르며 전철을 탑니다. 숱한 사람으로 꽉 들어찬 전철인데 ‘노약자장애인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가 비었습니다. 용케 사람들이 이 자리를 비워 주었습니다. 품에 안은 아이를 살짝 내리고 등에서 가방을 풀어 한쪽에 앉은 다음 아이를 무릎에 앉힙니다. 전철이고 버스이고 길이고 어디이고, 서울은 사람들이 몹시 많아 서로가 서로를 따스히 살피거나 보듬거나 아끼지 못합니다. 숨막히고 시끄러우며 골아픈 전철을 한창 달리는데 “물. 물 줘.” 하고 아이가 말합니다. 마침 물 하나는 가방에 안 챙겼습니다. 하는 수 없습니다. 을지로4가에서 전철을 내려 자판기로 물을 삽니다. 조막만 한 플라스틱병이 600원입니다. “벼리야, 여기 물 되게 조그마한 녀석이 되게 비싸다.”

 다시 전철을 탔다가 신촌역에서 내립니다. 사람들이 복닥복닥 붐비는 뒷간으로 갑니다. 장애인 칸은 비었기에 이리로 들어갑니다. 뒷간에서 장애인 칸은 장애인이랑 ‘아이를 데리고 찾아드는’ 사람이 들어갈 자리입니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려면 가방이나 짐이 커야 해서 여느 칸에는 들어가기 아주 힘들어요.

 아이 쉬를 누이고 품에 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눈발이 굵습니다. 눈발은 굵지만 땅으로 떨어지며 쌓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바람에 따라 휘휘 날릴 뿐입니다.

 큰길이든 골목이든 사람이 넘칩니다. 어디에든 사람이 넘치는 서울인 까닭에 어디를 가든 크고작은 가게입니다. 골목 안쪽 헌책방 〈숨어있는 책〉에 들러 책방 아저씨한테 인사를 하고 책 몇 만 원어치 고릅니다. 다시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습니다. 망원역 쪽으로 갑니다. 이곳에서 출판사 일꾼을 만나려고 오늘처럼 눈 펑펑 쏟아지는 날 일부러 서울마실을 했습니다.

 출판사 일꾼은 먼길 마실을 해 준 두 식구를 오리고기집으로 데려갑니다. 아이는 투정을 부리면서도 밥을 곧잘 받아먹어 줍니다. 참으로 고맙습니다. 고기집에 들고 나는 손님들을 문득문득 바라보니 한결같이 예쁘고 멋스러운 차림입니다. 그런데 시외버스가 동서울역에 닿아 전철을 타고 망원역으로 오기까지 스친 사람들 가운데 우리 아이처럼 빨간 겉옷을 입는다든지 맑거나 밝은 겉옷을 걸친 사람은 하나도 못 보았습니다. 때마침 못 볼 수 있을 테지만, 사람들 옷차림은 모조리 어두컴컴합니다. 도시 빛깔 잿빛마냥 잿빛이거나 까망이기 일쑤입니다. 하얀 겨울에 맞추어 하얀 겉옷인 사람조차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도시에서 지낼 때에는 하얀 빛깔 옷을 입으면 때가 너무 잘 타 자주 빨아야 해요. 처음 입은 몇 시간은 하얀 빛깔이 고울 테지만 금세 허여멀겋게 바뀔 테지요. 맑은 빛깔이나 밝은 빛깔 옷 또한 어슷비슷하겠지요. 흙이나 자연이나 나무나 풀이 마음껏 자라나면서 자연스러운 빛깔과 내음과 무늬가 있기 어려운 도시일 뿐 아니라, 그나마 공산품 물건으로도 맑거나 밝은 빛깔은 마주하기 힘듭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잎사귀랑 노란 잎사귀조차 마주하지 못하는데, 겨울철에도 하얀 눈송이마저 마주하지 못합니다. 하얀 눈송이를 하얀 눈송이 그대로 마주하며 곱게 쌓이도록 안 하고, 염화칼슘을 길마다 잔뜩 뿌리면서 땀 뻘뻘 흘려야 하는 도시입니다. (4343.12.11.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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