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과 글쓰기 

  난 어릴 때부터 무언가 선물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열거나 뜯어 마음껏 즐겨 본 일이 없다. 늘 집까지 가지고 돌아와 어머니 앞에서 말씀드리고 나서 끌거나 뜯었다. 옆지기와 아이하고 살아가는 오늘날은 집에서 옆지기랑 아이가 보는 앞에서 선물을 끌른다. 내가 먼저 맛보거나 나부터 슬쩍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아니, 이런 마음이 드는 적이란 없다. 대수로운 선물이든 흔한 선물이든 똑같은 선물이고 한결같이 사랑스럽다. (4343.1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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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날 햇볕도 때때로 몹시 따숩습니다. 따순 겨울날 빨래를 바깥에 내다 널면 얼마나 홀가분하면서 개운하던지요. 

- 2007.12.24. 인천 동구 만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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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와 글쓰기


 아침밥을 차리면서 김치를 옮겨 담는다. 옆지기 어머님이 마련해 주신 김치가 담긴 큰 통에서 밥자리에서 쓰는 작은 통으로 옮긴다. 바깥에 내놓는 김치는 꽁꽁 얼어붙는다. 가위로 폭 찍어서 옮긴다. 열무김치는 한손으로 하나씩 집어 먹기 좋도록 자른다. 이 김치나 저 김치나 꽁꽁 얼어붙었기에 김치를 쥐는 한손 또한 얼어붙는다. 세 가지 김치를 통 하나에 1/3씩 나누어 담는다. 김치를 옮겨 담는 내내 얼은 손가락은 꽤 오래도록 녹지 않는다. 얼어붙는 겨우내 먹는 김치는 얼어붙는 채 겨울을 함께 나는 셈일까. 김치를 쥐기만 해도 손이 얼어붙는다면 겨울 동안 김치를 담글 수 없겠지. 미리미리 김치를 비롯한 다른 먹을거리를 알뜰히 마련해 놓아야 할 테지.

 소복소복 쌓인 눈을 빗자루로 쓴다. 눈을 쓰는 동안 손가락은 다시 얼어붙는다. 군대에서는 겨울이면 하루 몇 시간씩 눈을 쓸었는데, 그때에도 손가락은 꽁꽁 얼어붙었다. 그무렵 그 겨울을 어떻게 보냈으려나. 앞으로 또 눈이 오면 또 눈을 쓸면서 또 손가락이 얼어붙겠지. 나는 바보처럼 손가락 얼어붙으면서 살아간다. (4343.12.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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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과 글쓰기


 새벽 일찍 일어나 아침나절에 글을 씁니다. 다른 어느 때보다 새벽녘 고요하며 썰렁한 기운을 느끼면서 생각을 가다듬어 글을 쓸 때에 즐겁습니다. 아니, 즐겁다기보다 기쁩니다. 기쁘다기보다, 뭐라 할까요, 내가 살아숨쉬는 한 사람임을 느낍니다.

 집살림을 도맡는 사람으로서 새벽녘과 아침나절이 아니고는 글을 쓸 겨를을 내지 못합니다. 다른 때에는 집식구하고 아이를 보듬는 데에 온힘을 쏟을밖에 없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랑 놀면서 하루해를 넘깁니다. 밥하기만으로도 하루해는 짧고 빨래하기만으로도 힘은 쏘옥 빠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에도 저녁나절 까무룩 곯아떨어졌다가도 이듬날 말짱하게 다시 일어납니다. 사람이라는 몸은 참 용하다고 느껴요. 이제 아무 일도 못하겠다 싶어 드러눕지만, 이듬날이 되면 새삼스레 다시 일어나서 다시금 주먹을 불끈 쥐거든요.

 어제는 느즈막히 곯아떨어진 아이가 오늘 따라 새벽에 일어납니다. 아빠는 새벽부터 글쓰기를 하려 했으나, 아이가 옆에 찰싹 달라붙으니 아무런 글쓰기조차 하지 못합니다. 하는 수 없이 셈틀을 끄고 쌀을 씻어 불리다가는 밥을 안칩니다. 날밤을 세 알 까서 밥물에 함께 넣습니다. 아이한테 능금 한 알 깎아 줍니다. 다시 셈틀을 켜고 깨작거리니 아이는 아빠 무릎에도 안기고 아빠 사진기를 갖고 놀기도 합니다. 요 몇 분 동안은 아빠 뒤에서 아빠 사진기를 만지작거립니다. 아빠가 글쓰기를 몇 분이나마 할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는 셈입니다.

 이제 슬슬 날이 훤히 밝는 아침입니다. 아침을 차려야지요. 아이가 배고플 테니까요. 둘째를 배어 몸이 무겁고 힘든 엄마가 먹을 뜨거운 국도 끓여 놓고, 다 마른 빨래를 개며, 새로 쌓인 빨래를 해야지요. 우체국에 가서 책을 부쳐야 하는데, 우체국에는 언제쯤 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4343.12.24.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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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을 걷는 마음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 걸음이 누구보다 빨라 가장 앞장서서 걸을 수 있지 않더라도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 걸음이 누구보다 느려 가장 뒤처져 걸을지라도 즐겁게 길을 걷습니다. 내가 걷는 이 길에는 사랑하는 짝꿍이랑 아이가 함께 있습니다. 짝꿍이랑 손을 잡고 걷든 어깨동무를 하며 걷든 혼자 걸을 때보다 한참 더디 걸어야 합니다. 때로는 오래도록 한 자리에 머물거나 아예 며칠을 지내거나 때로는 그예 눌러살아야 합니다. 아이하고 손을 잡고 걷든 아이를 품에 안고 걷든, 아이 빠르기와 결을 살펴야 합니다. 더욱이, 아이가 힘들면 새근새근 잠들도록 바람 안 불고 따스한 보금자리를 찾아들어야 합니다.

 글을 쓰는 길을 걷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길을 걷습니다. 사진을 찍는 길을 걷습니다. 집살림을 도맡으며 집식구를 돌보는 길을 걷습니다. 조그마한 몸뚱이 하나로 버티기란 버겁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튼튼하다지만, 알고 보면 퍽 여린 몸뚱이로 이 숱한 일을 해내자니 벅찹니다. 그런데 용케 죽지 않고 살아갑니다. 어쩌면, 다가올 밤에 잠든 채 다시는 못 일어날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루하루 고맙게 다시 눈을 뜨며 새날을 맞이합니다. 새날을 맞이하며 새롭게 글을 쓰고 새롭게 사진을 찍으며 새롭게 아침을 마련하고 설거지를 하며 빨래를 합니다. 글과 사진은 날마다 새롭게 빚는데, 빨래랑 밥 또한 날마다 새롭게 보듬어야 합니다. 아이랑 어제 하루 신나게 놀았으니 오늘은 아이 혼자 내버릴 수 없습니다. 엊저녁 옆지기 다리를 주물렀으니 오늘은 못 본 척하며 지나칠 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시골에 사람이 크게 줄어 시골길을 거닐 때에 사람을 마주치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드문드문 할매랑 할배를 마주칩니다. 시골길을 거니는 동안 사람보다 자동차를 훨씬 자주 마주칩니다. 그래도 도시처럼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동차를 부대껴야 하지 않습니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는 동안 바람소리를 듣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구름이 흐르는 소리와 해가 기우는 소리를 가만히 고개를 갸웃하면서 느껴 봅니다.

 걷다 보면 땀이 나고, 땀이 나면서 가방을 멘 등허리가 쑤시고, 아이가 힘들어 할 때에는 아이를 안느라 팔다리가 몹시 결립니다. 때때로 도시로 마실을 나와 시내를 걸어야 하면 아이는 잠들지 못합니다. 시끄럽기도 시끄럽지만, 아이 눈을 사로잡는 가게 불빛이며 온갖 모습이 번쩍거리기 때문입니다. 시골길이나 골목길을 거닐 때에는 조용하기도 조용하지만, 시골자락과 골목자락이 보드라이 아이를 품어 줍니다. 아이는 시골길이나 골목길 마실을 할 때에 아빠 품에 안기거나 엄마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들곤 합니다.

 도시에서 살아간다면 더 자주 책방마실을 하고 더 많이 책을 사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우리처럼 가난뱅이 식구는 조그마한 집을 빌려도 달삯을 많이 치러야 합니다. 밑돈(보증금)을 거의 못 내는 살림이니까요. 도시에서는 밑돈 꾸랴 달삯 벌랴 눈썹 휘날리도록 휘둘리며 바빠야 하고, 쓰기 싫은 글이나 찍기 싫은 사진을 뽑아내려고 돈을 벌어야 합니다.

 기계처럼 글과 사진을 뽑아낼 때에도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만합니다. 그러나, 나 스스로 착하고 참다이 내 삶을 사랑하는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고 싶습니다.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조용히 잠들면서 바람결을 볼따구니로 느끼는 삶자리에서 일하며 땀흘리고 싶습니다. 더 많이 쏟아내어 더 많이 읽힐 글도 나쁘지 않겠지요.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로 음성 읍내가 아니라 충주 시내로 다녀오면서 더 값싼 먹을거리나 살림살이를 장만해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래도, 저랑 옆지기랑 아이로서는 읍내 조그마한 롯데리아 몇 백 원짜리 얼음과자로도 즐겁습니다. 그냥 작은 구멍가게 막대얼음과자로도 기쁩니다. 장마당 500원짜리 어묵꼬치를 우물우물 냠냠해도 신납니다. 빨래하느라, 밥하느라, 설거지하느라, 방바닥 쓸고닦느라, 이불 털고 빨고 말리느라, 아이랑 놀고 아이한테 그림책 읽어 주느라, 하루가 몇 해나 되는듯 아침부터 밤까지 등허리 펼 겨를이 없는데, 이런 삶이지만, 이런 삶밖에 안 되지만, 이냥저냥 즐거이 내 길을 걷습니다. 저녁나절 잠자리에 일찌감치 드러누워 아이를 부릅니다. 아이가 안 오고 놀겠다면 그냥 놀라 하고 아빠는 이동안 책이라도 몇 줄 읽으려고 합니다. 이러면 아이는 으레 “아빠 책 읽어 줘.” 하면서 달려옵니다. 그냥 너 혼자 더 놀다 오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다가는, 아이가 책을 읽어 달라 하는데 안 읽어 주는 못된 어버이가 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잠자리맡에 늘 놓아 두는 그림책을 집고 아이는 아빠 오른팔 베개로 눕히며 그림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적힌 글은 ‘어린이 눈높이에 걸맞지 않게 잘못 쓴 말투와 어려운 낱말이 잔뜩 깃들었’기에, 아빠는 이 말투를 모조리 고쳐서 새로 읽습니다. 아이는 눈알을 초롱초롱 빛내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아버지나 어머니도 이렇게 나한테 그림책을 읽어 준 적이 있을까 궁금합니다. 어쩌면 안 읽어 주었는지 모릅니다. 뭐, 못 읽어 주었다고 해야 옳습니다. 먹고살기에 빠듯하고, 돈을 벌랴 집살림 꾸리랴 등허리가 휘셨으니까요. 출퇴근에 네 시간이 걸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서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돌아오는 평교사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뻗어서 쓰러지고 형이랑 나는 날마다 아버지 다리와 허리를 주물렀는데 아버지가 우리한테 그림책이건 동화책이건 읽어 줄 틈이 어디 있겠어요. 학교에서 학교 아이들한테는 읽어 주겠지만요.

 참말 돈은 못 벌고, 살림을 꾸린다지만 꽤 엉터리로 꾸리는데, 이럭저럭 어설프며 어줍잖은 하루하루라지만, 짝꿍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시골집에서 내 길을 내 깜냥껏 더디더디 걷습니다. (4343.12.22.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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