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전봇대 앞에 골목꽃 소담스레. 고맙습니다.

 - 2010.11.10. 인천 중구 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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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와 글쓰기


 아이가 새벽부터 밤까지 아빠를 찾는다. 밤에 자면서도 삼십 분이나 한 시간마다 아빠를 찾으며 “쫀(손)!” 하고 외친다. 아빠가 한손을 주어 제 손을 잡아 달라는 뜻이다. 바야흐로 잠이 들 무렵 퍼뜩 잠이 깨고, 잠이 얼핏 들다가도 번쩍 깬다. 밤새 도무지 잠이 들 수 없어 조용히 일어나 셈틀을 켜고 글조각 건사하려 하면 아이는 어느새 깨어났는지 다시금 “아빠! 아빠!” 하면서, 옆자리에 누운 아빠가 어디에 갔느냐고 찾으며 운다. 새벽 세 시이든 네 시이든 가리지 않는다. 저도 아빠랑 일어나 있겠다면서 기저귀 풀어 달라 말하며 엄마를 깨운다. 옷 주섬주섬 챙겨 입고 큰방으로 나온다.

 밥을 하든 설거지를 하든 빨래를 하든 아빠 둘레에 달라붙는다. 책 갈무리를 하든 텃밭을 돌보든 우체통에 갔다오든 아빠 곁에 바싹 붙는다. 불가에서 떨어져 있으라 하든, 빨래하는데 뒤에서 밀지 말라 하든 아이는 듣지 않는다. 아빠가 바삐 써서 보내야 하는 글이 있다 하든, 책 좀 읽자며 이불을 무릎에 덮으며 방구석에 앉아 있든 아이는 찰싹달싹 들러붙는다.

 앞으로 너덧 살이 되고 예닐곱 살이 되면 아빠는 모르는 척하려나. 아직 어린 나이이니까 이렇게 아빠를 찾으며 끝없이 달라붙으려나. 아무리 길어도 스무 해를 안 갈 테니까, 이렇게 아이가 달라붙는 나날을 즐거우며 고맙게 받아들여야 하려나.

 하기는, 아이가 열대여섯 나이가 되어 젖가슴까지 튀어나온 때에 아빠한테 찰싹달싹 들러붙겠는가. 제 짝꿍을 만나 팔짱을 끼며 걸어다닐 무렵에 아빠를 쳐다보겠는가. 아이가 예순 살만 산달지라도 고작 열 해, 1/5만 아빠한테 들러붙는 셈이다. 아이가 여든 살을 산다면 1/8쯤, 아니 1/10쯤만 아빠한테 엉겨붙겠지. 어느덧 아침밥을 해야 할 때이다. (4343.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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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귤빛과 글쓰기


 목포에 사는 형이 지난주에 감귤 한 상자 부쳐 주었다. 생극면에 사는 아버지 어머니가 어제 감귤 한 상자 가져다 주셨다. 형은 택배로 부쳐 주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김치까지 한 통 함께 들고 오셨다. 두 분은 짐만 내리고 금세 가시고, 아이는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더 안 놀고 홀랑 가신다며 엉엉 꺼이꺼이 운다.

 지난주에 형한테서 귤을 한 상자 받고는 곧바로 꺼내어 쟁반에 차곡차곡 쌓았다. 상자에 그대로 놓으면 밑바닥 귤이 물러터지면서 곰팡이가 슬기 때문이다. 지난달 무극 장날에 귤을 한 상자 사들여 집에 놓고 신나게 먹는데, 바닥이 보일 무렵 바닥에 있던 귤이 짓물러졌더라. 이제껏 숱하게 겪고 뻔히 알면서 귀찮거나 번거롭다며 쟁반에 옮겨 담지 못해 왔다.

 쟁반에 담긴 귤은 참 소담스러우며 예쁘다. 한참 흐뭇하게 바라보는 애 아빠한테 옆지기가 한 마디 한다. 그냥 쌓으면 안 되고 하나하나 씻어서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니 그렇다. 귤알을 하나하나 씻어서 모시 천으로 물기를 닦은 다음 쌓아야겠지. 에휴. 또 일이로구나. 귤알 하나 먹기 참 까다롭구나.

 투덜투덜하면서도 쟁반 하나를 부엌으로 들고 가서 개수대 그릇에 쏟아붓는다. 하나하나 물로 씻는다. 이런 다음 모시 천으로 물기를 닦아 쌓는다. 쟁반 둘을 이렇게 한 다음 허리를 토닥인다. 좀 쉬자. 이렇게 쟁반 가득 쌓은 귤을 하나 반쯤 먹을 무렵 내 어버이한테서 귤 상자를 새로 받는다. 몹시 고맙다고 말씀을 하고 생각을 하는 한편, 내 머리로 스치는 또다른 생각이란, ‘아, 이 귤도 하나하나 씻고 닦아서 쟁반에 담아야 하는구나!’

 상자에 담긴 귤을 쟁반으로 옮겨 놓고 보면 퍽 예쁘다. 이 귤을 물로 겉을 씻고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쟁반에 쌓아 놓으면 한결 어여쁘다. 아이는 알까. 알아주려나. 어쩌면 모를 테지. 아무래도 모르겠지. 나중에는 알아주려나. 네 살 열네 살 스물네 살쯤 나이가 차면 바야흐로 알아보려나. 아이야, 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귤은 나뭇잎이랑 나뭇가지랑 어울리면서 매우 곱고, 쟁반에 알뜰히 쌓아올린 귤은 어머니나 아버지 꾸덕살 손을 거치면서 아주 예쁘장하단다. (4343.12.2.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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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지붕으로 되어 있던 송림2동 집 한 채가 헐렸다. 헐린 자리에는 빌라가 올라설 테지. 이런 지붕으로 남은 살림집이 우리 나라에, 또 인천에 몇 곳이나 될까. 아마, 앞으로 100년쯤 지나야 비로소 이런 지붕 집이 얼마나 소담스러운 문화였는지 깨달을까 못 깨달을까...

 - 2010.11.26.인천 동구 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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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쥐는 마음


 책을 아끼는 마음은 사람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곧 책을 아끼는 마음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바로 책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책을 돌보는 마음은 사람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돌보는 마음은 곧바로 책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나는 헌책방을 다닐 때에 비로소 책을 아끼는 마음과 책을 사랑하는 마음과 책을 돌보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새책방을 다닐 때에는 그때그때 잘 팔리는 책이라든지 눈에 뜨이는 책이라든지 읽을 만한 책이라든지 찾을 뿐이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사서 읽든 눈에 뜨이는 책을 장만하여 읽든 읽을 만한 책을 살펴 읽든 하나도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책읽기는 그저 책읽기입니다. 책을 읽고 그치는 책읽기요 또다른 책읽기로 뻗는 책읽기입니다.

 나는 책읽기만 되풀이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책읽기는 즐겼지만 또다른 책읽기로 뻗기만 하는 책읽기는 즐기지 않습니다. 책을 읽으며 한 줄이 가슴에 와닿으면 이 한 줄 때문에 책을 샀고, 책을 읽다가 마지막 줄에 이르러 뒤통수를 쿵 내려치듯 엉터리 모습을 본다면 이 아까운 책을 아깝다 여기지 않고 내다 버렸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참말을 하는 책이어야 읽을 만하다 여겼지만, 참말만 있고 참삶이 없다면 그리 내키지 않습니다. 참말만 가득하고 참삶은 한 가지조차 없다면, 제아무리 참말이 훌륭하거나 거룩하달지라도 못마땅합니다.

 나 스스로 참삶을 일구며 길어올린 참말일 때 가장 반갑고 즐겁습니다. 나부터 참삶을 아끼거나 사랑하는 가운데 얻은 참말일 때 가장 고맙고 벅찹니다.

 책을 쥘 겨를이 없이 아이하고 부대낍니다. 아이가 낮잠 없이 늦게까지 안 자려고 버둥거리다가는 이듬날 아침이나 새벽에 아주 일찍 깨어나면 그지없이 죽을맛입니다. 아이 아빠는 하루 내내 아이한테 시달리면서 몸이 지쳤는데, 그나마 아침나절에 글조각 좀 붙든다든지 책귀퉁이 집어들 무렵부터 또다시 아이하고 복닥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이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이만 한 나이였을 적에 틀림없이 나 또한 우리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도록 했을 테니까요. 나는 내 아주 어린 나날은 떠올리지 못하는데, 나도 내 아이처럼 아침잠이 없는 아이였습니다. 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1987년에 으레 새벽 여섯 시나 다섯 시 반쯤 일어나 아버지와 함께, 또는 아버지 뒤에 아침을 먹고 나서 일찌감치 학교길에 올랐습니다. 국민학교 1학년 때에는 조금 늦게 갔으나 2학년 즈음부터는 학교에 닿은 때가 으레 아침 일곱 시 안팎이었습니다. 학교 지킴이 아저씨조차 아직 나오지 않은 때, 학교문이 잠겨 있어 으레 담을 타고 학교로 들어와서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하루를 열었습니다. 어쩌면 나는 내 아이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며 어머니가 하루일을 열기 번거롭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글조각 하나 건사하지 못하며 이맛살을 찌푸리다가 이맛살을 가만히 문지릅니다. 히유 한숨을 쉽니다. 아이를 무릎에 눕히다가는 아이 사진을 몇 장 찍다가는, 그래 이렇게 일찍 깨어났으니 일찍부터 배고프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른 아침을 차려 주어야겠습니다. 어제도 못 쓰고 오늘도 못 쓰는 글은? 글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요. 아이가 아침을 참말 일찍 먹고 나서 혼자 책을 읽는다든지 인형하고 놀아 주면서 제 아빠가 일하도록 도와준다면 그때에는 쓸는지 모르지요. (4343.12.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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