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녘 꽃그릇을 보고 싶어 애타게 기다린 끝에 하루 짬을 내어 모자라나마 둘러보다. 자그마한 꽃그릇에 소담스레 자라는 배추포기 사진을 얼마나 찍고 싶었는데. 국민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뻔질나게 드나들던 신흥시장 한쪽 자리를 돌아보며 꽃그릇을 만나다.

 - 2010.10.28. 인천 중구 선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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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맞는 마음


 퍽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읍내 마실을 한다. 읍내 마실을 하면서 생각한다. 예전 사람들은 사일장이든 오일장이든 장날에 맞추어 읍내에 마실을 한다고 했다지만, 이런 읍내 마실조차 매우 드문 일이었으리라고. 한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으려나. 두어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을까.

 아이 엄마랑 아이랑 나란히 읍내 마실을 한 지 한 달쯤 되지 않았나 싶다. 이래저래 딱히 읍내로 마실을 할 일이 없었다. 모처럼 읍내에 나가서 중국집에 들러도 그닥 맛있지 않다고 한다.

 아이를 걸리다가 안다가 하면서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다. 집을 나서며 시골길을 조금 걷는데, 집 둘레 멧자락에서 보던 느낌하고 사뭇 다르다. 시골자락 가을은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버스 타는 때를 맞추어야 하지만 살짝살짝 가을맛을 보면서 걷는다. 이러다가 어쩌면 늦을까 걱정스럽다. 저 앞 시골버스역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며 걷다가 아이고, 내리막을 따라 시골버스가 탈탈탈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 큰일이다. 어, 아직 버스역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달린다. 손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싶어 손을 흔들며 달린다. 아이도 아빠 품에 안긴 채 손을 흔들며 함께 소리를 질러 준다. 버스기사는 못 보고 못 들은 듯. 버스가 탈탈 움직이려 한다. 다시 부르고 자꾸 부르니 버스가 가려다 멈추고, 또 가려다 멈춘다. 아예 멈추어 주거나 뒤로 와 주어도 좋으련만. 왜 자꾸 갈 듯 말 듯 그러나.

 버스기사는 차갑게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는 여고생 두 사람이 먼저 타고 있다. 어, 어느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지? 탈탈 느릿느릿 달리는 버스는 손님을 한 사람 더 태우고 읍내로 들어선다. 모두 다섯 사람이 탔다. 여느 때에는 우리 식구들만 타기 일쑤이다. 장날이 아니라면, 또 주말이 아니라면 우리 식구들만 타는 널따란 택시와 같달까.

 버스가 달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곱게 이어진 층층논에서 누렇게 익던 벼는 모두 베어내어 텅 비다. 누렇게 익은 벼가 찰랑거리던 때에도 곱고, 모두 베어내어 볏단을 묶은 때에도 곱다. 햇볕에 반짝이는 가을 은행잎은 금빛과 닮았고, 가을 은행나무 옆에서 나란히 자라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감알 또한 금빛과 닮았다. 감알은 보는 자리에 따라, 또 아침이냐 낮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빛깔이 사뭇 다르게 바뀐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빛바뀜을 날마다 즐길 수 있어 고맙다. 멧자락에 깃든 감나무랑 읍내에 깃든 감나무랑 들판에 깃든 감나무랑 모두모두 빛과 모습이 다르다. 감알을 따서 책시렁 한켠에 얹어 놓고 날마다 들여다보노라면, 날마다 차근차근 익으며 보여주는 빛깔이 참 예쁘다.

 읍내로 마실을 나서는 길에 흔하디흔하다 할 만한 빨간 나뭇잎하고 어우러지는 노란 나뭇잎이랑 아직 푸른 나뭇잎이랑 빈 들판을 살며시 사진으로 담는다. 흔하디흔한 모습이기는 한데, 해마다 새삼스러운 흔한 모습이라 좋다. 우리 아이한테는 이제 막 새롭게 보는 흔한 모습이요, 앞으로 해마다 다 달리 마주하며 맞아들일 새 가을 빛깔일 테지. 나한테 사진기가 있어 이 모습을 담으니 좋고, 사진찍기를 하며 살아가니까 이 모습을 살뜰히 옮겨 딸아이랑 앞으로도 오래오래 즐길 수 있어 좋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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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찻길 옆 골목동네 한켠에서 놀고 있는 골목고양이. 참 느긋하네.

- 2010.10.28.인천 중구 신흥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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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 글쓰기


 아이가 새벽 두 시 반부터 깬다. 잠들 줄을 모른다. 세 시 반이 지나고 네 시 반이 지나도 제대로 잠들지 못한다. 왜 그럴까. 어디가 아픈가. 무슨 나쁜 꿈이라도 꾸었을까. 다섯 시 반이 되니 자리에서 일어나 울먹이며 아빠를 부른다. 엄마는 깊이 잠들어 아이가 불러도 대꾸를 못한다. 한숨을 깊이 내쉬며 되도록 따스한 말씨로 아이를 부른다. “왜, 쉬 마렵니?” 살짝 생각하는 눈치이더니 “응, 쉬 마려.” 한다. “그래, 쉬 하자.” 하며 기저귀를 벗기고 오줌걸상에 앉힌다. 아이가 쉬를 눈다. 아이를 품에 안다가 살며시 눕혀 다시 기저귀를 채운다. 기저귀를 다 채운 다음 아이를 번쩍 안고는 나즈막하게 노래를 부른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아이를 안고 노래를 불러 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아이가 너무 칭얼거린다면서, 아빠 몸이 고단하다면서, 이 핑계 저 둘러대기로 아이를 한결 따스히 어루만지지 못하며 살아오지 않았는가.

 맨 먼저 〈겨울 물오리〉를 부른다. 두 번 더 부른다. 〈한 아이〉를 부르고 〈순복이〉를 부르며 〈우리 어머니〉였나를 부르고 〈우는 소〉였던가를 부른다. 노래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노래말도 잘 떠오르지 않아 떠오르는 대목부터 부르고는 다시 처음부터 부른다. 가운데쯤부터 부르다 보면 첫머리가 떠오른다. 〈해바라기〉를 부르고 〈찔레꽃〉이었던가를 부른다. 두 가락쯤은 백창우 님이 노랫말을 붙인 노래이지 싶으나, 다른 모든 노래는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가락을 붙인 노래이다.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도 괜찮다고 여기지만, 난 다른 어느 노래보다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붙인 노래가 좋다. 아이를 품에 안고 자장노래를 부를 때에는 으레 이원수 님 어린이시에 가락을 붙인 노래를 읊는다(노래를 지으며 시 몇 글월을 조금 바꾸었다). “언제나 일만 하는 우리 어머니, 오늘은 주무셔요. 바람 없는 한낮에, 마룻바닥에. 콧등에 땀이 송송 더우신가 봐. 부채질 해 드릴까. 그러다 잠 깨실라. 우리 엄만 언제나 일만 하는 엄만데, 오늘 보니 참 예뻐요, 우리 엄마도. 콧잔등에 잔주름 들도 예뻐요. 부채질 가만가만 해 드립니다.”,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 다니는 물오리들아. 얼음장 위에서도 맨발로 노는, 아장아장 물오리, 귀여운 새야. 나도 이젠 찬바람 두렵지 않다. 오리들아, 이 강에서 같이 살자.”, “찔레꽃이 하얗게 피었다오. 누나 일 가는 광산 길에 피었다오. 찔레꽃 이파리는 맛도 있지. 남 모르게 가만히 먹어 봤다오. 광산에서 돌 깨는 누나 맞으러, 저무는 산길에 나왔다가, 하얀 찔레꽃 따 먹었다오. 우리 누나 기다리며 따 먹었다오.”, “할아버지가 대로 엮은, 커다란 광주리에, 호박만 한 풍선을 천 개쯤 매달고, 쌍둥이 강아지와, 해바라기씨를 가득 싣고, 엄마가 계시는 별을 찾아간다던, 철길 옆 오두막의 눈이 큰 순복이는, 아직도 그 마을에 살고 있을까, 첫 별이 뜰 때부터, 사립문에 기대 서서, 빨간 스웨터 주머니의, 호두알을 부비며, 으음 요즘도 엄마별을 기다릴까.”

 어쩌면 아이한테 불러 준다는 자장노래는 아이한테만 사랑스럽거나 포근한 노래가 아니라, 이 노래를 부르는 어버이 스스로 사랑스럽거나 포근해지도록 이끄는 노래는 아닐까. 어버이라고 안 졸립고 안 지치며 안 힘들겠나. 졸립고 지치며 힘들면서도 기꺼이 자장노래를 부르도록 하는 힘은 바로 이 노래에 있지 않으려나. 누구보다 어버이 스스로 따스하게 감싸면서, 이 따스함으로 아이를 함께 넉넉히 어루만지도록 이끄는 노래가 자장노래가 아니랴 싶다. 그러고 보면, 요즈음 백창우 님이 새로 지은 노래는 자장노래로 아이하고 함께 즐길 만하기는 어렵고, 한낮에 재미나게 부르며 마음껏 뛰노는 노래로는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한참 노래를 부르니 아이가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다. 노래 몇 가락 더 부르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 눕히며 가슴을 토닥이는데,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엉? 엉? 아빠 코 자? 코 자?” 하고 말을 건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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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찻길 옆 골목동네 할매랑 아지매랑 아이랑 함께. 할매는 기찻길 옆에서 일구는 텃밭에서 푸성귀를 딴다. 아이는 기찻길을 밟으며 꽃이랑 논다.

- 2010.10.28. 인천 중구 신흥동3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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