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맞는 마음


 퍽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읍내 마실을 한다. 읍내 마실을 하면서 생각한다. 예전 사람들은 사일장이든 오일장이든 장날에 맞추어 읍내에 마실을 한다고 했다지만, 이런 읍내 마실조차 매우 드문 일이었으리라고. 한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으려나. 두어 달에 한 번쯤 마실을 했을까.

 아이 엄마랑 아이랑 나란히 읍내 마실을 한 지 한 달쯤 되지 않았나 싶다. 이래저래 딱히 읍내로 마실을 할 일이 없었다. 모처럼 읍내에 나가서 중국집에 들러도 그닥 맛있지 않다고 한다.

 아이를 걸리다가 안다가 하면서 시골버스 타는 데로 간다. 집을 나서며 시골길을 조금 걷는데, 집 둘레 멧자락에서 보던 느낌하고 사뭇 다르다. 시골자락 가을은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하고 새삼 느낀다. 버스 타는 때를 맞추어야 하지만 살짝살짝 가을맛을 보면서 걷는다. 이러다가 어쩌면 늦을까 걱정스럽다. 저 앞 시골버스역에 서 있는 느티나무를 보며 걷다가 아이고, 내리막을 따라 시골버스가 탈탈탈 내려오는 모습을 본다. 큰일이다. 어, 아직 버스역까지 가려면 더 걸어야 하는데. 아이를 안고 헐레벌떡 달린다. 손이라도 흔들어야 하나 싶어 손을 흔들며 달린다. 아이도 아빠 품에 안긴 채 손을 흔들며 함께 소리를 질러 준다. 버스기사는 못 보고 못 들은 듯. 버스가 탈탈 움직이려 한다. 다시 부르고 자꾸 부르니 버스가 가려다 멈추고, 또 가려다 멈춘다. 아예 멈추어 주거나 뒤로 와 주어도 좋으련만. 왜 자꾸 갈 듯 말 듯 그러나.

 버스기사는 차갑게 떠나지 않았다. 버스에는 여고생 두 사람이 먼저 타고 있다. 어, 어느 마을에 사는 학생들이지? 탈탈 느릿느릿 달리는 버스는 손님을 한 사람 더 태우고 읍내로 들어선다. 모두 다섯 사람이 탔다. 여느 때에는 우리 식구들만 타기 일쑤이다. 장날이 아니라면, 또 주말이 아니라면 우리 식구들만 타는 널따란 택시와 같달까.

 버스가 달리는 산등성이를 따라 곱게 이어진 층층논에서 누렇게 익던 벼는 모두 베어내어 텅 비다. 누렇게 익은 벼가 찰랑거리던 때에도 곱고, 모두 베어내어 볏단을 묶은 때에도 곱다. 햇볕에 반짝이는 가을 은행잎은 금빛과 닮았고, 가을 은행나무 옆에서 나란히 자라는 감나무에 대롱대롱 달린 감알 또한 금빛과 닮았다. 감알은 보는 자리에 따라, 또 아침이냐 낮이냐 저녁이냐에 따라 빛깔이 사뭇 다르게 바뀐다. 시골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이러한 빛바뀜을 날마다 즐길 수 있어 고맙다. 멧자락에 깃든 감나무랑 읍내에 깃든 감나무랑 들판에 깃든 감나무랑 모두모두 빛과 모습이 다르다. 감알을 따서 책시렁 한켠에 얹어 놓고 날마다 들여다보노라면, 날마다 차근차근 익으며 보여주는 빛깔이 참 예쁘다.

 읍내로 마실을 나서는 길에 흔하디흔하다 할 만한 빨간 나뭇잎하고 어우러지는 노란 나뭇잎이랑 아직 푸른 나뭇잎이랑 빈 들판을 살며시 사진으로 담는다. 흔하디흔한 모습이기는 한데, 해마다 새삼스러운 흔한 모습이라 좋다. 우리 아이한테는 이제 막 새롭게 보는 흔한 모습이요, 앞으로 해마다 다 달리 마주하며 맞아들일 새 가을 빛깔일 테지. 나한테 사진기가 있어 이 모습을 담으니 좋고, 사진찍기를 하며 살아가니까 이 모습을 살뜰히 옮겨 딸아이랑 앞으로도 오래오래 즐길 수 있어 좋다. (4343.1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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