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책읽기

 


  숲속에서는 나뭇가지를 때리고 나뭇잎을 스치며 풀잎에 튕기는 빗소리를 듣는다. 들판에서는 곡식 알맹이를 톡톡 건드리면서 쏴아쏴아 바람에 흩날리는 빗소리를 듣고, 흙을 톡톡 건드리는 빗소리를 듣는다.


  도시에서는 자동차 유리창과 쇳덩이에 부딪는 빗소리를 듣는다. 자동차가 촤아촤아 빗물 고인 길을 가르는 소리를 듣는다. 수많은 사람과 우산이 엇갈리거나 부딪히는 소리를 듣는다. 후끈후끈하다. 후덥지근하다. 차갑다. 도시에서는 빗물이 살찌우거나 살릴 만한 푸른 숨결이 거의 안 보인다. 도시로 찾아드는 빗물은 매캐한 먼지 뒤집어쓴 나무들 몸을 씻어 주고, 매캐한 먼지로 뒤덮인 건물 벽을 닦아 준다. 도시에서 빗물은 하수구로 흘러들어 빨리빨리 도시 바깥으로 벗어나야 할 쓰레기처럼 다루어진다.


  시골집 처마를 따라 주루루 떨어지는 빗물 소리를 듣는다. 풀벌레 노랫소리나 멧새 노랫소리는 빗소리에 감겨 거의 안 들리지만, 드문드문 사이사이 아스라한 몇 가닥 소리가 스며든다.


  둘레에서 들리는 모든 소리는 내 안으로 들어온다. 가을비는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사뿐사뿐 아장아장 예쁜 몸짓으로 감나무를 적시고 빈 들판을 적시며 바닷물과 얼크러진다. 새근새근 자는 아이들 머리맡으로 빗소리 흐른다. (4345.10.2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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