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판국 -局


 이 어려운 판국에 → 이 어려운 판에 / 이 어려운 살림에

 어떻게 되어 가는 판국인지 → 어떻게 되어 가는 판인지

 돈이면 다 되는 판국이다 → 돈이면 다 되는 판이다


  ‘판국(-局)’은 “일이 벌어진 사태의 형편이나 국면”을 가리킨다고 해요. ‘국면(局面)’은 “어떤 일이 벌어진 장면이나 형편”을 가리키고, ‘형편(形便)’은 “일이 되어 가는 상태나 경로 또는 결과”를 가리킨다고 해요. 그런데 ‘판국’은 ‘형편·국면’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국면’은 ‘장면·형편’을 가리킨다고 하니 겹말풀이가 됩니다. 그나저나 ‘판국’이라는 낱말에서 ‘局’은 “판 국”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말 ‘판’을 한자로 ‘局’으로 적는 셈이에요. 그러니 ‘판局’이라는 낱말은 ‘판판’을 가리키니, 여러모로 얄궂습니다.


  ‘판’을 한국말사전에서 찾아보면 “1. 일이 벌어진 자리. 또는 그 장면 2. ‘처지’, ‘판국’, ‘형편’의 뜻을 나타내는 말 3. 승부를 겨루는 일을 세는 단위”로 풀이해요. 이 풀이에서 ‘판 = 처지·판국·형편’으로 풀이하는데, 이래서야 앞서 살핀 말풀이처럼 오락가락 뒤죽박죽이 될 뿐입니다. 그저 ‘판’이라 쓰면 되고, 때로는 ‘흐름’이나 ‘노릇’이나 ‘마당’으로 손볼 만합니다. 2016.7.31.해.ㅅㄴㄹ



온 식구가 다 죽을 판국이지

→ 온 식구가 다 죽을 판이지

→ 온 식구가 다 죽을 노릇이지

→ 온 식구가 다 죽을 판이지

《서정오-아기장수 우투리》(보리,1998) 11쪽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판국에

→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판에

→ 온 나라가 전쟁에 뛰어든 마당에

《고사명/김욱 옮김-산다는 것의 의미》(양철북,2007) 200쪽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 판국에 있는 농민

→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 판에 있는 농민

→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 구석에 몰린 농민

《오제 아키라/이기진 옮김-우리 마을 이야기 3》(길찾기,2012) 66쪽


정신을 잃고 슬퍼해도 모자랄 판국에

→ 넋을 잃고 슬퍼해도 모자랄 판에

→ 넋을 잃고 슬퍼해도 모자랄 마당에

《정여울-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 141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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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제기 提起


 반론 제기 → 반론 내놓음 / 반론 하기

 의혹 제기 → 의혹 내놓음 / 의혹 묻기

 문제 제기 → 문제 내놓음 / 문제 묻기

 의문을 제기하다 → 의문을 내놓다 / 의문스럽다고 하다

 이의를 제기하다 → 다른 생각을 내놓다 / 다른 뜻을 밝히다

 소송을 제기하다 → 소송을 하다 / 소송을 일으키다


  ‘제기(提起)’는 “1. 의견이나 문제를 내어 놓음 2. 소송을 일으킴”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내놓다(내어 놓다)’나 ‘일으키다’라는 낱말을 쓰면 돼요.


  이밖에 한국말사전에는 여러 가지 한자말 ‘제기’를 싣는데, 굳이 쓸 일이 없거나 알맞게 손질해야 하는 낱말이 많다고 느껴요. ‘제사그릇’ 같은 낱말을 새롭게 지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그릇을 지을 적에는 ‘그릇짓기’나 ‘그릇빚기’라 할 수 있어요. 글에 붙이는 이름은 ‘글이름’으로 쓰면 될 테고요. 2016.7.31.해.ㅅㄴㄹ


제기(帝畿) : 천자의 도읍이 있는 지방

제기(除棄) : 제쳐 놓음. 또는 빼어 버림

제기(祭器) : 제사에 쓰는 그릇

제기(製器) : 기구나 그릇 따위를 만듦

제기(題記) : 공문(公文), 작품, 신문, 잡지 따위의 기사 제목



이의를 제기한 것은 알쏭이였다

→ 다른 생각을 밝힌 사람은 알쏭이였다

→ 다른 뜻을 내놓은 사람은 알쏭이였다

《요네야마 마사노부/현종오 옮김-이온 인터뷰》(아카데미서적,1997) 54쪽


반론을 제기할 사람이 많겠지만

→ 반론을 펼 사람이 많겠지만

→ 그렇지 않다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 그 말은 틀렸다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 그 말은 아니라고 할 사람이 많겠지만

→ 고개를 가로저을 사람이 많겠지만

《김창엽과 열두 사람-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삼인,2002) 165쪽


탐폰에 함유된 다이옥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 탐폰에 깃든 다이옥신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 탐폰에 들어간 다이옥신이라는 말이 나온다

《꿈꾸는 지렁이들》(환경과생명,2003) 24쪽


의문을 제기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 묻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 궁금해 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 모르겠다고 말씀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법륜-붓다 나를 흔들다》(샨티,2005) 46쪽


토머스 모어는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

→ 토머스 모어는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 토머스 모어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다

→ 토머스 모어는 끊임없이 궁금해 했다

《정여울-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 238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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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량한 말 바로잡기

 불평 不平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다 → 끊임없이 푸념을 늘어놓다

 웬 불평은 그리 많은지 → 웬 푸념은 그리 많은지

 숙제가 많다고 불평하다 → 숙제가 많다고 투덜댄다

 왜 그러느냐고 불평했다 → 왜 그러느냐고 투덜댔다

 시간이 적다고 불평하고 있다 → 시간이 적다고 툴툴거린다


  ‘불평(不平)’은 “1.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못마땅하게 여김 2. 마음이 편하지 아니함 3. 병으로 몸이 불편함”을 가리킨다고 해요. 그러니 “못마땅하게 여김”으로 손볼 수 있고, ‘투덜거리다·투덜대다’로 손보거나 ‘푸념하다’로 손볼 수 있어요. 한국말사전에서 ‘푸념’을 찾아보면 “마음속에 품은 불평을 늘어놓음”으로 풀이해요. 그러니 한자말 ‘불평 = 푸념’인 셈이지요. 2016.7.29.쇠.ㅅㄴㄹ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해 가끔 불평을 했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놓고 가끔 푸념을 했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한테 가끔 투덜거렸다

→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가끔 못마땅히 여겼다

《페터 헤르틀링/박양규 옮김-할머니》(비룡소,1999) 7쪽


불평을 하는 대신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라

→ 투덜거리지 말고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라

→ 푸념을 하지 말고 소리 지르는 법을 배우라

《마거릿 D.로우먼/유시주 옮김-나무 위 나의 인생》(눌와,2002) 305쪽


불평 한마디 없이 앉아서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다

→ 푸념 한마디 없이 앉아서 아침을 먹는다

→ 한마디도 투덜대지 않고 앉아서 아침을 먹는다

《딕 킹 스미스/김서정 옮김-워터 호스》(웅진주니어,2003) 44쪽


나중에 제게 불평하지 않는다면

→ 나중에 제게 투덜대지 않는다면

→ 나중에 제게 푸념하지 않는다면

→ 나중에 제게 툴툴대지 않는다면

《키르스텐 보이에/박양규 옮김-아빠는 전업 주부》(비룡소,2003) 20쪽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툴툴댄다

→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고 못마땅해 한다

《정여울-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 61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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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각양각색의


 각양각색의 사람들 → 여러 사람들 / 온갖 사람들

 각양각색의 깃발이 나부끼고 → 여러 가지 깃발이 나부끼고


  ‘각양각색(各樣各色)’은 “각기 다른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한국말사전에는 “≒ 각색각양”처럼 비슷한말을 싣지만 ‘각색각양’이라는 한자말을 쓸 일은 없을 듯합니다. 그리고 ‘각양각색’도 ‘여러 가지’나 ‘여러’로 손질하면 돼요. 처음부터 ‘여러 가지’나 ‘여러’로 쓰면 ‘-의’가 달라붙을 일이 없습니다. 2016.7.29.쇠.ㅅㄴㄹ



각양각색의 삼류 잠언들을

→ 여러 가지 삼류 잠언들을

→ 온갖 삼류 잠언들을

《이효인-김기영, 하녀들 봉기하다》(하늘아래,2002) 95쪽


철 따라 나오는 각양각색의 꽃들

→ 철 따라 나오는 여러 가지 꽃들

→ 철 따라 나오는 여러 꽃들

→ 철 따라 나오는 온갖 꽃들

→ 철 따라 나오는 저마다 다른 꽃들

《노은님-내 짐은 내 날개다》(샨티,2004) 24쪽


가까운 마트에는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 가까운 가게에는 온갖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 가까운 가게에는 갖은 음식이 산더미처럼 있고

→ 가까운 가게에는 수많은 음식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최원형-10대와 통하는 환경과 생태 이야기》(철수와영희,2015) 194쪽


각양각색의 인물들

→ 여러 사람들

→ 온갖 사람들

→ 이런저런 사람들

《정여울-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 35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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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한 치의


 한 치의 후회도 없이 → 한 치도 후회가 없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 한 치도 오차가 없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한 치의 땅도 → 한 치 땅도 / 땅 한 치도


  ‘치’는 길이를 재면서 쓰는 낱말입니다. 얼추 3센티미터쯤 되는 길이를 가리키는데, 얼마 안 되는 길이를 빗대는 자리에 흔히 써요. 이른바 “거의 없다”고 하거나 “조금만 있다”고 하는 자리에 빗대면서 쓰지요. 그런데 이 낱말을 “한 치의 (무엇)도 없이” 꼴로 흔히 쓰는데, “한 치도 (무엇)하지 않고”처럼 손질해야지 싶습니다. 또는 ‘조금도’나 ‘하나도’로 손볼 수 있어요. 2016.7.28.나무.ㅅㄴㄹ



일진일퇴,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 물고 물리며, 한 치도 양보하지 않습니다

→ 밀고 당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 물러서지 않고, 한 치도 밀리지 않습니다

→ 물러서지 않고, 조금도 내주지 않습니다

《우라사와 나오키/서현아 옮김-야와라 24》(학산문화사,2000) 113쪽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

→ 한 치 흔들림도 없다

→ 한 치도 흔들림이 없다

→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다

〈오마이뉴스〉 2005.2.2. 정운현 님 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라는 명령으로

→ 한 치라도 땅을 더 차지하라고 내몰아서

→ 땅을 한 치라도 더 차지하라고 시켰기에

→ 조금이라도 땅을 더 차지하라고 시켜서

《이임하-10대와 통하는 한국 전쟁 이야기》(철수와영희,2013) 70쪽


한 치의 오차도 없는

→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

→ 조금도 틀리지 않는

《정여울-마음의 서재》(천년의상상,2015) 261쪽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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