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1.14.


이 가을에 고흥은 낮에 따뜻하다. 해가 떨어지면 긴바지를 입지만 구름 없고 바람 없는 날은 살짝 덥기까지 하다. 빨래터를 치우는 날에는 마땅히 반바지. 겨울에도 빨래터를 치울 적에는 맨발에 반바지 반소매로 나온다. 신나게 빨래터를 치우고서 담벼락에 앉는다. 발을 말리면서 만화책 《오카자키에게 바친다》 첫째 권을 편다. 책이름처럼 그린이는 어릴 적 짝꿍인 오카자키한테 만화책을 바친다. 한국말로는 두 권이 나왔는데, 첫째 권을 보니 그야말로 철딱서니없는 가시내(야마모토)가 오카자키라는 벗을 만나서 삶과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거나 느끼는 이야기가 흐른다. 첫째 권으로만 본다면, 그린이는 어릴 적에 매우 남우세스러운 나날을 보냈구나 싶은데, 문득 헤아리니 이녁은 이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고스란히 보여준다. 만화를 읽는 사람 누구나 그린이(야마모토)가 이렇게 철이 없나 싶도록 느낄 수 있다. 이러면서 그린이가 왜 옛벗 오카지키한테 이 만화를 바치려 하는가를 살며시 엿볼 수 있다. 첫째 권을 덮고서 둘째 권을 장만하려 하는데, 조용히 내 발자국을 더듬어 본다. 나한테는 오카자키 같은 벗이 있었을까? 어쩌면 내가 다른 벗한테 오카자키 같은 노릇을 했을까? 둘 모두 아직 모르겠는데, 마침 엊저녁에 오랜 고향벗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마음으로 서로 아낄 줄 아는 온누리 벗님이여, 우리 함께 웃음짓는 하루를 가꾸면서 살아가자.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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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시외버스에 읽은 책 2017.11.15.


작은아이하고 둘이 순천마실을 간다. 이레 앞서는 큰아이하고만, 오늘은 작은아이하고만 마실을 간다. 마치 두 아이가 갈마들면서 바깥바람을 함께 쐬는 듯하다. 순천역 앞에 있는 〈책방 심다〉에 살짝 들러서 책방에 어머니하고 함께 나온 아기를 본다. 어머니 품에 고이 안겨서 잠들랑 말랑 하는 아기를 본 작은아이는 “아기 손에 참 작네.” 하고 말한다. 네 손도 발도 얼마 앞서까지 그처럼 작았지. 작은아이는 〈책방 심다〉에서 여러 가지 그림책을 두루 즐겼고, 역전시장 떡집에서 떡을 장만해서 맛나게 먹는다. 고흥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세모김밥을 하나 먹는다. 책방에서 장만한 《그림책 톡톡 내 마음에 톡톡》을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읽는다. 시외버스에서 까무룩 잠든 작은아이는 내 어깨에 기댄다.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인 정봉남 님이 쓴 살뜰한 책을 읽다가 나도 작은아이를 따라 살짝 꿈나라에 든다. 고흥읍에 닿아 시외버스를 내렸고,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를 기다리며 책을 더 읽는다. 그림책을 만나는 아이들 마음에 즐거움이 톡톡 스며들 적에, 이 그림책을 지은 어른들을 비롯해서, 이 그림책을 즐길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 마음에도 따스한 손길이 톡톡 나란히 춤추겠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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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14.


광주방송에서 ‘고향견문록’이라는 방송을 찍는다면서 찾아온다. 어떤 풀그림인지 모른다. 그러나 광주에 있는 방송국이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면서 방송 찍기를 받아들였고, 아침 열 시부터 낮 세 시 이십 분까지 다섯 시간을 썼다. 아이들은 이제 방송국이나 신문사 같은 데에서 찾아오면 ‘우린 안 찍히겠어요’ 하고 밝힌다. 오로지 아버지 혼자 찍힌다. 마땅한 일이지. 매체에서는 나를 보고 찾아오지, 아이들을 보고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을 보고 찾아오기도 하는데, 이분들은 방송에 좋은 그림으로 나갈 대목을 생각할 뿐, 아이들하고 ‘참동무’가 되려고 찾아오지는 않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 아이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찍고 싶은 이가 있다면 우리 아이들한테 참동무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참동무가 안 되려 하면서 딱 한 번 찾아와서 이것저것 바란다면 온누리 어느 누가 찍히고 싶겠는가. 방송을 다 찍고서 이분들 차를 얻어타고 고흥읍으로 나간다. 우리 마을에서 읍내로 가는 버스는 15시에 있는데, 방송을 찍느라 버스를 놓쳤다. 읍내에 닿아 볼일을 보고서 집으로 돌아가는 군내버스에서 《마티유의 까만색 세상》을 읽는다. 짤막하지만 굵고 짙은 이야기가 흐르는 어린이문학이다. 글도 그림도 정갈하면서 곱다. 이런 책이 진작에 나왔네. 오늘 나는 열네 해 만에 이 책을 알아보고서 읽었으나, 지난 열네 해 동안 이 아름다운 어린이문학을 사랑한 이웃님이 많이 있겠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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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마당에서 읽은 책 2017.11.13.


나날이 유자 냄새가 짙다. 이레쯤 앞서부터 따야지 따야지 하면서 자꾸 잊거나 미룬다. 귤을 먹는 철을 맞이할 적마다 ‘우리 집 유자도 따야지’ 하고 떠올리는데, 귤은 꽤 일찍 나오지 싶다. 어쩌면 가게에 나오는 유자도 제철보다 일찍 나오리라 본다. 우리 집 유자는 꽃몽우리가 맺힐 무렵부터 냄새를 퍼뜨린다. 둘레에 웬만한 풀이 시들고 나무는 잎을 떨굴 무렵 꽃을 피우는 유자인 터라 냄새가 훨씬 짙다고 느낀다. 꽃부터 유자 냄새요, 푸른 열매가 노랗게 익는 동안에도 유자 냄새이다. 이 냄새를 마당에서까지 누리면서 그림책 《우리 엄마는 다섯 살?》을 읽는다. 다섯 살 아이가 혼자 유치원에 가기 싫어서 엄마하고 함께 가는데, 엄마가 돌아가야 할 때에 이르자 악착같이 안 떨어지려 한다. 바야흐로 엄마마저 유치원에서 다섯 살 아이들하고 함께 놀고 배우고 먹고 낮잠을 자도록 한다. 어느 모로 보면 떼쓰는 아이 때문에 고달픈 어머니 모습을 그린다고 할 만하지만, 어머니가 다섯 살 아이들 틈에서 홀로 외롭고 힘든 모습을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처음 홀로 남겨질 적에 얼마나 무섭고 힘든가를 넌지시 비추는 셈이라고 할 만하다. 멋진 그림책이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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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11.


아이들이 스스로 제 그릇이나 수저를 설거지하지 않으면 내가 안 해 주겠노라 했으나, 두 아이는 늘 잊는다. 하루를 잊고 이틀을 잊는다. 사흘 나흘 신나게 잊는다. 개수대를 치우고 싶어서 마지못해 아이들 그릇을 설거지하다가 다시 내려놓기를 되풀이한다. 두 아이 모두 ‘먹은 그릇을 설거지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그릇을 꺼내어서 쓴다. 이러다가도 큰아이는 때때로 아버지 곁에 붙어서 “설거지를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고 배워야지!” 하고 혼잣말을 하면서 물끄러미 지켜보곤 한다. 저랑 아버지랑 설거지하는 손길이 다른 줄 살펴본다. 그래, 그렇게 봐야지. 본다고 해서 다 알아내지는 못할 수 있지만, 보고 또 본 뒤에 스스로 해 봐야지. 손이며 몸에 익도록 해 봐야지. 밥상을 차려 놓고서 보려다가 자꾸 못 보고 만 사진책 《귀환》을 드디어 이부자리에 누워서 본다. 평상에 앉아서 보고 싶으나 등허리를 펴려고 끙 소리를 내며 자리에 누워서 본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군대힘을 앞세워 러시아로 내몬 탓에 고향을 잃은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해방이 되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고향나라 손길을 못 받았다. 더욱이 남녘 정부에서 ‘귀환’을 받아들이기로 할 적에 딸아들은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와야 한 사람들이 많다. 나라는 무엇일까? 나라가 하는 일이란 뭘까? 나라는 돈을 어디에 쓰는가? 딸아들도 동무도 이웃도 러시아에 두고 홀몸으로 남녘으로 들어온 분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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