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0.30.
서울에 다녀오기로 한다. 오늘은 다른 일이 있었으나 그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면서, 새로 나온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을 기리는 조촐한 자리를 꾸리기로 한다. 이 알뜰한 사전을 펴내 준 출판사 일꾼, 이 뜻있는 사전을 빛내 준 디자인회사 대표, 이 고운 사전이 태어나도록 함께 글손질을 한 이웃, 앞으로 내 새로운 책을 펴내 주기로 한 출판사 일꾼, 이렁저렁 여러 반가운 분들하고 저녁자리를 누린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려 하니 작은아이도 큰아이도 부시시하게 일어나서 “아버지 어디 가?” 하고 묻는다. “응, 서울에 바깥일을 하러 다녀와.” “그렇구나. 그러면 잘 다녀와요.” “우리 이쁜 아이들도 집에서 스스로 할 몫을 하면서 즐겁게 배우셔요.” 열흘쯤 앞서 읍내마실을 할 적에 한 번 입어 보았는데, 오늘부터 나는 멀리 바깥마실을 갈 적에 새로운 바지를 입기로 한다. 이른바 ‘치마바지’. 이런 멋진 바지가 있는 줄 요즈음에 알았다. 태국에서는 고기잡이가 흔히 입기도 한대서 ‘어부바지’나 ‘태국바지’라는 이름도 있다. 나한테는 시월 끝자락도 아직 더우니 치마반바지를 입는다. 긴머리에는 꽃무늬 머리핀을 꽂고, 아랫도리는 치마반바지에, 80리터들이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앞에는 다른 가방 둘을 어깨에 메고는 한 손에는 사진가방을 든 차림. 나 스스로 보아도 재미난 입성이다. 군내버스에서 읽고 시외버스에서도 읽으려고 책을 여러 권 챙기는데, 맨 먼저 《아직 끝이 아니다》를 편다. 배구선수 김연경 님이 쓴 이녁 이야기이다. 고작 서른 살 나이에 쓰는 자서전일 수 있지만, 김연경 님은 얼마든지 이녁 이야기를 쓸 만하다고 느낀다. 이 책이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는 날을 잘 맞추어 책모임에 찾아가서 손글씨를 받고 싶었으나, 그때에 아쉽게도 못 갔다. 언젠가 날하고 자리를 잘 맞추어서 김연경 님한테서 《아직 끝이 아니다》에 손글씨를 받을 수 있을까? 동그란 공 하나에 씩씩하게 꿈을 담아서 걸어온 길이 책에 아주 잘 나온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땀을 흘린 숨결이 더없이 반갑다. 고된 훈련을 마치고 나서 그대로 뻗기보다는 ‘함께 운동하는 지기’가 기운을 차리도록, 또 김연경 님 스스로 새롭게 일어서도록, 웃으며 춤도 추고 노래도 했다는 이야기에 무릎을 쳤다. 참말 그렇다. 우리한테 가시밭길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한테는 꿈길만 있지 않을까? 우리한테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길만 있지 않을까? 우리한테는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만 있지 않을까? 서른 살 싱그러운 운동선수 한 분이 쓴 이야기책을 읽으며 새삼스레 생각한다. 마흔 줄을 넘고 쉰 줄로 나아가는 나도 ‘꿈을 이루려는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길에 서며 웃고 노래하고 춤추고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신나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고.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