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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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적 정의 : 그대가 외치는 ‘선택적 정의’로 뭇사람이 눈물에 젖는다. ‘선택적 정의’는 ‘때린놈’조차 마치 ‘맞은놈’으로 돌려 놓는다. 민정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통합당에서 응큼짓(성추행)을 저질렀을 적에 그대들은 어떻게 했는가? 오른길에 선 놈들이 저지르는 응큼짓만 잘못을 밝히고 따져서 사슬터(감옥)에 처넣어야 하지 않는다. 왼길에 선 놈들이 저지르는 응큼짓도 낱낱이 잘못을 밝히고 따져서 사슬터(감옥)에 처박을 노릇이다. 부동산투기를 누가 하는가? 시골에서 흙 만지는 할매 할배가 하는가? 아니다, 민주당 국회의원·지자체장도 통합당 국회의원·지자체장도 똑같이 한다. 두 놈이 똑같이 저지르는 막짓은 두 놈이 똑같이 두들겨맞고서 넋을 번쩍 차리도록 다그칠 노릇이다. 그대가 베스킨라빈스에 가서 골라먹기를 한다면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응큼짓이나 막짓이나 부동산투기를 비롯한 갖가지 시커먼 발걸음을 보이는 이들을 눈앞에서 뻔히 보고도 ‘골라먹기(선택적 정의)’를 한다면, 그대야말로 거짓말쟁이요 막놈이겠지. 잘못을 감싸지 마라. 부드럽고 상냥한 말씨로 나무라면서, 포근하고 애틋한 손끝으로 토닥이는 마음이 되는 어버이는 언제라도 ‘골라 나무라기(선택적 정의)’를 하지 않는다. 2020.7.11.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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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말 씻기 : 마치 아이가 처음 글씨를 익히며 쓰듯, 찬찬히 생각하면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면 겹말은 하나도 안 나타날 만하지 싶다. 겹말은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구는 사람 입이며 손에서 불거진다. 글씨를 하나하나 또박또박 천천히 눌러서 쓰는 아이마냥, 말 한 마디를 오롯이 마음에 새겨서 머리로 가다듬고 혀에 얹는다면 어느 누구라도 겹말이 튀어나오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고 살림을 가꾼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오늘을 노래하고 어제를 이야기한다. 생각하는 사람이라야 풀꽃나무랑 말을 섞고 바람이 알려주는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는 말자랑 글치레가 아닌 아이 꿈이며 사랑을 담아내고 싶어 말을 익혀서 터뜨린다. 책 좀 읽었거나 글깨나 쓴다는 어른들이 왜 자꾸 겹말이 불거질까? 아주 쉽다. 말자랑 글치레를 하려고 드니, ‘생각하는 말하기·생각하는 글쓰기’가 아닌 ‘자랑하는 말하기·치레하는 글쓰기’로 치우쳐 버리는 탓이다. 2010.7.7.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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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이 없을 텐데요 : “시간 나면 읽을게”라든지 “시간 나면 그 책집에 가 볼게” 하고 말하는 사람치고 ‘틈이 나서’ 그 책을 읽거나 ‘틈이 나서’ 그 책집에 가 본 사람은 못 봤다. ‘시간 나면·틈이 나면’은 그저 오늘 이곳에서 둘러대려고 문득 터져나오는 길든 말씨이다. 이렇게 말하는 분을 만나면 곧바로 “틈이 날 일은 아마 없지 않으시겠어요? 바쁘시다면서요. 바쁘시니까, ‘틈이 나면’ 읽거나 찾아갈 생각을 하지 마시고요, ‘틈을 내어’ 스스로 언제 읽거나 찾아가겠노라고 달력에 척 적어 놓아야 비로소 읽거나 찾아가시리라 생각해요. ‘틈을 스스로 내어’서 하시면 좋겠어요.” 하고 이야기한다. 틈이 날 적에 읽으려고 하면 그 책은 어느새 사라지거나 잊히기 마련이다. 틈이 날 적에 찾아가려고 하면 그 책집은 어느덧 스러지거나 잊어버리기 일쑤이다. 1998.7.8.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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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나 :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든, 스스로 하늘을 품고 풀꽃나무를 사랑하면서, 바람결에 묻어나서 흐르는 노래를 맞아들인다면, 하루를 즐겁게 짓는 길이 되지 싶다. 큰고장(도시)에 살 적부터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나중에 살림을 숲(자연)으로 옮기더라도 스스로 즐겁지 못한 나머지 그저 헤매고 말더라. 어디에서나 스스로 홀가분히 꿈꾸는 사랑일 적에는 시나브로 숲을 가까이 두기 마련이지만, 이 마음결이라면 큰고장에서도 빛나는 눈으로 우리랑 한집님이랑 이웃님이랑 동무님을 모두 넉넉히 아우르는 살림이 될 테지. 달아나듯 큰고장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면서 떠나면 다시 큰고장으로 가는 길이 된다. 큰고장에 넘치는 매캐한 바람을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말자.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 어디에서나 스스로 하늘빛을 머금는 어질며 참한 사랑님인 줄 느끼자. 우리 어버이가 나를 숲터에서 낳아 숲아이로 돌보았든, 우리 어버이가 나를 아파트에서 낳아 아파트아이로 키웠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어디에서나 우리가 스스로 닦는다. 해는 푸른별을 고루 어루만진다. 바람은 푸른별을 두루 달랜다. 눈비는 푸른별을 골고루 품는다. 매캐한 큰고장이 갑갑하다면 그 큰고장 귀퉁이나 골목이나 빈터에 씨앗을 심어 보자. 앞으로 숲터에 보금자리를 짓는 꿈을 그리면서 ‘오늘 살아가는 이 큰고장’을 숲정이로 가꾸어 보자. 씨앗을 흙에 묻는 손길로 풀꽃나무를 쓰다듬는 마음길을 다스리는 하루를 누리기에 우리 몸은 어느새 숲구름을 타고서 홀가분히 날아오른다. 2007.4.5.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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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책읽기 :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인데, 이동안 ‘운동권 친구·선후배’는 많았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검은돈을 거머쥐려는 대학재단이며 이사장이랑 싸울 적하고, 민주하고 어긋난 나라꼴에 맞서는 집회·시위에는 으레 함께했지만, 한두 시간 뒤에는 내 일터(신문사지국 또는 학교도서관 또는 구내서점)로 가야 했다.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고, 날마다 학교도서관·구내서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해야 했기에 집회·시위에 웬만하면 나가더라도 살짝 있다가 바로 내 일터로 달려가는 나날이었다. 모든 곁일을 마치면 신문 돌리던 자전거를 몰아 헌책집으로 갔다. 이때에 ‘운동권 친구·선후배’를 으레 불러서 “야, 같이 책 보러 가자!”라든지 “선배, 책 보러 가시죠?” 하고 팔짱을 끼고 잡아당기는데, 다섯 학기에 걸쳐 딱 사흘만 꼭 세 사람이 나를 따라서 책마실을 갔고, 이때마저도 책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하는 말은 “책 읽을 틈 없어!”였다. 나는 이들한테 내내 따졌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무슨 운동을 한다고 그래?” 이들은 “공부를 안 해도 알 건 다 알아.” 하고 대꾸했고 “네가(선배가) 뭘 아는데?”로 맞받았다. 운동권 친구·선후배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운동을 하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대학교를 마친 뒤에는 돈을 버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일꾼이나 행정일꾼이나 회사원이 된 뒤에는 정치랑 행정이랑 회사일이 바쁘기에 또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아, 이들은 책을 읽을 틈만 없지 않더라. 이웃을 들여다볼 틈이 없고, 삶을 바라볼 틈이 없고, 숲을 마주할 틈이 없고, 아이랑 놀 틈이 없고, 하루를 돌아볼 틈이 없고, 꿈을 그릴 틈이 없고, 그야말로 아무런 틈이 없다. 그저 ‘운동’만 한다는데, 무슨 운동을 하는지 나로서는 영 모르겠다. 그 운동권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작가나 평론가나 피디나 기자나 영화감독이나 교사나 이거나 저거나 참 많이 하는데, 나는 그냥그냥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하고도 만나지도 말을 섞지도 않는다. 2020.6.2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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