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운동권 책읽기 : 다섯 학기만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인데, 이동안 ‘운동권 친구·선후배’는 많았다. 나는 운동권이 아니었다. 검은돈을 거머쥐려는 대학재단이며 이사장이랑 싸울 적하고, 민주하고 어긋난 나라꼴에 맞서는 집회·시위에는 으레 함께했지만, 한두 시간 뒤에는 내 일터(신문사지국 또는 학교도서관 또는 구내서점)로 가야 했다. 새벽마다 신문을 돌리고, 날마다 학교도서관·구내서점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해야 했기에 집회·시위에 웬만하면 나가더라도 살짝 있다가 바로 내 일터로 달려가는 나날이었다. 모든 곁일을 마치면 신문 돌리던 자전거를 몰아 헌책집으로 갔다. 이때에 ‘운동권 친구·선후배’를 으레 불러서 “야, 같이 책 보러 가자!”라든지 “선배, 책 보러 가시죠?” 하고 팔짱을 끼고 잡아당기는데, 다섯 학기에 걸쳐 딱 사흘만 꼭 세 사람이 나를 따라서 책마실을 갔고, 이때마저도 책을 산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다들 하는 말은 “책 읽을 틈 없어!”였다. 나는 이들한테 내내 따졌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무슨 운동을 한다고 그래?” 이들은 “공부를 안 해도 알 건 다 알아.” 하고 대꾸했고 “네가(선배가) 뭘 아는데?”로 맞받았다. 운동권 친구·선후배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운동을 하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대학교를 마친 뒤에는 돈을 버느라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정치일꾼이나 행정일꾼이나 회사원이 된 뒤에는 정치랑 행정이랑 회사일이 바쁘기에 또 책을 읽을 틈이 없다고 했다. 아, 이들은 책을 읽을 틈만 없지 않더라. 이웃을 들여다볼 틈이 없고, 삶을 바라볼 틈이 없고, 숲을 마주할 틈이 없고, 아이랑 놀 틈이 없고, 하루를 돌아볼 틈이 없고, 꿈을 그릴 틈이 없고, 그야말로 아무런 틈이 없다. 그저 ‘운동’만 한다는데, 무슨 운동을 하는지 나로서는 영 모르겠다. 그 운동권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나 장관이나 작가나 평론가나 피디나 기자나 영화감독이나 교사나 이거나 저거나 참 많이 하는데, 나는 그냥그냥 하나도 모르겠다. 나는 이제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하고도 만나지도 말을 섞지도 않는다. 2020.6.26.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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