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코토의 푸른 하늘 - 생활 팬터지 동화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40
후쿠다 이와오.시즈타니 모토코 지음, 김정화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7

 


우리 함께 살아요
― 마코토의 푸른 하늘
 시즈타니 모토코 글,후쿠다 이와오 그림,김정화 옮김
 아이세움 펴냄,2008.1.30./7500원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언제부터 함께 살았는지 잘 안 떠오르지만, 돌아가신 뒤 있던 일은 환하게 떠오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았어도 할아버지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할아버지 심부름을 한 적은 있어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귀를 기울여 듣는다든지, 내가 먼저 할아버지한테 옛날이야기 들려주기를 바란 적은 거의 없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나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지만, 아버지와 할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아버지 사이에도 이야기가 드물었어요.


  할아버지는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모르던 분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버지 또한 당신 아들하고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어야 할는지 몰랐을 뿐 아니라, 배우지 못했고, 생각을 못했구나 싶습니다.


  내 아버지는 왜 당신 아버지와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왜 당신 아이하고 이야기꽃을 못 피우셨을까요. 국민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버지는 학교에서 너무도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하루 내내 시달리느라 막상 집으로 돌아와서는 당신 아이하고는 살가이 놀거나 어울리지 못하셨을까요. 내 할아버지는 당신 젊은 날 바깥으로만 너무 돌아다니다가 그만 집에서 식구들과 오순도순 어울리거나 이야기꽃 피우는 즐거움을 못 느끼셨을까요.


.. 아빠는 회사일이 많아서 늦게까지 일을 할 때가 많았고, 엄마는 아는 사람이 하는 작은 잡화점에서 일하시는데 하는 일이 여러 가지라서 하루 종일 밖으로 돌아다닐 때도 있다고 했다. 주먹밥을 데워 먹다가 문득 에리코 누나는 뭘 먹을까, 생각했다. 에리코 누나는 며칠 동안 먹을 걸 구경도 못 한 사람 같아 보였다 … 나를 만나면 언제나 “안녕!” 하시거나 “잘 지내지?” 하시며 말을 건다. 하지만 내가 먼저 할머니한테 인사를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  (16, 18쪽)


  내 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늘 집에서 함께 지냅니다. 아이들과 늘 복닥거리면서 아이들 웃음소리와 목소리를 느끼면 즐겁습니다. 살아가는 보람을 늘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내 할아버지하고는 다르게, 나는 식구들하고 언제나 나란히 움직입니다. 아이들과 언제나 함께 있고 보면, 어버이로서 내가 어떻게 살아갈 때에 아름답거나 즐거운가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어버이 몸가짐이 아이들 몸가짐이 되고, 어버이 말씨가 아이들 말씨가 돼요. 어버이 생각은 고스란히 아이들 생각으로 이어지고, 어버이 사랑 또한 하나하나 아이들 사랑으로 이어갑니다.


  다만, 많이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마실을 다니자면 고단합니다. 아이들은 새 바람을 쐬고 나도 새 바람을 누립니다만, 면내나 읍내나 도시로 마실을 가면, 시골하고는 사뭇 다르게 넘치는 자동차와 시끄러운 가게 때문에 고달픕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나 신나게 뛰놀고 싶지만, 도시에는 자동차가 너무 많을 뿐 아니라, 아이들을 헤아리지 않아요. 자동차는 그저 달리고, 그예 빵빵댑니다. 개구지게 달리는 아이들을 귀엽게 바라보는 어른이 있습니다만, 쉬잖고 달리거나 까부는 아이들을 못마땅해 하는 어른도 있습니다.


  도시라는 곳은 너무 바빠야 할까요. 시골이라 하더라도 읍내나 면내는 바빠야 할까요. 바쁜 나머지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까요. 아이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데는 이웃 어른을 돌아볼 겨를 또한 없지 않나요.


  바쁘게 살아갈 때에는 무엇을 누릴까요. 바쁘게 일할 때에는 무엇을 얻을까요. 바쁘게 몰아칠 때에는 무엇을 생각할까요. 아이들이 학교에 바빠야 하고, 학원에 바빠야 하며, 손전화 기계나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들여다보느라 바빠야 한다면,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어른들이 회사에 바빠야 하고, 술담배에 바빠야 하며, 정치나 사회운동에 바빠야 한다면, 어른들은 무엇을 배우거나 느끼거나 생각할까요.


  너나 없이 바쁜 탓에 자동차를 타고 싱싱 달려야 하는지요. 예나 이제나 바빠야 하는 탓에 걸음 느린 아이들은 안 살펴도 될는지요. 늘 바쁘게 돈을 벌거나 써야 하니까 사랑을 아끼거나 꿈을 보살피는 길하고는 멀어질밖에 없는가요.


.. 할아버지 젊었을 때라니, 상상이 더 안 되었다. 젊었을 때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기지 않았다 … “매번 이렇게 복을 나눠 주니 고맙구나.” 스시마 할머니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복을 나눠 준다고요?” “그래, 옛날에는 그렇게 말했단다.” ..  (35, 47쪽)


  바쁜 사람은 겨울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봄이 온 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여름이 오거나 가을이 와도 모릅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이 꾸준히 자라는 모습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아이들과 말을 섞을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꽃내음을 못 느낍니다. 바쁜 사람은 구름이나 별을 볼 겨를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이웃에 있는 어려운 사람을 돕거나 바라볼 틈이 없습니다. 바쁜 사람은, 내 손길을 따사로이 내밀며 일구는 마을살이를 깨달을 겨를이 없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민주와 평화는 뒤로 밀립니다. 바쁘기 때문에 평등과 자유는 짓밟힙니다. 바쁘기 때문에 숲을 밀어내고 냇물을 시멘트로 덮습니다. 바쁘기 때문에 수출과 수입에 얽매이고, 바쁘기 때문에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를 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버이가 가르치지 않고 교사나 강사한테 맡깁니다. 바쁘기 때문에, 아이들은 삶 아닌 지식을 배우고 살림 아닌 자격증에 끄달립니다.


  우리, 함께 살아가면 좋겠어요. 목숨만 붙은 채 이 지구별에 함께 있는 모습 아니라, 서로 차분히 바라보고 지긋이 손을 맞잡으며 따사로이 이야기꽃 피우는 삶을 일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넷으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아니라, 웃음과 이야기로 하나되는 지구마을 되면 좋겠어요.


  밥 함께 지어 함께 먹고 함께 설거지를 하는 삶을 누려요. 흙 함께 일구고 곡식 함께 거두며 씨앗 함께 나누는 삶을 누려요. 널따란 냇물 돌바닥에 이불 담가 서로서로 발로 꾹꾹 밟으며 빨아요. 여럿이 이불 맞잡고 힘껏 쭉쭉 짜요. 오순도순 모여 노래를 부르고, 아이들과 도란도란 재미나게 놀이를 즐겨요.


.. “참 말귀를 못 알아듣는 양반이네.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요.” (부동산) 할머니는 질렸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당신같이 나이 먹은 노인네한테 방을 빌려 줄 사람이 있겠냐고요?” … 왜 아파트를 헐까. 관리만 잘 하면 아직 한참은 더 쓸 만하다고 했던 할아버지 말씀이 떠올랐다. 정말 계속 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할아버지가 집을 얻으려고 고생 안 해도 되고. 나도 전학 같은 거 안 가도 되는데. 날마다 바둑을 둘 수도 있고, 할아버지가 아프면 내가 간호해 드리고,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소리 따위는 상관 없었다 ..  (63, 93쪽)


  시즈타니 모토코 님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아이세움,2008)을 읽습니다. 오래된 아파트에서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네 식구 이야기를 읽습니다. 이제는 오래된 아파트라 하지만, 처음에는 번듯하게 지은 예쁜 층집이었고, 예쁜 층집은 예쁜 사람이 예쁜 손길로 돌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쁜 손길로 돌보던 예쁜 사람이 숨을 거둔 뒤, 예쁘지 못한 손길로 예쁘지 못한 돈을 바라는 예쁘지 못한 사람이 층집을 예쁘지 못하게 어지럽힙니다. 10층에 이르는 층집이었지만, 사람들이 하나둘 떠납니다. 떠날 새 자리가 마땅하지 않은 사람만 마지막까지 남아 넉 집이 남고, 넉 집 식구들은 저마다 다른 삶을 저마다 다른 사랑으로 보듬으면서 이야기 하나 빚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가 어느새 내 뒤에 서 있었다. “넌 아직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일은 쉽지 않아.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허덕대잖니.” 여느 때와 다르게 낮은 소리가 귀에 울렸다. “그럼 아라키다 할아버지가 진짜 우리 할아버지면요?” “그러면 생각해 보겠지…….”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있는 힘껏 문을 닫았다. 할아버지의 어릴 때 얼굴이 떠올랐다. 꼭 쥔 주먹이 오랫동안 부르르 떨렸다 ..  (129쪽)


  자동차를 얻어 타면 아주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기차를 얻어 타면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달려도 제법 빨리 갈 수 있습니다. 두 다리로 걸으면 퍽 느리게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다리로 걷더라도 마음이 바쁘면, 들판에 흐드러진 꽃을 느끼지 못해요. 두 다리로 걷다가 다리를 쉬려고 멈추었어도 마음이 바쁘면, 둘레에 가득한 꽃내음을 맡지 못해요.


  마음이 너그러울 때에 꽃빛을 느낍니다. 마음이 따스할 때에 꽃내음을 맡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날 때에 꽃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환한 기운 북돋울 수 있습니다.


  서로 바쁘다면, 함께 살아갈 사람이 못 됩니다. 서로 힘들다면, 어깨동무할 이웃이 못 됩니다. 서로 즐거울 때에, 함께 살아갈 사람이 됩니다. 서로 웃을 때에, 어깨동무할 이웃이 됩니다.


  어린이집부터 학교까지, 이런 시설 저런 기관에 넣으려고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졸업장이나 자격증을 따서 돈 잘 벌라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흙 한 줌 만지지 않거나 바람 한 자락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지 않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려는 뜻으로 아이들을 낳습니다. 보살피고 즐겁게 웃고 싶어 아이들을 낳습니다. 서로 좋아하고 서로 손 맞잡을 삶벗이 되고자 아이들을 낳아 함께 살아갑니다. 동화책 《마코토의 푸른 하늘》에 나오는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는 파랗게 눈부신 하늘 올려다볼 겨를 없이 바깥일에 바쁩니다. 아마, 오늘날 웬만한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마코토네 어머니와 아버지랑 엇비슷하게 바깥일에 매달리겠지요. 어머니들도, 아버지들도, 또 아이들도, 하늘 올려다보며 구름과 별을 누릴 틈이 없겠지요.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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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조무래기별들 -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박일환 지음, 박해솔 그림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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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읽기 삶읽기 122

 


서로 곱게 반짝이는 별
―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
 박일환 글,박해솔 그림
 삶창 펴냄,2012..10.26.11000원

 


  한 해가 지나가며 아이들 나이에 한 살을 더합니다. 다섯 살이던 큰아이는 여섯 살이요, 두 살이던 작은아이는 세 살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큰아이는 “사름벼리는 다섯 살이야. 다섯 살만 할래.” 하고 말합니다. 네 살에서 다섯 살이 되었고, 세 살에서 네 살이 되었으나, 아직 다섯에서 여섯으로 넘어갈 마음이 없는 듯합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하렴. 그렇지만 넌 여섯 살 맞거든.


  세 살이 된 작은아이는 제가 두 살이든 세 살이든 그리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직 스스로 말문을 활짝 트지 않기도 했고, 나이가 무엇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고 맛나게 먹으며 코코 잠자면 넉넉한 하루입니다.


.. 그런 나의 생각과 아내의 입장은 또 달랐던가 보다. 내가 앞에 있는 시를 써서 아내에게 보여줬더니 대뜸, “어이구, 두 애를 씻겨 주느라고 내가 얼마나 힘든데 그래.” 하는 말이 돌아왔던 것이다 … 언젠가 아내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다. 하루는 둘째가 말하길, 자신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밤늦게 다니는 줄 알았단다..  (45, 51쪽)

 

 


  아이들한테는 나이도 옷차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저희 어버이가 돈이 얼마나 많거나 적든, 저희 어버이한테 자가용이 있든 말든, 저희 어버이한테 땅이 있든 말든, 그닥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로서는 저희 어버이가 잘생기거나 못생기거나 대수롭지 않아요. 그예 어버이일 뿐입니다.


  함께 먹으니 즐거운 밥입니다. 어느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야 하지 않아요. 밥상에 반찬 한두 가지만 있어도 즐겁고, 국과 밥만 있어도 재미있어요.


  함께 놀기에 즐거운 하루입니다. 어떤 놀잇감이 있어야 하지 않아요. 어떤 놀이공원으로 마실을 가야 하지 않아요. 함께 손 맞잡고 노니까 신납니다. 서로 노래부르고 같이 뛰고 구르니 재미있어요.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놉니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밥을 먹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놀다가 기운이 다하면 스르르 곯아떨어집니다. 아이들은 달게 자고 나면, 다시 기운을 씩씩하게 차려 새삼스레 뛰어놉니다.


  밥을 먹다가 슬그머니 궁둥걸음으로 밥상에서 멀어진 큰아이가 그림책 하나를 들고는 숫자를 읽습니다. “아버지, 사름벼리 여섯 살이야?” 하고 묻습니다. 한손으로는 손가락 다섯을 펼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첫째손가락을 펼칩니다. 어느새 그렇게 숫자를 셀 줄 알았니. 놀랍구나. “그래, 사름벼리는 이제 여섯 살이야. 동생은 세 살이야.” 큰아이는 그림책 숫자판을 돌리더니 “이거야? 이거야?” 하고 묻습니다. 숫자 셋을 잘 찍습니다. 용하네. 너희 어머니나 아버지는 너한테 숫자를 찬찬히 가르친 적은 없는데. 그저 지나가는 투로 가끔 숫자를 읽어 주기만 했는걸.


  아침에는 다섯 살 나이를 안 받아들이던 큰아이가 낮이 되어 여섯 살 나이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너, 저녁에 일곱 살이라 하면 일곱 살 나이도 받아들이겠니?


.. 도시의 아파트 생활이란 게 단조롭고 삭막하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먹고사는 직장에 매이다 보면 생활의 편리함 때문에 아파트를 벗어나기 힘들다.  자연 속에 아이를 놓아 기르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쉽사리 실행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초상 속에 나 역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메리벨을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일곤 했다 ..  (81쪽)

 


  아이들은 놀면서 자랍니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습니다. 나도 우리 아이들처럼 어린 나날 씩씩하게 뛰놀면서 자랐습니다. 나 또한 나이를 먹으며 자라지는 않았어요. 날마다 개구지게 뛰고 구르고 달리고 하면서 자랐습니다.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합니다. 부딪히기도 하고 다치기도 합니다. 씩씩하게 다시 일어섭니다. 튼튼하게 먹고 자고 입고 놉니다. 기운차게 놉니다. 온힘 바쳐서 놉니다.


  잘 논 아이는 밥을 잘 먹습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밥을 잘 못 먹습니다. 잘 논 아이는 노래를 즐겁게 부릅니다. 잘 놀지 못한 아이는 노래부를 마음이 샘솟지 않습니다.


  나는 국민학교에 들 때까지 한글이나 숫자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리송한데, 미리 알았다 한들 더 똑똑해질 일 없고, 늦게 익힌들 덜 똑똑해질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놀면서 ‘한글 안다고 도움될’ 일 없어요. 동무들끼리 글놀이를 할 일이란 없어요. 흙바닥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놉니다. 빈터나 찻길이나 주차장이나 풀숲에서 술래잡기를 합니다. 꼬리물기놀이를 하고 달리기를 하면서 놉니다. 그저 맨땅을 땀 송송 돋도록 달릴 뿐이지만, 달리기도 즐거운 놀이 가운데 하나예요.


  이른바 트랙이라 하는 운동장을 달려야 하지 않아요. 학교 운동장에서도 달리지만, 골목에서도 달립니다. 마당에서도 달리고, 방에서도 달리며, 마루에서도 달립니다. 학교 골마루에서도 달리고, 교실에서도 달립니다. 그러고 보면, 내 어린 나날은 늘 달리는 하루였어요. 학교 교사나 둘레 어른은 ‘교실에서 뛰면 못 써!’ 하고 윽박지른다든지, ‘그렇게 달리다가 넘어질라!’ 하고 걱정할 뿐이지만, 우리들은 쉬잖고 달립니다. 마치, 달리지 않으면 아이가 아니기라도 한 듯, 달리며 땀 송송 솟지 않으면 아이가 될 수 없기라도 하는 듯.


.. 지금도 아침마다 아내의 손을 잡고 나란히 밭둑길을 걸어서 출근하던 일과 그때마다 북녘땅에서 틀어놓은 대남 방송이 웅웅대며 들려오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 바쁘게 몰아치는 근대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건, 그러한 체제의 톱니바퀴에서 벗어나 잠시 마주하는 자연의 풍경 같은 게 아닐까 싶다 ..  (95, 118쪽)

 


  밤하늘 올려다보면 시골마을에서는 뭇별 반짝반짝 빛납니다. 도시에서는 짙게 낀 먼지구름이랑 숱한 불빛 때문에 별을 보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밤에는 별이 뜨지요. 밤에는 별빛이 환하지요. 어느 별은 더 크게 반짝이고, 어느 별은 좀 작게 반짝입니다.


  그런데, 지구별에서 바라보니까 어느 별이 더 크거나 작게 보이지, 막상 그 별에 가고 보면 참말 클 수 있어요. 지구별이랑 가까운 달이니 크게 보이지,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크지만 지구별이랑 멀리 떨어졌기에 아주 작게 보이는 별이 많아요.


  모두 빛나는 별이에요. 크든 작든 모두 환한 별이에요.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지구와 가깝든 멀든 모두 사랑스러운 별이에요.


  박일환·박해솔 두 사람이 빚은 이야기책 《아빠와 조무래기 별들》(삶창,2011)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아버지 박일환도 아이 박해솔도 환하게 빛나는 별이에요.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빛나는 별이요, 딸아이는 딸아이대로 빛나는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고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따사로운 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착한 별이에요.


.. 아내와 함께 맞벌이를 하다 보니 오후에 애들을 보살펴 줄 수가 없었다. 유치원 시절에는 종일반이 있으니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다가오면서 어찌해야 좋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 보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초등학교 1학년짜리를 학원으로 내몰아야 했다. 그나마 학원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걸까 … 나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남편이었음을 고백한다. 밥 달라고 보채지는 않았지만 내가 스스로 밥을 지어서 상을 차려 준 적이 없고, 임신한 아내가 맛있어 할 만한 걸 미리 알아서 사다 준 기억도 별반 없다 ..  (105, 137쪽)


  지구별 어버이들 누구나 당신 아이들과 더 오래 더 가까이 더 살가이 지낼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을 보육시설이나 학교에만 맡기지 말고, 아이들이랑 손 맞잡고 하루를 더 즐거이 뛰놀 수 있기를 빕니다.


  아이들하고 놀이공원 안 가도 돼요. 아이들하고 집에서 힘차게 뛰놀면 돼요. 아이들을 자가용이나 시외버스 태우고 어디로 마실을 다니지 않아도 돼요. 아이들과 가까운 숲으로 찾아가 숲바람 쐬고 숲햇살 누리면 돼요. 나도 너는 저마다 맑게 빛나는 별이니, 저마다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별빛을 느끼면서 즐거이 마주하면 돼요.


  생각해 봐요. 두 어버이가 맞벌이를 해서 돈을 번 다음 어디에 어떻게 쓸 생각인가요. 맞벌이를 해서 돈을 더 번 다음, 아이들 맡길 보육시설이나 학교나 학원을 찾아야 하나요. 맞벌이를 안 하고 돈벌이를 줄이면서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한결 알콩달콩 누리는 삶일 때에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 되지 않을까요.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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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 건강한 성과 행복한 사랑 이야기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8
노을이 지음, 스튜디오 돌 그림 / 철수와영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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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과 함께 살기 101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
―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
 노을이 글,돌 스튜디오 그림
 철수와영희 펴냄,2012.12.14/12000원

 


  두 아이 아버지로 살아가면서도 생각하지만, 나 스스로 한 사람 목숨 받아 찬찬히 살아오는 동안 ‘성교육’은 굳이 없어도 된다고 느낍니다. 우리 아이들한테 베풀 가르침이라면, 또 나 스스로 배울 가르침이라 한다면, 꼭 하나 ‘사랑교육’이면 넉넉하지 싶어요. 성관계·성문제·성평등 같은 대목은 굳이 이야기할 까닭이 없으리라 느껴요. ‘사랑하며 어깨동무할 삶’을 이야기하면 모든 실타래가 솔솔 풀릴 수 있으리라 느껴요.


.. 많은 기업과 방송 매체들이 성으로 돈을 벌기 위해 쾌락을 소비하도록 부추기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만들어 내요. 그런데 이들이 부르짖는 성의 자유 이면에는 성 소비를 위한 도구가 되어 자신의 성을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성매매 여성들이나 포르노 배우들이죠. 이들은 대부분 성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서 그렇게 살아요. 그리고 비인격적인 대접을 받고 소외당하죠 … 대중매체들은 ‘원하는 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는 핑계로 자극적이고 왜곡된 성 문화가 담긴 정보를 만들어 내고, 파괴적인 연애관을 담은 작품들을 쏟아 냅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네가 선택할 자유가 있다’라고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매체가 주는 자극에 익숙해지고 그 메시지를 믿도록 해요 ..  (16, 19쪽)


  내 어린 날과 내 푸른 날을 돌이켜보면, 나는 성교육도 받은 적 없지만, 사랑교육 또한 받은 적 없어요. 학교에서는 중학교 2학년인가 3학년쯤에서야 비로소 성교육이랍시고 비디오 한 번 보여주고 끝이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성교육조차 없었어요. 고등학교에서는 오직 대학입시 교육만, 아니 대학입시를 바라보는 문제풀이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 동안 사랑을 배운 적이 한 차례도 없어요. 교사도 어버이도 사랑을 이야기하거나 다루거나 밝히지 않았어요. 교과서에서는 사랑을 들려주지 않고, 여느 책에서도 사랑을 말하지 않아요. 인문책은 인문사회과학 지식에만 파묻힌 채, 사람이 누릴 사랑을 깨우치도록 이끌지 않아요.


  사랑이 없는 삶이란, 슬프며 어둡고 퀴퀴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란, 차갑고 매몰차며 어리석습니다. 사랑이 없는 나라란, 경제성장율이나 전쟁무기나 물질문명으로 치닫습니다.


  사랑 없는 채 돈만 밝히는 사람이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가요. 사랑 없는 채 전문가라 우쭐거리는 사람은 얼마나 건방지고 무시무시한가요. 사랑 없는 채 지식을 앞세우는 사람은 얼마나 번드르르하면서 속은 텅 비는가요.


  꽃 한 송이도 사랑으로 핍니다. 풀 한 포기도 사랑으로 푸릅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으로 우람합니다.


  힘이 없으면 힘이 있는 놈한테 잡아먹힌다고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엉터리입니다. 사랑은 없이 오직 껍데기로만 살겠다는 뜻인데, 사랑이 없으면서 어떤 삶을 누리겠어요. 사랑은 없으면서 힘으로만 누르겠다면, 차츰 늙어 힘이 빠지면 당신 또한 다른 힘센 놈한테 잡아먹혀야 한다는 소리일밖에 없어요. 힘을 앞세우거나 돈을 앞세우거나 이름을 앞세우는 짓은, 나 스스로 갉아먹는 바보놀음이에요.


.. 야동의 힘은 대단해요. ‘보기만 하는 건데 뭐 어떄?’라고 십게 생각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의 머리는 분명히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야동에서 강간을 하면 강간을 해도 되는 것 같고, 야동에서 여성이 성관계를 좋아하면 모든 여성은 성관계를 좋아하는 것 같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 보기에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것 같은 배우들은 사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는 우리의 이웃이에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이죠. 야동은 결코 진실을 보여주지 않아요. 연출된 환상에 불과합니다 … 야동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진짜 성관계가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요. 여러분 부모님은 야동에서처럼 성관계를 해서 여러분을 낳은 게 아니에요. 여러분의 엄마 아빠가 나눈 성관계는 쾌락과 욕구 충족만을 위해 나눈 관계가 아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따듯하고 부드럽게 공유한 관계예요 ..  (63, 76, 84쪽)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손길이 좋은 아이들입니다. 짓궂게 더듬는 손길은 어느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따뜻하게 얼싸안는 품이 반가운 아이들입니다. 거칠게 다루는 품은 어느 누구라도 달갑지 않아요.


  따사로운 손길로 씨앗을 건사해서 흙을 살찌웁니다. 기름진 흙은 씨앗을 곱게 보듬어 튼튼히 뿌리를 내리도록 돕습니다. 밝은 햇볕은 여린 새싹이 싱그러운 풀포기로 자라도록 이끕니다. 맑은 바람은 풀줄기에 싯푸른 빛이 감돌도록 거듭니다. 시원한 빗물은 풀잎에 드리우며 고운 숨결 피워냅니다.


  사람도 짐승도 새도 풀을 먹습니다. 풀은 사람과 짐승과 새한테 먹이를 내어주며 스스로 한결 푸르게 빛납니다. 풀은 잎사귀를 내주어도 다시 새 잎사귀가 돋습니다. 풀은 뿌리째 내주어도 다시 새 뿌리를 내어 자랍니다.


  풀은 꽃도 잎도 열매도 씨앗도 모두 내줍니다. 그러고도 넉넉히 우거져서 풀숲을 이루고 나무숲을 이뤄요. 사람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무엇을 만드는데, 이렇게 나무를 쓰고 또 써도 숲은 그예 우거집니다. 왜냐하면, 풀과 나무는 사람들하고 사랑을 주고받거든요. 사람들한테서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받으며 저희 몸통을 모두 내줍니다. 사람들은 풀과 나무를 고맙게 받아 쓰면서, 이녁이 늘 찬찬히 일구며 북돋운 착하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마음을 사랑스레 건넵니다.


  어느 과학자는 따로 실험을 해서 ‘풀도 나무도 클래식 노래를 들으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밝혀요.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고운 말로 얘기하면 더 싱그럽고 튼튼하게 자라지만, 풀도 나무도 사람들이 거친 말을 마구 일삼으면 제대로 못 자라거나 시든다’고 밝혀요.


  굳이 과학을 빌지 않아도 어린이도 아는 일이에요. 어린이들은 ‘과학이라는 낱말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살살 예쁘게 풀잎 어루만질 때에 더 푸르게 빛나는 줄 몸으로 알아요. 어린이들은 ‘과학실험을 몰라’도, 이녁 스스로 가만가만 곱게 나무줄기 얼싸안을 때에 더 튼튼히 자라는 줄 마음으로 알아요.


.. 사랑은 정직하게 나의 마음을 보여주고, 또 상대의 진실한 마음도 수용할 줄 아는 가장 친밀하고 소중한 만남, 바로 ‘관계’예요 ’ 남성에게 스킨십이 중요하다면 여성에게는 정서적 관계가 중요해요. 여성은 임신과 양육을 하도록 성장하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훨씬 신중해요. 이 사람이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없는 채로는 섹스를 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 있죠.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따지지 못해도 소녀들의 마음에는 이런 본능적인 경계선이 있어서 훨씬 고민도 많고 조심스러운 거예요.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스킨십을 거부하는 게 아니랍니다. 지금도 계속 사귀고 있는 이유는 도리어 많이 좋아하고 관계를 잘 만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 연애를 하는 데 진도가 왜 중요한가요 … 상대방은 원하지 않는데 내가 원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 남자 친구는 지금 날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걸 해 보고 싶은 거죠 ..  (86, 104, 105, 114쪽)


  사랑하며 살아갈 나와 너입니다. 사랑을 배우고 가르칠 나와 너입니다.


  다만, 학문으로 가르칠 사랑이 아닙니다. 삶으로 가르칠 사랑입니다. 삶으로 가르쳐, 삶으로 배울 사랑이에요.


  밥짓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밥을 차려서 함께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빈 밥그릇을 치우며 설거지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짓거나 깁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입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옷을 빨고 널고 개고 건사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짓고 손질하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집을 돌보며 즐거운 보금자리 되도록 꾸리는 사랑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이리하여, 나를 사랑할 짝꿍을 찾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내가 사랑할 짝꿍을 만나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가르치고 배웁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기에 즐거이 가르치며 기쁘게 배웁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 때문에 가르치지 않아요. 졸업장으로 일자리를 얻어야 하니까 배우지 않아요. 자격증으로 뭔가 자랑하려고 가르치지 않아요.


.. 자신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연애를 할 때도 그 가치를 지키세요 … 상대를 배려하며 자신도 잘 가꾸는 사랑의 실력을 키워 가세요. 그러다 이별을 경험한다 해도 괜찮아요. 헤어진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어요. 우린 성장하는 중이니까요 … 두 사람을 위해서 지금 당장 피임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임신이라는 엄청난 문제가 닥쳤을 때 정말 책임질 것 같나요? 이 순간의 분위기와 흥분된 감정은 성행위가 끝나면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  (117, 121, 135쪽)


  도덕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도덕은 삶으로 받아들여 누리는 하루입니다. 철학은 따로 가르치지 못합니다. 철학은 하루하루 알차게 누리는 삶입니다. 그러면, 사랑도 못 가르친다고 하겠지요. 맞는 말이에요. 사랑도, 하나하나 따지면, 누가 누구한테 가르치지 못해요. 그러나, 사랑을 가르치고 배운다 할 때에는, 스스로 사랑스럽게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사랑스레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집을 돌봅니다. 사랑스레 말을 하고 꿈을 꾸며 일을 합니다.


  사랑스레 놀이를 즐깁니다. 사랑스레 심부름을 합니다. 사랑스레 글을 씁니다. 사랑스레 사진을 찍고, 밭에서 김을 매며, 등짐을 져 나릅니다.


  성교육 아닌 사랑교육을 해야 한다는 말은, 어떤 지식이나 정보로 ‘사랑은 바로 이렇지! 이걸 알라구!’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사랑으로 누리는 삶은 어떠한가를 몸소 빛내면서 즐길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랑교육입니다. 이를테면, 볕 잘 드는 숲속 풀밭에 앉아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해요. 밭뙈기에 씨앗 한 알 심고는 흙을 잘 도닥여 봐요. 아이를 품에 안고 가장 고운 목소리를 뽑아 노래를 불러요. 들길을 함께 걸어요. 바람을 함께 들이켜요. 신을 벗고 흙땅을 맨발로 달려요. 냇물을 손바닥으로 떠서 마셔요. 풀밭에 앉았으면 풀내음을 맡고, 멧새와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가만히 들어요. 풀벌레 속삭이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요.


.. 임신하면 원치 않아도 아기가 삶의 중심이 된답니다. 내가 주인이 되어 살던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 취미 생활, 미래에 대한 꿈도 송두리째 바뀌죠. 나만큼이나 중요한 또 한 사람(아기)이 내 인생에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 서로가 사랑하기로 했다면, 그 관계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세요 … 돈 때문에 자신을 팔아서는 안 돼요. 그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버리고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까지 상처 입히는 일이 돼요 … 아시다시피, 부모님께서 건강한 성 인식을 갖지 못하면 아이에게도 건강한 성을 가르쳐 주기 어렵습니다 ..  (138, 144, 152, 211쪽)


  ‘노을이’ 님이 쓴 《10대와 통하는 성과 사랑》(철수와영희,2012)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참말, 어린이와 푸름이한테 이러한 ‘사랑책’을 읽히면서, 우리 어른과 어버이도 이 같은 사랑책을 슬기롭게 읽을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껴요. 사랑이 샘솟는 자리를 헤아리고, 사랑이 흐드러지는 길을 살피며, 사랑이 빛나는 꿈을 돌아볼 때에, 사람들은 저마다 활짝 웃을 수 있으리라 느껴요.


  대학교에 붙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을 하며 살아갈 아이들입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일하고 사랑스레 살림을 꾸릴 아이들입니다. 유명인사가 되거나 이름을 드날릴 아이들이 아닙니다. 사랑스레 웃고 사랑스레 노래할 아이들입니다.


  내가 나를 아끼고, 네가 너를 아끼면서, 서로가 서로를 아낍니다. 내가 나를 슬기롭게 보살피고, 네가 너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서로가 서로를 슬기로이 보살피며 어깨동무합니다.


  별빛이 곱게 흐릅니다. 햇빛이 온누리를 골고루 비춥니다. 바닷바람은 들바람이 되고, 들바람은 숲바람이 됩니다. 냇물은 빗물이 되고, 빗물은 다시 냇물이 됩니다. 구름은 무지개가 되고, 무지개는 어느새 안개가 되며, 안개는 새삼스레 아지랭이가 됩니다. 달팽이가 풀잎을 먹습니다. 풀잎에 풀벌레 알이 붙습니다. 풀꽃에 나비가 앉습니다. 애벌레가 풀잎을 먹습니다. 사람이 풀을 뜯습니다. 사람들 옷에 풀씨가 붙습니다. 바람이 휭 불더니 풀잎노래 흐드드 퍼뜨리며 지나갑니다. 고래는 깊은 바다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달빛이 흘러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참새는 도시에서도 고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지렁이는 똥을 고운 거름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잠자리가 날고, 제비가 집을 짓습니다. 개구리가 논에 알을 낳고, 가재가 도랑에서 새끼를 칩니다. 도룡뇽이 지나가고, 다람쥐가 나무열매를 갉습니다.


  저마다 삶을 빚어 이야기를 빚습니다. 모두들 삶을 일구며 사랑을 일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너무 오래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을 학원에 자꾸 가두지 마셔요. 아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지낼 수 있도록 자리를 넓혀 주셔요. 아이들이 스스로 사랑하는 넋으로 지낼 수 있게끔 숨통을 터 주셔요. 다 다른 아이들한테 모두 똑같은 옷을 입히지 마셔요. 다 다른 아이들이 마을마다 집마다 저마다 고운 사랑으로 거듭나는 길을 맑은 눈빛으로 지켜보아 주셔요.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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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달샘 이야기 한겨레 낮은학년동화 1
이현주 지음, 이태수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0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26

 


너랑 서로 무엇을 누리면 즐거울까
― 옹달샘 이야기
 이현주 글,이태수 그림,
 한겨레아이들 펴냄,2001.11.7./7000원

 


  내 어릴 적 우리 집에 냉장고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헤아려 봅니다. 내 어버이가 형이랑 나를 낳으면서 냉장고를 집에 들이셨을까요. 두 분이 사실 적에는 냉장고가 있었을까요. 셋방살이를 할 적에는 냉장고 없었을 테고, 내 어버이가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지내던 예전에는 냉장고라는 기계가 있을 턱 없었겠지요.


  이제 어느 집에나 냉장고가 있어요. 냉장고 없는 살림은 생각할 수 없는 오늘날이라 할 만해요. 그런데 나는 ‘우리한테 냉장고 없던 때’ 모습을 자꾸자꾸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집집마다 따로 전기를 쓰지 않고 살던 때 모습을 곰곰이 돌이켜봅니다. 집에서 꼭지를 돌려 물을 쓰지 않던 때 살림살이를 가만히 떠올립니다.


  냉장고 없어도 누구나 밥을 잘 지어 먹고 살았어요. 냉장고 없어도 누구나 먹을거리를 잘 건사해서 살았어요. 전기 없대서 더 힘들거나 어렵게 살지 않았어요. 기름보일러나 가스보일러나 순간온수기 없대서 더 고되거나 빠듯하게 살지 않았어요.


  그런데 냉장고 있고, 물꼭지 있고, 보일러 있고, 자가용 있고, 전기 있고, 또 무엇무엇 끝없이 있고 또 있고 또 있는데, 오늘날 사람들이 활짝 웃거나 까르르 웃음노래 나누면서 살아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이것저것 잔뜩 누리지만, 막상 오늘날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꽃이나 웃음빛을 찾기는 매우 힘들어요.


.. 여름에는 얼음보다도 차게, 겨울에는 숭늉처럼 더운 김을 모락모락 내며, 옹달샘은 솟구쳐 흘러내리다가 다시 땅 속으로 스며들었지 ..  (8쪽)


  시골에서 시골 어린이하고 눈이 마주치면, 시골 어린이는 으레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합니다. 나도 아이들한테 “안녕하셔요.”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마을 아이들 인사를 받다가, 나도 인천에서 자라며 ‘낯 모르는 어른’이라 하더라도 눈이 마주치면 꾸뻑 인사를 했다고 떠올립니다. 요즈음 서울이나 도시는 어떠한지 모르겠는데, 도시에서는 ‘낯 모르는 어른’하고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홱 돌린다든지 그저 멀거니 쳐다본다든지, 아니면 어딘가 나쁜 사람은 아닌가 하고 여기지 않겠느냐 싶어요. 도시에서는 낯선 어른하고 말을 섞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지난날에는 우리가 어떤 삶을 누렸을까 곱씹어 봅니다. 참말 언제부터 ‘낯선 사람’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궁금합니다. 지난날에는 ‘낯선 사람’이라는 이름에 앞서, ‘길손’이나 ‘나그네’ 같은 이름을 붙였으리라 싶은데, 이제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북적거리면서, 서로서로 낯선 사람이 되어 서로서로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삶이 되어요. 스스로 내 옆사람한테 낯선 사람이 되고, 스스로 이웃집을 낯선 사람으로 여기며, 스스로 마을에서 낯선 사람으로 지내요.


  낯설다 해서 무뚝뚝하게 지낼 까닭은 없지만, 낯설다는 생각으로 울타리를 차츰차츰 높게 세우는구나 싶습니다. 낯선 사람 앞이니 굳이 웃을 일이 없어요. 장사를 해야 한다면 억지로 웃습니다. 장사할 일이 아니면 눈길이건 손길이건 마주할 까닭이 없습니다. 물건을 팔려는 뜻으로 겉치레 같은 상냥한 말씨가 됩니다. 마음을 나누어 이야기꽃을 피우거나, 생각을 나누어 어여쁜 삶을 함께 일구지는 않아요.


.. 숲 속에 소문이 퍼졌어. 누구든지 옹달샘에 가면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다는 소문이었지 ..  (18쪽)


  이현주 님 글과 이태수 님 그림이 어우러진 《옹달샘 이야기》(한겨레아이들,2001)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예부터 샘물을 마셨습니다. 냇물이나 우물물을 마셨습니다. 빗물을 마시고 골짝물을 마셨습니다. 이제 한겨레는 두멧자락 시골마을에서조차 샘물 마실 일이 아주 드뭅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시골마을에까지 땅을 파고 물관 묻어 수도물을 넣으려고 해요. 댐을 더 지으려고 해요. 댐을 더 지으려고 시골마을을 더 없애고, 숲을 더 없애요. 사람들 스스로 숲에 깃들어 ‘숲물’ 마시던 삶이 사라져요. 도시를 떠나 시골숲에 깃들며 숲물을 마시려는 사람들한테까지 억지로 수도물을 먹이려 하는 문명이에요. 이래서야 어디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어요. “누구든지 옹달샘에 가면 하느님을 만나볼 수 있다(19쪽)”고 하는데, 이 땅 곳곳에 자그맣게 있던 수많은 옹달샘이 말라서 사라지고, 삽질로 사라지거든요.


  지난날에는 거울이 없어도 시냇물에 가만히 고개를 디밀어 맑게 비치는 내 모습을 보았다고 했어요. 이제 오늘날 살림집에는 집집마다 거울이 있어 겉모양 뽐내거나 꾸미기에 바빠요. 서로가 서로를 맑게 비쳐 보여주는 시냇물이 되지 못해요.


.. “백합아, 난 너처럼 향기롭고 아름다운 꽃이 내 곁에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  (24쪽)


  나와 네가 서로 무엇을 누리면 즐거울까요. 우리는 서로 어떤 꿈으로 하루를 빚을 때에 즐거울까요. 사랑은 어디에서 샘솟을까요.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 어느 아이가 붙는 일이 즐거움일까요. 무슨 고시에 붙는 일이 즐거움일까요. 회사에서 신분이나 계급이 올라가면 즐거움일까요. 어떤 상을 받아야 즐거움일까요. 어떤 운동경기 대회에서 등수에 들어야 즐거움일까요.


  나를 오늘까지 이끈 즐거움은 무엇일까 하고 되새겨 봅니다. 어머니가 차려 주는 밥 한 그릇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불 덮고 따숩게 자던 저녁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며 어머니가 이불자락 여미는 손길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추운 겨울 유리창에 낀 성에를 바라보며 어쩜 넌 날마다 다른 모양으로 빛나니, 하고 말을 걸며 즐거웠습니다. 빗소리를 듣고 빗방울에 온몸이 젖으면서 동무들과 신나게 뛰놀던 나날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손발 꽁꽁 얼어붙지만 눈밭에서 뒹굴며 눈놀이 할 적에 즐거웠습니다. 어머니 심부름을 하며 즐거웠습니다. 온갖 구름이 즐거움이었습니다. 무지개를 본 날, 헐레벌떡 동무한테 찾아가 저기 무지개 보라고 소리지르며 즐거웠습니다. 동네 할머니 짐을 들어 댁까지 갈 적에 즐거웠습니다. 나무를 타면서 나뭇잎이 볼을 스칠 때 즐거웠습니다.

  나는 내 어버이한테 돈이 얼마나 있는지 몰랐고, 돈도 잘 몰랐어요. 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나는 신문도 방송도 책조차도 몰랐어요. 나는 연예인도 가수도 뭐도 몰랐어요.

  우리 아이도 나하고 같겠지요. 우리 아이도 스스로 즐거울 삶을 찾을 뿐, 스스로 즐거울 놀이를 할 뿐, 스스로 즐거울 밥을 먹을 뿐, 달리 어떤 겉치레나 겉껍데기가 있을 턱이 없겠지요.


.. “맞았어, 아름다운 것은 뻐꾸기도 상수리나무도 할미꽃도 옹달샘도 아니야. 우리 모두가 나누어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름다운 거지. 살아 있다는 건 서로 나눈다는 거야. 너희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살아 있지 않느냐?” ..  (56∼57쪽)


  조그마한 과자 한 점이든 떡 한 점이든, 곁에 있는 누군가와 나누어 먹으면 한결 맛나고 배부릅니다. 옆사람은 모르는 척 혼자 먹을 적에는 참말 맛없고 배 안 불러요. 그렇잖아요. 우리는 영양소를 먹지 않아요. 목숨을 먹어요. 마음이 깃든 목숨을 먹어요. 풀을 먹든 고기를 먹든, 모두 목숨이에요. 풀은 풀목숨이고, 고기는 고기목숨이에요.


  언제나 목숨이 내 몸으로 들어와요. 물을 마시거나 바람을 마실 적에도 그냥 물이나 바람이 아니라, 물이라 하는 목숨이요 바람이라 하는 목숨이에요.


  서울에서는 서울바람을 마셔요. 시골에서는 시골바람을 마셔요. 공장 곁에서는 공장바람을 마셔요. 숲에서는 숲바람을 마셔요. 자동차 지나가는 자동차바람을 마셔요. 바다에서는 바닷바람을 마셔요.


  그래서, 아이들은 늘 목숨을 먹어요. 어버이가 차리는 밥에 깃든 목숨도 먹고, 어버이가 일구는 보금자리 있는 마을을 흐르는 바람도 먹으며, 어버이가 늘 들려주는 이야기가 서린 말빛도 먹어요. 즐거움은 바로 여기에 있겠지요. 밥에, 집에, 말에. 바람에, 숨에, 물에.


  집 바깥은 찬바람이 흐르지만, 집 안쪽에는 따순바람 감돌아요. 보일러를 돌리기 때문일까요? 아니에요. 보일러보다 나와 옆지기와 아이들 있어, 서로가 서로를 따사로이 보듬는 마음이 얼크러지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어버이가 살포시 쓰다듬거나 품는 손길이 좋아 새근새근 잠듭니다. 어버이는 아이들을 살포시 쓰다듬거나 품으며 내 손이 스스로 좋아 달콤하게 잠듭니다. 4345.12.25.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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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 집 길담서원 청소년인문학교실 4
고제순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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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운 숨결 사랑하는 집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7] 길담서원 청소년 인문학교실 4,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철수와영희,2012)

 


- 책이름 :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
- 글 : 고제순·서윤영·노은주·이재성·조광제·손낙구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12.10.)
- 책값 : 13000원

 


  언제나 한밤에 이듬날 아침에 먹을 밥을 헤아립니다. 이른새벽이 되면 아침에 끓일 국을 생각합니다.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집에서 먹는 밥을 마련합니다. 아침 낮 저녁 세 끼니를 먹든, 아침 저녁 두 끼니를 먹든, 때로는 낮에 한 끼니를 먹든, 내 몸을 살리는 밥을 돌아봅니다.


  밥을 먹어 몸 움직일 기운을 얻습니다. 몸뚱이는 밥을 먹으며 새롭게 기운을 내어 하루를 누립니다. 그러면 마음은? 마음도 밥을 먹어야 기운을 얻을까요. 마음은 밥을 먹지 않아도 한결같이 기운이 넘칠까요. 마음은 몸이 지칠 때에 나란히 지치고, 마음은 몸이 씩씩할 때에 나란히 씩씩할까요.


.. 고등학교 때 저는 제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입시 위주의 공부만 했죠.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대학에 가야 하지?’ 학교에서는 밤늦도록 우리를 잡아 놓고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 막상 대학에서 수업을 받으면서 크게 실망했어요. 대학이 제가 그리던 이상적인 상아탑이랄까, 그런 곳이 아니었던 거예요. 학교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갈등과 방황이 깊었죠. 그러면서 얻은 결론이 뭐냐 하면, 공부라는 것은 교수나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있지만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게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18∼19쪽/고제순)


  누가 가르치거나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몸과 마음이 서로 어떻게 얽히는가를 살펴봅니다. 교과서 같은 데에는 이런 이야기가 안 나오고, 중학교에서 도덕 배우거나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배우더라도 이런 이야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밭에서는 몸과 마음이 얽히고 맺으며 꾸리는 삶을 곱씹습니다.


  여러 끼니를 굶거나 여러 날 굶어 봅니다. 이때에 마음이 배고픔을 느끼거나 힘들다고 느끼거나 지친다고 느낄까요. 무언가 먹지 않을 적에 마음이 괴롭거나 슬프거나 어딘가 막힌다고 느낄까요.


  배불리 먹으면 마음이 느긋할까요. 넉넉히 먹으면 마음이 한갓질까요. 따순 밥을 먹으면 마음도 따사롭게 거듭날까요.


  밥은 틀림없이 몸을 살찌웁니다. 밥은 참말 몸이 새롭게 움직일 기운을 북돋웁니다. 그러나, 끼니에 맞추어 무언가 먹어야 비로소 ‘살아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스스로 어떤 마음이 되느냐에 따라 내가 먹는 밥이 달라진다고 느껴요. 스스로 기쁜 마음일 때에는 어떤 밥을 먹든 기쁜 기운이 스며들고, 스스로 서운하거나 힘들거나 지친 마음일 때에는 어떤 밥을 먹더라도 서운하거나 힘들거나 지친 기운이 찾아드는구나 싶어요.


  밥과 함께 떠올리는 옷이랑 집도 이와 같아요. 대단한 옷을 입거나 놀라운 집에서 살아야 하지 않아요. 마음을 홀가분하게 건사하면서 즐겁고 맑게 누릴 수 있는 옷을 입으며 집을 얻어야 해요. 값진 옷이나 집은 덧없어요. 예쁜 옷이나 집은 부질없어요. 사랑스러운 옷이나 집일 때에 사랑스럽습니다. 즐거운 이야기 꽃피우도록 마음을 보드라이 어루만지는 옷이나 집일 때에 즐겁습니다.


.. 지금 우리가 사는 집들은 대부분 규격화된 건물입니다. 옷으로 치면 기성복 같은 거죠. 예전엔 달랐습니다. 내 몸에 맞는 옷을 지어서 입었죠. 한복도 그렇고 양복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옷 가게에 가서 얼추 비슷한 치수에 맞춰 입잖아요. 그러다 보면 정확히 내 몸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 몸이 다 다르잖아요 ..  (86쪽/노은주)


  오늘날 학교에서는 밥도 집도 옷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이나 보육원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사 구실을 하는 어른들은 학생 노릇을 하는 아이들한테 밥이며 집이며 옷을 가르치지 못해요. 고운 숨결 사랑하는 밥과 집과 옷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쩌면 너무 쉬운 얘기일 텐데, 교사들은 사범대학이나 교육대학교에서 ‘교과서 지식 잘 가르치는 길’만 익힐 뿐, ‘아이들이 삶을 바라보고 누리며 사랑하는 길’은 익히지 않아요. 교육학과 수업에서는 아이들 삶을 헤아리지 않아요. 언제나 ‘교과서 지식 잘 가르치는 길’만 다뤄요. 교사자격증이란 ‘교과서 지식 잘 가르치는 길’을 알뜰히 해내는 사람한테 주지, 아이들 삶을 헤아리는 어른한테는 주지 않아요.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며 시험공부만 할 수 있다고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에 오래오래 붙들리면서, 정작 밥이랑 집이랑 옷하고는 동떨어진다고 할까요. 게다가, 오늘날 학교는 초·중·고등학교 모두 급식을 해요. 대학생이 되는 아이들 가운데 도시락을 손수 싸서 먹는 아이는 아주 드물어요. 고등학생 때까지는 학교와 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얻어먹기만 하고, 대학생 때부터는 학교 안팎에서 돈을 주고 사다 먹기만 해요.


  밥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생각할 겨를이나 구석 하나 없는 오늘날 아이들이에요. 아이들한테 밥삶과 밥틀과 밥바탕과 밥결을 보여주거나 가르치거나 나누지 못하는 어른들이에요. 이리하여, 집 이야기랑 옷 이야기도 옳게 보여주지 못해요. 옳게 보여주지 못하니 옳게 가르칠 수 없겠지요. 옳게 가르치지 못하는데 옳게 나눌 수 없어요.


.. 당시 지붕의 재료로 쓰인 슬레이트가 1급 발암물질인 석면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아시는지요? 그래서 요즘 지자체에서는 슬레이트 지붕을 철거하고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은 지붕을 바꾸고 마을길을 넓히면서 우리 삶의 흔적을 지웠을 뿐 아니라, 신화라든지 설화, 전래 민요, 민담 등 예부터 입으로 전해 오던 전통적인 구비 문화, 즉 상상력이 풍부해지는 우리 문화의 근거를 지웠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신 개조 운동이기도 했어요 ..  (138쪽/이재성)


  모든 밥은 흙에서 얻습니다. 모든 흙은 햇살과 바람과 물이 살찌웁니다. 햇살과 바람과 물은 사람 스스로 사랑하고 아끼면서 빛납니다. 곧, 햇살과 바람과 물은 흙을 살리고, 흙은 사람을 살리며, 사람은 햇살과 바람과 물을 살려요.


  사람 스스로 슬기로울 때에는 햇살과 바람과 물을 살립니다. 사람 스스로 어리석을 때에는 햇살과 바람과 물을 죽여요.


  잘 살펴보셔요. 오늘날 물질문명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햇살과 바람과 물을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짓밟거나 무너뜨리거나 죽이는가를 잘 살펴보셔요. 대통령 한 사람이랑 공무원 여럿이랑 개발업자 몇몇이랑 똘똘 뭉쳐 밀어붙이는 4대강사업 하나만 햇살과 바람과 물을 짓밟지 않아요.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로든 자가용 몰고 다니는 여느 사람들도 햇살과 바람과 물을 무너뜨려요. 흙을 안 밟고 흙을 안 만지며 흙을 안 쳐다보는 곳에서 시멘트랑 이웃되어 살아가는 도시사람 누구나 햇살과 바람과 물을 죽여요.


  수도물 놓는다며 댐을 짓고 땅을 파헤치며 온갖 쇠붙이와 플라스틱을 골골샅샅 파묻습니다. 우리가 왜 수도물을 마셔야 하지요? 우리가 왜 먹는샘물을 사다 마셔야 하지요? 흐르는 냇물이 가장 맑고 시원할 텐데요. 골짝물을 마시고 시냇물이랑 도랑물을 마실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온누리 물줄기를 죄 더럽히고 나서 화학약품으로 못물을 걸러 수도물을 마시도록 해야 사람 숨결이 곱게 빛날까요. 모든 들판과 갯벌과 바다와 숲을 깡그리 더럽히고 나서 방부제와 첨가물과 항생제를 쓴 가공식품을 먹도록 해야 사람 숨결이 환하게 빛날까요.


  모든 밥이 흙에서 나오듯, 모든 집과 옷 또한 흙에서 나옵니다. 하늘에서 똑 떨어지는 집이나 옷은 없습니다.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는 밥이요 집이며 옷입니다. 석유이든 석탄이든 가스이든, 흙에서 비롯하지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화학방정식으로 짜서 만들지 못해요. 화학방정식으로 짜더라도, 흙에서 얻는 화학조합물이지 어디에서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아요.


.. 이사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죠. 직장이나 학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은 이유는 바로 집을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을 소유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평균 이사 횟수에 차이가 납니다 ..  (212쪽/손낙구)


  서울 어느 골목 한켠에 깃든 〈길담서원〉에서 마련한 ‘청소년 인문학교실’ 열매 가운데 하나인 《나는 어떤 집에 살아야 행복할까?》(철수와영희,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나라 푸름이한테 ‘집’ 이야기를 들려주려 애쓰는 어른들 마음이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시골을 모를 뿐더러, 막상 서울이라는 터전조차 옳게 모르는 푸름이한테, ‘학교에서는 도무지 가르치지도 보여주지도 얘기하지도 않는’ 집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자리를 마련하니 더없이 예뻐 보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네 학교에서는 국어이니 수학이니 영어이니 과학이니 하는 과목을 지식으로 아이들 머릿속에 집어넣을 일이 아니에요. 이런저런 과목이란 다 쓸데없어요. 아이들한테는 맨 첫째로 ‘사랑’을 가르칠 일이요, 다음으로 ‘삶’을 가르칠 일이며, 이동안 ‘말’을 나란히 가르칠 일입니다. 사랑과 삶과 말을 가르친 뒤, ‘꿈’과 ‘이야기’와 ‘숨결’을 가르칠 수 있어야겠지요. 이 다음에는, 사람이 살아가며 누리는 ‘밥’과 ‘집’과 ‘옷’을 가르쳐야 할 테고요.


  아이들한테 가르칠 것을 놓고 따로 교과서나 책을 엮어야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 스스로 살아내는 모습이 곧바로 교과서나 책이에요. 두 말이나 세 말을 안 해도 돼요. 어른들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면 돼요. 어른들이 무언가 먹는 모습이 ‘밥’을 가르치는 삶입니다. 어른들이 어디엔가 깃들어 지내는 모습이 ‘집’을 가르치는 삶입니다. 어른들이 스스로 챙겨 입는 모습이 ‘옷’을 가르치는 삶입니다.


.. 모든 자연에 있는 스스로 해결합니다. 새들은 스스로 둥지를 짓고 먹이를 찾아요. 우리처럼 먹이 구하는 새, 먹는 새, 따로 있지 않아요. 몸이 아프면 어떻게 해요? 스스로 치유합니다 …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이는 집이에요. 왜 그럴까요? 여러분 몸이 수많은 생명체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 콘크리트는 생명을 죽이고, 공격하고, 파괴합니다. 그 안에선 어떤 생명체도 숨쉬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인간은 콘크리트에 의존합니다. 콘크리트가 발명된 이래 인간은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로 생명을 덮어 버렸어요 ..  (23, 32, 34쪽/고제순)


  눈치 있는 분은 무슨 소리인가 하고 느끼시리라 생각해요. 간추려 말하자면, 아이들을 오늘날 제도권학교이든 대안학교이든, 어떻든 학교라는 이름이 붙은 울타리에 집어넣으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한다’는 소리예요. 아이들은 저희를 낳아 돌보는 어른(또는 어버이)하고 함께 살아가면 넉넉해요. 아이들은 저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어른(또는 어버이)하고 날마다 복닥이고 부대끼며 얼크러질 때에 모든 것을 골고루 배워요.


  수업 50분 쉼 10분, 이렇게 틀을 짜거나 나누어서 가르치거나 보여주는 삶은 없어요. 언제나 모든 모습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가르쳐요.


  말 한 마디가 국어요 산수입니다. 밥짓는 몸짓이 과학이요 문학입니다. 못질을 하거나 빨래를 하는 매무새가 역사요 사회입니다. 들길을 걷거나 밭자락에서 풀을 뜯는 손길이 고스란히 영어요 철학입니다.


  책으로 지은 집이라 할 〈길담서원〉 같은 보금자리에서 알뜰살뜰 꾸리는 ‘청소년 인문학교실’을 때때로 서울에서 한참 벗어난 고즈넉한 시골마을 들판이나 바닷가나 숲에서도 열면 한결 푸르게 빛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아니, 시골마을, 그러니까, 우리 식구들 지내는 고흥군이라든지 이웃 보성군이나 장흥군 같은 시골마을 같은 데에서, 교사와 공무원들이 생각을 그러모으며 예쁜 ‘인문학교실’을 꾸려, 이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이 즐거이 누리도록 힘쓰면 참 예쁘겠구나 싶습니다. 4345.12.10.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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