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내린 선물 - 헬기에서 내려다본 한국의 사계
이태훈 지음 / 눈빛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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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이 내려준 아름다운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80] 이태훈, 《하늘이 내린 선물》(눈빛,2011)

 


 여행하며 사진을 찍는 이태훈 님이 내놓은 《하늘이 내린 선물》(눈빛,2011)을 읽습니다. 이태훈 님은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사진가와 달리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 나라의 독특한 사계절의 특성을 표현해야 한다는 의욕만 앞섰지 항공촬영에 대한 지식도 없고, 요령도 없이 아주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만 했다(촬영 후기).” 하고 책끝에 붙입니다. “몇 번의 실수를 반복하고, 하늘에서 보는 시각이 익숙해질 때 내 눈에 진정한 ‘한국의 미’가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촬영 후기).” 하고도 이야기합니다.

 

 땅에 두 발 디디며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하늘 높이 올라가 땅을 찬찬히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면 무척 남다르리라 생각합니다. 더 너른 눈길을 다스리거나 더 깊은 생각길을 열 수 있어요. 사람들이 땅덩이에 이루려 하는 문명이나 문화가 얼마나 조그마하며 대수롭지 않은가 하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너른 자연과 견주어 사람들 도시란 얼마나 자그마하며 초라한가 하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사진책 《하늘이 내린 선물》을 여러 차례 곰곰이 읽습니다. 이 사진책에 나오는 “하늘이 내린 선물”은 열이면 아홉이나 열, 스물이면 열아홉이나 스물, 서른이면 스물여덟아홉쯤은 으레 ‘시골마을’ 모습입니다. 드문드문 도심지가 살짝 깃들기는 하지만, “하늘이 내린 선물”이로구나 하고 느낄 만한 모습을 담은 사진은 하나같이 ‘시골마을’이에요.

 

 밭에서 고구마를 거둔다든지, 논에서 일을 한다든지, 바다에서 고기를 낚는다든지, 이래저래 자연 넉넉한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퍽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은 매우 남다릅니다. 사람들 오가는 발자국이 이러하고 사람들 남기는 손자국이 저러하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와 달리, 놀이공원에 ‘억지로 만든’ 꽃밭 모습은 그야말로 억지스럽구나 싶어요. 자연에 없는 모습을 억지로 꾸미잖아요. 자연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꽃을 억지로 만들어 한자리에 모으고는 예쁘장한 듯 선보이잖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걸쳐 멧자락 한 곳만 꾸준히 들여다보더라도 언제나 빛깔이 다르고 무늬가 다릅니다. 오대산이나 설악산이든, 계룡산이나 속리산이든, 남산이나 북한산이든, 한라산이나 무등산이든, 어느 산을 바라보더라도 철 따라 멧자락 빛깔이랑 무늬가 다릅니다. 사람들이 따로 나무를 심거나 꽃씨를 뿌리지 않아도, 들판과 멧자락은 자연 스스로 새빛 새무늬로 새모습 선보여요. 곧,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하늘이 내린 선물”하고 동떨어진 곳에서 살아갑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은 누리지 않으며 살아갑니다. 공무원으로 일하든 정치나 경제를 밝힌다고 하든, 또 사진을 찍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하든, 오늘날 사람들은 거의 모두 “하늘이 내린 선물”을 스스로 안 찾고 스스로 안 누리며 스스로 안 느끼는 곳에서 살아갈 뿐입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지 않고도, 내 가슴속에서 사랑을 펼쳐 보이며 널리 나눌 만한지 궁금합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을 누리지 않고도, 내 생각길은 드넓게 열리며 고운 꿈을 두루 펼칠 만한지 궁금합니다.

 

 

 

 사진책 《하늘이 내린 선물》에는 사진 옆에 덧말이 안 달립니다. 이태훈 님이 예전에 내놓은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21세기북스,2010)에는 사진 옆에 이럭저럭 덧말이 달렸습니다. 사진만 보아도 얼마든지 이야기를 느낄 테지만, 덧말을 읽어도 새롭게 이야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하늘에서 본 대한민국》은 ‘하늘이 아닌 땅에 발을 딛고 찍은 사진’을 나란히 싣고, ‘한국에서 아름답다 여길 만한 곳’을 이모저모 알려주는 덧말을 싣는다 하겠습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은 굳이 덧말을 달지 않습니다. 사진 끄트머리에 ‘한국땅 어디’라고만 짤막히 붙입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을 여러 차례 넘기며 헤아립니다. 사진마다 한국땅 어디라는 짤막한 말조차 없어도 되겠구나 싶습니다. 이 사진이 무슨 도 무슨 군이라 하는 이름이 없어도 됩니다. 어디인지 모르고 사진을 보아도 됩니다. 대관령이면 어떻고 보성 차밭이면 어떻습니까. 고흥 여자만이든 순천이나 여수 갯벌이면 어떻습니까. 인천 앞바다 갯벌이어도 좋고, 안면도 갯벌이어도 좋아요. 이 사진을 들여다볼 사람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아름다운 터’요, ‘바로 내가 살아가는 아름다운 터’인 줄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대목을 가만히 보여줄 수 있으면 넉넉합니다.

 

 그러고 보면, 도시 한복판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참말 사람들이 바글바글 우글우글 어지럽게 얽히고 설키는구나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지요. 다리를 쉴 걸상 하나 없고, 눈을 쉴 들판이나 숲 한 뙈기 없으며, 시원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 느긋하게 맞아들일 빈터 하나 없는 도시 한복판이란, 사람들한테 얼마나 사랑스럽겠느냐고 되묻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어도 좋으리라 싶어요.

 

 

 

 

 선물이란 대단하지 않아요. 선물이란 참 작아요. 참 작으면서 커요. 참 작으면서 크고 사랑스러워요.

 

 선물이란 삶이에요. 내가 누리는 오늘 하루가 선물이에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식구를 이루어 한솥밥을 먹는 삶이 곧 선물이에요.

 

 어른 키높이에서 아이를 내려다봅니다. 아이 키높이에서 어른을 올려다봅니다. 아이를 안고 어른 키높이로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어른이 무릎을 꿇고 아이 키높이로 온누리를 바라봅니다.

 

 널리 바라보는 눈길처럼 깊이 헤아리는 마음길로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내가 누리는 이곳 이때가 얼마나 고마우며 사랑스러운가를 받아들이며 살아갈 때에 기쁩니다.

 

 

 헬리콥터를 타고 온누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꿈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내 보금자리 깃든 마을에서 아이랑 나란히 서서 땅을 내려다보며 봄을 맞이해 온 들판이랑 논둑에 피어나는 첫 봄꽃인 봄까치꽃 작은 보라빛 꽃망울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로 날마다 새 이야기를 누리며 웃음꽃을 피웁니다. (4345.3.6.불.ㅎㄲㅅㄱ)


― 하늘이 내린 선물 (이태훈 사진,눈빛 펴냄,2011.11.29./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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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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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긋하게 꿈을 꿀 때에 사진 하나
 [찾아 읽는 사진책 46] 배용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키이스트,2009)

 


 배우 배용준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키이스트,2009)을 읽었습니다. 무척 두툼한 책입니다. 꽤 묵직합니다. 배우로 지내는 나날이 몹시 바쁠 텐데 어느 결에 이렇게 글이랑 사진을 엮어 책을 낼 수 있었나 놀랍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배우로 일하는 동안 언제나 조각조각 틈을 내어 기자를 만나고 사랑이를 만나요. 하루하루 조각조각 겨를을 나누어 밥을 먹고 연기를 하며 벗을 만납니다. 책 하나 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조각을 내고 새로운 겨를을 마련한다면, 배우 배용준이 아니라 회사원 아무개라 하더라도 이렇게 책 하나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에 바쁜 사람은 배우 배용준 한 사람만은 아닐 테니까요.

 

 배우 배용준 님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두툼하게 내놓았지만, 이만 한 책은 누구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누구라도’ 회사일이건 집안일이건 너무 많거나 바쁘거나 힘든 나머지, 이만 한 책 하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쳇, 이만 한 책이라면 글이든 사진이든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글결이나 사진결은 그리 돋보이지 않습니다. 썩 잘 쓴 글이 아니요, 그다지 잘 찍은 사진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배우 배용준 님은 책을 하나 냈어요. 아마, 한국과 일본에 널리 이름난 배용준 님인 터라 이렇게 책을 낼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 ‘칫, 이쯤 되는 책은 내가 글이랑 사진을 훨씬 잘 뽑아낸다구!’ 하고 여긴다면, 참말 이처럼 여기는 대로 바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돼요. ‘자, 보쇼, 내 글과 사진이 어떻소!’ 하고 당차게 보여주면 돼요.

 

 

 

 “어릴 적엔 알지 못했다. 좋아하는 반찬에만 정신이 팔렸지, 그 밥상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만들어 주신 분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통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1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즐거워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 열심히 물어 보았다(40쪽).” 하는 글도 읽습니다. “이 음식들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43쪽).” 하는 글까지 아울러 읽습니다.

 

 배우 배용준 님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용준 님 스스로 모르는 대목이 몹시 많기 때문에 도움을 받습니다. 밥을 하는 넋이나 김치를 담그는 넋이나 그릇을 빚는 넋이나 옷을 짓는 넋이나 집을 짓는 넋, …… 오래오래 한길을 걸어온 슬기롭고 아름다운 사람들한테 몸소 찾아갑니다.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되게 바쁠 텐데 어쩜 이렇게 짬을 잘 내어 찾아갔을까 하고.

 

 

 

 문득 돌아보면, 사람들이 배용준 님처럼 못하는 까닭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너무 바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배용준 님한테 돈이 많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고개숙여 배우거나 귀기울여 말씀을 들으려 했을까요.

 

 “(닥 껍질은) 아주 얇디얇은 그물과도 같은 자연물 본래의 패턴이 매우 아름답다(128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스스로 겪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연 풍경이 다르면 거기에 어울리는 집도 다르고, 또 그 집안의 인테리어도 다르고, 그렇게 하나씩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다 보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달라지는 것 아닌가 싶다(137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스스로 느꼈기에 이렇게 글을 쓰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결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은 배용준 님이 글이랑 사진을 모두 일구었다고 적습니다만, 책을 죽 살피면, ‘배우 배용준이 찍은 사진’ 못지않게 ‘배우 배용준을 찍은 사진’이 참 많이 실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배용준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책을 팔려고 하는 느낌이 꽤 짙습니다. ‘배용준 글·사진’이라 붙인 간기가 부끄럽다 싶을 만큼 ‘배우 배용준을 찍은 사진’이 너무 많이 실려요.

 

 

 

 배우 배용준 님이 찍은 사진이 좀 어설프다 하더라도, 이 어설픈 사진을 조금 더 많이 실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고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을 찍은 사진은 따로 그러모아 보여주어도 될 텐데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사람들한테 보여주거나 알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한국땅 이야기를 담으려는 책이니까요.

 

 “(충주호는) 경관은 뛰어나게 수려하지만 아무래도 댐으로 물을 막아 만든 호수인지라 물에 닿아 끊어지는 경치들이 부자연스러워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169쪽).” 하는 글을 읽고, “콘크리트 건물은 100년을 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열 번을 다시 지을 비용으로 제대로 한 번 짓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억지일까(365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누구라도 이처럼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국땅 어디를 가더라도 온통 콘크리트투성이입니다. 한국땅 골골샅샅 자가용으로 신나게 누빌 수 있을 만큼 아스팔트투성이입니다.

 

 고속도로이든 고속국도이든, ‘백 해를 바라보고 닦았다’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백 해를 망가뜨리며 닦았다’고 해야 옳으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걸어다닐 때에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걷다가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흙이랑 햇살이랑 바람이랑 풀이랑 꽃이랑 물이랑 하늘이랑 바다랑 고루 받아들여야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비행기를 타고 제주섬으로 갔다가 자가용을 몰아 오름으로 마실을 떠나야 비로소 억새를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을 만하지 않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 흙으로 가득한 들판과 골짝과 냇물을 찾아나서면 어디에서든 억새를 마주할 수 있어요.

 

 내가 아름답다고 느껴야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내가 사랑스럽다고 느껴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입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느껴야 좋아할 만한 마을입니다.

 

 “나는 앞으로 한옥을 한 채 지어 방마다 내 꿈과 가까운 친구들을 위한 배려를 하나씩 채워 갈 생각이다(36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부디 배우 배용준 님은 좋은 흙집 한 채 예쁘게 지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기와 얹은 흙집 한 채 지을 살림이 되는 분들은 굳이 아파트를 장만하지 말고 좋은 흙집 한 채 기와 얹어 지으면 좋겠습니다. 살림이 좀 넉넉한 이들부터 아파트를 버리고 흙땅에 흙마당 두어 흙집을 마련한 다음, 도시 곳곳에 숨통이 틀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흙집 한 채를 짓는다면, 이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지나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운 책 하나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이 오래오래 두고두고 차근차근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내놓을 책이란 바로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이리라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부터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을 곱게 사랑하고 즐겨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4345.3.5.달.ㅎㄲㅅㄱ)


―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글·사진,키이스트 펴냄,2009.9.23./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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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열린 한대수
한대수 지음 / 선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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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구성지게 얘기하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56] 한대수,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

 


 봄이 되어 들판에는 다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새가 먹이 찾으러 새벽부터 일찍 돌아다니는 소리를 듣습니다. 멧등성이 쪽을 바라봅니다.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짐승이 새봄을 기쁘게 맞이할까 헤아려 봅니다. 저 멧자락에는 어떤 멧풀이 새싹을 틔우고, 어떤 멧나무가 새눈을 틔우려 애쓸는지 생각해 봅니다.

 

 봄은 누구한테나 봄입니다. 사람한테도 들고양이한테도 들풀한테도 모두 봄입니다. 하늘도 봄이요 냇물도 봄이며 별들도 봄입니다. 긴긴 겨울을 알뜰히 지냈으니, 이제부터 모두들 맑은 봄기운 듬뿍 받아먹을 만합니다. 추운 겨울을 포근히 났으니, 이제 저마다 마음속으로 품으며 기다리던 봄을 한껏 누릴 만합니다.

 

 봄햇살에 더 보송보송 마르는 봄빨래입니다. 겨우내 덮던 이불은 한 채씩 신나게 빨아 즐거이 말리자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고무대야 마당에 내놓고 아이하고 이불을 마음껏 밟으며 빨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애벌빨래는 내가 먼저 해 놓고, 헹굼질을 할 때에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자라는 나이에 맞추어 나중에는 아이더러 이불 비누질도 시킬 수 있습니다. 아이더러는 이불 한 채를 한 시간쯤 걸려 빨라고 하지요. 나도 어린 나날 이불 한 채를 빨 때에 으레 한두 시간은 들였지 싶어요. 작은 몸 작은 손으로 커다란 이불을 이리저리 뒤집고 돌려서 비비고 밟고 하자면 퍽 힘들거든요.

 

 

 나부터 하루를 즐길 때에 아이들 또한 하루를 즐깁니다. 나부터 새봄을 새로운 사랑으로 맞아들일 때에 아이들 또한 새봄을 새로운 꿈으로 받아들입니다. 새로 비추는 좋은 빛살을 느끼며 한대수 님 사진이야기 《뚜껑 열린 한대수》(선,2011)를 읽습니다. 뚜껑이 열렸다니, 무슨 뚜껑이 열렸나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처음부터 “내 생각엔 기획사를 통해서 성공한 아티스트는 거의 없다. 성공을 한다고 해도 잠깐이지, 한 인생을 거치며 아티스트로 발전하는 경우는 드물다(45쪽).”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런 소음 공해는 여러 장소에서 느낄 수 있는데, 곳곳에 있는 공사장의 소음들과 거리의 상점마다 틀어놓은 야외 스피커는 나를 더더욱 놀라게 한다. 이러한 소음은 서양 사회에서는 불법이다(66쪽).” 하는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밑줄을 그으며 찬찬히 읽습니다. 한대수 님은 ‘음악 예술’을 하려는 이들한테 들려주고 싶다며, ‘기획사에 들어가 이름 날리는 길’을 찾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곰곰이 되새깁니다. 노래꾼을 꿈꾸는 이들뿐 아니라, 사진꾼이나 글꾼이나 그림꾼이 되려는 이들도 똑같이 헤아릴 대목입니다. 어떤 ‘학교’를 다니거나 어떤 ‘스승’을 섬기거나 어떤 ‘기관(또는 스튜디오, 또는 창작실, 또는 작업실)’에 들어간대서 내가 꿈꾸는 길을 기쁘게 이루지는 않아요. 늘 혼자 씩씩하게 걸어가는 길에서 꿈을 기쁘게 이룹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여럿이 동아리를 이루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노래패에는 악기를 다루는 이들이 따로 있어, 여럿이 어울리는 길에서도 내 꿈을 이룬다 할 테지만,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나요 장구를 때리는 사람도 나이며 기타를 뜯는 사람 또한 나예요. 나와 내가 어우러지는 우리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도 나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또한 나이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란 바로 나예요. 돈을 벌겠다며 글을 쓸 수 있기도 하지만, 돈을 벌려고 쓰는 글이란 내 삶을 얼마나 사랑하는 꿈을 키우는 길이 될까 궁금해요.

 

 

 

 곧, 꿈하고 동떨어진 돈하고 사귈 때에는 ‘소음 공해’와 똑같이 ‘글 공해’가 되고 ‘그림 공해’가 되며 ‘사진 공해’가 됩니다.

 

 삶을 구성지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글입니다. 삶을 신나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그림입니다. 삶을 아름답게 얘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사진입니다. 이야기가 있어야 글이며 그림이고 사진이에요. 이야기를 담지 못하거나 이야기하고는 동떨어진다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미국 연속극에서) 최하 2천에서 3천 달러 되는 아파트에 살면서 브런치나 먹어가면서 명품 가방과 하이힐을 신고 다닌다니 그야말로 소설이다. 그리고 온갖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바로 사랑을 나누느냐(92쪽)?” 하는 말처럼, 명품과 겉치레와 돈놀음에 파묻히는 삶이란 삶이라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사랑조차 없다고 말할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서 샘솟는 사랑이 있을 때에 쓰는 글이거든요.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있을 때에 그리는 그림이거든요. 내 넋으로 북돋우는 사랑이 있을 때에 찍는 사진이에요.

 

 

 한대수 님은 손숙 님과 함께 꾸리는 라디오 풀그림에서 “80퍼센트가 되는 서민층에게 빚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만 온순하게 일을 하고, 빚을 갚게 만들고, 불만이 있더라도 특히 다문화 다인종이 살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혁명을 일으킬 생각을 못하게 하는 전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117쪽).” 하고 이야기한답니다. “아티스트는 ‘반 고흐’와 같이 한평생 고생하다가 고귀한 희생을 하는 것과는 반대였다. 그래서 워홀은 수천만 달러를 챙겼다. 그래서 나는 워홀에 대한 예술적인 가치는 그다지 평가하지 않는다(167쪽).” 하고도 이야기한답니다. 그야말로 홀가분한 넋이기에 홀가분하게 이야기합니다. 즐거이 누리고픈 삶이기에 즐거워 보이지 않는 삶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따스히 어루만지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곱게 누릴 삶입니다. 저마다 알차게 빛낼 나날입니다. 누구나 곱게 부를 노래요, 저마다 알차게 찍을 사진입니다. 누구나 곱게 꾸릴 살림이요, 저마다 알차게 마련할 밥상입니다. 누구나 곱게 나눌 사랑이고, 저마다 살가이 어깨동무할 꿈이에요.

 

 한대수 님은 또 이야기합니다. “큰곰은 군을 제대하고 나서 인생관이 많이 변했다. 인류에 대한 희망을 더욱더 잃었고, 그것이 음악에 반영이 됐다(239쪽).” 하고.

 

 

(헉 ! 사진 뒤집어졌네... -_-;;;)

 

 

 슬픔은 슬픔대로 노래하는 사람 가슴으로 스며듭니다. 기쁨은 기쁨대로 사진하는 사람 마음으로 젖어듭니다. 아픔은 아픔대로 글을 쓰는 사람 넋으로 깃듭니다. 웃음은 웃음대로 춤을 추는 사람 몸짓으로 녹아듭니다.

 

 나 또한 군대에서 빛을 잃었습니다. 사람을 더 잘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재주를 가르치고 길들이는 군대에서 도무지 빛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군대에 며칠 먼저 들어왔다고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써야 하는데, 군대 바깥에서 나이를 따져 웃사람으로 모시며 깍듯이 높임말을 쓰는 일하고 똑같습니다. 군대는 군대대로 꽉 막히고, 사회라는 곳은 사회라는 곳대로 꽁꽁 묶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길은 총부리로 윽박질러 짓뭉갭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사랑하는 꿈은 군화발로 걷어차며 짓밟습니다. 돌이켜보면, 회사라는 곳도 이와 같습니다. 사회에서는 나이, 군대에서는 계급, 회사에서는 지위에 따라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학교에서는 시험성적을 매겨 사람을 깎아내립니다. 이런 판이라면, 어떤 이가 노래하는 꿈을 꿀까요. 이런 터라면, 어떤 이가 사진하는 꿈을 키울까요. 이런 마당이라면, 어떤 이가 좋은 벗을 사귀며 좋은 사랑을 빛내는 길을 걸을까요.

 

 한대수 님은 당신 노래를 돌이키며 “작곡은 내 마음의 상처의 치유다. 그리고 내 음악이 여러분들의 상처에 치유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293쪽).” 하고 말합니다. 노래할 때에는 노래가 마음을 달랠 테고,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이 마음을 달래겠지요. 아이를 안고 어를 때에는 아이가 마음을 달래리라 생각합니다. 아이와 길을 걷고, 아이를 씻기며, 아이를 먹일 때에는, 언제나 아이가 한대수 님 마음자리를 가득 누비리라 느낍니다. 이제 한대수 님은 당신 딸아이한테 “여자인 네가 짝을 택하는 것이다. 모든 동물도 마찬가지다. 암컷이 수컷을 선택하지 그 반대는 없다(358쪽).” 하는 말을 들려주며 책을 끝맺습니다. 여자한테는 ‘어머니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남자한테는 ‘아버지가 되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는 소리요, 한대수 님 스스로 당신한테 가장 아름다울 길인 ‘아버지로 살아가는 나날’을 즐긴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순이 다 되어 아이를 낳아 사랑하겠다고 생각했을 테지요. 예순이든 일흔이든 나이라 하는 ‘숫자 밥그릇’을 떠나, 참살길을 찾으려 했겠지요.

 

 《뚜껑 열린 한대수》는 이제껏 누리지 못한 새로운 꿈을 누리는 이야기를 구성지게 들려주는 사진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뚜껑 열린 한대수》는 여태 깨닫지 않으며 지나치고 만 새로운 사랑을 빛내는 삶을 구성지게 들려주는 이야기책이로구나 생각합니다.

 

 

 구성지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구성지게 나누며 환하게 웃음꽃 터뜨리고 싶을 적에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새로 맞이한 봄날, 새로 찾아드는 따스한 기운을 마음껏 누리며 글을 씁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춥던 긴 겨울날, 따스한 봄날을 꿈꾸며 글을 썼고, 그림을 그렸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 스스로 누리고픈 삶이 글꽃이나 그림꽃이나 사진꽃으로 피어납니다. 내가 아끼는 내 살붙이와 어우러지고픈 사랑이 글열매나 그림열매나 사진열매로 이루어집니다. 그래, 한대수 님이 한국땅을 두루 돌아보기에 참말 삶을 아끼며 삶꽃을 피우려는 젊은이가 도무지 안 보인다 싶어 “뚜껑 열린 한대수”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한국땅 어딘가에, 또는 한국 바깥 어느 곳에, 한대수 님 딸아이하고 좋은 짝꿍이 될 사랑스러운 사내아이 기쁘게 크리라 믿으며, “뚜껑 열고 찾아보는 한대수”로 오늘 하루를 즐거이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4345.3.3.흙.ㅎㄲㅅㄱ)


― 뚜껑 열린 한대수 (한대수 글·사진,선 펴냄,2011.11.7.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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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2-03-03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밑 사진에 안긴 저 아이가 '한양호'인가요? 라디오 방송 들으니까, "양호"라는 낱말이 좋아서 아이를 낳으면 남녀를 불문하고 양호라고 지을 작정이었대요.
된장 님께서 별을 다섯 개나 주셨네요!

숲노래 2012-03-04 04:05   좋아요 0 | URL
글과 사진이 참 좋은데,
예전 생각의나무 책은 출판사가 송두리째 사라지며 책도 사라져서
이번에 새 책이 나왔는데, 그동안 새로 찍었을
좋은 사진을 더 싣지 못한 대목이 퍽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괜찮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2-03-0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대수 씨가 늘그막에 본 딸이로군요.늘 양호 양호 하던 그 아이...

숲노래 2012-03-04 04:04   좋아요 0 | URL
한국말로 하면... "한 좋아"인 셈이에요 ^^;;;

한대수 님 노래 가운데 <하루 아침>이 있는데, 이 노래를 열 때에 "기분이 좋아, 좋아..." 하고 읊어요. 좋아, 좋아... 이 말을 양호, 양호... 하면서 딸아이 양호가 되었지요 ^^;;;;
 

 

 










사진과 함께 살아가는 자리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28] 서영기, 《명료한 오후》(안목,2011)

 


 미국에서 집짓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서영기 님이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 《명료한 오후》(안목,2011)를 읽습니다. 책 끝에 붙인 서영기 님 글에 “(새로운 일터에서) 그 4년 동안(지금도 그렇지만), 점심을 먹고 나서 남는 시간 동안, 거의 매일, 공장 주변을 돌아다녔어요. 많은 상념 속에 카메라를 메고요. 특별하게 어떤 장소를 찾아다니지는 않았고, 그저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공장 주변 한 바퀴. 출퇴근 시간에도 사진을 찍었지만 중요한 작업은 점심 후 30분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는 이야기가 실립니다. 일터 둘레에서 늘 마주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요, 곰곰이 살피면 ‘내가 남을 바라본 모습’이라 할 수 있으나 ‘남이 나를 바라본 모습’이라 할 수도 있겠구나 싶습니다.

 

 눈부신 한낮 아주 환한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스치는 모습을 사진으로 마주합니다. 문득, 이 사진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일하는 사람’, 곧 ‘노동자’로구나 싶습니다.

 

 굳이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찍을 생각은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일을 쉬는 사이사이 돌아다니며 마주하던 사람들이 으레 ‘일하는 사람’이요, 눈부신 한낮 아주 환한 길가에서 마주하는 이들 또한 으레 ‘일하는 사람’이로구나 싶어요.

 

 

 ‘일하는 사람’을 사진으로 담았으니 ‘노동자’ 권리라든지 지위라든지 현실을 밝히려는 사진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일하는 사람’이 꽤 자주 서영기 님 사진에 얼굴을 비출 뿐입니다. 더욱이, 생각을 다시금 기울이고 또 기울이노라면, 우리들 누구나 ‘일하는 사람’입니다. 가게에 들러 물건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주머니도 ‘일하는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망치질을 해야만 ‘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 돌보는 사람 또한 ‘일하는 사람’이에요.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어머니를 가리켜 ‘일하는 사람’이라 말할 사람은 없을까요. 그러나, 아기를 보살피는 어머니 또한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해야 맞습니다.

 

 흙손으로 시멘트 바닥을 반반하게 미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요, 쓰레기를 줍거나 치우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입니다. 교통순경도 초등학교 교사도 ‘일하는 사람’입니다. 가게에서 물건값 셈하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며, 꽃집에서 물뿌리개로 물을 주는 사람도 ‘일하는 사람’이에요. 낮밥을 먹고 나서 사진기 어깨에 걸치고는 길거리를 걷는 서영기 님 또한 ‘일하는 사람’입니다. 30분 즈음 일손을 놓고 쉰다 해서 ‘일 안 하는 사람’이지 않습니다. 서로서로 똑같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서영기 님은 《명료한 오후》에서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본다. 그건 다른 세계를 슬쩍 엿본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인데, 그 모습들은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세계처럼 보인다. 스스로 만족스러운, 아름답다, 단지 바라보고, 그렇게 받아들인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스스로 흐뭇하면 즐거운 나날이요, 스스로 즐겁게 누리는 나날이니, 스스로 기쁘게 찍는 사진입니다. 더할 나위 없이 환하게 빛나는 사진입니다. 더없이 환하게 빛나는 내 삶입니다.

 

 사진기를 쥐며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내 보금자리에서 사진을 빚습니다. 스튜디오는 곧 내 보금자리요, 내 보금자리는 바로 사진관입니다. 길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길이 내 삶터입니다. 내 삶터는 바로 길이에요. 길을 거닐며 삶을 누리고, 길을 거닐며 삶을 돌아보며, 길을 거닐며 삶을 사랑합니다.

 

 집에서 아이들 기저귀를 빨래하는 어버이는 집이 좋은 사랑터이면서 좋은 사진을 빚는 꿈터입니다. 까르르 웃는 아이를 찍고, 무언가에 깊이 빠져든 아이를 찍으며, 으앙 우는 아이를 찍습니다. 뜀박질하는 아이를 찍고, 노래하고 춤추는 아이를 찍으며, 책을 읽는 아이를 찍습니다. 밥먹는 앞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머리띠를 꽂는 옆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세발자전거를 슬슬 끄는 뒤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1분 겨를을 내어 사진을 찍습니다. 30초 말미를 내어 사진을 찍습니다. 10초 짬을 쪼개어 사진을 찍습니다.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가야산, 계룡산, 속리산, …… 같은 데에서만 사진을 예쁘게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한강, 낙동강, 섬진강, 금강, 영산강, 남한강, …… 같은 데에서만 사진을 어여삐 찍을 만하지 않습니다.

 

 마을 텃밭에서도 사진을 예쁘게 찍을 만합니다. 마을 바닷가에서도 사진을 어여삐 찍을 만합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도 사진을 즐겁게 찍을 만합니다. 우리 집 건넌방에서도 사진을 기쁘게 찍을 만합니다.

 

 

 서영기 님은 “Brooklyn, Queens, Jersey city. 이들 지역이 제게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 생활의 자리가 이러한 곳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지요.” 하고 얘기해요. 살아가는 자리가 사진을 찍는 자리요, 사진을 찍는 자리가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살아가기에 생각합니다. 생각하기에 사랑합니다. 사랑하기에 사진으로 이 좋은 사랑을 담으며 살아갑니다.

 

 내 좋은 꿈은 나를 살찌우는 밥과 옷과 집이 깃든 사랑스러운 마을에서 활짝 웃으며 천천히 빚습니다. 햇살을 먹고 바람을 마시면서 꿈을 빚습니다. 흙을 밟고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면서 꿈을 빚습니다. 별빛이 나를 감쌉니다. 무지개가 나를 어루만집니다. 들새 목소리와 풀벌레 노랫소리가 나를 얼싸안습니다. (4345.2.29.물.ㅎㄲㅅㄱ)


― 명료한 오후 (서영기 사진·글,안목 펴냄,2011.10.8./25000원)
http://anmoc.com 에서 이 사진책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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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Chambi (Hardcover)
Andres Garay Albujar / Phaidon Inc Ltd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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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돈 손바닥책이 안 뜨네... 왜 안 뜨지... -_-;;;

 


 페루를 사진으로 가장 잘 담으려면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1] 마틴 참비(Martin Chambi), 《Martin Chambi》(PHAIDON,2001)

 


 페루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걸은 마틴 참비(Martin Chambi) 님은 페루 붙박이들 삶자락을 담은 사진쟁이로, 또 잉카 문명이 깃든 쿠스코를 찍은 사진쟁이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에서 잉카 문명이 깃든 쿠스코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페루에서 나고 자란 마틴 참비 님이 쿠스코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때는 틀림없이 다를 테지요. 서울이나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을 한국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찍을 때랑 일본이나 서양에서 온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도 틀림없이 다를 테고요. 그런데, 똑같은 한국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서울 붙박이가 서울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부산 사진쟁이가 서울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다릅니다. 전주 붙박이가 전주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서울 사진쟁이가 전주로 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경상북도 구미 사진쟁이나 강원도 영월 사진쟁이가 전주로 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늘 사뭇 다릅니다.

 

 삶터에 따라 사람이 달리 자랍니다. 똑같이 틀에 박힌 제도권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사람들 삶은 학교 울타리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과 마을에서 천천히 빚는 삶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늘 마시는 바람과 언제나 받는 햇살에 따라 저마다 달리 자라는 꿈입니다.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에 따라 서로 달리 키우는 사랑입니다.

 

 

 《미국사람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은 로버트 프랭크 님도 페루를 찾아가서 《페루》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이 사진책은 페루에서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 …… 찬찬히 지내며 사귄 페루를 이야기하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페루를 살짝 디디며 돌아다닌 발자국을 담은 작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로버트 프랭크 님은 페루사람 아닌 ‘미국사람’입니다(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옮겨 살아가는 이주민). 제대로 말하자면, 로버트 프랭크 님은 ‘미국 이주민’이라 하겠지요. 곧, 미국 이주민이나 미국사람으로서 페루에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페루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페루에서 나고 자라 페루 붙박이말(또는 에스파냐말)을 할 줄 알더라도 막상 페루 붙박이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면, 페루를 찾아온 ‘손님’하고 그닥 다를 구석이 없어요.

 

 페루를 페루대로 사진으로 찍는 길이란, 반드시 페루 붙박이일 때에만 이룰 만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 깊이 사진으로 살아내는 사랑으로 페루를 마주할 때에 시나브로 페루를 페루대로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곧,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서, 꼭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사진으로 잘 찍지 못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서양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외려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구수하고 슬기로우며 재미나거나 맛깔스레 담곤 합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늘 지내거나 자주 찾아오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깊이 아끼는 사랑을 언제나 곱게 돌보거든요.

 

 굳이 더 잘 보이도록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무언가 멋스럽게 보이도록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기와 필름(또는 메모리카드)을 빌어 나와 내 둘레 이야기를 담습니다. 따로 사진기가 있어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나는 내 두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면서 먼저 내 눈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가슴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머리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손과 발에, 내 등과 허리에, 내 정강이와 허벅지에, 내 팔뚝과 귓등에 사진을 담아요. 온몸으로 부대끼며 사진을 찍고, 온마음으로 껴안으며 글을 씁니다. 연필을 빌면 내 삶을 글로 풀어냅니다. 붓을 빌면 내 삶을 그림으로 엮어냅니다. 사진기를 빌면 내 삶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마틴 참비 님 사진책 《Martin Chambi》(PHAIDON,2001)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이 ‘페루사람이 찍은 페루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장만하지 않았습니다. 페루사람이건 칠레사람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사진다이 사랑하는 결을 느낄 때에 비로소 차근차근 넘길 만합니다. 사진을 사진대로 좋아하는 무늬가 깃들 때에 바야흐로 즐거이 읽을 만합니다.

 

 가난한 살림인 내가 페루로 마실을 떠나 쿠스코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는 없기에, 이 사진책으로 쿠스코 삶터를 지켜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는 마틴 참비 님이 당신 스스로 사진길을 걸어가며 누린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이 사진책을 읽습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 사진책도 읽고 일본 사진책도 읽으며 서양 사진책도 읽습니다. 여기에 페루 사진책도 읽습니다. 페루에서 사진길을 걷는 사람 가운데 한국 사진책을 알아보며 즐거이 읽는 이가 있을까요. 페루에까지 널리 사랑받을 만큼 사진을 아끼고 좋아하는 넋을 담은 한국 사진책으로 무엇을 손꼽을 만할까요. 나한테 ‘페루에서 살아가는 사진동무’가 있다면, 한국사람으로서 이녁한테 어떤 한국 사진책을 선물하면 아름다울까요.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어여쁘고 알차며 빛나게 담은 사진책으로는 어느 책을 골라서 선물할 때에 서로 즐거울까요. (4345.2.29.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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