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지음 / 시드페이퍼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느긋하게 꿈을 꿀 때에 사진 하나
 [찾아 읽는 사진책 46] 배용준,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키이스트,2009)

 


 배우 배용준 님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고 하는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키이스트,2009)을 읽었습니다. 무척 두툼한 책입니다. 꽤 묵직합니다. 배우로 지내는 나날이 몹시 바쁠 텐데 어느 결에 이렇게 글이랑 사진을 엮어 책을 낼 수 있었나 놀랍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배우로 일하는 동안 언제나 조각조각 틈을 내어 기자를 만나고 사랑이를 만나요. 하루하루 조각조각 겨를을 나누어 밥을 먹고 연기를 하며 벗을 만납니다. 책 하나 내겠다고 다짐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조각을 내고 새로운 겨를을 마련한다면, 배우 배용준이 아니라 회사원 아무개라 하더라도 이렇게 책 하나 내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온누리에 바쁜 사람은 배우 배용준 한 사람만은 아닐 테니까요.

 

 배우 배용준 님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두툼하게 내놓았지만, 이만 한 책은 누구라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다만, 오늘날 ‘누구라도’ 회사일이건 집안일이건 너무 많거나 바쁘거나 힘든 나머지, 이만 한 책 하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쳇, 이만 한 책이라면 글이든 사진이든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하고 여길 수 있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을 찬찬히 읽다 보면, 글결이나 사진결은 그리 돋보이지 않습니다. 썩 잘 쓴 글이 아니요, 그다지 잘 찍은 사진 또한 아닙니다.

 

 그러나 배우 배용준 님은 책을 하나 냈어요. 아마, 한국과 일본에 널리 이름난 배용준 님인 터라 이렇게 책을 낼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 스스로 ‘칫, 이쯤 되는 책은 내가 글이랑 사진을 훨씬 잘 뽑아낸다구!’ 하고 여긴다면, 참말 이처럼 여기는 대로 바지런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면 돼요. ‘자, 보쇼, 내 글과 사진이 어떻소!’ 하고 당차게 보여주면 돼요.

 

 

 

 “어릴 적엔 알지 못했다. 좋아하는 반찬에만 정신이 팔렸지, 그 밥상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만들어 주신 분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통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1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나는 오랜만에 진심으로 즐거워 음식에 대해 이것저것 열심히 물어 보았다(40쪽).” 하는 글도 읽습니다. “이 음식들이 없다면 무엇으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43쪽).” 하는 글까지 아울러 읽습니다.

 

 배우 배용준 님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배용준 님 스스로 모르는 대목이 몹시 많기 때문에 도움을 받습니다. 밥을 하는 넋이나 김치를 담그는 넋이나 그릇을 빚는 넋이나 옷을 짓는 넋이나 집을 짓는 넋, …… 오래오래 한길을 걸어온 슬기롭고 아름다운 사람들한테 몸소 찾아갑니다.

 

 책을 읽으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되게 바쁠 텐데 어쩜 이렇게 짬을 잘 내어 찾아갔을까 하고.

 

 

 

 문득 돌아보면, 사람들이 배용준 님처럼 못하는 까닭은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너무 바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배용준 님한테 돈이 많고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에 이렇게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고개숙여 배우거나 귀기울여 말씀을 들으려 했을까요.

 

 “(닥 껍질은) 아주 얇디얇은 그물과도 같은 자연물 본래의 패턴이 매우 아름답다(128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스스로 겪었기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자연 풍경이 다르면 거기에 어울리는 집도 다르고, 또 그 집안의 인테리어도 다르고, 그렇게 하나씩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다 보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달라지는 것 아닌가 싶다(137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스스로 느꼈기에 이렇게 글을 쓰며, 이렇게 글을 쓰는 결 그대로 사진을 찍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라는 책은 배용준 님이 글이랑 사진을 모두 일구었다고 적습니다만, 책을 죽 살피면, ‘배우 배용준이 찍은 사진’ 못지않게 ‘배우 배용준을 찍은 사진’이 참 많이 실립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배용준 님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책을 팔려고 하는 느낌이 꽤 짙습니다. ‘배용준 글·사진’이라 붙인 간기가 부끄럽다 싶을 만큼 ‘배우 배용준을 찍은 사진’이 너무 많이 실려요.

 

 

 

 배우 배용준 님이 찍은 사진이 좀 어설프다 하더라도, 이 어설픈 사진을 조금 더 많이 실으면 얼마나 좋았으랴 하고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을 찍은 사진은 따로 그러모아 보여주어도 될 텐데 싶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은 사람들한테 보여주거나 알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한국땅 이야기를 담으려는 책이니까요.

 

 “(충주호는) 경관은 뛰어나게 수려하지만 아무래도 댐으로 물을 막아 만든 호수인지라 물에 닿아 끊어지는 경치들이 부자연스러워 기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169쪽).” 하는 글을 읽고, “콘크리트 건물은 100년을 가기도 힘들다고 한다. 열 번을 다시 지을 비용으로 제대로 한 번 짓는 것이 낫다는 생각은 억지일까(365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누구라도 이처럼 느끼는구나 싶습니다. 그렇지만, 한국땅 어디를 가더라도 온통 콘크리트투성이입니다. 한국땅 골골샅샅 자가용으로 신나게 누빌 수 있을 만큼 아스팔트투성이입니다.

 

 고속도로이든 고속국도이든, ‘백 해를 바라보고 닦았다’라 말할는지 모르지만, ‘백 해를 망가뜨리며 닦았다’고 해야 옳으리라 느낍니다.

 

 

 

 스스로 두 다리로 걸어다닐 때에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걷다가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있어야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스스로 두 다리로 흙이랑 햇살이랑 바람이랑 풀이랑 꽃이랑 물이랑 하늘이랑 바다랑 고루 받아들여야 비로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니까요.

 

 비행기를 타고 제주섬으로 갔다가 자가용을 몰아 오름으로 마실을 떠나야 비로소 억새를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을 만하지 않습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 흙으로 가득한 들판과 골짝과 냇물을 찾아나서면 어디에서든 억새를 마주할 수 있어요.

 

 내가 아름답다고 느껴야 아름다운 터전입니다. 내가 사랑스럽다고 느껴야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입니다. 내가 좋아한다고 느껴야 좋아할 만한 마을입니다.

 

 “나는 앞으로 한옥을 한 채 지어 방마다 내 꿈과 가까운 친구들을 위한 배려를 하나씩 채워 갈 생각이다(369쪽).” 하는 글을 읽습니다. 부디 배우 배용준 님은 좋은 흙집 한 채 예쁘게 지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기와 얹은 흙집 한 채 지을 살림이 되는 분들은 굳이 아파트를 장만하지 말고 좋은 흙집 한 채 기와 얹어 지으면 좋겠습니다. 살림이 좀 넉넉한 이들부터 아파트를 버리고 흙땅에 흙마당 두어 흙집을 마련한 다음, 도시 곳곳에 숨통이 틀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흙집 한 채를 짓는다면, 이제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을 지나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로운 책 하나 태어나리라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이 오래오래 두고두고 차근차근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내놓을 책이란 바로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이리라 생각합니다. 배우 배용준 님부터 한국에서 아름답게 살아가는 나날을 곱게 사랑하고 즐겨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4345.3.5.달.ㅎㄲㅅㄱ)


―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 (배용준 글·사진,키이스트 펴냄,2009.9.23./180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