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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n Chambi (Hardcover)
Andres Garay Albujar / Phaidon Inc Ltd / 2006년 9월
평점 :
파이돈 손바닥책이 안 뜨네... 왜 안 뜨지... -_-;;;
페루를 사진으로 가장 잘 담으려면
[잘 읽히기 기다리는 사진책 51] 마틴 참비(Martin Chambi), 《Martin Chambi》(PHAIDON,2001)
페루에서 태어나 사진길을 걸은 마틴 참비(Martin Chambi) 님은 페루 붙박이들 삶자락을 담은 사진쟁이로, 또 잉카 문명이 깃든 쿠스코를 찍은 사진쟁이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에서 잉카 문명이 깃든 쿠스코를 찾아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페루에서 나고 자란 마틴 참비 님이 쿠스코를 찾아가서 사진을 찍을 때는 틀림없이 다를 테지요. 서울이나 전주에 있는 한옥마을을 한국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찍을 때랑 일본이나 서양에서 온 사진쟁이가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도 틀림없이 다를 테고요. 그런데, 똑같은 한국 사진쟁이라 하더라도, 서울 붙박이가 서울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부산 사진쟁이가 서울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에는 다릅니다. 전주 붙박이가 전주 한옥마을을 사진으로 찍을 때하고, 서울 사진쟁이가 전주로 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경상북도 구미 사진쟁이나 강원도 영월 사진쟁이가 전주로 와서 사진을 찍을 때하고, 늘 사뭇 다릅니다.
삶터에 따라 사람이 달리 자랍니다. 똑같이 틀에 박힌 제도권학교를 다닌다 하더라도 사람들 삶은 학교 울타리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과 마을에서 천천히 빚는 삶입니다. 날마다 먹는 밥과 늘 마시는 바람과 언제나 받는 햇살에 따라 저마다 달리 자라는 꿈입니다. 살붙이와 이웃과 동무에 따라 서로 달리 키우는 사랑입니다.
《미국사람들》이라는 사진책을 내놓은 로버트 프랭크 님도 페루를 찾아가서 《페루》라는 이름을 붙여 사진책을 내놓았습니다. 아주 마땅한 노릇인데, 이 사진책은 페루에서 여러 날 여러 달 여러 해 …… 찬찬히 지내며 사귄 페루를 이야기하는 사진책이 아닙니다. 페루를 살짝 디디며 돌아다닌 발자국을 담은 작은 이야기꾸러미입니다.
로버트 프랭크 님은 페루사람 아닌 ‘미국사람’입니다(스위스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옮겨 살아가는 이주민). 제대로 말하자면, 로버트 프랭크 님은 ‘미국 이주민’이라 하겠지요. 곧, 미국 이주민이나 미국사람으로서 페루에 찾아와 사진을 찍는다 할 때에는 ‘페루사람’처럼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주고받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페루에서 나고 자라 페루 붙박이말(또는 에스파냐말)을 할 줄 알더라도 막상 페루 붙박이하고 동떨어진 채 살아간다면, 페루를 찾아온 ‘손님’하고 그닥 다를 구석이 없어요.
페루를 페루대로 사진으로 찍는 길이란, 반드시 페루 붙박이일 때에만 이룰 만한 일이 아닙니다. 마음속 깊이 사진으로 살아내는 사랑으로 페루를 마주할 때에 시나브로 페루를 페루대로 사진으로 찍을 수 있습니다.
곧,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서, 꼭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사진으로 잘 찍지 못해요. 한국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서양사람이나 일본사람이 외려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구수하고 슬기로우며 재미나거나 맛깔스레 담곤 합니다. 이들은 한국에서 늘 지내거나 자주 찾아오지 못하더라도 마음속 깊이 아끼는 사랑을 언제나 곱게 돌보거든요.
굳이 더 잘 보이도록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무언가 멋스럽게 보이도록 찍는 사진이 아닙니다. 사진을 찍을 때에는 사진기와 필름(또는 메모리카드)을 빌어 나와 내 둘레 이야기를 담습니다. 따로 사진기가 있어야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나는 내 두 눈으로 찬찬히 바라보면서 먼저 내 눈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가슴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머리에 사진을 담습니다. 내 손과 발에, 내 등과 허리에, 내 정강이와 허벅지에, 내 팔뚝과 귓등에 사진을 담아요. 온몸으로 부대끼며 사진을 찍고, 온마음으로 껴안으며 글을 씁니다. 연필을 빌면 내 삶을 글로 풀어냅니다. 붓을 빌면 내 삶을 그림으로 엮어냅니다. 사진기를 빌면 내 삶을 사진으로 빚습니다.
마틴 참비 님 사진책 《Martin Chambi》(PHAIDON,2001)를 읽습니다. 이 사진책이 ‘페루사람이 찍은 페루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장만하지 않았습니다. 페루사람이건 칠레사람이건 대단하지 않습니다. 사진을 사진다이 사랑하는 결을 느낄 때에 비로소 차근차근 넘길 만합니다. 사진을 사진대로 좋아하는 무늬가 깃들 때에 바야흐로 즐거이 읽을 만합니다.
가난한 살림인 내가 페루로 마실을 떠나 쿠스코를 두 눈으로 지켜볼 수는 없기에, 이 사진책으로 쿠스코 삶터를 지켜볼 수 있어서 좋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보다는 마틴 참비 님이 당신 스스로 사진길을 걸어가며 누린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이 사진책을 읽습니다.
문득 궁금합니다. 나는 한국사람으로서 한국 사진책도 읽고 일본 사진책도 읽으며 서양 사진책도 읽습니다. 여기에 페루 사진책도 읽습니다. 페루에서 사진길을 걷는 사람 가운데 한국 사진책을 알아보며 즐거이 읽는 이가 있을까요. 페루에까지 널리 사랑받을 만큼 사진을 아끼고 좋아하는 넋을 담은 한국 사진책으로 무엇을 손꼽을 만할까요. 나한테 ‘페루에서 살아가는 사진동무’가 있다면, 한국사람으로서 이녁한테 어떤 한국 사진책을 선물하면 아름다울까요. 한국사람 이야기와 삶자락을 어여쁘고 알차며 빛나게 담은 사진책으로는 어느 책을 골라서 선물할 때에 서로 즐거울까요. (4345.2.29.물.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