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지지 않고 ㅣ 인생그림책 49
미야자와 겐지 지음, 고정순 그림, 권정생 옮김 / 길벗어린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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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10.17.

그림책시렁 1889


《비에 지지 않고》

 미야자와 겐지 글

 고정순 그림

 권정생 옮김

 길벗어린이

 2026.4.30.



  일본이웃 미야자와 겐지 님이 남긴 비나리인 “雨にも負けず”를 으레 “비에도 지지 않고”로 옮깁니다. ‘まける(負-)’는 “견디지 못하다”나 “버티지 못하다”를 가리킵니다. ‘負’라는 한자는 ‘지다’로 새기며, “짐이나 빚을 지다”를 가리키며, 짐이며 빚을 등에 잔뜩 지느라 ‘굽히’는 삶을 나타내요. 그러니 이웃나라 작은사람이 으레 읊던 비나리는 “비에도 굽히잖고”라든지 “비에도 견디고”쯤으로 옮겨야 어울립니다.


  새로 나온 《비에 지지 않고》는 권정생 님이 옮긴 밑글에 그림을 얹은 얼거리입니다. 떠난 시골할배가 왜 일본이웃 비나리를 애써 옮겼을까 하고 돌아본다면, 온하루가 온통 아프며 앓을 뿐 아니라, 온나라와 온누리가 다들 다르게 아프고 앓으니, 이 모든 응어리를 빗물로 씻으면서 차분히 달래어서, 이 모든 곳에 새싹이 움틀 빗방울을 숨방울과 핏방울과 눈물방울로 지피자는 뜻이었다고 할 테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좀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이름난 두 어른을 앞세우는 그림책을 또 내놓으려고 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빗줄기를 맞아들여서 등줄기를 펴고 살림줄기를 손수 가꾸는 이야기를 쓰고 그리면 될 노릇입니다. 나라가 시키는 대로 ‘애국·충성·보은’에 갇히면서 이웃나라를 짓밟고 제나라마저 가두던 틀이 아파서 울던 작은사람 마음을 그대로 살피면서, 오늘 우리는 이곳에서 뭘 하는지 새길 일입니다.


  ‘서울나라’인 얼거리로 바로 이 땅에서 뭘 하는지, 어디에서 뭘 붙잡는지 뉘우칠 때라야 글도 그림도 새롭습니다. 서울이라는 끄나풀을 훌훌 털어낼 때라야, 시골빛을 노래한 두 어른이 남긴 말씨앗을 조금은 읽어내겠지요.


#雨にも負けず #宮澤賢治 #11월3일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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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요정 ㅣ 사계절 그림책
윤담요 지음 / 사계절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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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6.10.17.

그림책시렁 1895


《심심해요정》

 윤담요

 사계절

 2026.10.1.



  요즈음은 아이나 어른으니 곧잘 “심심해!” 하고 읊곤 합니다. 숱한 사람이 심심하게 하루를 보내는구나 싶습니다. 혼잣말이든 말버릇이든 심심하다고 느끼거나 여긴다면, 하루가 시시하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시들시들하기에 시시하고 심심할 뿐 아니라, 심든(힘든) 나날일 테지요. 그러면 왜 심심하고 시시하고 시들한지 헤아릴 노릇이지만, 심심하다고 외치거나 읊을 적에는 밑뿌리를 못 캐내게 마련입니다. 《심심해요정》은 심심한 아이를 찾아나서는 줄거리를 들려주는데, ‘심심한 삶’과 ‘심심한 맛’으로 파고들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일어나서 스스로 일하고 살림하고 놀이하는 나날이 아니라면, 남이 시킬 적까지 안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남이 시킬 적에는 시큰둥하게 쳐다보다가 비로소 움직이느라, 뭘 하면서도 스스로 심심하게 여기고 시들시들하게 보고 시시하게 느끼고 그야말로 심들(힘들)기에 얼른 심부름을 끝내고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테지요. 손전화를 들여다보는 모든 아이어른은 “일하지 않”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일거리에서 이야깃거리가 샘솟고, 일감에서 삶빛을 일궈요. 밥을 손수 지어서 거두고, 옷을 손수 지어서 돌보고, 집을 손수 지어서 가꾸는 길이라면 어느 누구도 안 심심합니다. ‘손수짓기’를 잊고 잃느라 몽땅 심심타령에 갇혀서 기운을 빨아먹히는 판입니다.


ㅍㄹㄴ


《심심해요정》(윤담요, 사계절, 2026)


심심한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야

→ 심심한 사람을 바지런히 찾아야

→ 심심한 사람을 꾸준히 찾아야

3


정말 심심할 때 말하는 심심해는 진짜 심심해

→ 참말 심심할 때 말하는 심심해는 참말 심심해

→ 아주 심심할 때 심심하다 말하면 그저 심심해

7


안 심심한데 괜히 말하는 심심해는 가짜 심심해

→ 안 심심한데 굳이 말하는 심심해는 거짓 심심해

→ 안 심심하면서 심심하다 말하면 시늉 심심해

7


방금 도착한 심심해요정들이 시끌시끌

→ 이제 닿은 심심해꽃님이 시끌시끌

→ 막 온 심심해작은숲이가 시끌시끌

→ 갓 내린 심심해꽃님이 시끌시끌

21


심심해를 남김없이 모아 요리를 시작해요

→ 심심해를 모아서 밥을 차려요

→ 심심해를 안 남기며 밥을 지어요

→ 심심해로 밥을 해요

25


이게 바로 진짜 심심해의 맛

→ 이제 바로 참 심심해맛

→ 이 맛이 바로 심심해

→ 이 맛이 심심해

→ 심심해는 바로 이 맛

29


그건 심심해요정들이 뿌린 심심해일 거예요

→ 바로 심심해아이가 뿌린 심심해랍니다

→ 아마 심심해꽃님이 뿌린 심심해예요

34


슬슬 심심해지지 않나요

→ 슬슬 심심하지 않나요

→ 슬슬 심심하지요 

3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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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배고프면



새벽에 일어나서 별을 봐

오늘은 05시, 05시 30분까지

하늘 가득 까맣게 별밭이다


아침에 누런쌀 씻어놓고서

이곳저곳 보낼 글 써넣고서

조금 쉬려고 누웠다가

한낮 14:05 시골버스로

읍내에 나온다


딱히 배고프지는 않다

저잣마실을 하고

읍내 어린이를 만나고

이웃 어른을 만나서


두런두런

이 말 저 말

섞는다


2026.10.8.나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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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노래꽃 . 파란



파란하늘에

파란바다를

푸르게 품는

이곳에서


하얀별빛에

하얀바람을

해맑게 안는

저곳에서


노란들빛에

노란저녁을

노래로 노는

그곳에서


너하고 나하고

나란히 날면서


2026.10.15.나무.


ㅍㄹ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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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가난한 책읽기


푸른말씨를 심는 푸른사람

― 작은배움숲 7 작은손으로 쓰는 작은노래



  국립국어원 낱말책에서 ‘습득’을 뒤적이면, 줍거나 얻는다는 뜻인 한자말 ‘습득(拾得)’하고, 배우거나 삭인다고 하는 한자말 ‘습득(習得)’ 사이에, 중국 당나라 무렵 중이라는 ‘습득(拾得)’이라는 사람이름을 뜬금없이 실어놓습니다. 그저 뜬금없고 얄궂습니다. 먼 옛날 당나라 무렵 중이라는 사람이름을 왜 우리 낱말책에 실을까요? 그런데 이처럼 중국사람이며 영국사람이며 독일사람이며 미국사람이며 일본사람이며 온누리 여러 나라 사람이름을 잔뜩 실은 국립국어원 낱말책입니다.


  곰곰이 짚자면, 주울 적에는 ‘줍다’라 하면 됩니다. 얻을 적에는 ‘얻다’라 하면 됩니다. 배울 적에는 ‘배우다’라 할 노릇입니다. 익힐 적에는 ‘익히다’라 할 노릇입니다. 이런 일을 ‘拾得’이나 ‘習得’으로 가려서 쓸 까닭이 없습니다.


  손가락을 써서 ‘집’습니다. 손아귀로 ‘잡’습니다. 바닥에 있기에 ‘줍’습니다. 바닥에 받치려고 ‘짚’습니다. 안쪽으로 모으려고 ‘접’습니다. 지나가려는데 조이는 듯한 틈이나 길이라서 ‘좁’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늘 쓰는 말마디부터 차근차근 짚으면서 생각길을 넓힐 노릇입니다. 말씨를 차분히 가다듬지 않으니 눈썰미가 좁아요. 해마다 새롭게 씨앗이 깃들어야 푸르게 우거지는 숲인데, 막상 우리 스스로 마음자리에 말씨(말씨앗)를 제대로 못 심거나 안 심기 일쑤입니다. 때로는 얄궂거나 뒤엉킨 채 어지럽히는 말치레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집밖으로 나가서 바깥일을 보노라면 숱한 사람을 마주합니다. 웬만한 분은 손전화를 쓸 적에 소리를 끄거나 소릿줄을 귀에 꽂습니다. 그렇지만 소리를 크게 틀면서 노닥거린다든지, 소릿줄은 그냥 안 챙기는 이가 곧잘 있습니다. 탈거리(버스·전철)에서 소리를 쩌렁쩌렁 키운 이가 둘레에 있으면 어수선한데, 어리건 젊건 늙건 철없이 군다면, 사람살이를 하나도 안 배운다는 뜻이로구나 싶습니다.


  늦여름이 지나고서 첫가을로 접어든 가을에 풀벌레 노랫가락이 한결 깊고 너르면서 반짝입니다. 다 다른 숱한 풀벌레는 노랫가락으로 소리너울을 일으킵니다. 이와 달리 숱한 사람은 노래길이나 노래꽃이나 노래빛이 아닌 시끌마당으로 뒹굴어요. 꽃빛하고는 먼 채 읊어대는 말이라면 마음마저 없거나 메마른 소리늪엘 테지요. 누구보다 이녁 스스로 갉는 소리불늪이라고 할 테고요.


  사람은 손수 심은 씨앗에 따라서 낟알과 열매를 거둡니다. 사람이 손수 안 심어도 바람과 새와 벌레와 비와 뭇짐승이 심은 씨앗이 익으며 낟알과 열매를 얻습니다. 푸른숲은 푸른씨가 푸른빛으로 번지고 어울리면서 모두를 살리고 밝히는 푸른터를 이룹니다. 우리 사람은 어떤 길인가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푸른말(푸른말씨)을 심는 푸른하루인지요? 우리는 사람으로서 푸른글(푸른글씨)을 나누는 푸른살림인가요?


  오늘(2026.9.14.)은 부산으로 ‘이야기마실’을 갑니다. 이웃님이 전남 고흥 시골자락에 깃든 〈숲노래 책숲〉으로 찾아와서 ‘푸른책’이며 ‘씨앗책’을 함께 읽으면서 배움자리를 누리기도 하고, 제가 어느 먼길이든 사뿐히 나서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배움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강의·강좌·강연’이나 ‘수업·공부·클래스’ 같은 이름을 붙이고 싶지 않아서 ‘이야기마실’을 가서 ‘이야기꽃’을 함께 피운다고 말합니다. 낱말 하나부터 처음부터 새롭게 지어서 나누면, 서로서로 생각을 새롭게 밝히는 말씨(말씨앗)를 마음에 심을 만합니다. 우리는 ‘좋은책(양서)’이나 ‘길책(교재)’을 곁에 두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책을 늘 새롭게 마주하면서 배우는 ‘길동무책’이자 ‘푸른책(삶과 마음을 푸르게 일구는 길을 스스로 익히는 책)’으로 삼으면 됩니다.


  “찾아가는 배움자리”이기에 ‘이야기마실’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더 많은 이웃을 한자리에 모아서 혼자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배움자리에 모인 누구나 마음을 밝히는 말을 주고받는 자리로 꾸립니다. 함께 이야기를 밝히다가 문득 쪽종이를 한 자락씩 쥐고서 손을 놀립니다. 조그마한 종이 한 바닥만큼 쪽글을 적어 봅니다. “쪽종이에 짧게 맺고 끊는 글”을 살며시 가다듬으면, 어느새 노래(시) 한 자락으로 거듭나는 길을 누리는 모임입니다.


  서로 마음을 기울여서 마주하는 자리일 적에는, 우리가 나누는 모든 말은 어느새 노래로 깨어납니다. 서로 아무 마음을 안 기울이면서 시끄럽게 떠들거나 목청을 높이거나 손전화를 켤 적에는, 그야말로 북새통이면서 소리늪입니다.


  책으로 숲을 이루기에 책숲입니다. 우리는 아직 일본말 ‘도서관’이나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못 내려놓습니다. ‘관(館)’ 같은 한자를 붙여야 크거나 좋다고 잘못 여깁니다. 그러나 ‘관(館)’은 ‘집’을 가리키는 한자인걸요.


  우리는 아직 우리말이 무슨 뜻과 결과 빛과 숨과 씨인지 제대로 못 짚거나 안 짚을 뿐 아니라, 못 가르치거나 안 가르칩니다. 한자말 ‘우주(宇宙)’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아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우주(宇宙) = 집(宇) + 집(宙)’인 얼개입니다. 집과 집을 함께 두기에 ‘누리(우주)’가 되는 얼개입니다. ‘누리’란, 셀 길이 없도록 숱한 집이 가없이 있다는 밑뜻입니다.


  그러면 ‘집’이 어떤 곳인지 헤아려야겠지요. ‘집’은 ‘지붕’만 얹은 ‘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살림을 집에서 ‘짓’습니다. 밥살림과 옷살림을 하려고 먼저 ‘집’부터 찬찬히 알맞게 세워요. ‘지음터(짓는 터전)’인 집부터 세워야, 이곳에서 누구나 넉넉하고 느긋하게 모든 살림을 손수 지어서 지내고 즐겁게 즈믄해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집에서 짓지 않으면 지겹게 마련입니다. 지으며 지낼 집이 아니라면 지치고 맙니다. 짓는 손길과 마음을 잊거나 팽개치니 짐에 파묻혀서 집니다(쓰러집니다).


  시골 옛배움터(폐교)에 마련한 작은배움숲은 푸른말로 푸른씨를 심고 나누는 배움자리이기도 하고, 노래자리이기도 하며, 이야기자리에다가, 생각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잖아 사라질 수 있다고 여기는 시골(군단위 지자체)이라면, 옛배움터를 작은배움숲으로 살리는 길을 조그맣게 열어서 조촐히 나누는 길을 찾아볼 만합니다. 이미 서울과 큰고장으로 떠난 어린이와 푸름이를 시골로 붙잡아 올 수 없어요. 굳이 붙잡으려고 할 일이 아니라고 느낍니다.


  작은씨 한 톨을 손수 심어서 푸른숲으로 가꾸는 작은길을 누구나 나누면서 넉넉히 어울려 지낼 터전을 천천히 가꾸면 되어요. 누구나 나무 한 그루를 손수 심고서 두고두고 지켜볼 작은집을 작은배움숲 곁에서 지을 수 있으면 됩니다.


  전남 고흥에서 부산으로 가려면 두나절(일고여덟 시간)이 걸립니다. 시외버스와 길에서 한참 보냅니다. 이동안 책도 읽지만 손으로 글종이에 노래도 씁니다. 버스와 길에서 쓴 노래 몇 자락을 배움자리에서 만나는 이웃님한테 드립니다. 작은시골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를 큰고장에도 푸른터가 싹트기를 바라면서 건넵니다. 작은손으로 여민 작은노래가 온고을에 오롯이 온빛으로 오달지게 온꽃으로 올망졸망 피어날 앞날을 그리면서 작은수다를 즐깁니다.


  다함께 푸른말씨로 푸른집을 일구는 푸른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집과 이웃집 모두 두런두런 이야기씨앗을 부드럽게 펴고서 받는 푸른하루를 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씩 하면 됩니다. 함께 해보면 됩니다. 파랗게 일렁이는 하늘빛으로 함박웃음을 짓는 손길로 어깨동무하면 됩니다. 2026.9.16.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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