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름벼리 빨래터 치우기 마치고


  빨래터에 낀 물이끼를 치우러 다녀온다. 사름벼리는 언제나처럼 수세미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걷는다. 사름벼리는 언제나처럼 앞장서서 걷다가 대문을 먼저 열어 준다. 동생과 아버지가 들어오면 문을 닫아 준다. 듬직하며 야무진 살림순이요 놀이순이에 일순이로구나 싶다. 4347.11.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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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놀이 3 - 자판 다리에 선 폴리



  망가져서 못 쓰는 헌 자판을 다리로 놓는다. 피아노걸상과 옷장 사이에 걸친다. 이렇게 한 뒤 폴리가 자판 다리를 지나가도록 굴린다. 한참 폴리놀이를 하던 산들보라가 폴리를 자판 다리 한가운데에 둔 뒤 다른 데에 가서 논다. 얘, 폴리가 아슬아슬한 벼랑에 걸친 다리에 혼자 있으면 무섭지 않을까. 4347.11.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놀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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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군내버스 021. 관광버스란



  나락을 다 벤 늦가을 들판을 가로지르는 군내버스를 멀거니 바라보다가 생각한다. ‘관광버스’란 무엇일까. 관광버스란 무엇을 하려는 버스인가. 다른 고장을 둘러보려고 하는 관광버스라 한다면, 바로 겨울 문턱에 선 이 늦가을에 고즈넉한 빛을 찬찬히 살피면서 누리는 버스가 되어야지 싶다. 싱싱 내달리기만 하는 버스가 아니라,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는 버스가 아니라,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버스가 될 때에, 비로소 관광버스이지 싶다. ㅎㄲㅅㄱ


(최종규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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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떼 책읽기



  올들어 네 해째 까마귀떼를 만난다. 늦가을이 깊을 무렵 마을논에 까마귀떼가 내려앉는다. 봄이나 여름이나 첫가을에는 따로 지내던 까마귀가 늦가을이 되고 겨울을 맞이하면 크게 무리를 짓는다. 까마귀가 커다란 덩이로 무리를 지으면, 까치도 차츰 모여 커다란 무리를 이룬다. 논 한쪽에 까마귀떼가 내려앉으면, 논 다른 쪽에 까치떼가 내려앉는다. 논 옆 전깃줄에 까마귀떼가 새까맣게 내려앉으면, 논 다른 쪽 전깃줄에 까치떼가 새까맣게 내려앉는다. 까마귀떼나 까치떼만큼 대단하지는 않다지만, 참새도 가을부터 떼를 지어서 다닌다. 까마귀떼나 까치떼를 보다가 참새떼를 보면 참으로 앙증맞구나 싶다.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까마귀가 까악까악 노래를 한다. 까마귀이니까 까마귀 노래를 부른다. 몸집이 큰 새인 만큼 까마귀가 부르는 노랫소리는 아주 우렁차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날아다니고, 아름드리 나무가 있으면 수많은 새가 다시금 새까맣게 내려앉는다. 나무가 휘청거린다. 나무에서 다리를 쉬던 까마귀떼는 곧 날아올라 하늘을 덮는다. 우리 집 위로도 까마귀떼가 지나간다.


  그런데 이 커다란 무리가 고작 사람 하나를 보고는 저 멀리 날아간다. 너희 무리쯤 되면 사람 하나쯤 대수로이 여기지 않아도 될 텐데. 너희 무리쯤 되면 사람 하나쯤 가볍게 덮쳐도 될 텐데. 아무쪼록 너희도 이 겨울에 굶는 아이 없이 씩씩하고 튼튼하게 잘 보낼 수 있기를 빈다. 4347.11.1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4 - 꽃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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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쪽지 2014.11.12.

 : 골이 띵한 늦가을



- 해질 무렵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우체국에 다녀올까 하다가, 혼자 가기로 한다. 저녁바람이 꽤 드세다. 아이들한테 늦가을 추위를 맛보게 해도 재미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자칫 찬바람 잔뜩 먹고 앓을는지 모른다. 그러면, 어른인 나는? 나는 이런 추위쯤 익숙하니 괜찮다. 아직 장갑을 끼지 않고 다니는 자전거 아닌가.


- 이웃 원산마을 앞을 지날 무렵 어마어마한 까마귀떼를 만난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얼추 보아도 삼백 마리는 훨씬 넘을 듯하다. 빈들에 내려앉은 까마귀떼도 많지만, 전깃줄에 내려앉은 까마귀떼도 많다. 전깃줄이 새까맣도록 내려앉았다. 어디에서 이 많은 까마귀가 한데 모였을까. 겨울을 앞두고 까마귀가 이렇게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데, 이듬해 봄이 되면 어느새 뿔뿔이 흩어진다. 네 철 내내 지내던 까치는 갑작스레 나타난 까마귀떼에 질리는지 꽁지를 빼며 날아간다. 아마 까치도 떼를 지으려고 하겠지. 까마귀떼와 까치떼는 서로 먹이를 차지하려고 실랑이를 벌일 테지.


- 면소재지에서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군내버스를 본다. 저녁 다섯 시가 넘는구나. 내 옆을 스친 군내버스가 한참 앞서 달리다가 봉서마을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본다.


- 맞바람을 잔뜩 받으며 달린다. 손은 그리 안 시리지만 골이 띵하다. 겨울바람이 멀지 않다. 올겨울에는 꼭 모자를 챙겨서 써야겠다.


(최종규 . 2014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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