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삶말/사자성어] 전채요리



 전통적인 전채요리를 준비했다 → 오랜 앞씻이를 마련했다

 오늘의 전채요리를 소개한다 → 오늘 앞밥을 선보인다

 전채요리를 시작으로 해서 → 앞가심부터 해서


전채요리 : x

전채(前菜) 서양 요리에서,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식사 전에 나오는 간단한 요리. 또는 술안주로 먹는 간단한 요리 = 오르되브르

요리(料理) : 1. 여러 조리 과정을 거쳐 음식을 만듦. 또는 그 음식. 주로 가열한 것을 이른다 2. 어떤 대상을 능숙하게 처리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차려서 넉넉히 먹을 적에 먼저 가볍게 입맛을 다시는 밥이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말 ‘오르되브르’를 일본에서 ‘전채(前菜)’처럼 옮겨서 ‘전채요리’로 쓰는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우리말로 ‘앞가심·앞씻이’나 ‘앞밥’처럼 새말을 지으면 됩니다. ㅍㄹㄴ



“메인 본방을 앞둔 심신의 준비랄까?” “저, 전채요리 같은?”

→ “한복판을 앞두고 몸마음을 가눈달까?” “아, 앞가심 같은?”

→ “맏자리를 앞두고 마음몸을 차린달까?” “아, 앞씻이 같은?”

《집주인은 사춘기! 2》(미나세 루루우/장지연 옮김, 대원씨아이, 2016) 1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
고이시 유카 지음, 현승희 옮김, 신쵸사 협력 / 서교책방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노래 그림꽃 / 숲노래 만화책 . 만화비평 2026.8.8.

틀린글씨를 안 찾습니다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

 고이시 유카·신쵸사

 현승희 옮김

 서교책방

 2026.7.31.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를 읽었습니다. 두걸음을 마저 장만해서 읽어야 할는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쓰기와 글손질을 서른세 해(2026해) 이어온 나날이니 아직 짧습니다. 쉰 해쯤은 쓰고 손질한 뒤에라면 글결을 놓고서 말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이 책을 펴면, 134쪽 둘쨋칸에 “천히 해도 되니까”처럼 나옵니다. ‘천천히’에서 ‘천’이 빠져서 ‘천히’로 찍힙니다. 146쪽짜리 그림꽃책인데 12800원입니다. ‘문학동네·애니북스·미우’에서 내는 그림꽃책보다 값이 세군요. 그림꽃책을 마흔 해 남짓 사읽은 사람으로서 책값이 퍽 아쉽습니다.


  요즈음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는 책손이 책을 사읽다가 틀린글씨가 보여서 펴냄터로 알리면, 고맙다는 뜻으로 다른 책을 몇 자락 보내주었다지요. 엮음이나 다듬이라 하더라도 틀린글씨를 놓칠 수 있습니다. 펴냄터에서 미처 틀린글씨를 못 짚어냈기에 ‘나쁜책’이나 ‘틀린책’을 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사람일(사람이 하는 일)’일 뿐입니다. 저는 책 한 자락을 내놓기까지 으레 서른벌쯤 되읽고 되짚습니다만, 이렇게 읽고 짚어도 놓치는 틀린글씨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제가 쓴 책에 나온 틀린글씨를 알려주는 책이웃이 있으면 노래(시) 한 자락을 새로 쓰고서 다른 책과 함께 보내곤 합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옳은뜻’을 펼 일이 없습니다. 요즈음은 ‘옳은뜻(정의로운 주장·주제)’을 담은 책이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지난날에는 ‘옳은뜻’이 아닌 ‘삶’을 담은 책이 새롭게 태어나면서 누구나 함께 읽는 책마을이었다고 느낍니다. ‘삶’도 ‘옳은뜻’도 누구나 다르게 마련입니다. ‘삶’을 담은 ‘삶책’이라면, 인문책이건 그림책이건 만화책이건 노래책이건 어린이책이건 빛꽃책이건 무슨무슨 책이건, 다 다른 삶을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눈길로 어떻게 바라보며 살아냈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 다른 손길로 갈무리하지요. ‘옳은뜻’을 담은 ‘옳은책’이라면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틀렸다고 하는 줄거리로 가득합니다.


  밥짓기를 모른다면 눈금과 무게를 하나씩 달고 잴 테지요. 밥짓기가 익숙하다면 눈금이나 무게를 안 달고 안 잽니다. 쌀을 일어서 솥에 앉힐 적에 쌀알을 세거나 무게를 잰다든지, 물을 또 무게를 재는 분도 더러 있을 텐데, 한두 달쯤 지나고 한두 해쯤 지난 사람이라면 으레 무게를 안 재고서 밥을 끓입니다. 눈어림이 거의 맞거든요. 우리나라 밥이나 국이나 곁밥은 눈금으로는 따지거나 재기 어려운 손끝이 닿아서 태어납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손맛이 달라요. 이와 달리 반죽을 하는 빵이라면 눈금을 꼼꼼히 잴 테지요. 빵맛은 집집마다 얼마나 다를까요?


  우리말은 말끝을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결을 살짝 바꿉니다. 토씨를 붙이는 매무새에 따라 다시금 결을 살짝 바꿉니다. 우리말결을 차분히 익히면서 글쓰기와 글손질을 할 적에는 말결과 말빛이 다 다릅니다. 이와 달리 일본말씨나 일본한자말이나 영어나 옮김말씨를 그냥그냥 따올 적에는 글꾼마다 글빛이나 글결이나 글맛이 얼마나 다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장마다 사투리가 다릅니다. 다 다른 고장에서 나고자란 사람들은 다 다른 고장에 따라서 다른 터전과 날씨와 삶과 살림과 사람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예부터 서울도 ‘마을’이기에 서울말씨도 사투리였는데, 이제는 ‘서울사투리’를 찾아볼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서울 은평’이나 ‘서울 서초’나 ‘서울 동대문’이나 ‘서울 종로’마다 다른 말결이나 글결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싶습니다. 서울 동대문에서도 회기와 이문과 석계가 다를 텐데, 이처럼 다 다른 마을결을 살릴 만한 글쓰기와 글손질을 품는 글꾼은 몇쯤 남았을까요.


  말을 옮기는 글입니다. 글부터 태어나지 않습니다. 말이 없으면 글이 없습니다. 글손질을 하거나 글쓰기를 하는 분이라면 하루에 한 마디조차 입벙긋을 안 하며 보내는 날도 있을 테지만, 우리가 입벙긋을 안 했더라도 ‘말’이 있기에 “말을 그려낸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은 어디에서 비롯할는지 더 살필 노릇이에요. 누구한테나 다 다른 ‘삶’이 있지 않다면 말이 없어요. 먼저 삶이 있기에 “삶을 나타낼 말”을 하고 나누고 옮기고 듣고 들려줄 수 있습니다.


  글쓰기란 ‘말옮기기’이면서 ‘삶옮기기’인 얼개입니다. 글손질이란 “말을 옮기며 차근차근 맞아떨어지는지 짚”는 손길입니다. 또한 글손질이란 “삶을 담아낸 말을 옮기며 차근차근 ‘삶’부터 새롭게 다시 짚고 살피면서 가다듬”는 손빛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삶이 흐르듯 말이 흐르고, 말이 흐르면서 글이 흐릅니다. 우리가 곁에 두는 낱말책(사전)은 늘 새롭게 흐르는 삶과 말을 글로 새삼스레 옮기면서 물려주는 그릇이자 그루라고 할 만합니다. 그릇은 비워 놓아야 담습니다. 그루는 든든해야 줄기를 올리고 가지를 뻗어서 잎을 내고 꽃을 피운 뒤에 씨앗과 열매를 내놓습니다. 낱말을 담는 그릇이자 그루인 낱말책부터 차근차근 새기고 읽어내는 눈썰미라면, 삶을 말로 담아서 글로 옮기고서 가다듬는 길이 꽤나 즐겁다고 여길 만합니다. 또한 “멈춰서 고인 낱말책”이 아니라 “글쓴이 스스로 늘 새롭게 짓고 빚고 엮는 낱말을 꾸준하게 담는 ‘살아숨쉬는 낱말책’을 함께 엮”을 테고요.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 끝자락을 보면, 일본글과 한글을 나란히 적은 대목이 있습니다. 한글판을 기뻐하는 일본글인데, 일본글에는 ‘の’가 드문데, 한글에는 ‘-의’가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 책만 하더라도 일본말 ‘교료’라든지 ‘적자대조’를 그냥 한글로 적습니다. 이런 옮김글이라면 ‘무늬한글’이자 ‘무늬옮김’입니다. 겉으로 훑어서는 속마음도 말빛도 삶도 못 읽거나 스치고서 끝나겠지요. 속으로 파고들어서 우리 삶으로 녹여낼 낱말을 하나하나 짚고 새기고 생각할 적에라야 비로소 ‘옮긴다’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군말을 붙이자면 우리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89쪽)” 수 없습니다. “마음일” 뿐입니다. 글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마음이면 됩니다.


  글쓴이와 엮음이와 다듬이 모두, ‘이야기’를 하면서 새롭게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가꿉니다. 글줄하고도 이야기하고, 글줄로 옮긴 글쓴이하고도 이야기하고, 글쓴이가 옮긴 삶하고도 이야기하고,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살아가는 마음을 틔워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문득문득 손길을 주고받아서 책 한 자락이 태어나서 오래오래 흘러갑니다.


ㅍㄹㄴ


“우리 회사는 교열부에만 50명이 있어 … 백 년 뒤에도 남을 한 권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야.” 18, 19쪽


“내가 가진 사전만 믿고 바로 의문을 제기하는 건 좀 넌센스지. 저자는 의도가 있어서 이 표현을 택한 걸지도 모르니까.” 29쪽


“작품에 감동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을 것, 그렇기에 작품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싸울 것. 난 그게 교열의 본래 자세가 아닐까 싶어.” 69쪽


“저자의 마음, 편집자의 마음, 독자의 마음은 사전을 들춘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냐. 남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교열자야말로 대화를 해야 해.” 73쪽


‘나 오늘 한 번도 말을 안 했어. 전에는 그런 날도 제법 있었지만, 미즈가키 씨가 온 다음부턴 대화를 많이 하게 됐지.’ 126쪽


#こいしゆうか #新潮社 #くらべてけみして校閱部の九重さん


+


《비교하고 검토하는 교열부의 쿠쥬 씨 1》(고이시 유카·신쵸사/현승희 옮김, 서교책방, 2026)


책을 출간하는 데 관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 책을 펴내려고 애쓴 사람들 이름을 적는다

→ 책을 펴낼 때 함께한 사람들 이름을 적는다

5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크게 관여하면서도 이름을 알리지 못하는 일도 존재한다

→ 한 자락 책을 내느라 크게 힘쓰는데 이름을 알리지 못하기도 한다

→ 책 한 자락을 짓는 길에 함께하는데 이름을 알리지 못하기도 한다

5


가끔씩 울컥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 가끔 울컥하는 대목이 있더라고요

→ 가끔 울컥하는 곳이 있더라고요

11


한자사전을 만든 레전드야

→ 한자말꽃을 낸 별꽃이야

→ 한자말집을 엮은 한별이야

31


작가님마다 버릇이 있어서 익숙해지면 눈에 들어와

→ 글님마다 버릇이 있어서 익숙하면 눈에 들어와

→ 다들 버릇이 있어서 익숙하면 눈에 들어와

39


손글씨 원고 읽기의 달인인

→ 손글씨를 빼어나게 읽는

→ 손글씨를 잘 읽는

→ 손글씨를 척척 읽는

40


달인 OG인제 지금은 프리 교열자셔

→ 빼어난 언니인데 이젠 혼자 손보셔

→ 뛰어난 분인데 요샌 혼자 다듬으셔

41쪽


이렇게 자필원고를 읽는 원고 대조 작업이 줄어든 건 사실이니까

→ 이렇게 손글씨를 읽으며 견주는 일은 줄었으니까

→ 이렇게 손글을 읽으며 맞대는 일은 줄어들었으니까

45


저자교에 써주신 거예요?

→ 글님손질에 써주셨어요?

→ 글보고침에 써주셨어요?

50


생각하자마자 본인 등판이냐

→ 생각하자마자 제발로냐

→ 생각하자마자 먼저 오냐

57


내가 교열계의 이단아라고 불린 건 알고 있나

→ 나를 글손질밭과 딴판으로 보는 줄 아나

→ 내가 손질밭을 깼다고 여기는 줄 아나

71


야히코 씨의 대단한 점은

→ 야히코 씨는 대단한데

→ 야히코 씨는 대단하니

→ 야히코 씨는 대단하다

76


홍미 위주로 찾았는데 찾아진 오탈자

→ 재미 삼아 찾는데 찾아낸 글잘못

→ 놀며 찾는데 찾아낸 틀린글씨

99


모두 각오와 책임을 지고 최종 교료를 하지

→ 모두 다부지게 힘써서 마감을 하지

→ 모두 당차게 맡으며 끝을 내지

100


가령, 모델인 가게를 처음부터 특정지을 수 있게 썼더라면 그거야말로 교열이 나설 차례였겠지

→ 이를테면 글감인 가게를 처음부터 짚을 수 있게 쓴다면 그때야말로 다듬이가 나설 때겠지

→ 뭐 글에 나온 가게를 처음부터 알아챌 수 있게 쓴다면 그야말로 손질일꾼이 나서야겠지

112


지금 일부러 도치법 쓰신 거예요?

→ 이제 일부러 말바꾸셨어요?

→ 문득 일부러 뒤바꾸셨어요?

128


초교 교정지와 재교 교정지를 대조해서 확인하는 게 바로 적자 대조야

→ 애벌 손질글과 두벌 손질글을 함께 살피는 맞살피기야

→ 첫 손질글과 둘째 손질글을 맞대는 함께짚기야

→ 처음 손질하고 나중 손질한 글을 짚는 서로보기야

133


이야기 중반쯤에서 생각났다는 듯 한자 병기를 하는

→ 이야기 사이에 떠올랐다는 듯 한자를 같이쓰는

→ 이야기 사이에 떠올랐다는 듯 한자를 나란히 적는

136


손목에 건초염 생기겠어

→ 손목에 심줄멍 생기겠어

→ 손목이 녹초가 되겠어

→ 손목이 쑤시겠어

→ 손목이 결리겠어

137


신쵸사의 편집자분들과 교열자분들의 전폭적인 협력을 받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 신쵸사 엮음이와 다듬이가 아낌없이 도와서 끝냈습니다

→ 신쵸사 엮음일꾼과 손질일꾼이 힘껏 도와서 마무리했습니다

144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과 노래를 쓴다. 숲을 품은 시골에서 산다. 살림을 짓는 하루를 가꾼다. 《푸른말로 글빛노래 시 따라쓰기》, 《열두 달 소꿉노래》, 《풀꽃나무 들숲노래 동시 따라쓰기》,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를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한여름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기에 서울 곳곳을 알지는 않아. 으레 다니는 곳만 다니지. ‘서울사람’이기에 서울 곳곳을 한이웃으로 삼으면서 어울리며 즐거울 길을 찾아나서지는 않아. 또한 ‘서울곁’이나 ‘서울밖’을 한나라 한이웃으로 삼으려는 뜻이 없을 수 있어. 푸른별 모든 나라를 한누리 한이웃으로 못 삼기도 하고.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기에 논밭을 다 알지는 않아. 모심개(이앙기)와 벼베개(콤바인)가 큰소리로 울리며 지나가는 모습을 얼핏 보았어도, 논을 어떻게 갈거나 벼를 낫으로 어찌 베는지 영 모를 수 있어. 시골사람이기에 논거미나 우렁이를 알지는 않고, 시골사람이기에 나무나 나비를 사귀지는 않아. 숱한 사람들은 무늬로만 살아가기 일쑤야. ‘서울무늬’에 ‘시골무늬’를 입어. ‘가시내무늬’에 ‘사내무늬’도 입지. 무엇보다도 사람이면서 ‘사람빛’이 아닌 ‘사람무늬’로 기울기까지 해. 말을 하지만 ‘말무늬(말시늉)’ 같고, 글을 쓰지만 글무늬(글시늉) 같아. 일을 한다지만 일무늬(일시늉) 같기까지 하고, 놀거나 노래를 한다지만 놀이무늬(놀이시늉)에 노래무늬(노래시늉) 같구나. 높거나 낮은 마을이 없어. 좋거나 나쁜 나라가 없어. 훌륭하거나 모자란 일이 없어. 잘나거나 못난 사람이 없지. 스스로 사람이라는 빛을 바라보면서 알아보려고 할 적에 천천히 잠들다가 문득 눈뜨고서 깨어나. 잠들어서 생각할 틈이 있어야 하고, 눈뜨고서 둘레를 본 다음 온누리를 살필 틈이 있어야 해. 깨어난 뒤로는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고서 길을 찾아내는 틈이 있어야 하고. 자, 한여름논을 보렴. 첫여름하고 어떻게 다를까? 늦여름하고 어떻게 다를까? 논에 벼만 있니? 논에 숱한 목숨붙이와 새가 어울려서 살아가니? 한여름 뙤약볕을 반기는 논을 네 마음에 담아 봐. 2026.7.23.나무.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숲노래 삶읽기 / 숲노래 마음노래

하루꽃 . 구원



심지 않은 씨앗은 싹트지 않아. 심은 씨앗이기에 싹터. 심지 않은 씨앗이 싹트기를 바라기에 헛물을 켜. 어떻게 심을는지 모르는 채 아무렇게나 심으니, 아예 씨앗이 죽기까지 해. 네(내)가 바라보는 곳에 네(내)가 있어. 네(내)가 바라보는 곳이 아니라면 네(내)가 있을 일이 없어. 어떻게 가든 누구나 ‘먼저 어디에 있는지’부터 알아야 하고, ‘이제 어디로 갈는지’ 그려서 똑똑히 알아야 하지. 모르는 곳에 왜 가겠어? ‘어디’를 그리지 않았으니까 ‘아무곳’이나 가게 마련이고, ‘아무곳’이란 뭔지 모르는 투성이일 테지. 낯설기에 모르지 않아. 낯설기에 차분히 둘러보면 하나씩 알아보면서 눈길을 틔울 수 있어. 처음이기에 모르거나 못 하지 않아. 씨앗을 심지 않은 마음이라서 모르거나 못 해. 씨앗을 심고서 차분히 돌보는 삶이기에, 처음이든 낯설든 어느덧 익숙하고, 바야흐로 씨앗이 싹터서 숲을 이루는 길에 이른단다. 누가 도울는지 생각하렴. 네(내)가 그리지 않은 사람은 도울 수 없어. 이웃손길을 바란다고 할 적에는, 이웃이 누구인지 그릴 노릇이고, ‘이웃이 펼 손길’도 낱낱이 그릴 노릇이야. 스스로 할 적에도 그리고, 이웃을 바랄 적에도 그리지. 비를 그리지 않는 곳에 비가 내릴 수 없어. 비를 반기지 않는 곳에 비가 알맞게 오는 일이 없어. 비를 노래하지 않으니 비없는 날인 가뭄일 테고, 애써 내리는 비를 사랑하지 않으니 벼락비가 세차게 퍼부으면서 휩쓸고 말아. 돕는 빛은 늘 모든 사람 눈망울에서 비롯해. 누가 어떻게 언제 왜 어디에서 도울는지 너(나) 스스로 그릴 노릇이야. ‘하늘’이 돕기를 바라면, 네(내)가 스스로 “하늘이 되”면 돼. ‘너(나)’가 스스로 하늘이 되지 않으면, 너는 하늘빛(하늘도움)을 받을 수 없어. 너(나)는 여태 늘 ‘빛’이었고, 오늘도 빛이며, 앞으로도 빛이야. 모든 사람이 저마다 빛인 줄 알아볼 적에 서로 돕는단다. 2026.7.28.불.


ㅍㄹㄴ


글 : 숲노래·파란놀(최종규). 낱말책을 쓴다. 《열두 달 소꿉노래》,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쉬운 말이 평화》, 《곁말》,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이오덕 마음 읽기》을 썼다. blog.naver.com/hbooklov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숲노래 우리말

[영어] 레지던트resident



레지던트(resident) : [의학]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인턴 과정을 마친 뒤에 밟는 전공의의 한 과정

전공의(專攻醫) : [의학] 전문의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병원에서 일정 기간의 임상 수련을 하고 있는 의사. 인턴과 레지던트를 이른다 ≒ 수련의

수련의(修鍊醫) : [의학] = 전공의

resident : 1. (특정 지역) 거주자[주민] 2. (호텔) 투숙객 3. 레지던트 (수련의)

レジデント(resident) : 1. 레지던트 2. 수련의(修鍊醫). *인턴 제도에 대신하는 제도



영어 ‘레지던트’를 우리나라에서는 한자말로 ‘수련의·전공의’나 ‘입주작가’를 가리킬 적에 곧잘 쓰는데, 워낙 영어로는 ‘머물다(머무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마을’에서 ‘깃들’며 ‘지내는’ 얼거리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봄터나 글터에서 일하는 사람을 가리킬 적에는 ‘돌봄배움이’나 ‘작은돌봄이·작은돌봄지기’로 다듬을 만합니다. ‘작은이·작은씨·작은씨앗’이나 ‘풋내기·풋솜씨·풋돌봄이·풋돌봄지기’로 다듬습니다. ‘햇것·햇내기·햇물·햇돌봄이·햇돌봄지기’로 다듬고, ‘마을지기·마을사람·마을내기’로 다듬을 만해요. ‘깃새지기·깃새내기·깃새님·깃새꾼·깃새글꽃·깃글내기·깃글꾼·깃글이·깃글님·깃글꽃’으로 다듬어도 됩니다. ㅍㄹㄴ



젊은 레지던트 사내 범칙금 통지서를 교부하듯

→ 젊은 수련의 사내 범칙금 통지서를 주듯

→ 젊은 배움의사 사너 범칙금 통지서를 물리듯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이종형, 삶창, 2017) 66쪽


레지던트 마지막 연차에 일어난 일은

→ 배움돌봄이 마지막해에 일어난 일은

→ 작은돌봄이 마지막에 일어난 일은

《인생이라는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는 법》(리 립센설/김해온 옮김, 샨티, 2019) 63쪽


레지던트 시절 내내 위와 같은 푸념을 종종 마주했다

→ 작은돌봄이 무렵 내내 이 같은 푸념을 곧잘 들었다

→ 풋돌봄이 즈음 내내 이 같은 푸념을 이따금 들었다

→ 햇돌봄이 때에 내내 이 같은 푸념을 익히 들었다

《날마다, 응급실》(곽경훈, 싱긋, 2022) 40쪽


담당 레지던트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이 아니었다

→ 그곳 작은돌봄이는 그다지 따순 사람이 아니다

→ 그쪽 배움돌봄이는 그다지 착하지 않다

→ 거기 깃새내기는 그다지 너그럽지 않다

《밑바닥에서》(김수련, 글항아리, 2023) 3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