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 감성동화 3
예수스 발라즈 지음, 프란시스코 인판테 그림 / 푸른나무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내 좋은 삶을 찾는 길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 예수스 발라즈·프란시스꼬 인판떼, 《이자벨》(푸른나무,2000)


 학예회이든 성탄절잔치이든 무슨무슨 놀이마당이든 왜 아이들을 무대에 올려놓고 구경거리로 삼는지 알쏭달쏭합니다. 처음부터 아이들을 구경거리로 삼으려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루 지나고 이틀이 가며 아이들을 무대에 올리는 일을 으레 버릇처럼 삼습니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살피지 않고, 아이들 마음이 어떠한가를 헤아리지 않습니다.

 무대에는 어른들이 올라야 합니다. 무대는 어른들이 꾸미고, 무대 안팎에서는 어른들이 구경하면 됩니다. 그러나 무슨무슨 행사를 할라치면 으레 아이들을 노리개처럼 삼아 구경거리로 여겨 버릇합니다. 올림픽이든 무슨 대회이든 똑같습니다. 축하공연이든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을 무대에 올리고 싶으면, 어른도 저마다 무대에 오를 노릇입니다. 모든 사람이 골고루 무대에 오를 때에, 아이들은 남우세스럽지 않다 여기며 무대에 오를 만합니다. 잘나고 못나고를 가리는 무대가 아니라, 서로서로 오붓하게 어우러지면서 얼싸안는 무대라 한다면 아이이고 어른이고 가리거나 손사래칠 까닭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무대란 쓸모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무대가 아니라, 마당판이 있으면 넉넉합니다. 언제라도 들고 나면서 누구라도 들고 나는 마당판이 어울립니다. 다 함께 주인공이 되면서 서로서로 따숩게 바라보는 마당판이 알맞습니다.


..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그때 모든 아이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이자벨은 점점 더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학기에도 이자벨은 손톱을 물어뜯어 속살이 다 나올 지경이었지요. 이것은 이자벨이 걱정이 될 때 하는 버릇이었답니다. 방학이 다 끝나도록 손톱은 다 자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자벨은 앞으로 다가올 파티가 걱정이 되어서, 또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습니다 ..  (16쪽)


 무대에 올린답시고 아이들을 몇 달 동안 길들이는 짓 또한 끔찍합니다. 저는 운동회라는 놀이잔치를 마련해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는 일은 좋아했습니다. 그렇지만 ‘운동회 연습’은 신물이 나도록 싫었습니다. 남자는 기계체조 여자는 부채춤이라는 틀을 지어 봄부터 가을까지 날마다 몇 시간씩 연습을 시키니 죽을 맛입니다. 놀 겨를이 없고, 이 연습을 하며 숱하게 욕을 먹고 매를 맞아야 했습니다. 누가 즐기라는 운동회이고, 누구한테 즐거우라는 운동회였을까요. 운동회 기계체조와 부채춤은 지난날 일제강점기 군대사열하고 다를 구석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군대사열을 했군요. 중·고등학교는 군대가 아닌 학교였으니 ‘교련사열’이라는 이름이었으나, 아이들을 반듯하게 줄 세워서 노래에 맞추어 발소리 쿵쿵 내며 똑같은 모양새로 걷도록 하면서 교장 앞을 지나갈 때에 경례를 붙이도록 하는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자꾸자꾸 뺑뺑이를 돌리다가는 얼차려를 베푸는 ……. 조금 더 헤아리니,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가 1987년에 마칠 때까지, 국민학교에서도 한 주에 월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 아침모임을 할 때면 으레 군대사열을 했습니다. 군대사열을 잘 못하면 운동장에서 발길질이 춤춘다든지 손찌검이 나부낀다든지, 교장이 마이크로 저기 아무개 학년 아무개 반 몇째 줄 아이 구령대로 나오라 부른다든지 하면서, 몹시 끔찍했습니다. 언제나 한 주 첫머리를 끔찍하게 열고, 한 주 마지막을 끔찍하게 닫았어요.


.. ‘파티가 열리는 날, 감기에 걸려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자벨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봐, 아프기를 바란다고 당장 몸이 아파질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래서 이자벨은 노래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20쪽)


 다른 군부대는, 또 요즈음 군부대는 어떠한지 모릅니다. 제가 군대에 끌려가서 짓밟혀야 했던 1995∼1997년에 제가 있던 군부대에서는 군대사열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군부대에서는 알통구보라는 이름으로 ‘웃통 벗고 새벽 달리기’를 시켰다지만, 제가 있던 군부대에서는 이런 달리기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달릴 만한 연병장이 딱히 없는 깊디깊은 산골짜기이기도 했으나, 한여름에도 밤에 경계근무를 서는 사람은 두툼한 야상에 깔깔이를 입지 않으면 추위에 떨어야 했고, 겨울에 내린 눈은 부처님오신날이 되어야 비로소 녹으며, 겨울에는 영 도 밑으로 이십 도쯤 되는 날씨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날마다 바람이 몹시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었기에, ‘대대장 지시사항’으로 ‘아침점호 안 하는 날’이 꽤 잦았습니다. 영하 이십 도에 풍속 이십 미터에다가 둘레는 온통 눈더미인데 사람 잡을 짓을 섣불리 하지 않습니다. 겨울이면 아침부터 밤까지 으레 하는 일은 눈치우기였습니다. 여름이면 새벽부터 밤까지 흔히 하는 일은 물골내기였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양구 가장 깊은 산골짜기 군부대에서 하나만큼은 모질게 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하는 혹한기훈련을 비롯해, 산골짝에 있다가 주둔지로 내려오면 한 해 내내 시달리듯 이어지는 갖가지 훈련 때 대대장과 연대장이 번갈아 찾아오며 마련해 주는 군장검사.

 군대사열이란 쿵쿵 발소리를 내며 팔을 높이 올리며 걷다가 경례를 붙이는 일이지만, 군장검사는 40킬로그램짜리 완전군장을 꾸역꾸역 싸서 등에 짊어지고 소총과 탄약을 챙겨 든 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꼼짝 할 수 없이 서 있는 짓입니다. 꼼짝 못하게 세워 놓고 아무나 콕콕 집어 군장을 끌르라 해서 물품을 빠짐없이 챙겨 들고 있는가를 살핍니다. 이동안 모두들 눈썹 하나 움직이지 못합니다. 완전군장을 한 채 열 시간 내리 쉬지 않고 멧자락 따라 길 없는 길을 걷는 일이 훨씬 쉽지,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꼼짝 못하게 세워 놓는 일은 피를 말리고 허리가 나가게 하는 짓입니다.

 우리들 살아가는 이곳 남녘나라는 평화가 아닌 전쟁이 감돌기 때문이겠지요. 남녘과 북녘은 누가 먼저 치느냐 누가 먼저 서로를 차지하느냐를 놓고 다투기 때문이겠지요. 군대힘이든 경제힘이든 남녘나라는 진작부터 북녘나라를 앞질렀을 뿐 아니라, 북녘나라는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는데, 이런 판에도 남녘나라이든 북녘나라이든 사회 얼거리는 차디차고 춥디춥습니다. 군부대 살림을 북돋우는 데에 더 큰 돈을 쏟아붓고, 젊은이나 어린이 모두 군부대 훈련이나 틀에 길들도록 내몰립니다. 제식훈련 교련훈련은 끊이지 않고, 살가우며 사랑스러운 어울림마당이나 놀이마당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축제이니 운동회이니 있지만, 막상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거나 즐기는 잔치마당이 되지 못합니다.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홀가분한 만남터로 거듭나지 못합니다. 올림픽이니 월드컵이니 있으나, 정작 사람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운동경기가 아닙니다. 그예 구경만 하는 돈놀음판입니다.

 그림책 《이자벨》을 생각합니다. 《이자벨》에 나오는 이자벨이 두렵게 느끼는 ‘파티’는 오늘날 한국땅처럼 아이들을 구경거리로 삼으며 무대에 올리는 그런 어수룩한 학예회가 아닙니다. 신나게 즐기는 놀이마당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나는 놀이마당일지라도 ‘의무처럼’ 노래를 꼭 불러야 한다면 무거운 짐이 됩니다. 부르고 싶으면 부르고, 부르기 싫으면 안 부르는 흐름이라면 이자벨이 두려워 하거나 걱정으로 짓눌리지 않겠지요. 가락을 못 맞추거나 높낮이가 엉터리라 하더라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동무를 보면서, ‘어머나, 저렇게 노래를 부르네. 그런데 참 즐겁게 부르는구나. 나도 한번 불러 볼까.’ 하는 마음이 샘솟는다면 참 좋겠지요. 언제나 스스로 우러나도록 이끌 때가 즐거우면서 좋으니까요.

 학교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 공부이든 학원 공부이든 배우려 하는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어요’ 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야 참다이 배울 만합니다. ‘경쟁에 밀린다’는 말이나 ‘대학교 가야지’ 하는 말로 아이들을 닦달해서는 참다이 배울 수 없습니다.

 스스럼없는 삶이어야 하고, 거리끼지 않는 삶이어야 합니다. 살가운 삶이어야 하며, 사랑스러운 삶이어야 합니다.

 자랑하거나 내보이는 삶이 아닙니다. 뽐내거나 우쭐거리는 삶이 아닙니다. 1등이 되거나 2등으로 뽑히는 삶이 아닙니다. 등수도 숫자도 없는 삶입니다. 나한테 좋을 자리를 찾는 삶이요, 나한테 기쁠 꿈을 키우는 삶입니다.

 그림책 《이자벨》에서 이자벨은 마침내 맑으며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이자벨은 이자벨이 아끼고 사랑하는 멍멍이한테서 기운을 얻어 이자벨 노래결과 마음결과 삶결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씩씩하게 주먹을 불끈 쥡니다. 상을 탄다거나 우쭐댄다거나 콧대를 높인다거나 잘나 보인다거나 하려는 노래부르기가 아닌 줄 비로소 알아챘기에 다부지게 노래를 부릅니다. 내 좋은 삶을 찾으면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르든 꾀꼬리 소리로 노래를 부르든 한결같이 어여쁩니다. (4343.12.13.달.ㅎㄲㅅㄱ)


― 이자벨 (예수스 발라즈 글,프란시스꼬 인판떼 그림,유동환 옮김,푸른나무 펴냄,2000.10.29./52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읍내 책방 옆을 스쳐 지나간다. 읍내 장마당을 구경하다가 문득 돌아본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랑 '여성조선'이랑 '레이디경향'이랑 '주부생활'은 고맙게 한글로 이름을 적어 준다. '月刊 朝鮮'은 한자이지만 '여성조선'만큼은 한글이다. 아마, 아이들하고 청소년한테 읽히는 잡지를 만든다 할 때에도 한자나 영어는 안 쓰려 하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스물네 시간 열어 놓는 햄버거집. 한국 아이들이 아니라 외국 아이들 보라고 이렇게 큼직하게 붙어놓았겠지. 아무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거의 어느 곳이나 '커피'가 아닌 'coffee'를 팔 뿐 아니라, '커피가게'가 아닌 'coffee shop'인데, 거피를 파는 구멍가게가 한 곳 있었구나.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동경괴동 1
모치즈키 미네타로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3권 느낌글은 따로 쓸 생각이기 때문에, 1권과 2권 이야기만 적바림합니다.) 



 손 쓸 수 없는 바보스러운 누리
 [만화책 즐겨읽기 10] 모치즈키 미네타로, 《동경괴동東京怪童 (1∼2)》



 기계가 아닌 사람이 살아가는 이곳입니다. 기계가 아닌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는 이 누리입니다. 기계가 아닌 아이들이 태어나서 무럭무럭 자라는 이 나라입니다. 기계가 아닌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며 꽃과 열매를 맺기에 비로소 먹을거리를 얻는 우리 터전입니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가르치고, 기계가 아닌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 마을입니다.

 그렇지만 이곳 이 터 이 자리를 돌아볼 때에는 사람이 잘 안 보입니다. 온통 기계투성이입니다. 사람이 다루는 기계라 하지만, 사람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맨 기계들뿐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이라 하지만, 정작 사람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누리에 자리하는지 아리송합니다.

 이제 와서 헤아린다면 퍽 우스운 이야기요, 이 우스운 이야기마저 사람들은 차츰 잊는다고 느끼는데, 예부터 한겨레 사람들은 ‘마음이 따스하며 사랑이 깊은 겨레’라 일컬었다고 합니다. 이웃을 아끼며 서로를 포근히 보살피는 겨레라 했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곰곰이 헤아리면서 우리네 역사를 거슬러 봅니다. 참말 이 말이 맞을까 싶기도 하지만 틀리지도 않으리라 느낍니다만,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에는 따스하거나 사랑 깊은 사람은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정치권력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서로 이웃 나라나 겨레하고 싸움을 벌였고, 파벌을 이루었으며, 농사짓는 사람들 삶하고 동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을 신분으로 가르고 계급으로 나누었습니다. 많이 배우거나 많이 가지거나 많이 누리는 사람들치고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은 퍽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적게 배우거나 못 배운 사람들, 적게 가지거나 못 가진 사람들, 적게 누리거나 못 누리는 사람들한테서 따스하거나 너그러운 모습을 마주한다고 느낍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이나 사대부한테서 밥 한 그릇 얻지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임금님 사는 궁궐은커녕 궁궐 둘레로 발을 들이지조차 못합니다. 사대부 으리으리한 집 대문을 두드리지도 못합니다. 배고픈 거지는 당신하고 비슷한 가난한 사람들 살림집 문을 두드리며 밥 한 그릇 얻습니다. 배고픈 사람은 배고픈 사람이 돕고, 마음 아픈 사람은 마음 아픈 사람이 돌봅니다.

 지난날 이 나라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는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며 밑바닥이었다고 느낍니다. 이리하여 너나 없이 밑바닥인 사람들이 서로를 보듬고 도우며 사랑하는 가운데 따스함과 넉넉함이 꽃피었다고 느낍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너나 없이 배가 부를 뿐 아니라 돈이고 이름이고 힘이고 많이 움켜쥘 뿐더러 많이 누리기 때문에, 따스함이랑 넉넉함을 잃는구나 싶습니다.


- “그래, 넌 사실밖에 말 못하지. 많이 힘들 거야. 하지만 이게 현실이야.” “저 나무, 싫어. 여전히 죽고 싶은 기분이야. 내 인생은 엿 같아.” “그렇지 않아. 다 왔다.” (1권 50∼51쪽)
- “나도 알아. 다들 이유가 있다는 것쯤은! 나도 나쁜 뜻은 없어. 입이 더러운 건 내 병이야. 하지만 약으로 낫는다며.” (1권 63쪽)
- “그림에도 자주 나오잖아. 고흐도 저 측백나무가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렸어.” “고흐. 더 잘 듣는 약을 줘. 다 토했더니 효과가 없잖아. 물리요법으로는 해결 안 나는 병이라니까.” “바보한테 듣는 약은 없어. 그야 네 병은 생각한 것을 숨김없이 다 입 밖으로 뱉는 증상이긴 하지. 하지만 결국 네멋대로 사람을 바보 취급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자신의 미숙함을 자각하는 인간은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법이야. 본인은 원하지 않더라도 누구든 다들 마음속의 부담을 가지고 있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무리하게 살지 말고 솔직하게 지금 그대로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아마도 그 방법밖에 없을 거야.” (1권 87∼88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생각합니다. 모두 세 권으로 마무리된 작품이고, 일본책에 붙은 이름은 “東京怪童”입니다. “도쿄에 사는 괴물 아이”라는 뜻입니다. “도쿄에 사는 끔찍한 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볼썽사납거나 못 말린다거나 짜증스럽거나 미친 아이라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아이들, 일본 도쿄에서 괴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정신병원과는 또다른 정신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이들은 더욱 따순 손길을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1권과 2권을 가만히 보다가는, 3권이 나온 뒤 1권과 2권을 다시금 넘기며 생각합니다. 이들 “도쿄 괴물 아이”를 보살피거나 돌보거나 아픔을 씻어 주겠다는 사람들은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도시에서 겉모습을 감춘 채 지식을 높이 쌓아올린 사람’들입니다. 학문으로 파헤치고 돈을 들여 좋은 시설을 갖추어 놓습니다. 그러나, 학문이든 시설이든 옳고 바르게 건사할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되려나요. 참말로 마음과 마음으로 “도쿄 괴물 아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어른은 몇이나 있으려나요.

 입으로 내뱉는 소리가 아닌, 마음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어른은 어디에 있을까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닌, 마음이 보여주는 모습을 읽을 줄 아는 어른은 얼마나 있을는지요.


- “이 목소리는 하시? 그런 거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게 그 애라고?” “이 감촉, 역시 우리 애야. 엄마인 난 감각으로 알겠어.” “당신은 지난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안 잤잖아! 머리가 이상해진 거야!” “하시가 돌아왔다구요!” “이렇게 기분 나쁜 괴물이 우리 애라니. 그리고 그 애는.” (1권 111쪽)


 사람은 한손에 한 가지를 쥡니다. 한손에 두 가지를 쥐지 못합니다. 먼 옛날 옛적 이야기를 떠돌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 만한 이야기요, 누구도 모를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한손에는 한 가지만 쥡니다. 한손에 사랑을 쥐었으면 돈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돈을 쥐었으면 사랑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이름값을 쥐었으면 믿음을 쥐지 못합니다. 한손에 믿음을 쥐었기에 이름값을 쥐지 못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사람들은 한손에 사랑이나 믿음을 쥐지 않습니다. 한손에 두 가지 다 쥐려 하면 못 쥐는 만큼, 한손으로 사랑하고 믿음을 함께 쥐려 하다가 그예 놓치는 사람이 있을까 궁금한데, 왼손에는 사랑을 쥐고 오른손에는 믿음을 쥐면 놓칠 일이 없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손에 책만 쥐어야지, 이 한손으로 책과 지식을 함께 쥐려 하면 둘 모두 놓칩니다. 책하고 지식은 사뭇 다를 뿐더러 한동아리가 될 수 없는데, 숱한 사람들은 책을 읽을 때에 자꾸만 지식을 움켜쥐려 합니다. 책을 책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면 넉넉하고, 책 하나로 내 삶을 따숩게 돌아보면 흐뭇하지만, 이 흐름을 옳게 새기지 못합니다.


- “전에는 모두가 날 이해해 주기를 바랐지만, 하지만 지금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난 나의 이 인생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겠으니까 적어도 나를 그냥 내버려 뒀으면 하는 것뿐이에요. 지금은 그 누구와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아요.” (1권 159쪽)
- “넌 입만 열면 사랑해 줘, 사랑해 줘,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려. 사랑받고 싶단 생각만 하느라 다른 사람 일은 아무래도 좋은 거지? 사랑만 받을 수 있다면.” (1권 184쪽)



 아이들은 마음이 아픕니다. 아이들은 몸이 아픈 줄 느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사랑을 바랍니다. 아이들은 멋진 옷이나 예쁜 집이나 빠른 차를 바라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말을 섞을 벗을 기다립니다. 아이들은 비싸구려 손전화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몸소 보고 배울 뿐 아니라 즐거이 함께 살아가고픈 어른을 꿈꿉니다. 아이들은 대학교나 유학 따위를 꿈꾸지 않으며, 변호사나 판검사나 의사 같은 어버이를 꿈꾸지 않습니다.


- “그건 ‘너희’는 애초에 이상한 사람이고, 너는 사고로 머리에 이물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르다고, 말하는 거야? 내가 왜 이런 멍청이를 상대로 잠시라도 말을 꺼냈을까. 대체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넌 네 머리 때문이 아니야. 너라는 인간 자체가 저질인 거잖아!” (2권 15∼16쪽)
- “아니, 하나도 안 괜찮아. 제정신이 아니라고.” “그래, 하지만, 그건 병이 아니라도 다들 그런단다.” (2권 155쪽)



 적잖은 어버이들은 당신들이 돈을 조금밖에 못 벌어 당신 아이들을 더 따스히 돌보지 못하는 줄 잘못 알기 일쑤입니다. 당신들이 한 달에 70만 원밖에 못 번다 한들 아이들이 당신들한테 서운하다고 느낄 까닭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 값싼 튀김닭 한 마리 사 주지 못한다 해서 아이들은 하나도 싫어한다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다른 동무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식은밥에 김치쪼가리 하나일지라도 밥상 앞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 피울 살가운 어버이를 바랍니다. 자가용으로 학원이나 학교까지 태워다 주는 돈 많은 어버이가 아니라, 두 다리로 걸어가느라 한참 걸리지만, 서로 손을 따숩게 꼬옥 잡으면서 얼굴을 마주보는 가운데 이야기꽃 피울 줄 아는 어버이를 기다립니다.

 어려운 일이란 한 가지도 없습니다. 하나같이 쉬운 일입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 할 때에 학교버스나 자가용 따위에 태울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스스로 아이랑 함께 학교에 가면 됩니다. 아이랑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더 사랑할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아이를 굳이 학교에 안 보내겠지요. 어른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까닭은, 어른들이 바깥에서 돈을 벌 뿐 아니라 ‘어른 스스로 하고픈 일과 놀이’ 때문이니까요. 아이들은 제 어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 배우지, 학교에서 교과서랑 교사한테서 배우지 않아요.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 리에 독도가 있다는 지식을 갖추어야 나라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내 동네에서 식구들이랑 조용히 살아가면서 넉넉히 나라사랑을 합니다.

 더 아낄 줄 아는 어버이라면 애써 도시에서 살아갈 뜻이 없습니다. 어른들부터 온몸 가득 자연을 껴안으면서 자연스러운 넋을 북돋울 때에 아이들 또한 온마음 가득 자연을 보듬으면서 자연스러울 얼을 살찌웁니다. 아이들한테는 ‘자연그림책’을 사다 주어 읽히지만, 정작 어른들부터 자연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어른들부터 자연을 헤아리는 책 한 줄 못 읽으며 지냅니다. 아이들이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한다면 어른들 또한 자연을 알고 느껴야 하는데, 막상 어른들은 자연하고는 등을 진 채 더 큰 도시에서 더 많은 돈벌이에 얽매입니다.


- “부장님, 병 때문에 불감증에 걸린 환자 있댔죠? 누가 더 나을까요?”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나도 이 나이까지 이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왔어. 물론 다른 인생도 있을지 모르지만, 행복인지 불행인지는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잖아?” (2권 193쪽)


 만화책 《동경괴동》을 새삼스레 생각해 봅니다. 일본 도쿄라는 곳은 한국 서울하고 매한가지입니다. 두 나라 사람들이 쓰는 말이랑 꾸리는 삶은 다르다지만, 두 곳은 서로 한몸과 같다 할 만합니다.

 일본 도쿄 아이들은 티없이 맑으며 사랑스러운 아이로 크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크고 맙니다. 한국 서울 아이들 또한 해맑게 빛나며 어여쁜 아이로 자라기보다는 괴물 아이로 자라고 맙니다.

 학교 건물이 너무 큽니다. 도시가 너무 큽니다. 한 학년 학급 수가 너무 많습니다. 학급마다 아이가 너무 많습니다. 교사들이 한 학교 모든 아이들 이름조차 ‘외우지’ 못합니다. 아이들 숫자가 너무 많으니 ‘이름 외우기’를 해야 하는데, 이름조차 못 외우는 판에 아이들 삶과 아이들을 둘러싼 삶과 삶터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골학교가 한결 낫다고는 말하기 힘듭니다. 다만 가장 학교다운 학교라 할 때에는 한 동네나 마을에 하나씩 아주 조그맣게 꾸리는 학교입니다. 교장이나 교감이나 교무주임 같은 자리는 따로 없이, 오로지 아이들 삶을 헤아리는 교사만 있는 학교일 때에 비로소 학교란 이름이 어울립니다. 우리 말로 하자면 참다운 ‘배움터’ 노릇을 하겠지요.

 배우는 터전이어야지 가두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가는 터전이어야지 옭죄는 터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따지고 보면, 도쿄이든 서울이든 아이들도 너무 많이 득시글대지만, 어른들부터 지나치게 많이 복닥거립니다. 알맞게 얼크러지고, 살가이 어우러지며, 따숩게 얼싸안을 때에 아름다운 삶터입니다.


- 우리보다 더 손 쓸 수 없는 사람이 있는지, 난 알고 싶어졌어.” (2권 198쪽)


 더 손을 쓸 수 없도록 망가지면 어찌 될는지 모릅니다. 더 손을 쓸 수 없는 일이란 없습니다만, 자꾸자꾸 바보스러운 길에 붙들리다 보면 내가 바보인지 내가 사람인지 내가 기계인지 내가 돌멩이인지 내가 멍텅구리인지 내가 이웃인지 내가 목숨붙이인지 내가 나무인지 내가 컨베이어벨트인지 헷갈리다가 그만 고꾸라집니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사람다이 살아가며 사람다운 사랑을 나누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나 스스로 어린이임을 느끼고, 어른들은 당신 스스로 어른임을 깨달아, 우리 둘레에서 피고 지는 꽃을 알아채고, 우리 둘레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를 알아보며, 우리를 둘러싼 바다와 흙과 하늘과 바람을 맞아들여야 합니다.

 언제나 고마운 하루이고, 늘 새롭게 빛나는 하루이며,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하루입니다. 고맙게 보내며 즐거운 하루이고, 새롭게 빛내며 알찬 하루이며, 사랑스레 누리며 오붓한 하루입니다. “도쿄 괴물 아이”들은 시설 좋은 병원에서는 그저 괴물 소리를 듣는 아이로 늙어 버립니다. (4343.12.13.달.ㅎㄲㅅㄱ)


― 동경괴동 (1∼2) (모치즈키 미네타로 글·그림,이지혜 옮김,삼양출판사 펴냄,2010/4200원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