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지음,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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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그림책 / 그림책비평 2025.2.17.

그림책시렁 1548


《살아있다는 것》

 유모토 가즈미 글

 사카이 고마코 그림

 김숙 옮김

 북뱅크

 2025.1.20.



  껍데기만으로는 목숨을 잇지 않습니다. 새끼 새가 태어나려면 ‘껍데기를 깨’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껍데기판입니다. 속빛을 가꾸거나 마음밭을 일구는 길이 아닌, 옷차림과 얼굴과 몸매에다가 ‘재(아파트) + 쇠(자가용)’로 껍데기를 꾸미는 굴레가 지나칩니다. “橋の上で”를 옮긴 《살아있다는 것》을 읽으며 자꾸 갸우뚱했습니다. 왜 책이름을 뜬금없이 바꿀까요? “橋の上で”는 “다리에 서서”를 뜻합니다. 아이가 어느 어른하고 나란히 다리에 서서 냇물을 내려다보는 사이에 천천히 마음에 피어오르는 여러 그림과 꿈과 느낌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스스로 삶을 다시 바라보는 결을 들려주는 얼거리입니다. “몸뚱이를 입기”에 삶이지 않습니다. “몸으로 짓고 일구고 누리기”에 삶입니다. 겉모습이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빼어나야 삶이지 않아요. 어떤 겉모습이건 속마음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심고서 일구기에 아름답습니다. 수수하게 붙인 “다리에 서서(橋の上で)”라는 이름은, 다리에 서든, 길을 걷든, 하늘을 보든, 가만히 누워 잠들든, 밥을 먹든, 설거지를 하든, 노래를 부르든, 동무하고 손을 잡고 달리든, 언제 어디에서나 스스로 눈을 밝히면서 씨앗을 가꾼다는 뜻입니다. ‘다리’란 너랑 나를 잇는 길목입니다. 좀 억지스레 “살아 있다는 것”처럼 섣불리 부풀리려는 ‘주제 강요’를 안 하기를 바랍니다.


#湯本香樹實 #酒井駒子 #橋の上で


ㅍㄹㄴ


《살아있다는 것》(유모토 가즈미·사카이 고마코/김숙 옮김, 북뱅크, 2025)


다리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보고 있던 날

→ 다리에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어느 날

→ 다리에 서서 냇물을 내려다보던 날

2쪽


스웨터는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년인지 몇십 년인지 오래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어

→ 털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몇 해나 몇 열 해나 오래 안 갈아입은 듯했어

→ 윗옷은 낡고 보풀이 일어서 아주 오래 안 갈아입었구나 싶었어

6쪽


※ 글쓴이

숲노래·파란놀(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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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426 : -져서 나는 향해


두려워져서 나는 앞을 향해 걷는다

→ 두려워서 앞을 보며 걷는다

→ 난 두려워 앞으로 걷는다

《여기까지가 미래입니다》(황인찬, 아시아, 2022) 22쪽


‘-지다’를 함부로 붙이는 옮김말씨를 털어냅니다. 앞을 보며 걸어간다면 “앞을 보며”나 “앞으로”라 하면 됩니다. 두려워서 앞을 보며 걷고, 두려우니 그저 앞으로 걷습니다. 이 보기글은 ‘나는’을 사이에 넣는데, 엉뚱하고 얄궂게 잘못 쓰는 옮김말씨입니다. ‘나는’은 덜면 되고, 굳이 넣고 싶으면 맨앞에 넣니다. ㅍㄹㄴ


향하다(向-) : 1. 어느 한쪽을 정면이 되게 대하다 2. 어느 한쪽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다 3. 마음을 기울이다 4. 무엇이 어느 한 방향을 취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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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443 : 냉랭 속


냉랭한 기운이 등뼈 속으로 스며듭니다

→ 등뼈가 시립니다

→ 등뼈까지 춥습니다

《행복한 붕붕어》(권윤덕, 길벗어린이, 2024) 7쪽


겨울은 날이 찹니다. 손발이 시립니다. 등뼈도 시리고 오들오들 떨어요. 찬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듭니다. 처음에는 코끝이 얼더니 어느새 손발을 거쳐 목덜미에 팔다리에 뼛속까지 시려요. 추운 날씨는 추운 바람결 그대로 단출히 그립니다. ㅍㄹㄴ


냉랭하다(冷冷-) : 1. 온도가 몹시 낮아서 차다 2. 태도가 정답지 않고 매우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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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448 : 매일 밥을 만들어


매일 맛있는 아침밥을 만들어 줘서 고마웠다

→ 늘 맛있게 아침밥을 해줘서 고마웠다

→ 언제나 맛있게 아침을 해줘서 고맙다

《도쿄 우에노 스테이션》(유미리/강방화 옮김, 소미미디어, 2021) 126쪽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립니다. 늘 맛있게 누릴 밥살림을 헤아립니다. 언제나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하면서 즐길 밥자리를 떠올립니다. 밥을 합니다. 밥을 지어요. 옷을 짓듯 밥을 짓고, 살림을 하듯 밥을 합니다. ㅍㄹㄴ


매일(每日) : 1. 각각의 개별적인 나날 2. 하루하루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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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650 : 실제 -ㅁ이 되는 건 게 걸 -게 됐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건 배운 게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 정작 삶에 이바지하는 길은 거의 배우지 않은 줄 깨달았다

→ 막상 삶을 돕는 길은 거의 못 배운 줄 알아챘다

《먼지의 여행》(신혜, 샨티, 2010) 18쪽


삶에 이바지하는 길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정작 가까이 있어요. 삶을 돕는 길은 바깥에서 안 찾습니다. 막상 우리 마음이며 손길이며 매무새에 있어요. 오늘 이곳에서 스스로 배웁니다. 늘 이 삶자리에서 오늘부터 배웁니다. ㅍㄹㄴ


실제(實際) : 1. 사실의 경우나 형편 2. [불교] 허망(虛妄)을 떠난 열반의 깨달음. 또는 진여(眞如)의 이체(理體) 3. 거짓이나 상상이 아니고 현실적으로 =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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