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어린이문학
우에노 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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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지난해에 썼습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은 제가 아끼고 좋아해서 늘 곁에 두고 틈틈이 다시 보는 책인데, 이 책 이야기를 다른 자리에 쓰려고 잠깐 알라딘에 들어와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또 댓글은 얼마나 올라 있는지 보다가, 아무런 독자댓글이 없음을 보고, 두 해 앞서 쓴 글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보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걸쳐 놓습니다.

 

 - 책이름 : 현대 어린이문학
 - 글쓴이 : 우에노 료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사계절(2003.1.28)
 - 책값 : 7500원


 어린이문학 비평으로 읽는 우리 삶
 [책읽기가 즐겁다 82] <현대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1> 현실과 동떨어진 평론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요즘은 평론책을 안 읽습니다. 평론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지만, 평론처럼 작품을 자기(평론가) 눈과 입맛에 따라 칼질하는 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론을 쓴다고 하면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서, 평론가가 어느 영화를 아주 비판하고 나무라면, 평론과 영화를 잘 모르는 여느 관객은 "그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안 보기도 해요. 그러다가 얼결에 '혹평 받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 재미있던데 평론은 왜 그래?"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태까지 읽은 평론책도 참 많았지만, 더는 읽을 만한 글이 눈에 잘 안 띄기도 하고, 저도 게을러진 한편으로, 시인 김남주 씨 말마따나 "그 따위 평론이라면 나도 쓰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김남주 시인은 "창비에 실린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써 보았다 /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린 나의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노동자와 농민이 또는 전사가 / 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 보았으면 한다 / 그것이야말로 나의 보람이고 나의 자랑이다......" 하고 노래했거든요.

 우에노 료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지은 평론, 그것도 어린이문학을 평론한 글은 남달랐습니다. 그저 어린이문학 흐름이나 어린이문학에 담는 줄거리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겉핥기가 아니라, 어느 한 나라 문화와 교육과 사회와 정치와 역사와 예술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이 책 하나에 담았어요. 그래서 두어 달에 걸쳐서 차근차근 꼼꼼하게 곱씹으며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평론책을 다 읽어냈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꽝입니다(줄거리는 좋지만).


 .. 어른이 무서운 이유는 회초리를 휘두르기 때문이 아니라
 회초리를 휘두를 수 있는 입장, 휘둘러도 괜찮은 입장이기
 때문이며 어린이에 대한 절대성 때문이다 .. <11쪽>


 우에노 료는 "문제는 어른과 아이 중 누가 더 훌륭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인간으로서 유연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발휘하느냐이다<16쪽>"라고 말합니다. 머리말에 적은 이런 말을 보고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기보다 어린이'문학' 비평


 "어린이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도 있다<18쪽>"고 말하는 우에노 료. "성인용 잡지에 범람하는 '성'은 어른들이 '민주적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 해방을 체험하지 못했음<21쪽>"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히는 빼어나 작품 열 편을 대상으로 어린이문학에 제대로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우리들이 함께 느끼면 좋을 것이 무엇인지, 어린이문학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갈 길은 어디일지를 찬찬히 살핍니다. 우에노 료가 말하는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가장 중요한 길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어떤 형태로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어린이의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할 것인가<21쪽>"입니다.


 .. 어린이는 이러한 주제를 알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점
 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언급했다. 어린이는 이야기 자체
 를 즐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독서 태도이다. 만약 이야기 속의
 주제나 의도만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육의 일부로, 국어 공부나 독서 감
 상문을 작성하는 일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 <95쪽>


 어린이가 읽는 책뿐 아니라 어른이 읽는 책도 같습니다. "주제를 알고자" 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재미'만 얻고자 읽지도 않아요. 주제와 재미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재미'에 대한 판단은 어린이가 내린다 해도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상상력은 제한되고 좁은 틀 속에 갇힌다<187쪽>"고 말해요.

 일본은 우리보다 상상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는 책을 많이 펴냅니다. 하지만 그 일본에서도 "토미 융게러가 지은 <머신 섹스>나 <포니콘>이라는 책은 낼 수 없을 것-<포스터의 위력,시각문화사(1979)>이라는 책에서-"이라고 했어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멋진 어린이 그림책을 그렸다는 '토미 융게러'라는 이름에 억눌려 버리거든요. 토미 융게러는 어린이 그림책만 그리지 않고, 사회와 정치와 모든 것을 풍자하고 비꼬기도 한 <머신 섹스>나 <포니콘>도 그리지만, 이런 책을 토미 융게러가 사는 나라와 유럽에서도 거절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내동댕이친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토미 융게러가 지은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성과 섹스'를 다룬 그림책은 들어오지 못할 뿐더러 들어올 수도 없게 막습니다. '유익'한가를 따지거든요. 어른들, 그것도 관료주의와 제도권에 있는 어른들이 따지거든요.


 .. 어린이 독자들은 자기가 속한 일상적 세계에서 살면서 항상
 일상성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미지의 것에 대한 발견과 모험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 <85쪽>


 이런 꿈과 설레임은 어린이만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여기서 우에노 료는 어른들이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주제에 짓눌린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재미가 그저 재미로만 그쳐서는 안 되는 대목도 말합니다.

 우에노 료는 '놀이'를 중요하게 여겨서 책을 읽을 때에도 '놀이' 성질을 얼마나 담아내느냐고 말하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문학 평론가들이 이 대목을 곧잘 따와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어린이문학 비평가들이 따오기는 많이 따오면서도, 정작 우에노 료가 중요하게 말한 다음 대목은 일부러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에노 료라는 사람이 '놀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만큼 '일'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어른들이 지나치게 '주제'에 짓눌린다고는 하지만 '주제'를 완전히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습니다.


 <3> 놀이와 일, 일과 놀이는 한 동아리


 .. 어린이는 많은 것을 기대한다. 많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공상을
 부풀린다. 공상을 부풀림으로써 인생을 생각한다. 자신 속에 인간
 을 완성시켜 간다.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
 다. 마법의 램프나 하늘을 나는 융단에 어린이가 매료되는 것은
 현실 도피의 표현이 아니다. 일상 세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공상
 이야기에 보내는 어린이들의 갈채와 박수는 반대로 일상 세계에
 대한 무한한 기대의 표현이다 .. <86쪽>


 어린이는(또는 어른은) '꿈'만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꾸면서 '현실'을 삽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즐기며 꿈을 즐겨요.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와 신비한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기보다 이어져 있다"고 느끼는 어린이들은 "자기가 참가할 수 있는 재미"를 바랍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재미를 기대"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가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보여주는 '공상과학만화'나 '환상동화'를 어른들이 쥐어 주었을 때, "에이, 재미없어"라고 집어던지는 까닭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상상은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어른들끼리 즐기는 용두질(자위행위)일 수도 있고요.

 민화나 옛날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듣고 읽는 어린이들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자기 삶과 이어진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또 다른 세계가 주는 재미"로 여겨요.


 ..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콩나무에 올라간 잭이나 엄지
 동자(공상 이야기)보다 톰(현실 이야기)을 훨씬 친근하게 느낀다.
 자신과 톰의 입장을 동일시한다. 이윽고 신비한 일들이 벌어진다.
 자신과 톰을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생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일상 세계에서 기대하
 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먼 옛날, 먼 곳에서 일
 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자기 앞에 또 하나의 세계가 나타나는
 즐거움이다 .. <87쪽>


 자기 또래 어린이가 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들입니다.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걱정도 하고 즐거워도 해요.


 <쥐 - 조혜영, 1985년 12월 9일 / 경상도 울진 온정국 3년>

 마루 위에
 메주가 있어요.
 밤에만 쥐가 와서
 깕아먹어요.
 엄마는 매일
 고노무 쥐
 고노무 쥐.
 할아버지가
 찬깨(덫)를 놓았어요.
 쥐가 꼬리에 찡겨서
 피가 묻었어요.
 쥐는 가만히
 눈만 감고 있어요.  <큰길로 가겠다,한길사(1987)>에 실린 시 가운데 하나


 자기 또래가 쓴 이런 시를 읽고 함께 걱정하고 마음을 쓰는 어린이입니다. 나도 알고 내 동무도 아는, 나도 살고 이웃도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바탕으로 펼쳐내고 이어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가 발 딛고 선 땅'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끝없는 상상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 자신에게 남다르게 소중한 세계가 있음을 느끼는 동안, 자기 삶을 사랑하고 더 나은 재미와 보람과 즐거움과 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과 꿈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 그것은 바로 놀이와 일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입니다.


 <4> 전쟁 어린이문학


 마지막으로 "전쟁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귀담아듣고 생각해 볼 만한 말이 있습니다. 전쟁 어린이문학은 그냥 '전쟁문학'이라 하여 어린이와 어른 모두 깊이있게 돌아보고 살피면 좋을 비평이기도 해요.


 .. 인간성은 어제 일어난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내일 일어날 비인간
 적 행위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체 그런 인간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과거의 학살을 돌이켜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전쟁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전쟁 자체를 그렸다기보다 전쟁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 나약한 인간
 을 그린 어린이책은 무수히 많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전달
 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닿아 있다. 그것을 밝혀 냄으로써 현재 속에서 어제에 대한 책임,
 또는 내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거기에 있다 .. <163쪽>


 얼마 앞서 <나스 마사모토 그림-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이 하나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책방에서 서서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닫았습니다.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일으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받게 했는지"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일본사람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상투성 짙은 교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자는 일본사람만이 아닙니다. 그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한국사람도 있고 중국사람도 있고 동남아시아사람도 있어요. 더구나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로 '한국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가 2002년에 와서야 겨우 인정했지만, 국가 차원 배상이 아닌, 지금도 일본에서만 사는 피폭자만 대상으로 삼고, 그것도 몇 사람에게만 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은 '전쟁 자체'만 말할 뿐, 전쟁 때문에 비틀리고 뒤틀리고 괴롭고 힘겨운 사람들 삶을 담아내지 못해요. 아예 안 한달까요? 나아가 자칫하면 역사 왜곡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맨발의 겐>이라는 만화책에서는 그나마 '한국인 피폭자'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도 그저 겉핥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란 그림책엔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런 '전쟁 어린이문학' 비평을 읽다 보면, 이것은 어린이문학에만 할 말이 아니라 어른문학에서도 할 말이에요. 그러니까 '문학'으로 할 말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헤아릴 일이고요.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사람입니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문학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문학비평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비평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네 문학과 문학비평은 나날이 사람과 멀어져 가지 싶어요. '재미(놀이)' 한 가지로만 치닫거나, 무거운 '주제(유익)'에만 푹 빠져요. 재미와 주제는 둘 가운데 한 가지만 있을 때는 참 심심하거나 따분합니다. 함께 있어야 가장 좋아요.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이 두루 읽을 만한 책은 못 되겠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사람 삶을 사랑하는 이라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낱 '어린이문학 비평'만 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을 글감 삼아서 인생론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말하고 사람과 삶과 사랑을 보듬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 형편없고, 우리 말법과 말투하고는 동떨어져 있어서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런 책을 펴낼 때는 부디 '우리 말 다듬기'라도 좀 해놓고 내놓으면 좋겠습니다. (4337.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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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시골에서 헌책방을 차린다는 것에 대하여..."

홍성 <느티나무>는 `헌책방 + 마을 도서관'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세상일은 `사업체'로 해서 벌이도 있어야겠지만, 벌이를 얼마로 잡으면 되느냐 하는 잣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홍성 <느티나무>는 여느 헌책방이나 사업체와 견주면 벌이나 이윤은 적지만, 지역 헌책방+도서관으로 꾸려 갈 만큼은 되지요. 책이 씨가 마르면, 도서관으로 바꾸겠지요 ^^ 서울이나 부산이나 여러 곳 헌책방을 두루 다니면서 책을 살 때면, 한 곳에서 지나치게 많이 사지 않고, 또 자기가 읽으려고 사기도 하니까, 소매값으로 사온다고 해도 손해될 일은 없어 보입니다. 또한, 때때로 <아름다운가게>에 기증된 책을 잔뜩 사들이기도 하니, 이런 것으로 어느 만큼 수지타산을 맞추기도 할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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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술로 가는 길 - 창조적 사진을 위한 실제적인 조언, 개정판
한정식 지음 / 눈빛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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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진에는 찍는 사람 삶이 담깁니다
 - 《사진, 예술로 가는 길》을 읽으며

 


- 책이름 : 사진, 예술로 가는 길
- 글쓴이 : 한정식
- 펴낸곳 : 눈빛(2006.5.1.)
- 책값 : 12000원

 


 


 지난 토요일인 9월 9일, 인사동 김영섭갤러리에 찾아갔습니다. 사진을 찍는 전민조 님 전시회가 12일까지 열리는데, 이날은 전민조 님이 나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좀 늦게 가서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전시장에 온 사람이 적어서 나중에 전민조 님과 함께, 가까운 다른 전시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기 사진을 걸어 놓은 다음 사인회 같은 행사를 할 때면 으레 옷도 차려입고 느긋하게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과 만나고 몇 마디 그럴듯한 말도 하기 마련입니다. 거의 그렇지요. 하지만 전민조 님은 수수한 옷차림에다가 한쪽 어깨에는 작은 사진기를 메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만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전민조 님은 스스로 ‘사진 좋아하는 나이든 아저씨’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늘 살아 있는 사진, 살아숨쉬는 사진을 찍을 수 있구나 싶어요.


.. 제 느낌 따라서 사물을 보고, 제 생각 따라 사물의 의미가 정해지는 것이지 사물이 어떤 고정된 의미를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보다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껴졌는가를 찾아야 한다. 내가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지, 사물이 가진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다 ..  〈45쪽〉


 전민조 님 안내와 소개를 받으며, 인사동 다른 곳에서 열리는 ㄱㅇㅌ 님 사진 전시회를 구경합니다. 전민조 님은 자기 사진은 보잘것없다 하고 ㄱㅇㅌ 님 사진을 훌륭한 작품이라며 추켜세웁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로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고 대상을 보는 눈이 다릅니다. ‘사람’을 사진감으로 삼는다고 해도, 정물사진으로 찍을 수 있고 일하는 모습을 찍을 수 있습니다. 알몸사진을 찍을 수 있고, 어떤 몸짓을 해 보라고 한 뒤 빛을 맞추어 찍기도 하지요. 사람을 찍는 방법만 해도 참 갖가지이고, 사람한테서 무엇을 느끼느냐도 참 갖가지입니다. ㄱㅇㅌ 님은 사람이 아닌 자연 대상물만 찍는 분입니다. 전민조 님은 사람만 찍는 분입니다.


.. 사진의 내용을 결정지어 주는 것은 셔터 찬스이지 구도가 아닌 것이다. 구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진 화면의 정리뿐이다. 정리는 조금 덜 되어도 내용이 좋아야지, 화면만 깔끔한 채 속이 텅 빈 사진은 쓸모가 없다. 말솜씨가 조금 서툴러도 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이 좋으면 그게 훌륭한 말이요, 화려한 말솜씨에 내용이 없으면 그게 바로 헛된 말장난인 것이다 ..  〈72쪽〉


 ㄱㅇㅌ 님과 전민조 님 두 분은, 서로 찍는 사진이 다르다 보니, 여느 때 모습도 다릅니다. ㄱㅇㅌ 님은 무거운 장비를 둘러메고 사막을 헤매는 분이기에,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안 찍습니다. 그래서 사진 전시회 자리에도 사진기를 안 메고 있습니다. 전민조 님은 늘 자기 둘레에 있는 사람들부터 사진으로 찍기 때문에 언제나 사진기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습니다. 예전에 김기찬 님을 전시장에서 뵌 적 있는데, 김기찬 님도 조그마한 사진기를 언제나 품 안에 간직하고 있으며, 어느 때라도 곧바로 꺼내어 찍을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ㄱㅇㅌ 님 사진은, 자기가 찍으려는 대상을 훌륭히 찍었기 때문에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사진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이분처럼 어느 대상을 깊이있게 살피며 ‘빛을 만지작’거릴 수 있습니다. 사진 찍는 길은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길로 가든 자기 길을 곧게 잘 갈 수 있으면 좋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길로 갈 생각이 없다뿐이고, 전민조 님처럼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늘 사진기를 들고 다닐 뿐입니다. 저는 사람을 찍는 사람이니까요.


.. 이런 특수한 기법은 특수한 경우에만 써야 한다. 그런 기법을 쓰지 않고서는 도저히 표현이 되지 않을 경우에 한해서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남을 현혹시키려는 얕은 꾀로 떨어지기 쉽다. 사진을 모르는 사람들은 신기하게 볼지 몰라도, 사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경멸당하기 쉽다 ..  〈89쪽〉


 값싸고 손쉽게 찍을 수 있는 디지털사진기가 널리 퍼지면서 사진은 ‘취미’라 말할 수 있는 일이 되었고 때때로 ‘놀이’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를 태우듯, 술잔을 비우듯 사진 찍는 사람이 부쩍 늘었습니다. 주말 인사동을 걸으니 그 엄청난 사람숲을 메운 어느 사람 어깨에도 사진기가 대롱대롱 걸려 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나 싶어서요.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참 많이 찍어도 그 흔한 사진 전시회는 들여다보지 않고, 또 찾아갈 마음도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취미이고 놀이니까 다른 사람 전시회야 보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진은 ‘보여줌’인데. ‘나 혼자 좋아서 찍고 그치는 일’이 아닌데. 태우면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담뱃재가 아니라, 잔을 비우면 사라지고 마는 술잔이 아니라, 담배 태우는 즐거움이자 술잔 기울이는 즐거움인데. 으리으리한 전시장에 사진을 걸어놓아야만 사진이 아닌데. 자기 집에 찾아오는 사람한테 보여주는 사진첩도 바로 ‘조촐한 자기 사진전시’인데.

 

 가까운 이웃을 돌아보지 못하는 마음이기에, 사진기를 들면서도 무엇을 찍고 나누고 보여주면 좋을지를 못 느낄까요. 거울로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얼굴을 매만지기는 해도, 해가 가고 달이 가며 자연스럽게 갈고닦이는 자기 얼굴을 가꾸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 필자의 글을 지침서로 활용할 수는 있어도 이를 미신처럼 믿어서는 안 된다. 남의 생각대로만 따르다가는 자기를 잃기 쉽다. 예술에서 자기를 잃는 것은 모두 잃는 것이다. 필자의 진의가 여기에 있다.
 초보자의 경우, 어느 것이 필요하고 필요없는지 그것조차도 모르는데, 그런 것을 어떻게 구분하라는 말인가, 걱정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필자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는 말라고 했지만, 다른 말은 따르지 않더라도 다음 말만은 그대로 기억해 두고 따라 주기 바란다.
 초보자든 경험자든 여러분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 자기 느낌에 따라 전적으로 자유롭게 사진을 해야 한다. 만일 원칙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것뿐이다. 그 외의 어떤 것도 원칙은 아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의 참고 사항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 놓고 …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사실 모르는 것이 아니다. 자기 사진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채워 나갈 길을 몰라 걱정하는 것이니까 모르는 것이 아니요, 자기 사진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걱정스러운 일이다 ..  〈147∼148쪽〉


 저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무엇인지 모르면서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느냐 싶기도 하지만, 겉멋들린 사람들이 말하는 ‘예술’이 참 거슬리고 비위가 안 좋습니다. 책 하나 냈다고 해서 자기를 ‘작가’라 한다거나, 전시회 한 번 했다고 ‘작가’라 내세우는 사람이 아주 많거든요.

 

 사진도 예술이라 하지만, 사진이 예술이 되든 안 되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마음둘 대목도 아니라고 느낍니다. 사진은 그저 사진일 뿐이며, 사진이 예술이든, 또는 예술로 올라가든 말든, 그런 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자기 사진을 찍으면 된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배우는 일이란 기계 다루는 법, 장비 만지는 법, 대상을 요리조리 살피며 찍는 법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구도 잡거나 빛과 색감 느끼는 법도 사진 배우기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고 느끼는 일이 바로 사진 배우기입니다. 전시회를 찾아가고 사진책을 사서 모으는 일이야말로 사진 배우기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찍은 좋은 사진을 보고 자기 마음이 뭉클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감동을 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자기 사진 가운데 잘 찍은 좋은 사진을 보며 마음이 뭉클하거나 짠하거나 감동을 하니까요. 다른 사람 사진을 보며 감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사진을 백 날 찍어 보아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사진은 기록이다”고도 하는데, 요즘 사진을 찍는 분들 어느 누구를 보아도 “기록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정작 요즘 수많은 사람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 “몇 년 몇 월 몇 일 어디에서 누구랑 찍었다는 기록”일 뿐, 자기 눈과 마음과 생각과 몸가짐과 몸짓으로 자기 나름대로 찍은 사진이라는 느낌이 안 듭니다. 사진을 예술이라 한다면, “사진 찍는 이 나름대로 자기 느낌과 생각과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지 싶은데, 예술이든 아니든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이 아니라면 ‘취미’나 ‘놀이’도 아닌 ‘기록’하는 사진일 뿐이 아니겠느냐 싶습니다. 이런 사진이라면 자기부터 재미가 없고, 이 사진을 볼 다른 사람도 재미가 없을 텐데 싶어요.


.. 자기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꺼려서 적당히 감추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예술은 솔직해야 된다. 솔직해야 좋은 사진이 찍힌다. 특히 유교적 규범 속에서 자라 온 우리 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데에 퍽 조심스러운 편이다 … 가릴 것 다 가린 누드 사진보다 체모든 성기든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라야 한다. 보이는 것 다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라야 한다. 우리가 바위를 찍을 때 어느 부분을 가리고 찍는 일이 있던가? 꽃을 찍을 때 어느 부분을 피해 가면서 찍은 적이 있던가?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이다. 자연을 자연으로 상대하는 것,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찍는 것이 사진이다. 우리의 몸도 자연의 일부이다. 꽃은 가리고 찍지 않는 사람이 몸은 왜 가리고 찍을까? ..  〈163∼164쪽〉


 어느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이가 똥누는 모습도 사랑하고, 코를 골며 자는 모습도 사랑하며, 코가 막혀 킁 하고 풀었는데 콧물이 손등에 튀는 모습이라도 사랑하기 마련입니다. 자기가 낳은 아기가 오줌을 지려서 옷을 적셨다 해도 ‘더럽다’고 느끼는 부모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모든 모습을 그대로 껴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겉모습을 보고, 얼굴이나 몸매를 보면서 마음이 끌린다 해서 사랑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세상은 겉모습과 얼굴과 몸매를 보며 섣불리 ‘사랑’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적잖은 분들도 이런 사랑놀이에 마음을 빼앗기고 참사랑에는 자꾸만 멀어지지 싶어요. 연속극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고 책마저 그렇습니다. 이런 형편이고 흐름이니, 사진 하나를 찍어도 있는 그대로를 찍기보다는,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찍는 사진보다는, 잘 찍었다 하든 못 찍었다 하든 ‘나 아무개가 찍은 사진이요’ 하는 느낌이 배어나는 사진보다는, 구도가 엇나가고 흔들리기도 하고 빛도 어설피 맞추었다고 해도 ‘내가 찍고 싶어서 찍었어’ 하는 사진보다는, 틀에 박히고 판에 박히고 뻔할 뻔자이며 남들 다 찍는 사진을 따라쟁이로 좇아가는 사진만 찍는구나 싶어요.


.. 사진가의 삶이 진지해야 진지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 사진을 오래 해야 나오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사진을 오래 해도 인간적으로 숙성되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그처럼 얕은 사진밖에 나오지 않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어도 인간적 깊이가 있는 사진가에게서 심도 있는 사진은 나오는 법이다 ..  〈21쪽〉


 자기 나름대로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재미를 함께 느낍니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올바른 마음을 함께 얻거나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작은 것 하나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사진을 찍으면, 이 사진을 보는 사람도 그동안 하찮게 여기거나 그냥 지나쳤던 대상을 한 번 더 들여다보거나 차분히 되돌아보는 마음을 느끼며 사진을 즐길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자기가 사는 대로 사진이 찍히기 때문이에요. 놀 때도 그래요. 자기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노는 모습도 달라집니다. 자전거를 탈 때에도 그 사람 성격과 삶이 고스란히 배어나옵니다. 좁은 한강 자전거길을 무시무시한 빠르기로 내달리면서 딸랑이를 시끄럽게 울리는 사람이 ‘자전거를 즐긴다’고 말하기도 어렵지만, 그 사람 삶부터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좋아하고 사진도 좋아하고 책과 헌책방도 좋아하지만, 자전거를 탄다고 모든 자전거꾼을 다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사진기를 들고 있다고 모든 사진작가를 다 좋아하지 않으며, 책을 즐겨읽는 사람이라 해서 모든 책쟁이를 좋아하지 않아요. 자기 삶부터 다부지게 가꿀 줄 아는 사람, 자기한테 딱 하나 있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좋아하고, 이런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사진기를 들고 책을 읽으며 헌책방 나들이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갑습니다.


.. 사진만이 예술이어도 좋고, 예술이 아니라 해도 그 가치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의미에 변화가 없다. 사진 말고는 말이 그러해서, 문자에 의한 기록은 그것이 설사 예술이 못 되어도 가치가 있다 ..  〈68쪽〉


 사진을 보며 사진을 느낀다기보다는, 사진을 보며 사람이 꾸려가는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찍은 사진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낍니다. 아무개가 책을 다루는 매무새를 보며 그 사람 마음과 삶을 느끼고, 아무개가 다니는 책방이나 도서관을 보며 그이가 어떤 마음이요 어떤 삶을 꾸리는가를 느낍니다.


.. 우리는 흔히 사람을 찍고, 꽃을 찍고, 풍경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 관찰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찍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꽃도 아니고, 풍경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을 찍는다는 말인가.
 한마디로 시간이다. 사람의 몸에 묻은 시간, 꽃이 아니라 꽃에 핀 시간, 풍경이 아니라 풍경에 담긴 시간을 우리는 찍고 있는 것이다 ..  〈64쪽〉

 

 


 


 오늘 충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어제 늦게까지 술을 마시는 바람에 아침에 잠이 깨었어도 몸이 고단해서 일어나지 못했고, 끝내 시간을 많이 넘겼습니다. 서울에서 충주까지 7시간 걸려서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에, 아침에 길을 나서지 않으면 저녁에 위험한 터라, 오늘 같은 날은 길을 나서기 힘듭니다. 그래, 덕분에 오늘 하루는 서울에서 더 보내야 하지만, 서울에서 하루를 더 보내게 된 만큼, 오늘은 서울 인사동에서 12일까지 열리는 전민조 님 사진 전시회에 조용히 한 번 더 보러 갈 생각입니다. 고작 스물여섯 장밖에 안 건 조촐한 사진 전시회이지만, 자기 마음과 삶을 고루 담아서 손수 뽑아내 걸어 놓은 저 사진을 한 번 더 볼 수 있는 일도 좋다고 느끼거든요. 집에 하루 더 빨리 돌아가는 일도 좋지만, 하루 늦게 돌아가는 일도 나쁘지 않아요. 집에 빨리 가는 일이 목적이 아니라, 내 삶을 내 나름대로 즐기는 일이 목적이니까요. 뭐, 그래서 요새는 돈버는 일도 안 하고 있습니다. (4339.9.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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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주마관산"으로 뒤적이기 (21) : "반쪽이" 최정현의 표절작..."

<반쪽이, 세계 오지를 가다>는 처음 나왔을 때, 어느 작품 하나가 아니라, 책 전체를 놓고 표절이라고 하여 적잖이 비판을 받고 문제가 되었던 것으로 떠올립니다. 일간신문에도 관련기사가 나왔고, 표지와 본문 대조 사진까지 함께 들어간 기사를 본 일이 떠오릅니다. 이분 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그나마 갖고 있던 책은 다 헌책방에 내놓았고 <민주주의를 위해 포기하세요> 정도만 갖고 있기 때문에, 그때 관련기사라든지, 다른 도움자료가 없어서, 무언가 덧붙이고 싶은데 덧붙일 수 없네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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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삶
레기네 슈나이더 지음, 조원규 옮김 / 여성신문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 책이름 : 소박한 삶
- 지은이 : 레기네 슈나이더
- 펴낸곳 : 여성신문사(2002.2.15.)
- 책값 : 8000원


 서울 같은 도시에서는 돈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요즘은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돈으로 굴러가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도시사람들만 겪는 돈 문제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 자원과 에너지가 어떻게 낭비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  〈22쪽〉


 돈으로 물건을 사서 쓰는 세상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을 돈으로 풉니다. 자기 손으로 지어내는 물건이나 먹을거리는 아주 크게 줄어듭니다. 누구한테 무엇인가를 선물할 때에도 돈을 주고 살 뿐이지, 손수 마련하는 일이란 보기 드뭅니다. 떡국도, 만두도, 김치도 다 사서 먹으니까요.

 

 이렇게 돈으로 모든 일을 풀다 보면,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싹틀 수밖에 없고, 이러는 가운데 ‘물건도 돈으로 사고, 쓰레기도 돈으로 치우면 그만’이라는 버릇이 몸에 배어듭니다.


.. 값비싼 선물 공세를 펴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시간이 너무도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즉, 선물로 사랑의 표현이 부족한 것을 메꾸려 하는 것이다 ..  〈51쪽〉


 적잖은 사람들이 ‘옛날이 좋았어’ 하고 떠올리는 옛모습이란, 사람다운 마음, 이를테면 사랑과 믿음과 나눔이 있는 모습이라고 느낍니다. 콩 한쪽이라도 나눌 수 있는 마음, 사람과 온갖 목숨들이 어우러질 수 있도록 마음쓰던 삶터, 대문이나 울타리가 없어도 도둑이 들지 않는 마을 문화겠지요. 그러나 이렇게 그리워하는 지난 옛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까닭은, 돈으로 살아가는 도시 삶에서 빠져나오기 싫기 때문이지 싶어요. 자기부터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사람들한테 펼치고픈 마음은 없이, 남들이 자기한테 사랑과 믿음과 나눔을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테고요. 자동차를 몰 때는 경적을 울리기만 할 뿐, 빠르기를 늦춰 다른 차가 먼저 가도록 마음을 쓴다거나, 자전거나 걷는사람이 먼저 가거나 마음놓고 다닐 수 있도록 눈길을 두는 일을 안 하기 때문이라고도 느낍니다.


.. 미래에는 산업생산품의 풍요가 아니라, 그런 걸 만들어내느라고 우리가 파괴해 버린 것들, 즉 자연ㆍ시간ㆍ공간ㆍ여유ㆍ건강ㆍ환경 등이 중요해진다. 이제 한적함과 고요함이 사치가 되어 버렸다. 그걸 얻으려면 매우 의식적으로 노력해야만 한다. 오늘날엔 시장을 보거나 자동차를 몰 때, 심지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조차 소란과 번잡을 참아내야 한다. 다세대 주택의 벽들은 너무나 얇아서 이웃들이 내는 별별 소리가 모조리 들린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너무도 자극을 받은 나머지 이제는 오히려 고독과 정적을 겁내게 되었다. 그런 것들이 너무도 낯설어진 것이다 ..  〈27쪽〉


 장마가 걷히니 날이 푹푹 찝니다. 방 온도가 27도나 됩니다. 잠깐잠깐 집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쐽니다. 오랜 비가 내린 뒤끝이기 때문에 밤하늘 별이 대단히 잘 보입니다. 안경을 끼고 올려다보니 미리내도 얼핏 보일 듯합니다. 다른 별도 깨끗하게, 굵게 보입니다. 개 짖는 소리도 없고, 차 나다니는 소리도 없습니다. 개구리와 벌레 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제가 사는 산속은 사람이고 자동차고 들어올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야 집이 이런 시골이니, 밤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느끼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분들은, 저 같은 사람들이 날마다 느끼는 모습을 보려고 시골로 휴가를 떠나시겠지요? 그러면 저는 맨날 ‘휴가를 즐기는’ 셈인지 모르겠네요. (4339.7.3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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