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어린이문학
우에노 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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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지난해에 썼습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은 제가 아끼고 좋아해서 늘 곁에 두고 틈틈이 다시 보는 책인데, 이 책 이야기를 다른 자리에 쓰려고 잠깐 알라딘에 들어와서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또 댓글은 얼마나 올라 있는지 보다가, 아무런 독자댓글이 없음을 보고, 두 해 앞서 쓴 글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보는 분들한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서 이렇게 걸쳐 놓습니다.

 

 - 책이름 : 현대 어린이문학
 - 글쓴이 : 우에노 료
 - 옮긴이 : 햇살과나무꾼
 - 펴낸곳 : 사계절(2003.1.28)
 - 책값 : 7500원


 어린이문학 비평으로 읽는 우리 삶
 [책읽기가 즐겁다 82] <현대 어린이문학>을 읽으며


 <1> 현실과 동떨어진 평론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요즘은 평론책을 안 읽습니다. 평론만큼 재미없는 글도 없지만, 평론처럼 작품을 자기(평론가) 눈과 입맛에 따라 칼질하는 글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론을 쓴다고 하면 아주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서, 평론가가 어느 영화를 아주 비판하고 나무라면, 평론과 영화를 잘 모르는 여느 관객은 "그 영화가 재미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안 보기도 해요. 그러다가 얼결에 '혹평 받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영화 재미있던데 평론은 왜 그래?" 하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태까지 읽은 평론책도 참 많았지만, 더는 읽을 만한 글이 눈에 잘 안 띄기도 하고, 저도 게을러진 한편으로, 시인 김남주 씨 말마따나 "그 따위 평론이라면 나도 쓰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김남주 시인은 "창비에 실린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나는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써 보았다 / 나의 칼 나의 피에 실린 나의 시를 보고 / 이따위 시는 나도 쓰겠다 싶어 / 노동자와 농민이 또는 전사가 / 시라는 것을 처음으로 써 보았으면 한다 / 그것이야말로 나의 보람이고 나의 자랑이다......" 하고 노래했거든요.

 우에노 료라고 하는 일본사람이 지은 평론, 그것도 어린이문학을 평론한 글은 남달랐습니다. 그저 어린이문학 흐름이나 어린이문학에 담는 줄거리가 무엇인가를 살피는 겉핥기가 아니라, 어느 한 나라 문화와 교육과 사회와 정치와 역사와 예술을 비롯한 모든 것을 이 책 하나에 담았어요. 그래서 두어 달에 걸쳐서 차근차근 꼼꼼하게 곱씹으며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평론책을 다 읽어냈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꽝입니다(줄거리는 좋지만).


 .. 어른이 무서운 이유는 회초리를 휘두르기 때문이 아니라
 회초리를 휘두를 수 있는 입장, 휘둘러도 괜찮은 입장이기
 때문이며 어린이에 대한 절대성 때문이다 .. <11쪽>


 우에노 료는 "문제는 어른과 아이 중 누가 더 훌륭하냐가 아니라, 누가 더 인간으로서 유연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발휘하느냐이다<16쪽>"라고 말합니다. 머리말에 적은 이런 말을 보고 이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습니다.


 <2> '어린이'문학 비평이라기보다 어린이'문학' 비평


 "어린이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이야기할 자격도 있다<18쪽>"고 말하는 우에노 료. "성인용 잡지에 범람하는 '성'은 어른들이 '민주적 사회'에서 진정한 인간 해방을 체험하지 못했음<21쪽>"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히는 빼어나 작품 열 편을 대상으로 어린이문학에 제대로 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또 어린이문학을 즐기는 우리들이 함께 느끼면 좋을 것이 무엇인지, 어린이문학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 갈 길은 어디일지를 찬찬히 살핍니다. 우에노 료가 말하는 어린이문학이 나아갈 가장 중요한 길은 "어른들의 고정관념을 어떤 형태로 무너뜨리고, 어떤 형태로 어린이의 독자적인 세계를 표현할 것인가<21쪽>"입니다.


 .. 어린이는 이러한 주제를 알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점
 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에서 언급했다. 어린이는 이야기 자체
 를 즐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독서 태도이다. 만약 이야기 속의
 주제나 의도만을 찾기 위해 책을 읽는다면 그것은 이미 문학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학교 교육의 일부로, 국어 공부나 독서 감
 상문을 작성하는 일이나 다름없게 될 것이다 .. <95쪽>


 어린이가 읽는 책뿐 아니라 어른이 읽는 책도 같습니다. "주제를 알고자" 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재미'만 얻고자 읽지도 않아요. 주제와 재미가 함께 어우러집니다. 그래서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재미'에 대한 판단은 어린이가 내린다 해도 '유익'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어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의 상상력은 제한되고 좁은 틀 속에 갇힌다<187쪽>"고 말해요.

 일본은 우리보다 상상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는 책을 많이 펴냅니다. 하지만 그 일본에서도 "토미 융게러가 지은 <머신 섹스>나 <포니콘>이라는 책은 낼 수 없을 것-<포스터의 위력,시각문화사(1979)>이라는 책에서-"이라고 했어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멋진 어린이 그림책을 그렸다는 '토미 융게러'라는 이름에 억눌려 버리거든요. 토미 융게러는 어린이 그림책만 그리지 않고, 사회와 정치와 모든 것을 풍자하고 비꼬기도 한 <머신 섹스>나 <포니콘>도 그리지만, 이런 책을 토미 융게러가 사는 나라와 유럽에서도 거절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거나 내동댕이친다는 겁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토미 융게러가 지은 수많은 그림책 가운데 '성과 섹스'를 다룬 그림책은 들어오지 못할 뿐더러 들어올 수도 없게 막습니다. '유익'한가를 따지거든요. 어른들, 그것도 관료주의와 제도권에 있는 어른들이 따지거든요.


 .. 어린이 독자들은 자기가 속한 일상적 세계에서 살면서 항상
 일상성에서 탈출하기를 꿈꾼다. 미지의 것에 대한 발견과 모험
 여행에 대한 기대로 가슴이 설렌다 .. <85쪽>


 이런 꿈과 설레임은 어린이만이 아니라고 봅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여기서 우에노 료는 어른들이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주제에 짓눌린다고 말하는 한편으로, 재미가 그저 재미로만 그쳐서는 안 되는 대목도 말합니다.

 우에노 료는 '놀이'를 중요하게 여겨서 책을 읽을 때에도 '놀이' 성질을 얼마나 담아내느냐고 말하기 때문에 한국 어린이문학 평론가들이 이 대목을 곧잘 따와서 글을 씁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 어린이문학 비평가들이 따오기는 많이 따오면서도, 정작 우에노 료가 중요하게 말한 다음 대목은 일부러 빠뜨립니다. 그래서 우에노 료라는 사람이 '놀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만큼 '일'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어른들이 지나치게 '주제'에 짓눌린다고는 하지만 '주제'를 완전히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실을 말하지도 않고 알리지도 않습니다.


 <3> 놀이와 일, 일과 놀이는 한 동아리


 .. 어린이는 많은 것을 기대한다. 많은 것을 기대함으로써 공상을
 부풀린다. 공상을 부풀림으로써 인생을 생각한다. 자신 속에 인간
 을 완성시켜 간다. 인간에게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한
 다. 마법의 램프나 하늘을 나는 융단에 어린이가 매료되는 것은
 현실 도피의 표현이 아니다. 일상 세계를 단숨에 뛰어넘는 공상
 이야기에 보내는 어린이들의 갈채와 박수는 반대로 일상 세계에
 대한 무한한 기대의 표현이다 .. <86쪽>


 어린이는(또는 어른은) '꿈'만 꾸지 않습니다. 꿈을 꾸면서 '현실'을 삽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즐기며 꿈을 즐겨요. "자신이 속한 현실 세계와 신비한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느끼기보다 이어져 있다"고 느끼는 어린이들은 "자기가 참가할 수 있는 재미"를 바랍니다. 그리고 "적어도 자기가 있는 곳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재미를 기대"해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가 좋아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보여주는 '공상과학만화'나 '환상동화'를 어른들이 쥐어 주었을 때, "에이, 재미없어"라고 집어던지는 까닭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상상은 꿈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어른들끼리 즐기는 용두질(자위행위)일 수도 있고요.

 민화나 옛날이야기를 무척 재미있게 듣고 읽는 어린이들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자기 삶과 이어진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또 다른 세계가 주는 재미"로 여겨요.


 ..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들은 콩나무에 올라간 잭이나 엄지
 동자(공상 이야기)보다 톰(현실 이야기)을 훨씬 친근하게 느낀다.
 자신과 톰의 입장을 동일시한다. 이윽고 신비한 일들이 벌어진다.
 자신과 톰을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자기 자신에게
 생긴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자신이 속한 일상 세계에서 기대하
 던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각한다. 먼 옛날, 먼 곳에서 일
 어난 일이 아니다. 지금 자기 앞에 또 하나의 세계가 나타나는
 즐거움이다 .. <87쪽>


 자기 또래 어린이가 쓴 글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어린이들입니다.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걱정도 하고 즐거워도 해요.


 <쥐 - 조혜영, 1985년 12월 9일 / 경상도 울진 온정국 3년>

 마루 위에
 메주가 있어요.
 밤에만 쥐가 와서
 깕아먹어요.
 엄마는 매일
 고노무 쥐
 고노무 쥐.
 할아버지가
 찬깨(덫)를 놓았어요.
 쥐가 꼬리에 찡겨서
 피가 묻었어요.
 쥐는 가만히
 눈만 감고 있어요.  <큰길로 가겠다,한길사(1987)>에 실린 시 가운데 하나


 자기 또래가 쓴 이런 시를 읽고 함께 걱정하고 마음을 쓰는 어린이입니다. 나도 알고 내 동무도 아는, 나도 살고 이웃도 함께 살아가는 터전을 바탕으로 펼쳐내고 이어가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요. 그저 먼 나라 이야기인 '판타지'가 아니라, '자기가 발 딛고 선 땅'을 바탕으로 펼쳐내는 끝없는 상상 이야기에 흠뻑 빠지는 어린이들입니다.

 어린이 자신에게 남다르게 소중한 세계가 있음을 느끼는 동안, 자기 삶을 사랑하고 더 나은 재미와 보람과 즐거움과 꿈을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과 꿈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 그것은 바로 놀이와 일이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입니다.


 <4> 전쟁 어린이문학


 마지막으로 "전쟁 어린이문학"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귀담아듣고 생각해 볼 만한 말이 있습니다. 전쟁 어린이문학은 그냥 '전쟁문학'이라 하여 어린이와 어른 모두 깊이있게 돌아보고 살피면 좋을 비평이기도 해요.


 .. 인간성은 어제 일어난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내일 일어날 비인간
 적 행위를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체 그런 인간성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을 규명하지 않고서는 과거의 학살을 돌이켜 생각할 수
 없다. 여기에 전쟁 어린이문학이 생겨난 하나의 이유가 있다.
 전쟁 자체를 그렸다기보다 전쟁으로 인해 왜곡된 인간, 나약한 인간
 을 그린 어린이책은 무수히 많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 사실의 전달
 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가 하는 질문과
 닿아 있다. 그것을 밝혀 냄으로써 현재 속에서 어제에 대한 책임,
 또는 내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거기에 있다 .. <163쪽>


 얼마 앞서 <나스 마사모토 그림-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이 하나 우리 말로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을 책방에서 서서 보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닫았습니다. 일본이 "왜 전쟁을 일으켰고, 전쟁을 일으키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고 고통받게 했는지"는 한 마디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원자폭탄 피해를 입은 일본사람들 아픔과 슬픔, 그리고 전쟁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상투성 짙은 교훈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피해자는 일본사람만이 아닙니다. 그때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수많은 한국사람도 있고 중국사람도 있고 동남아시아사람도 있어요. 더구나 일본 정부는 원폭피해자로 '한국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가 2002년에 와서야 겨우 인정했지만, 국가 차원 배상이 아닌, 지금도 일본에서만 사는 피폭자만 대상으로 삼고, 그것도 몇 사람에게만 한정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림책은 '전쟁 자체'만 말할 뿐, 전쟁 때문에 비틀리고 뒤틀리고 괴롭고 힘겨운 사람들 삶을 담아내지 못해요. 아예 안 한달까요? 나아가 자칫하면 역사 왜곡으로 번질 수도 있습니다. <맨발의 겐>이라는 만화책에서는 그나마 '한국인 피폭자' 이야기도 나오지만 그것도 그저 겉핥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란 그림책엔 아예 나오지도 않아요.

 이런 '전쟁 어린이문학' 비평을 읽다 보면, 이것은 어린이문학에만 할 말이 아니라 어른문학에서도 할 말이에요. 그러니까 '문학'으로 할 말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헤아릴 일이고요.

 어린이도 어른도 모두 사람입니다. 소중한 사람입니다. 문학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이어야 합니다. 문학비평이라면 바로 이 모든 사람을 헤아리고 살피고 사랑하는 문학비평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우리네 문학과 문학비평은 나날이 사람과 멀어져 가지 싶어요. '재미(놀이)' 한 가지로만 치닫거나, 무거운 '주제(유익)'에만 푹 빠져요. 재미와 주제는 둘 가운데 한 가지만 있을 때는 참 심심하거나 따분합니다. 함께 있어야 가장 좋아요.

 <현대 어린이문학>이라는 책이 두루 읽을 만한 책은 못 되겠지만, 문학을 좋아하고 사람 삶을 사랑하는 이라면 찬찬히 살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낱 '어린이문학 비평'만 하는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문학'을 글감 삼아서 인생론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말하고 사람과 삶과 사랑을 보듬습니다. 하지만 번역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너무 형편없고, 우리 말법과 말투하고는 동떨어져 있어서 아쉽습니다. 앞으로 이런 책을 펴낼 때는 부디 '우리 말 다듬기'라도 좀 해놓고 내놓으면 좋겠습니다. (4337.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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