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

책숲하루 2025.1.12. 그냥은 없다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국어사전 짓는 서재도서관)

: 우리말 배움터 + 책살림터 + 숲놀이터



  언제부터 등짐을 이토록 지며 살았나 하고 문득 돌아보니 여덟 살부터입니다. 요즈음 어린이는 빈몸으로 다니곤 하지만, 예전 어린이는 책가방이 대단히 무거웠고, 두 손에는 배움터에 내는 헌것(폐품)이라든지 짐(숙제)에 챙길거리(준비물)이 그득했습니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 많은 살림을 다 집에서 배움터까지 낑낑대며 날라야 했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푸른배움터 책가방은 두어 곱으로 무거웠습니다. 이태 남짓 다니고 그만둔 대학교에서도 저는 늘 책으로 가득한 등짐을 이고 졌습니다. 혼자 살아갈 적에도, 두 아이를 낳아 돌볼 적에도, 언제나 등짐이 묵직했습니다. 싸움터(군대)에서도 언제나 등짐은 쇳덩이 같았습니다. 밤에 드디어 자리에 누울 적에만 등허리가 홀가분했으니, 이 몸이 얼마나 애썼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등허리가 욱씬거리거나 쑤신 채 마흔 해 남짓 살았는데, 올해 들어 열흘쯤 눕지도 서지도 않지도 걷지도 못 하는 찌릿한 등허리로 보냅니다. 말 그대로 어떻게 있든 등허리가 쑤시고 결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나날입니다. 용케 열흘 즈음 접어들자 조금씩 풀리니, 제법 풀리면 다시 저잣마실을 가야지요.


  결리고 쑤시고 아픈 등허리에 눈물을 찔끔대면서 고요히 돌아보았어요. 저는 서른아홉 살 때까지 숨을 제대로 못 쉬었습니다. 코머거리인 몸이거든요. 서른아홉 살에 비로소 숨쉬기를 처음부터 새로 배우면서 이제는 숨을 걱정없이 쉰 지 고작 열 해째를 넘어섭니다. 그냥 쉬는 숨이 없듯, 그냥 쓰는 등허리란 없어요. 이 등허리가 여태 책짐을 얼마나 많이 실어날랐고, 아이들을 얼마나 실컷 업고 살았는지 잊었다고 깨닫습니다.


  들숨날숨이 늘 고맙듯, 팔다리에 등허리에 온몸이 다 고맙습니다. 늘 입에 달고 사는 “고맙습니다”인데, 정작 스스로 제 몸한테는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안 했다고 뉘우칩니다. 등허리님 고맙습니다. 손발가락님 고맙습니다. 뒷꿈치와 종아리와 정강이 모두 고맙습니다. 눈코귀입 모두 고맙고, 머리카락님 고맙습니다.


ㅅㄴㄹ


*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 짓는 일에 길동무 하기

http://blog.naver.com/hbooklove/28525158


*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 지기(최종규)가 쓴 책을 즐거이 장만해 주셔도 새로운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짓는 길을 아름답게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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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335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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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3.

노래책시렁 417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김선우

 문학과지성사

 2007.7.6.



  우리나라를 곰곰이 보면, “시를 쓰자”고 할 적에 주춤하는 분이 수두룩하고, 뭔가 멋을 부려야 한다고 여기기 일쑤입니다. “글을 쓰자”고 할 적에 멈칫하는 분이 많고, 글은 아무나 못 쓴다고 여기곤 합니다. “하루를 쓰자”나 “오늘을 쓰자”고 하면, 우리 같은 사람이 보내는 하루야 늘 똑같은데 쓸거리가 있느냐고 하나같이 발을 빼더군요.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를 돌아봅니다. ‘시집’입니다. ‘시는 이렇게 써야 한다’고 밝히는 글이라고 느낍니다. ‘시집’이라면 책이름도 이렇게 붙여야 한다고 여기고, 우리 오늘도 우리 하루도 우리 삶도 아닌, 머리로 지은 틀에 따라서 갖은 꾸밈길(수사법)을 부려야 한다는 보기로 삼을 만합니다. 그러나 글을 굳이 이렇게 써야 할는지 돌아볼 노릇입니다. 왜 ‘삶글’도 ‘살림글’도 ‘사랑글’도 아닌 ‘문학·예술·문화·창작·수사·기교·시작’을 해야 하는지 곱씹을 일입니다. ‘문학잡지 발표’를 해야 하기에 써야 한다면, 이미 모든 문학은 죽었습니다. 아줌마 아저씨가 하루노래를 그리기를 바라요. 가시내 머스마가 오늘노래를 부르기를 바라요. 노래가 흐르는 나라가 아름다워요. 노래가 없는 나라는 메마른 허허벌판이에요.


ㅅㄴㄹ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 내 생을 사랑하지 않고는 / 다른 생을 사랑할 수 없음을 늦게 알았습니다 (낙화, 첫사랑/12∼13쪽)


중음(中陰)의 보드라움, 몽유하는 혼들이 숨구멍처럼 열렸네요 오, 예뻐요. 빗방울처럼 제각각 몸을 둥글린 시간들 / 우리가 오직 날개의 무게로만 와도 / 씨앗들 퍼지네요 (뻘에 울다/40쪽)


+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김선우, 문학과지성사, 2007)


이 시집이 세상에 보내진 이후

→ 이 노래책이 나온 뒤

→ 이 노래책을 낸 다음

3


당분간 시를 떠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한동안 노래를 떠날지도 모르겠다

→ 살짝 노래를 떠날지도 모르겠다

3


청탁받고 발표하는 관행으로부터 떠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글을 여쭈고 내는 틀을 떠나려고 한다

→ 글을 바라고 싣는 틀거리를 떠날 셈이다

3


흙 속의 누군가에게 무언가 먹이고 있는 듯한

→ 흙에 사는 누구한테 무언가 먹이는 듯한

11


추락하는 그대의 속도를 앞지르겠습니다

→ 떨어지는 그대를 앞지르겠습니다

→ 곤두박는 그대를 앞지르겠습니다

12


지구의 시간은 계절 밖을 떠돌았을 것이니

→ 푸른별 하루는 철을 벗어나 떠돌 테니

17


문제는 내가 떨림을 잃어간다는 것이데

→ 그런데 내가 더는 안 떠는데

20


세계의 바깥이 아니라 안쪽을 선택한 아기에게 축복의 말을 주는 듯했네

→ 바깥나라가 아니라 안쪽을 고른 아기를 기리는 듯했네

25


번쩍이는 장대한 콘크리트 유적지

→ 번쩍이고 드넓은 잿더미

→ 번쩍이고 커다란 잿덩어리

33


홀홀한 이슬의 손이 어느 날

→ 뒤숭숭한 이슬손이 어느 날

→ 가벼운 이슬손이 어느 날

38


중음(中陰)의 보드라움, 몽유하는 혼들이 숨구멍처럼 열렸네요

→ 보드라운 쉰날, 꿈에서 노는 넋이 숨구멍처럼 열리네요

40


우리가 오직 날개의 무게로만 와도

→ 우리가 오직 날개 무게로만 와도

40


시들지 않는 신접살림이

→ 시들지 않는 꽃살림이

41


혼례의 밤이 왔지

→ 꽃가마 밤이 왔지

→ 꽃살이 밤이 왔지

50


극점에 도달하면 비워야 하는 것이 지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 끝에 닿으면 비워야 하는 푸른길이기 때문이다

55


분분한 꽃잎들, 내가 그들의 엄마였다면 눈물로 말렸겠지만

→ 나풀대는 꽃잎, 내가 꽃잎 엄마라면 눈물로 말리겠지만

→ 흩날리는 꽃잎, 내가 꽃잎 엄마라면 눈물로 말리겠지만

62


벼랑 위 홑겹 줄지어 늘어선 집들

→ 벼랑에 홑겹 줄지은 집

→ 벼랑에 홑곁 늘어선 집

75


내가 곡비(哭婢)로 하늘머리 이고 서서 오작교를 내놓아라, 큰 곡을 부르나니

→ 내가 눈물종으로 하늘머리 이고 서서 까막까치길 내놓아라, 크게 부르나니

→ 내가 우는종으로 하늘머리 이고 서서 까막까치다리 내놓아라, 외치나니

78


내 고단함을 염려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괜찮습니다

→ 고단할까 걱정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걱정없어요

→ 고단할까 근심하는 그대 목소리 듣습니다 나, 멀쩡해요

87


돌담 속 너의 꽃잠 만진 적 있지

→ 돌담에서 네 꽃잠 만진 적 있지

→ 돌담 네 꽃잠 만진 적 있지

95


인생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 삶은 아직 흘러요

→ 오늘은 아직 나아가요

→ 하루는 아직 번져요

118


나를 보고 있는 중에도 나만 보지 않고

→ 나를 보는데도 나만 보지 않고

121


사골국 은하에 밥 말아

→ 소뼈국 누리에 밥 말아

→ 뼛국 바다에 밥 말아

121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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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시집선 16
권유영 외 지음 / 파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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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꽃 / 문학비평 . 시읽기 2025.1.13.

노래책시렁 472


《파도시집선 16 숲》

 권유영과 50사람

 파도

 2024.6.21.



  국립국어원 낱말책은 ‘숲’을 “‘수풀’의 준말”로 풀이할 뿐입니다. 북녘 낱말책도 똑같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푸른 숨결이자 숨빛이지만, 정작 제대로 마음을 못 기울이거나 안 씁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뿐 아니라 우리도 비슷합니다. 엉성하거나 후줄근한 뜻풀이라면 우리 스스로 북돋우고 가꾸고 살찌울 노릇인데, 우리는 나라가 해놓은 대로 따라가기 일쑤입니다. 《파도시집선 16 숲》은 쉰 사람이 저마다 노래한 ‘숲’ 이야기를 담는구나 싶은데, 찬찬히 읽어 보니 막상 ‘숲복판’이나 ‘숲곁’에서 살아가면서 노래를 쓴 분은 없지 싶습니다. 숲에 깃들면서 숲빛을 보고 숲내음을 맡고 숲바람을 마시는 하루라면 ‘먼발치’에서 구경한 숲을 글치레로 적지는 않습니다. 숲에 깃드는 사람은 나무 한 그루하고 풀 한 포기 이름을 또렷하게 밝히면서 다 다른 나무와 풀하고 어우러지는 다 다른 나비와 애벌레와 새 이야기를 적어요. 더욱이 한 갈래 나무라 하더라도 모두 다른 소나무에 잣나무에 참나무인걸요. ‘글감’으로만 숲을 바라보기보다는 삶·살림·사랑으로 숲을 품고 마주하는 자리에서 마음으로 깊고 넓게 스미는 숲을 옮길 수 있기를 바라요. 대단히 커다란 숲을 품어야 하지 않아요. 보금숲과 마을숲이면 넉넉합니다.


ㅅㄴㄹ


괴로우나 즐거우나 / 그 앞을 찾아가 쏟아낸다 / 아무도 없지만 / 분명히 모두가 듣고 있다지 (숲/권유영 13쪽)


아니야 // 저기 멀리 / 달아나는 내가 있다 (토도/국다현 25쪽)


우리 이렇게 안은 그대로 나무가 되고 싶다. / 나도, / 우리가 나무가 된다면 무슨 나무가 될까? (우리, 나무가 되자/우초원 60쪽)


+


《파도시집선 16 숲》(권유영과 50사람, 파도, 2024)


세상은 높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지는 거라 믿었던 우리

→ 둘레는 높아가지 않고 넓어간다고 믿던 우리

→ 온누리는 높기보다 넓다고 믿은 우리

14쪽


거긴 이미 무성해져

→ 거긴 이미 우거져

→ 거긴 이미 짙어

16쪽


너도 사실 화분만한 집에 심겨져 있으면서 그렇게 촉박하게 굴지 말어

→ 너도 꽃그릇만 한 집에 있으면서 그렇게 빠듯하게 굴지 말아

→ 너도 그릇만 한 집에 심겼으면서 그렇게 바쁘게 굴지 말아

18쪽


바다가 지구의 보석함이듯 나무가 하늘의 안식처라면

→ 바다가 푸른별 빛집이듯 나무가 하늘 보금터라면

→ 나무가 파란별 반짝집이듯 나무가 하늘 둥지라면

28쪽


여전히 이기적인 우리와 여전히 이타적인 너희가 영원히 이 별에 남아

→ 아직 제멋대로인 우리와 아직 사랑인 너희가 오래오래 이 별에 남아

→ 내내 눈먼 우리와 내내 돌보는 너희가 언제까지나 이 별에 남아

29쪽


심장보다 높은 곳에 두고 피가 돌게 한다

→ 가슴보다 높은 곳에 두고 피를 돌린다

→ 염통보다 높은 곳에 두고 피가 돈다

33쪽


가로수는 초록에 몰두하는 중이다

→ 길나무는 푸르게 물들어간다

→ 거리나무는 풀빛으로 스며간다

50쪽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곳

→ 여름을 알리는 곳

→ 여름이라 알리는 곳

→ 첫여름을 알리는 곳

63쪽


청록의 사슴이 내 어깨를

→ 옅푸른 사슴이 내 어깨를

→ 봄쑥빛 사슴이 어깨를

68쪽


이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에덴

→ 이곳은 누구도 듣지 않는 꽃동산

→ 이곳은 도무지 맞지 않는 꿈터

70쪽


아직도 네가 숲에서 샤워를 하는지 궁금해서

→ 아직도 네가 숲에서 씻는지 궁금해서

→ 아직도 네가 숲에서 헹구는지 궁금해서

78쪽


한낮의 매서운 햇빛을 피해 무성한 잎사귀 아래로 숨어든

→ 한낮 매서운 볕을 그으려 우거진 잎사귀 밑으로 숨어든

→ 한낮 매서운 햇볕 탓에 짙푸른 잎사귀 밑으로 숨어든

84쪽


목련의 꽃말은 당신의 이름 고귀하고 고귀한

→ 방긋나무 꽃말은 네 이름 반짝이고 반짝이는

→ 봉긋나무 꽃말은 그대 이름 빛나고 빛나는

97쪽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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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343 :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

→ 돼지 하나. 소 하나. 닭 하나

→ 돼지. 소. 닭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43쪽


사람하고 짐승을 셀 적에 다른 말을 씁니다. 짐승을 따돌리거나 낮추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고 짐승은 짐승이라서, 알아보기 쉽도록 할 뿐입니다. 나무를 ‘그루’로 세고, 풀을 ‘포기’로 세고, 꽃을 ‘송이’로 셉니다. 다 다른 숨결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살핀다는 뜻입니다. 능금이며 복숭아이며 살구를 ‘알’로 셉니다. 보리이며 수수이며 낟알이나 씨앗을 ‘톨’로 셉니다. 사람은 ‘머리’를 보면서 셉니다. 짐승과 헤엄이는 ‘머리’를 살짝 돌린 ‘마리’로 셉니다. 때로는 “한 사람 두 사람”처럼 셉니다. 그리고 굳이 하나치를 안 붙이고서 “하나 둘 셋 넷”처럼 세지요. 돼지는 “돼지 한 마리”나 “돼지 하나”로 세면 됩니다. “한 명의 돼지. 한 명의 소. 한 명의 닭”처럼 돼지와 소와 닭한테 ‘명(名)’을 붙이기보다는 “돼지. 소. 닭”처럼 수수하게 바라볼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마음이 되리라 봅니다. “돼지 하나. 소 하나. 닭 하나”처럼 쓰면 되고요. ㅅㄴㄹ


명(名) : 사람을 세는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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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1344 : ‘모부’라는 단어


‘모부’라는 단어에도 힘을 싣고 싶다

→ ‘어버이’라는 말을 힘껏 쓰고 싶다

→ ‘엄빠’라는 낱말을 힘차게 쓰고 싶다

《날씨와 얼굴》(이슬아, 위고, 2023) 45쪽


낱말책에 없는 ‘모부(母父)’가 무엇인가 하고 살피니 ‘래디컬 페미니즘’에서 지은 한자말이라고 합니다. 한자말은 으레 사내를 앞에 두는 얼개입니다. 한자말은 예부터 중국을 섬기고 사내를 높이는 틀이었으니 ‘부모(父母)’처럼 쓰겠지요. 그러나 가시내를 앞에 두고 싶다면 우리말을 쓰면 됩니다. ‘엄마아빠’라 하면 되지요. 우리말은 사내 아닌 가시내를 앞에 둡니다. ‘아빠엄마’처럼 말하는 일도 더러 있으나 으레 ‘엄마아빠’처럼 말하지요. 아이 말씨를 지나 철든 말씨로 접어들면 “어머니 아버지”라 합니다.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아우르는 우리말은 ‘어버이’예요. ‘어(어머니) + 버(아버지) + 이’인 얼개입니다. 중국을 섬기면서 사내를 높이는 틀이 낡아빠졌기에 갈아치워야 한다고 여기면, 한자말로 장난을 치기보다는 우리말로 쉽게 ‘엄마아빠’나 ‘어버이’를 쓰면 됩니다. 한 가지를 보태면, ‘가시버시’라는 오랜 우리말은 한자말로 ‘부부’를 가리키는데 ‘가시(가시내·여성) + 버시(벗·남성)’인 얼개예요. 그냥 우리말로 쉽게 쓰면 저절로 어깨동무(여남평등 또는 남녀평등 또는 래디컬 페미니즘)를 이룹니다. ㅅㄴㄹ


모부(母父) : x

단어(單語) : [언어] 분리하여 자립적으로 쓸 수 있는 말이나 이에 준하는 말. 또는 그 말의 뒤에 붙어서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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