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가에서 물 뜨기


 - 1 -

 충주에 돌아온 뒤 땀에 전 옷을 벗고 부엌 수도꼭지부터 살핀다. 물이 안 나온다. 틀림없이 날이 풀려서 녹았을 텐데? 펌프 자리로 가서 뚜껑을 열어 본다. 전깃줄이 뽑혀 있다. 누군가 뽑은 듯. 전깃줄을 잇고 수도꼭지를 다시 살핀다. 아무 움직임이 없고 펌프 돌아가는 소리도 안 난다. 지난해 이웃집이 불타면서 펌프 부속도 불탔을까?

 하는 수 없이 윗마을로 올라가 물을 뜨기로. 물통을 가방에 담고 느릿느릿 고갯길을 올라간다. 수도꼭지를 틀면 철철철 나오는 곳에서 뜰까 하다가 아기 오줌줄기보다도 가늘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샘가에서 물을 뜨기로 한다. 글쎄, 이런 물줄기로 받는다면 어느 세월에 한 통을 받을까 싶지만, 물통 뚜껑을 받쳐서 똑똑똑 떨어지는 물을 몇 방울씩 받으며 조금씩 물통을 채운다.

 쪼그려 앉은 채 물을 뜬다. 아주 조금씩 차오르는 물통이 1/10, 1/7, 1/4, 드디어 반쯤. 몇 분쯤 흘렀을까. 삼십 분도 넘은 듯한데.

 틈틈이 허리를 편다. 고개를 들어 새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며 어느 나뭇가지쯤 앉아 있나 찾아본다. 하지만 아무 새도 안 보인다. 안경을 안 써서 그렇기도 하지만, 내 주먹만큼도 안 되는 조그마한 새들이겠지. 박새, 콩새.

 오랫동안 똑똑 물줄기를 받노라니 물소리 하나하나 퍽 큰소리로 들린다. 나뭇가지에 앉은 새소리도 제법 큰소리로 들린다. 샘터 바닥에 가라앉은 모래를 보고, 물 한 모금 떠서 손가락으로 이닦기를 하고, 따사로운 햇볕을 냠냠 받아먹고, 서늘한 낮공기를 큼큼 들이키고.


 - 2 -

 샘가에서 물을 뜨는데, 윗마을 공동체학교에서 지내는 아이 둘이 개를 풀어서 내 뒤까지 끌고 온다. 이상한 사람이 와서 쫓아내려고 그러나? 그 개는 아주 어린 새끼였을 때부터 가까이서 보아 온 녀석. 이 녀석은 어릴 적 이웃 개한테 잘못 물려서 거의 죽다가 살아났다. 얼굴을 보면 한쪽으로 뒤틀려 있다. 새끼였을 때는 퍽 불쌍하다고 느꼈는데, 다 자란 뒤 나를 보고 컹컹 짖는 모습을 보면 정나미가 떨어진다. 다른 개들은 나를 보고 안 짖고 안기거나 얌전히 있는데 이 녀석만 짖는다. 하지만 모르지. 개가 짖는 소리에 무슨 뜻이 담겼는지 사람 생각으로만 바라볼 수 있는가.

 그나저나 이 아이들은 왜 개를 끌고 내 뒤에 서는가. 할 말이 있으면 입으로 하든가, 보기 싫으면 나가라고 하든가. 이 아이들은 한 마을에, 그것도 바로 위아래에 나뉘어 있는 집에서 사는 사람을 모르는가. 하긴, 나도 이 아이들 얼굴이 낯설다. 아마 서로 얼굴 마주칠 일이 없어서 그럴 테지. 어른인 내가 아이들 얼굴을 잊지 않고 떠올린다고 해도, 아이들이 어른 얼굴을 모두 떠올리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자(이 아이들하고 가까이 지낼 일은 없지만 이래저래 스치며 여러 번 보기는 했으니까).

 등 뒤에서 바로 개 짖는 소리를 들으니까 물을 뜨던 손이 떨린다. 파르르.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이들한테, 그것도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닌다는 아이들한테 도둑이나 이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 조금 뒤, 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 가운데 오랫동안 가까이 지냈던 아이 하나가 나를 알아보고 “야, 최종규 선생님이야.” 하고 왜들 그러느냐고 이야기. ○○○구나. 히유. 한숨이 나온다. 그렇지만 개를 끌고 온 아이들이 내 이름이 뭔지, 내가 어디에서 사는지, 내가 무얼 하는 사람인지 알 턱이 없을 테고,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안다 한들 달라질 것 없겠지.


 - 3 -

 한참 물을 뜨다 보니 손과 발이 얼었다. 처음에는 몸에 땀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자전거 타고 살림집에 닿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그래서 샘가에서 얼굴 씻고 발 씻을 때 시원함만 느꼈으나, 한참 쭈그려 앉으며 물을 뜨는 동안 허리도 쑤시고 손발도 시리고. 하지만 물통은 언제 찰는지 까마득하고.

 그렇지만 똑똑똑 떨어지는 물줄기를 쏴아아 흐르도록 할 수 없다. 무슨 기계로 빨아들인다한들 더 빨리, 더 많이 나올 수 없다. 그저 지금 이 빠르기대로, 이 흐름대로 받을 뿐이다. 억지를 쓴다고, 꾐수를 쓴다고 달라지겠는가. 조바심을 낸다고, 안달을 한다고 바뀌겠는가. 말없이 기다릴 뿐이다. 그저 있는 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추운 겨울, 물이 얼어붙는 시골집에서는 으레 견뎌야 하는 일이며, 몇 방울밖에 안 떨어지는 물줄기라도 고맙게 느껴야지.

 문득, 물 한 동이 뜨려고 십 리나 이십 리 길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다녀야 한다는 사막마을 아이들이 떠오른다. 그 아이들과 견주면 나는 얼마나 수월한가. 이만한 물줄기라도 하늘에서 내려준 복이 아닌가.


 - 4 -

 물은 반 조금만 더 받는다. 개 짖는 소리 듣기 싫고, 손발도 많이 얼었다. 밥할 만큼은 떴으니, 이것으로 넉넉하다. 다음에는 자전거 타고 휭 왔다가, 다시 자전거 타고 휭 사라져야지.


 - 5 -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늙은 감나무 옆에서 쉬를 보다. 올해에도 감 몇 알 열어 주시겠지. 내가 이 감나무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시골집에 있을 때 틈틈이 올려다보거나 쓰다듬어 주기, 때때로 오줌을 주기. (4340.2.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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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리타 골든 겔만 지음, 강수정 옮김 / 눌와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
- 글쓴이 : 리타 골든 겔만
- 옮긴이 : 강수정
- 펴낸곳 : 눌와(2005.4.30.)
- 책값 : 14000원


 재미있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딱히 잡혀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낍니다. 꼭 이래야 하거나 저래야 하는 법이 없으니 재미있지 싶어요. 시험을 치를 때 꼭 100점을 맞아야 하지 않아요. 99점만 맞아도 좋아요. 뭐, 80점으로 흐뭇할 수 있고, 50점만으로도 기쁠 수 있습니다. 10점이나 5점 맞고 웃을 수 있어요. 제 고등학교 때 성적표를 보면, 영어 94점, 한문 97점, 수학 24점, 윤리 51점, …… 이랬습니다. 수학점수가 10점대였던 적도 있지 싶고 골치아픈 서양철학만 외우게 하는 윤리는 30∼40점에 머문 적도 있지 싶습니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어요. 아니, 좋았습니다. ‘난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더 많이 할 테야’ 하고 생각했거든요.


.. 나는 누군가 다른 이의 삶을 살고 있다. 근사한 레스토랑과 유쾌한 사람들, 아카데미니 그래미니 하는 각종 행사들로 채워진 그리 나쁘지 않은 삶이다. 24년을 함께 산 남편과 나는 유명 인사들과 어울려 저녁을 먹고, 최근 영화들을 시사회에서 감상한다. 로스앤젤레스의 도서 관련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초대된다. 남편이 유명한 잡지의 편집자문 일을 하는 덕분에 우리는 남들이 흔히 누리지 못하는 특권과 화려함으로 채워진 삶을 구가한다. 하지만 이젠 그런 자리에 가더라도 특권을 향유한다는 뿌듯함 대신 눈부신 화려함이 왠지 불편하게만 느껴진다. 나는 더 이상은 나라고 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를 위한 명품의 세계에 살고 있다 ..  〈13쪽〉


 지금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난 내가 살고픈 대로 살 테야’ 하고 마음먹으면서 살고 있고, ‘난 내가 읽고 싶은 대로 읽을 테야’ 하면서 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서 읽습니다. 충주에서 서울로 자전거를 타고 오가기를 즐기는데, 올겨울에는 손발이 많이 시려워서 때때로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쯤 따뜻하게 가곤 했습니다. 얼어붙는 손발을 부여잡고 낑낑대며 달릴 때에는 ‘참 괴롭구나’ 싶었지만, 글쎄, 괴롭기는 해도 즐겁더군요. 더우면 더운 대로 ‘이게 바로 더위구나’ 하고 느꼈고, 추우면 추운 대로 ‘이게 바로 추위구나’ 하고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면 몸은 느긋했지만, 마음은 무겁습디다. ‘이거 너무 몸이 느긋하게 다니는 셈 아닌가’ 싶었고, 돈 몇 푼(찻삯)으로 자꾸만 손쉬운 길을 가면 마음까지 흐물흐물 늘어지지 않을까 걱정스럽더군요. 그래서, 고속버스에서 내린 뒤 다시 추위를 와락 껴안으며 달릴 때면 참 시원하데요. 그 짜릿한 추위와 칼바람이란! 하하!


.. 지금은 내가 선택한 삶의 자유와 독립을 구가하는 중이다. 만약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면 니카라과에는 결코 가지 못했을 것이다 ..  〈117쪽〉


 곧 설 명절이 다가옵니다. 설 명절에 부모님 집에 갈까 말까 망설입니다. 저는 제가 살고픈 대로 살기 때문에, 저 한 사람한테는 좋다고 하겠지만 이웃사람, 이 가운데 집안식구들한테는 썩 좋지 못합니다. 혼인과 이혼도 멋대로 했으니 집안식구들로서는 달가웁지 않겠지요. 제 둘레에 있는 다른 분도 비슷하리라 봅니다. 저는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이지만, ‘야, 니가 고생하며 사는 걸 너 빼고 누가 좋아하겠냐?’ 하고 말하는 선배들 말을 들으면, ‘그렇구나. 나는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구질구질하게 뭐 하는 짓이냐고 느끼겠구나’ 싶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지내는 시골집을 슥 둘러보시더니 ‘무슨 피난민 수용소 같네’ 하던 부모님 말씀이 떠오르는군요.


.. 코네티컷의 부모님 댁에서 일주일을 머문다. 두 분은 내 인생에 대해 무척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신다. 딸이 결혼해서 안정된 삶을 꾸리길 원하신다는 걸,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고 말해도 믿지 않으신다는 걸 나는 잘 안다. 인생에 대해서는 아무리 그래도 당신들이 더 잘 안다. 여자는 남편이 있어야 행복하다는 걸. 그게 인생이라는 걸. 엄마는 딸과 이혼한 옛 사위에게 얼마 전에 생일 선물을 보냈다고 얘기하신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심 우리가 다시 화해하기를 바라신다 ..  〈89쪽〉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셈일까요?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집안식구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 아니면 자기가 생각하는 잘사는 삶을 꾸려야 할는지요? 이 모두가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삶을 꾸려야 잘사는 삶일까요?


.. “의료 교육을 받으셨나요?” 내가 묻는다. “아니오.” 그녀가 대답한다. “그렇지만 엄마들이라면 다 아는 일들인걸요.” 그녀는 자식이 다섯에, 손자는 열다섯 명을 두었다 ..  〈106쪽〉


 《나는 유목민, 바람처럼 떠나고 햇살처럼 머문다》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난 미국여자 한 사람이 세계 여러 곳을 두루 다닌 이야기를 끄적였나 싶어 따분할지 모르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글쓴이가 ‘남 보란 듯이 꾸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즐겁게 꾸리는 삶’을 찾고자 위자료 한 푼 안 받고 이혼을 마음먹은 뒤, 제3세계를 중심으로 홀몸으로 낯선 세상과 사람들을 부대끼는 이야기임을 깨달은 뒤에는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군요.

 남들 따라 살지 않고 나 따라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한 번 살고 떠나는 이 세상에서 굳이 미련이나 아쉬움을 남기지 말고 깨끗하게, 자유롭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살아가니까 그럴까요. 더 많이 움켜쥐거나 가지려는 삶이 아니라, 더 많이 부대끼고 즐기려는 삶이라서 그럴까요. 떠날 때는 바람, 머물 때는 햇살. 그래, 그렇군요. 가볍게 살되, 한 자리에 머물 때는 따순 마음을 펼칠 수 있어야겠군요. 저는 바람처럼 살는지 모르나 햇살처럼 못 머물고 있었습니다. (4340.2.7.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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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
- 헌책방 책값 느끼기


 책등이나 책 뒤쪽에 책값 딱지를 붙여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 숫자나 기호를 적어 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값 딱지를 안 붙이고, 숫자나 기호도 안 적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책값 딱지를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책손이 책마다 매겨진 제값을 잘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책값 딱지를 안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다 비슷비슷한 값인데 구태여 책값 딱지를 붙일 까닭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아예 책꽂이마다 책값을 달리해서 꽂아 놓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열어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책값을 붙이는 방법이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책값을 붙이는 방법만큼이나 책값 매기는 잣대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김남주 시인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학습지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마음을 더 두는 책에, 자기가 더 좋아하는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깁니다. 장사하는 처지로 본다면, ‘내가 안 좋아해도 남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헌책방 임자가 ‘아는 책’이나 그렇지 ‘모르는 책’에 섣부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조복성’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으며(책손조차도 거의 모릅니다만), ‘앨런 테인 더닝’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도종환이든 조정래든, 헌책방 임자로서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지은 사람’일 뿐입니다. 책더미 사이에서 눈에 뜨여서 따로 빼낸 뒤 좀더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지만, 그냥 책탑을 쌓아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종환 님 책이라면 시집 칸 한쪽에 그냥 꽂아 놓을 수 있고, 조정래 님 책이라면 소설책 두는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새책 값으로 6000원이 붙은 도종환 님 시집을 헌책방에서 2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1000원이나 1500원에 팔면 싼값일까요? 3000원에 팔면 비싼값일까요? 새책 값으로 9000원이 붙은 조정래 님 산문모음을 헌책방에서 4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3000원만 받아야 알맞을 값일까요?

 그제 강우방 님 산문모음을 5000원 주고 한 권 샀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8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이고, 어떤 헌책방에서는 3000원이나 4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책이 저한테 아주 쓸모있고 소중하다면 8000원이 아니라 1만 원을 불렀어도 조금도 비싸지 않다고, 참 싸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값어치없다고 느꼈다면, 3000원이 아닌 거저로 준다고 해도 짐스러워서 안 받겠지요.

 어느 헌책방이든 5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500원이나 1000원이라는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는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즐겁게 만나서 사 읽을 만한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반갑게 사 읽을 만한 책’이라면, 헌책방 임자가 책 값어치를 몰라서 대충 싸구려로 후려치며 내다 파는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아니면 헌책방 임자가 알뜰히 손질하고 책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어 얌전하게 책시렁에 꽂아 놓은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헌책방을 찾든 새책방을 찾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은, 우리들이 치러야 할 만한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갓 나온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눈빛)은 6만 원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사진책 《인간》은 6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6만 원이 붙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라는 책은 1만 원이라는 책값이 붙었습니다. 이 책은 1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1만 원이 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책값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온다면, 책값이 헌책방마다 다릅니다. 먼저, 헌책방에 들어오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이라 해도, ㄱ이라는 헌책방에는 1000원에 들어오고, ㄴ이라는 헌책방에는 500원에 들어오며, ㄷ이라는 헌책방에는 100원에 들어오고, ㄹ이라는 헌책방에는 50원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ㄱ와 ㄴ은 책값이 어떻게 될까요. ㄷ과 ㄹ은 어떻지요? 1000원에 들어오는 책이라 해도,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면 책값은 한결 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책을 즐겁게 사서 읽고 있는가요.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오늘날인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헌책방 책꽂이에 자꾸자꾸 쌓이기만 하는’ 오늘날인지.

 모든 책에는 그만한 값이 매겨집니다. 먼저, 책에 담긴 글-그림-사진을 풀어낸 글쓴이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다음으로, 책을 엮어낸 출판사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책을 죽 늘어놓고 파는 책방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는 책은, 먼저, 책을 내놓은 사람한테 물건값(책값)을 보상해 줍니다. 또는, 고물상이나 폐휴지수집상에서 책을 거두어들인 샛장수한테 물건값을 보상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들어온 헌책을 매만지고 손질해서 갖추어 놓는 헌책방 임자 품에 값을 매깁니다. 새책에는 새책에 걸맞는 값을 매기고, 헌책에는 헌책에 걸맞는 값을 매깁니다. 새책으로 사든 헌책으로 사든, 우리들 책손이 이 책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품과 보람을 몇 푼 책값에 매겨 놓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재미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기나 깨달음 들을 넉넉히 건네주는 책 하나를 써내고 엮어내고 팔아 준 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이 ‘책 사기’거든요. 밥 한 그릇 받아먹으며 농사꾼들 땀방울을 고맙게 느끼는 한편 밥알 하나를 이룬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 앞에 고마움을 느끼듯, 책 하나를 손에 쥐면서 이 책을 이루어 낸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을 고맙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일 못지않게 책을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책을 거저로 선사해 준다면 참 반가운 노릇이기는 한데, 제 주머니돈을 털어서 책을 사는 일보다 기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그러모아서 고마운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좋은 줄거리를 받아먹는 일만큼이나 ‘나도 무언가 했구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손수 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히는 어버이들을 볼 때면, 참 흐뭇하고 살갑다고 느낍니다. 저 아이들은 벌써부터 ‘책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고 몸으로 익히니까요. (4340.2.5.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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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를 한다. 보일러를 돌려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한 뒤, 먼저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다 감을 무렵 비로소 물이 조금 미지근해진다. 머리는 찬물로 감았다. 하지만 빨래를 할 때에는 제법 따순 물이 나온다. 어제부터 담가 둔 긴소매 웃옷 한 벌과 긴바지 한 벌을 빤다. 긴소매 웃옷은 보름 앞서 서울에서 충주로 돌아갈 때 입던 옷. 그때 땀에 흠뻑 젖어서 이제 빨아 입어야 했는데, 시골집은 물이 얼어서 빨래를 못한다. 빨래도 못하고 씻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번 서울 나들이에는 빨랫감을 입고 지고 하며 가지고 왔다. 그제는 시골집에서 입는 두툼한 겉옷 하나를 빨고 면티 하나와 수건도 하나 빨았다. 시골집에서는 난방을 거의 안 하기 때문에 옷을 두툼하게 입는다.

 오늘 빤 빨래도 진작에 빨고 싶었지만 못 빨고 있던 옷들. 이제 면티 하나만 더 빨면 밀린 빨래는 다 하는 셈.

 문득 오랜만에 빨래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렇구나. 겨울이 되어 물이 얼어붙은 뒤로는 땀에 전 옷도 말려서 다시 입곤 했다. 이렇게 입으니 몸이 근질근질 자꾸 가려웠는데,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달려 땀이 줄줄 흐르면 가려움은 이내 사라지곤 했다.

 빨래도 오랜만, 머리감기도 오랜만. 한 번 말끔하게 빨고 씻으니 몸이 개운. 씻은 뒤 가뿐하다는 느낌이 이러했던가.

 비누를 골고루 문지른 뒤 북북 비벼서 빤다. 홍제동 얹혀지내는 집 뒷간은 크기가 작은데다가 세탁기까지 자리를 차지해서 퍽 비좁다. 그래도 몸을 비틀어 쭈그리고 앉은 채 빨래를 한다. 잿빛 땟물이 줄줄줄 흘러나온다. 물을 틀어 빨래를 헹구고, 다 헹군 뒤 뒤틀어 물을 짠다. 다 짠 뒤 탁탁탁 턴다. 빨래를 털 때 자잘하게 일어나는 김 같은 물방울들. 여름철에는 이 물방울이 팡팡 일어날 때 참 시원하다고 느꼈다. 겨울에는 조금 차갑다고 느끼는데, 따순 물로 빤 다음 터니 따뜻하게 느껴진다.

 다 빤 옷을 벽에 박힌 못에 건다. 다 마른 옷은 걷어서 갠다. 월요일쯤 충주로 돌아갈 텐데, 가는 길에 땀에 흠뻑 젖는 옷이 또 하나 생길 테지. 그 옷은 다음에 서울 나들이를 다시 할 때 또 입어야지. 그리고 서울에 와서 다시 빨래를 해야지. (4340.2.2.쇠.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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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바이크》라는 자전거 잡지가 있습니다. 이 잡지 2007년 2월호에 제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지난달에 이곳 기자와 만나보기를 했고, 이때 이야기가 사진과 함께 제법 크게 실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실렸을까 궁금해서 한 권 사려고 어제부터 동네책방을 다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못 샀습니다.

 먼저 홍제동. 이곳 홍제동에는 책방이 딱 한 군데 남았습니다. 큰길가에 있는데, 이곳에는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룹니다. 다만, 자동차 잡지는 다섯 가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신촌에 하나 남은 홍익문고에 갔습니다. 이곳 또한 자전거 잡지를 아예 안 다룹니다. 다만, 이곳도 홍제동 책방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잡지를 여러 가지 다루고 있습니다. 홍대 전철역 지하에 있는 책방에도 가 볼까 하다가 또 실망할까 싶은 마음에, 여기까지는 가지 않습니다. 예전에 이곳에 갔을 때를 떠올려 보면, 그때에도 자전거 잡지는 구경을 못했습니다.

 내일은 어디를 가 보면 좋을는지. 불광동에 있는 불광문고에는 자전거 잡지를 다룰는지. 연신내에 있는 연신내문고는 다룰는지. 궁금한 한편, 걱정이 됩니다. 애써 먼길을 나섰는데, 가는 데마다 자전거 잡지를 안 다룬다면 어쩌지요?

 어쩔 수 없이 광화문 교보문고나 영풍문고나 반디앤루니스에 가야 할까요. 이렇게 큼직한 책방에만 자전거 잡지를 다룰까요? 이곳마저 자전거 잡지가 없지는 않겠지요?

 자전거 타는 사람이 나날이 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분들도 차츰 늘고 있습니다. 자전거 문화도 조금씩 퍼져 나갑니다. 그런데, 자전거 타는 분들 가운데 자전거 잡지를 정기구독하는 사람은 매우 적고, 가끔이나마 사서 보는 사람도 참 적다고 합니다(자전거 잡지 만드는 분 이야기를 들으니). 왜 그럴까요.

 괜히 저 혼자 마음이 무겁습니다. 슬픕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소주 두 병을 쓰게 마십니다. 주량은 소주 두 병 안팎인데, 두 병을 마셨어도 술이 안 오릅니다. 취하지 않습니다. 술을 더 마시고픈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더 마시지는 않고 뚝 끊습니다. 신촌에서 홍제동까지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야 하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도 속은 활활 타오르고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얹혀지내는 홍제동 집으로 옵니다. 앞바퀴를 떼어 집으로 들어갑니다(자물쇠가 없어서 바퀴 한쪽을 떼어 집에 둡니다). 냉장고에 있는 맥주를 마실까 하다가 그만둡니다. 술을 마신다고 마음이 나아질 듯하지는 않아서. 멍하니 텔레비전 화면을 바라보다가 새벽 네 시가 가까워서야 자리에 듭니다. 눈을 감습니다. 하지만 잠은 안 오고 자꾸자꾸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무엇이 있습니다. 아. 하. 후아. 한숨을 몇 번 내쉬다가 벌떡 일어납니다. 오늘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골라든 책 몇 권을 집어들고 옆방으로 가서 불을 켭니다. 책을 조금 뒤적이다가 노트북을 켭니다. 인터넷을 엽니다. 즐겨찾는 자전거 모임 게시판에 글을 하나 남깁니다. 책읽기 모임 게시판에도 글 하나 남깁니다. 그래도 어딘가 텅 빈 듯한 느낌.

 내일은, 아니 밝아오는 오늘은 또 어디로 가면 좋을지. 헛걸음이 되더라도 불광문고에 가 볼는지. 싫어도 교보문고에 가 볼는지. 아니면 자전거 잡지사에 전화를 걸어 손수 찾아가서 그곳에서 사면 좋을는지. 아. 젊음과 문화가 넘친다고 하는 신촌과 홍대 둘레에서마저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없다면, 어느 동네, 어느 마을, 어느 골목, 어느 곳에서 자전거 잡지를 구경할 수 있다는 말인지. 마른침만 꿀꺽꿀꺽 삼킵니다. 오늘 보름달이 떴는데, 달님을 보며 소원을 빌면 들어 줄까요. (4340.2.3.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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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2007-02-09 21:34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 구입하시길 그리고 2월호 부터는 미국유명잡지 마운틴바이크액션지 제휴로 번역본이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