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
- 헌책방 책값 느끼기
책등이나 책 뒤쪽에 책값 딱지를 붙여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연필로 책값 숫자나 기호를 적어 놓는 헌책방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책값 딱지를 안 붙이고, 숫자나 기호도 안 적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책값 딱지를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책손이 책마다 매겨진 제값을 잘 알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책값 딱지를 안 붙이는 헌책방에서는, 이 책이나 저 책이나 다 비슷비슷한 값인데 구태여 책값 딱지를 붙일 까닭이 없다고 느끼는 마음이라 하겠습니다. 아예 책꽂이마다 책값을 달리해서 꽂아 놓는 헌책방도 있습니다. 헌책방을 열어 꾸려가는 사람들은 모두 다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책값을 붙이는 방법이 저마다 다릅니다. 또한, 책값을 붙이는 방법만큼이나 책값 매기는 잣대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김남주 시인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키 소설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진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고, 어떤 사람은 학습지에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마음을 더 두는 책에, 자기가 더 좋아하는 책에 높은 값어치를 매깁니다. 장사하는 처지로 본다면, ‘내가 안 좋아해도 남이 좋아하는 책’이라면 높은 값어치를 매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책들도 헌책방 임자가 ‘아는 책’이나 그렇지 ‘모르는 책’에 섣부른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조복성’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으며(책손조차도 거의 모릅니다만), ‘앨런 테인 더닝’이 누구인지 아는 헌책방 임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도종환이든 조정래든, 헌책방 임자로서는 ‘헌책방에 들어오는 수많은 책들 가운데 하나를 지은 사람’일 뿐입니다. 책더미 사이에서 눈에 뜨여서 따로 빼낸 뒤 좀더 잘 보이는 자리에 꽂아 놓을 수 있지만, 그냥 책탑을 쌓아 놓고 있을 수 있습니다. 도종환 님 책이라면 시집 칸 한쪽에 그냥 꽂아 놓을 수 있고, 조정래 님 책이라면 소설책 두는 자리에 덩그러니 올려놓거나 쌓아 둘 수 있습니다. 새책 값으로 6000원이 붙은 도종환 님 시집을 헌책방에서 2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1000원이나 1500원에 팔면 싼값일까요? 3000원에 팔면 비싼값일까요? 새책 값으로 9000원이 붙은 조정래 님 산문모음을 헌책방에서 4000원에 팔면 알맞는 값일까요? 3000원만 받아야 알맞을 값일까요?
그제 강우방 님 산문모음을 5000원 주고 한 권 샀습니다. 다른 헌책방에서는 8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이고, 어떤 헌책방에서는 3000원이나 4000원을 받았을지 모르는 책입니다. 이 책이 저한테 아주 쓸모있고 소중하다면 8000원이 아니라 1만 원을 불렀어도 조금도 비싸지 않다고, 참 싸다고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한테는 재미없거나 따분하거나 값어치없다고 느꼈다면, 3000원이 아닌 거저로 준다고 해도 짐스러워서 안 받겠지요.
어느 헌책방이든 500원이나 1000원에 파는 책이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500원이나 1000원이라는 아주 싼값에 살 수 있는 책은 ‘우리들이 얼마나 즐겁게 만나서 사 읽을 만한 책’이 될까요. ‘우리들이 반갑게 사 읽을 만한 책’이라면, 헌책방 임자가 책 값어치를 몰라서 대충 싸구려로 후려치며 내다 파는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아니면 헌책방 임자가 알뜰히 손질하고 책먼지를 깨끗이 닦아내어 얌전하게 책시렁에 꽂아 놓은 책 사이에 더 많을까요.
헌책방을 찾든 새책방을 찾든 마찬가지라고 느낍니다. 우리들이 읽을 만한 책은, 우리들이 치러야 할 만한 값이 매겨져 있습니다. 갓 나온 최민식 님 사진책 《인간》(눈빛)은 6만 원 딱지가 붙었습니다. 이 사진책 《인간》은 6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6만 원이 붙습니다. 조지 레이코프라는 사람이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라는 책은 1만 원이라는 책값이 붙었습니다. 이 책은 1만 원이라는 값을 하기 때문에 1만 원이 붙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알맞은 책값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이 헌책방에 들어온다면, 책값이 헌책방마다 다릅니다. 먼저, 헌책방에 들어오는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이라 해도, ㄱ이라는 헌책방에는 1000원에 들어오고, ㄴ이라는 헌책방에는 500원에 들어오며, ㄷ이라는 헌책방에는 100원에 들어오고, ㄹ이라는 헌책방에는 50원에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ㄱ와 ㄴ은 책값이 어떻게 될까요. ㄷ과 ㄹ은 어떻지요? 1000원에 들어오는 책이라 해도, 들어오기 무섭게 팔린다면 책값은 한결 쌀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요즘 우리들이 얼마나 책을 즐겁게 사서 읽고 있는가요. ‘헌책방에 책이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오늘날인지, 아무리 좋다고 하는 책도 ‘헌책방 책꽂이에 자꾸자꾸 쌓이기만 하는’ 오늘날인지.
모든 책에는 그만한 값이 매겨집니다. 먼저, 책에 담긴 글-그림-사진을 풀어낸 글쓴이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다음으로, 책을 엮어낸 출판사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그리고, 책을 죽 늘어놓고 파는 책방 사람들 땀방울에 값을 매깁니다.
헌책방에 들어가는 책은, 먼저, 책을 내놓은 사람한테 물건값(책값)을 보상해 줍니다. 또는, 고물상이나 폐휴지수집상에서 책을 거두어들인 샛장수한테 물건값을 보상해 줍니다. 다음으로, 이렇게 들어온 헌책을 매만지고 손질해서 갖추어 놓는 헌책방 임자 품에 값을 매깁니다. 새책에는 새책에 걸맞는 값을 매기고, 헌책에는 헌책에 걸맞는 값을 매깁니다. 새책으로 사든 헌책으로 사든, 우리들 책손이 이 책 하나를 손에 쥐기까지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 품과 보람을 몇 푼 책값에 매겨 놓습니다.
책을 사는 일은,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받아들이거나 즐기는 일입니다. 또한, 책 하나 엮어내거나 파는 이들이 들인 땀방울에 보답을 해 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에는 되도록 ‘자기 돈을 써서 사서 읽어야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한테 재미나 즐거움이나 기쁨이나 슬기나 깨달음 들을 넉넉히 건네주는 책 하나를 써내고 엮어내고 팔아 준 이들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는 일이 ‘책 사기’거든요. 밥 한 그릇 받아먹으며 농사꾼들 땀방울을 고맙게 느끼는 한편 밥알 하나를 이룬 햇볕과 물과 흙과 바람 앞에 고마움을 느끼듯, 책 하나를 손에 쥐면서 이 책을 이루어 낸 모든 손길과 눈길과 마음길을 고맙게 느낀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책을 읽는 일 못지않게 책을 사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 저한테 책을 거저로 선사해 준다면 참 반가운 노릇이기는 한데, 제 주머니돈을 털어서 책을 사는 일보다 기쁘지 못합니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그러모아서 고마운 책 하나 사는 일이란, 좋은 줄거리를 받아먹는 일만큼이나 ‘나도 무언가 했구나’ 싶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이리하여, 아이들을 데리고 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손수 책을 하나하나 사서 읽히는 어버이들을 볼 때면, 참 흐뭇하고 살갑다고 느낍니다. 저 아이들은 벌써부터 ‘책 사는 즐거움’을 느끼고 배우고 몸으로 익히니까요. (4340.2.5.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