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 사기 -

 내 책들은 내가 손수 찾아간 책방에서 내 손으로 끄집어내어 내 눈으로 살핀 뒤 내 마음에 파고드는 책을 내 주머니를 털어서 산다. 내 주머니에 있는 돈은 내가 일해서 번 돈. 이렇게 산 책은 내 가방에 담아 내 자전거를 타고 내가 즐기는 골목길을 달려서 집으로 들고 온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방을 내리고 땀을 닦은 뒤 가방에서 하나하나 꺼내거나 짐받이에서 차근차근 풀어 놓은 책을, 내 손으로 빤 걸레로 깨끗이 닦아낸다.

 내가 번 돈으로 사는 책이고, 내가 좋아서 사는 책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치를 보지 않고 내 마음에 드는 책만 산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칭찬한 책이라 해도, 내 마음에 안 들면 젖혀 놓는다. 아무도 칭찬하지 않고 소개해 주지 않은 책이라 해도, 내 마음에 들면 기꺼이 산다. 나는 내가 땀흘려 일해서 번 돈을, 내 마음을 채워 줄 만한 책을 사는 데에 마음껏 쓴다.


 - 2 : 읽기 -

 남이 줄을 그어 놓았든 말든 내 마음에 드는 곳에 줄을 긋고 빗금을 치고 별을 그리고 이것저것 적어 놓는다. 내 책이니까, 내가 읽는 책이니까, 뒷날 다시 돌아볼 사람도 나니까.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하는 일을 돌아보도록 하는 줄거리를 읽고, 내가 가는 길이 얼마나 올바른가 되새기는 줄거리를 곰곰이 새기며, 내 생각이 얼마나 고르고 알맞는가 헤아리며 줄거리를 받아들인다. 책은 껍데기로 읽지 않는다. 책꽂이를 꾸미려고 모아 놓지 않는다. 새로 나온 책이든, 헌책방에 오래도록 묵혀 있던 책이든, 내 마음을 움직이거나 내 마음을 살찌우거나 내 마음 깊은 곳에 잠자는 생각을 일깨울 수 있는 책이면, 나한테 고마운 책이다. 스승이 되는 책이다. 이름난 글쟁이는 이름뿐이다. 훌륭하다는 출판사 이름도 이름뿐이다. 잘팔린다며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것은 한낱 숫자놀음이다. 이름과 숫자가 밥먹여 주지 않는다. 이름과 숫자는 내게 즐거움을 선사하지 않는다. 오로지 책에 담긴 줄거리가 밥먹여 주며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가 읽는 책 하나를 엮어내려고 지은이와 엮은이가 흘린 땀방울만큼 내 마음은 들뜨고 기쁘며 아름다울 수 있다.

 
 - 3 : 묶기 -

 자취살이 열한 해 동안 아홉 차례 집을 옮겼다. 이번에 또 한번 책짐을 옮겨야 한다. 지난해 3월 아홉째 옮길 때에는 책 묶는 데에도, 나르는 데에도, 나른 책 풀어서 제자리 찾아 주는 데에도 퍽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모두 더하면 반 해쯤 걸렸을 테지. 그때는 하루에 다 나르지도 못했고, 네 차례에 나누어서 모두 짐차 다섯 대 부피만큼 옮겼다. 이번에도 한꺼번에 다 나르지는 못한다. 여러 차례 나누어야 한다. 왜냐하면, 책을 풀어서 쌓으면 자리를 적게 차지하지만, 책을 묶어 놓으면 자리를 훨씬 많이 차지하니까, 모든 책을 다 묶어 놓은 뒤 한꺼번에 나를 수 없다. 한 번 묶어서 쌓은 책을 한 번 덜어내고, 빈자리에 새로 묶은 책을 쌓아서 다시 한 번 나르고를 되풀이해야 한다.

 그동안 아홉 차례 책짐을 나르면서, 내가 사들여서 읽은 책은 모두 내 손으로 묶었다. 책짐은 내 등짐으로 날라서 짐차에 실었고, 다시 내 등짐으로 집에 옮겨 놓았으며, 내 손으로 풀어서 손질해서 꽂아 놓았다. 책짐을 옮길 때마다 끈이 더더욱 많이 든다. 이번에도 끈을 새로 많이 사 놓아야겠지. 책짐을 꾸릴 때는 헌 신문이 쓸모가 많다. 신문은 하루만 지나도 낡은 정보로 가득한 종이뭉치밖에 안 되지만, 꾸러미로 모아 놓으면, 책짐을 쌀 때 책이 안 다치게 해 주어서 고맙다. (4340.3.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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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백작 - 농부는 백가지 일을 하고 백가지 작믈을 기른다
후루노 다카오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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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백성백작
- 글쓴이 : 후루노 다카오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6.7.22.)
- 책값 : 8000원

 
 이 책 하나 14 - 백성백작
 : 추위를 견디니 달콤한 봄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겨우내 긴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무논에서 왁왁 울어댔습니다. 멀리서도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눈이 오며 확 쌀쌀해지니 개구리 소리가 잦아듭니다. 설마 무논에서 꽁꽁 얼어붙었을까요.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어찌 되었을는지.


.. 나는 30년 가까이 벚꽃 피는 계절에 이런 일만 해 왔다. 여러 해 농사를 지었건만 씨를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는 불안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나날이 계속된다. 올해는 토마토, 가지, 피망 등 모두 순조롭고 균일하게 싹이 터 두 잎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보통은 표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는 균일하지 않다. 쌍잎의 방향, 본잎이 나는 방식 등 어느 하나인들 같은 모가 없다. 인간의 얼굴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듯이 자연계는 진정한 뜻으로 다양성에 충만해 있다. 농업은 생산력을 올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능한 한 이 다양성을 균일화하는 행위일 것이다 ..  〈188∼189쪽〉


 굳이 옛사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보면 그이 삶과 성격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을 뚝딱 해치운다고 했습니다만, 김치는 배추김치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무김치도 갓김치도 오이김치도 겉절이도 물김치도 있습니다. 무채도 있고 깍두기도 있으며 섞박지도 있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무나 배추나 오이 들을 날것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날이 풀리는 봄이면 들풀과 멧나물을 뜯어서 흙만 털고 먹어도 좋고요. 이처럼 밥 한 그릇을 비워도 온갖 반찬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모습을 고이 간직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기 입에만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는 반찬에만 손을 대고 흰 쌀밥만을 먹는 사람은, 고이 지닌 자기 모습을 못 찾거나 못 보지 싶어요.


.. 우리들은 달빛 아래 낫으로 벤 벼를 모아 콤바인에 떨었다. 나는 달빛 아래 가족이 함께 일하는 행복을 갑자기 느꼈다.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으로 돈가스와 맥주가 최고였다 ..  〈165쪽〉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만한 곡식을 거두는 논밭은 아주 조그마해도 넉넉합니다. 식구가 늘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네 식구 논밭은 50평으로도 좋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다면 100평쯤이면 꽤 넓을 테지요. 이만한 크기라면 기계 없이 손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계란 한꺼번에 많이 심고 농약과 비료로 한꺼번에 다스리며, 마지막에도 한꺼번에 거두어들여 일손을 적게 들이고 더 많이 얻어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씁니다.

 장사를 할 때 먹고살 만큼만 벌겠다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먹고살 만큼을 넘어, 다른 데에도 돈쓸 일이 있기 때문에 하루 열 몇 시간씩 몸이 무너지도록 일에 시달리고 맙니다.


.. 이곳은 확실히 포도밭이 넓다. 그렇지만 한 집 앞 면적은 작아, 360평에 불과하다. 1년 수입은 15만 엔쯤이라고 한다. ‘사치만 하지 않으면 가족 네 사람 먹고 지낼 만해요.’ 햇빛에 그슬린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농민 우씨는 말했다 ..  〈159쪽〉


 없는 이한테는 ‘사치’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살아가기’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을까요. 있는 이들 재산은 이들이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받은 셈인지요. 또한, 없는 이들은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버는 셈인지요.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어서,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받는 돈이 다릅니다. 여기에 학력 푸대접이 있어서, 둘이 똑같은 날 회사에 들어가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일을 해도 둘이 받는 돈이 다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서 파는 값과 길가 좌판에서 파는 값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일한 만큼 올바르고 알맞는 대접을 받고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몸이 망가지도록 일에 시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 대접, 일한 대접을 못 받으니까 삶이 팍팍해지고 일이 괴로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한편 1950년대 논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물장군, 소금쟁이, 새우, 거머리, 참개구리…… 잠자리도 고추잠자리만 아니라 실잠자리, 가는실잠자리, 갈구리측범잠자리, 왕잠자리, 밀잠자리, 검은물잠자리, 물잠자리 등 다양한 잠자리들이 있었다 … 논에 물고기가 없어지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농약과 제초제 이전에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논의 경지정리로 연못과 툼벙이 메워지고, 물길이 3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 있다 … 독자 여러분, 논에 물고기가 살았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모르는 분은 상상해 보세요. 논이나 물길에 물고기가 살고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잡습니다. 먹을거리 교육이다, 환경이다 하면서 인공 정보를 부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논에 물고기가 뛰노는 풍경을 재생하면 됩니다. 이것이 아마 아파트 세대의 의무일 것입니다 ..  〈154∼155쪽〉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사람 대접을 받기를 바라며 학교에 넣습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커 가는 길에 대학교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올바르고 씩씩하고 훌륭하며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교육으로 몰아세웁니다. 자격증이라는 종이쪼가리가 없어도 차근차근 일을 배우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이 자격증 문서를 보고 사람을 뽑고 일삯을 주기 때문에, 현장과 동떨어진 학원에 돈을 쏟아붓고 시간을 헤프게 씁니다.

 세상 어느 지식이 쓸모가 없겠느냐만, 너무 많은 세상 지식은 외려 우리를 좁은 우물에 가둔 채 더 널리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책을 보며 물고기 이름을 외우고 꽃피는 철을 익힌들 무엇하겠습니까. 길가에 자라는 풀이름을 모르고, 어시장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서 다듬거가 반찬으로 다룰 줄 모르는데. 한국사람들이 꼬맹이 때부터 영어를 빈틈없이 배운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한국말은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영어 낱말과 말투를 어설피 한국말에 뒤섞으며 지식 자랑을 하는데.


.. 유기농업의 일 가운데 나는 풀매기를 가장 좋아한다. 혼자면 천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여럿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요컨대 잡풀도 해충도 자연의 다양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농업은 생태계 진화의 법칙을 따르면서 이 법칙을 인공적으로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하여 노동력을 투입한다. 나의 경우 스낵 완두콩의 제초작업니다. 요즘 ‘농업은 환경을 지킨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생태계 진화의 일반 법칙으로 비추어 보면, 이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다. 농업은 다양해지려고 하는 환경을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 잡풀이나 해충이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추어 무시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  〈128∼129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혼자일 때는 제 빠르기에 맞추어 달리며 둘레를 구경할 수 있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여럿일 때는 함께 바라보는 둘레 모습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다가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시골도 도시도 차가 지나칠 만큼 늘어나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을라치면 앞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때문에 화들짝 놀랍니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차에 치이지 않으려면 마음이 조마조마, 마음을 바짝 조여야 해요.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는 귀를 째듯 시끄럽습니다. 게다가 도시는 큰길가뿐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한갓지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갖가지 소리들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흔듭니다.

 오늘날 문명은 우리들이 ‘온갖 소리에 무덤덤하도록 길들이는’ 문명일까요. 더 크고 많고 빠르고 힘센 것을 좇도록 하면서 온갖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내모는 문명일까요.


.. 1950년대 경지정리를 하기 전 우리 마을의 논은 모양이 다양했다. 세모꼴, 바나나꼴, 부채꼴, 긴 막대꼴 등 여러 모습이었다. 논의 높낮이도 제각각이었다. 논 한복판을 손으로 판 배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버드나무가 자랐다. 그 당시 논의 둑에는 감나무나 치자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경지 정리 이후 논은 대체로 100m×30m의 긴 네모꼴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 등 기계작업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논의 풍경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워 아무 재미도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보기 지루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  〈122∼123쪽〉


 학교 건물을 보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집니다. 높은 울타리, 모두 똑같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굳게 닫힌 창문과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골마루와 교실,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빈 운동장, 겉보기로 좋으라고 플라스틱 잔디를 깔아 놓은 운동장, 똑같은 옷(학교옷)에 똑같은 머리길이와 머리모양, 똑같은 신에 비슷비슷한 가방을 멘 아이들…… 저 아이들은 가슴에 붙여야 하는 이름표에 적힌 글자만 다를 뿐, 모두 틀에 박힌 붕어빵처럼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세상일을 똑같은 눈길로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줄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가용에 아늑하게 타서 학교 문앞까지 가는 아이들이 늡니다. 어버이 자가용이 아니더라도 마을버스나 학원버스가 학교 문앞과 집 둘레 골목길 또는 아파트 들머리를 오가며 아이들 다리가 힘을 안 써도 되게 해 줍니다.

 제 어릴 적 동무들과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다 다른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머리길이에 누가 누구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비슷비슷 매한가지로 느껴집니다. 그나마 조금씩 다르구나 느껴지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중학교라는 곳에만 들어가면 한결같이 붕어빵이 되고 맙니다. 한국땅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아이들, 가장 지루하고 딱딱하고 메말라 보이는 아이들이라고 할까요. 모두 어슷비슷하게 되면, 이 아이들 머리통에 지식쪼가리 집어넣기는 수월할 테지만, 이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기란 별따기와 같을 테지요.


.. 밭에 채소만 여러 해 심으면 잡초가 늘고 해충이 늘고 이어짓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는다. 그래서 3년 밭으로 사용하면 다시 논을 만든다. 거기 벼를 심으면 벼만 계속 심던 논보다 튼튼하게 잘 자란다. 거꾸로 논을 밭으로 만들면 잡초나 해충 발생이 매우 적다 ..  〈104쪽〉


 저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 으레 다음처럼 합니다. 먼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힘껏 해서 돈을 법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둔 뒤 지갑을 채우고 자전거를 타고 책방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책방은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제법 먼 곳에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고 찻길도 가로지르노라면 이곳저곳에서 저마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대낄 수 있습니다. 어느덧 가고자 한 책방에 다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갑니다. 땀을 들이며 느긋하게 몇 시간 동안 책을 고릅니다. 딱히 어떤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책방에서 만난 온갖 책을 하나씩 살피며 제 주머니에 든 돈에 알맞는 만큼 책을 고릅니다. 그리곤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새책은 새책대로 읽고, 헌책은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걸레는 제가 손빨래로 빨아 놓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손에 볼펜을 듭니다. 읽으며 제 눈길을 끌거나 마음에 와닿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빗금을 치거나 별을 그립니다. 빈자리에 이것저것 적바림할 때도 잦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 두는데, 꽂아 두기 앞서 스캐너로 책 겉그림을 긁고, 책읽은 느낌도 몇 줄이나마 적어 봅니다.


.. 그렇게 말하면 ‘뙤약볕 아래 열심히 논에서 일꾼으로 일했던 오리 친구를 잡아먹다니 가엾지도 않아요?’라고 걱정을 듣는 일도 있다. ‘당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채소, 쌀도 먹을 것 아니에요? 그들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청둥오리도 소도 돼지도 닭도 생선도 쌀도 채소도 인간도 생명은 하나, 모두 같습니다.’ 그런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청둥오리가 가엾다기보다 ‘왜 사람은 평상시 먹는 것에 대하여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고 버리는 시대에 우리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  〈97쪽〉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는 말을 처음에는 너무 대단한 말이라고 느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뭇 목숨붙이를 가만히 돌아보는 동안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밥알 하나도 소중한 목숨이고, 김치 한 조각도 소중한 목숨입니다. ‘밥’과 ‘김치’이기 앞서, 이들은 저마다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던 풀목숨이었습니다.

 물고기를 먹든 뭍고기를 먹든 똑같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르기 앞서는 모두 목숨이었어요.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른 뒤에도 목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목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라는 목숨 하나가 하루 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나 하나 살자면 다른 목숨 몇을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붙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사람 삶도 ‘더 있는 사람이 나누어 덜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더 있는 것을 기꺼이 쓰거나 나누고, 나한테 모자란 것을 기꺼이 얻거나 받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밥알 하나 함부로 흘릴 수 없고, 땅바닥에 떨어진 밥풀도 스스럼없이 주워서 먹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이웃이나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푸대접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일한 대가를 알뜰히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쓰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목숨이니, 고달프거나 힘겨운 이를 보면 따순 손길을 나누고 싶고, 한손을 내밀어 돕고 싶습니다.


.. 그렇기는 하나 요즘 논밭에서 일을 거들거나 노는 아이들이 매우 줄었다. 일본 논밭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대지에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라는 편리하고 위험한 독물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은 또 경제의 고도 성장과 궤도를 같이한다 … 밭을 ‘간다’는 것은 마음을 가는 것이고, 동시에 일을 거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내면 외국의 수입 농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았던 것같이 외국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 수는 없다 ..  〈88∼89쪽〉


 우리가 읽는 책은 돈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돈을 내고 사거나 빌려 깃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돈을 치르고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 하나면 거의 모든 옷밥집이며 문화살이를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참말로 돈 하나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책, 마음을 살찌운다고 하는 책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책이라는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책에 담긴 ‘줄거리’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치러서 책이라는 ‘물건’을 산다고 해서 책에 담은 ‘줄거리’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요. 값싼 헌책 한 권을 사면 ‘줄거리’를 못 얻을까요.

 큼직큼직한 책방에 마일리지 쌓으러 가고, 인터넷책방에서 턱없이 깎아주거나 끼워팔기마저 하는 책을 손쉽게 산다고 해서 ‘책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책을 산다면, 틀림없이 책이라는 ‘물건’은 우리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하나가 이루어지는 ‘땀방울과 흐름’은 못 느끼지 싶어요.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빚어내려고 애쓴 글쓴이 땀방울, 책에 담는 줄거리를 알뜰히 엮어내어 살가이 보여주려고 힘쓴 출판사 손길, 애써 꾸려낸 책이 우리들한테 두루 보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책방사람 움직임, 책방을 둘러싼 우리네 마을과 사회 터전, 이 여러 가지까지 함께 느끼며 책에 담은 ‘줄거리’를 느끼자면,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  〈79쪽〉


 시골집에서 밥을 해서 먹을 때와, 서울 같은 큰도시에 있는 밥집에서 돈을 치르고 사먹을 때 맛이 크게 다릅니다. 밥하는 사람 마음도 다르겠지만, 쓰는 물도 다르니까요. 제아무리 유기농으로 지은 쌀로 밥을 한들, 도시에서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쌀을 씻는 물이, 그 좋은 쌀이 익으면서 어우러지는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깨끗한 물을 멀리서 사들인 뒤 짓는다면 밥이 맛있을까요? 글쎄, 얼추 비슷해지기는 해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깨끗한 물 길어 와서 쓰면 뭐해요. 이웃들은,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물에 더러운 공기로 살아야 하는걸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누구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든 깨끗한 물과 공기를 즐기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릴 찻길을 끝없이 새로 닦는 공사판보다, 사람들 살림집이 조금 낡았다고 해서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알뜰살뜰 살아오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고 재개발한다고 싸그리 무너뜨리는 막개발보다, 서로서로 웃고 어우러지며 살아갈 신명나는 한마당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 아이들을 죽순 캐는 데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눈높이가 낮아서일까, 죽순을 정말 잘 발견한다. 흙 표면에 낙엽을 뾰죽이 치밀어 올리는 죽순을 차례차례 발견하면서 좋아라 날뛰고 있다. 죽순 찾기에 싫증이 나면 나무를 오르거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다. 뒷산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이 일하는 옆에서 놀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풍경의 하나다 ..  〈24쪽〉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이어서 하는 일을 보기 힘들어지는 우리 삶터입니다.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남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고, 어버이부터 딸아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이름을 한껏 날리며 몸을 덜 쓰며 아늑하게 일할 자리를 얻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 어버이가 아닌 딸아들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떠한가요.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딸아들한테 물려줄 만한지요. 자기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동무나 동생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을 하고 있는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한테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이어주고 싶은지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먹고사는 길로 할 만한 일이라면,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며 온삶을 같이 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싶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자기 딸아들한테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이웃이나 동무한테든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물려줄 수 없겠지요.


.. 식물의 잎은 태양의 빛을 받게끔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속이 앉은 배추 쪽이 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시금치도 연둣빛을 띠고, 잎끝이 조금 갈색이 되어 있다. 데쳐서 먹어 보면 뿌리도 잎도 달아 맛이 각별하다. 잎이 땅바닥에 기는 당근도 입안에서 녹듯이 부드럽고 달다.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  〈14쪽〉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에 부드럽고 단 빨간무입니다.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 빨간무라면, 비닐집에서 키운 빨간무라면 부드럽고 달 수 없습니다. 산에 들에 자라는 산딸이나 나무딸이나 들딸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을 있는 그대로 머금어서 달고 새큼하고 달짝지근하고 시기도 합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물만 잔뜩 머금고 굵직굵직하게 나오는 비닐딸은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설탕을 묻혀 먹지 않으면 단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퍽퍽하거나 푸석푸석하지요. 땅에 없는 기운을 비료로 먹였으니까요. 햇볕이 아닌 전깃불을 먹였으니까요. 하늘을 흐르는 바람과 땅을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공기와 억지로 퍼올린 수도물을 마셨으니까요.

 이야기책 《백성백작》은 “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우리한테 건넵니다. 농사꾼만이 아니라 농사꾼 아닌 우리들 모두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으로 이 세상을 보듬고 살아갑니다. 아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들은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을 품기보다는, 한두 가지 일만 하려들고 몇몇 사람만 만나려 하며 좁은 생각 몇 가지로 울타리를 쌓고 재미없거나 따분하게 자기 삶을 옥죄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언제쯤 높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기는 너른 땅으로 뛰어나올 수 있을까요. (4340.3.6.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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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투게더 6 - 완결
가와쿠보 카오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5년 10월
평점 :
절판



- 책이름 : 해피투게더 (1∼6)
- 글ㆍ그림 : 가와쿠보 카오리
- 옮긴이 : 설은미
- 펴낸곳 : 학산문화사(2005)
- 책값 : 한 권에 3500원씩


 살아가며 나이를 생각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자전거를 달리면서도, 글을 쓰면서도,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책방 나들이를 하며 책 하나 고를 때에도, 다른 이 일손을 거들며 땀을 흘릴 때에도, 밥을 할 때에도, 설거지를 하고 걸레를 빨아 방을 훔칠 때에도.

 나이 스물에도, 스물다섯에도, 서른에도 높다란 언덕길을 낑낑대면서 신나게 자전거로 넘었습니다. 어느덧 서른셋이 된 이 나이에도, 자전거로 언덕길 넘기는 늘 즐깁니다. 앞으로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지금처럼 살겠지요. 힘은 떨어질지 몰라도.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뚝뚝 떨어져도.


.. “얼마 남지 않았어. 시합에서 이기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절실히 느끼게 돼. 지금까지 계속 지면서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어. 그때마다 내 형편없는 실력과 연습부족에 좌절하면서 그 이상으로 미련이 남는 게 있었어. 만약에 이겼으면, 모두와 또 같이 시합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지금까지 못한 것을 채우자. 반드시, 반드시 이기자.” ..  〈6권 136∼138쪽〉


 배구부 동아리 활동을 하며 고등학생 1∼2년을 함께 보내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 《해피투게더》를 봅니다. 거친 몸싸움이 없고 오로지 자기 재주와 훈련으로만 부딪혀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인 배구. 어느 쪽이든 반칙을 할 수 없고, 반칙이 나올 수 없는 경기인 배구. 축구나 농구처럼 ‘심판이 안 보이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옷을 잡거나 다리를 걸거나 팔꿈치로 찍는’ 못된 짓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배구. 그만큼 자기다스림과 자기가꿈으로 몸을 만들고 솜씨를 쌓아야 하는 경기인 배구. 배구를 즐기면 몸은 몸대로 마음은 마음대로 튼튼해집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펄쩍펄쩍 뛰면서 온갖 생각을 잊을 수 있습니다. 한편, 고요히 자기를 돌아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합니다. 잠깐도 눈을 뗄 수 없이 경기에 빠져들어야 하지만, 숨가쁘게 돌아가는 가운데 내가 어디에 어떻게 서 있나를 돌아보게 된달까요.

 만화 《해피투게더》에 나오는 여섯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집안에서, 저마다 다 다른 생각으로, 저마다 다 다른 꿈을 안고 살아가다가 만납니다. 딱히 ‘배구’에서 만나야 할 까닭은 없었지만, 한삶을 바칠 만한 대상으로 삼은 아이가 있고, 뜻하지 않은 때에 짜릿함을 느끼며 자기 마음 더 깊은 데를 찾아보고 싶은 아이가 있으며, 세상 편견에 맞서고 싶은 아이가 있습니다. 겉멋에 홀려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우리 삶 깊은 자리를 파헤치는 가운데 찾아드는 아이가 있고, 동무 따라 강남 가듯 흘러드는 아이가 있습니다. 따로따로 노는 이 아이들은 어떻게 배구에서 ‘모이’고, 어떻게 자기 삶에서 ‘저마다 흩어져’ 살아가게 될까요.


― “우리도 할 수 있어.” 〈5권 36쪽〉
― “레이코, 처음으로 슬라이딩하면서 공을 잡았구나. 아주 잘했어.” 〈5권 50쪽〉
― ‘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줄곧 이곳에서 살아가겠지.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조금은, 마지막으로 조금은 봤는지도 몰라. 이 도시의 빛깔을.’ 〈5권 99쪽〉


 만화를 보는 내내 ‘일본도 우리하고 크게 다를 바 없구나. 학교를 다니는 이 아이들한테 길잡이가 되거나 길동무가 되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구나. 아예 없지는 않지만.’ 하고 느낍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한테 말벗이 되고 스승이 되고 제자도 되었다가 도움이가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받치는 기둥, 밑바탕이라고 할까요. 다른 동무한테 힘을 내라며 건네는 한 마디는, 다름아닌 자기한테 힘을 내라는 울림입니다. 자기 속으로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는 굳센 믿음은, 다름아닌 다른 동무들이 모두 자기 자리에서 더욱 자기를 믿고 힘내라는 응원이기도 합니다. 자기 길을 찾아야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스스로이지만, 그 길에는 자기만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옆이나 뒤에 동무들이 있으며, 다른 동무들도 마찬가지로 자기 길을 꿋꿋하게 걸어야 하지만 그 길 옆이나 뒤에도 언제나 다른 동무들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 “그러면 안 되나요? 저처럼 요령이 없고, 아무 재주도 없는 애가, 설령 착각일지라도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선생님 보시기에는, 제가 언제까지나 형편없는 인간일지 모르지만, 저는 그걸 만회하기 위해 제 진로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  〈6권 87∼88쪽〉


 만화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저 만화 주인공으로만 보이지 않습니다. 멀거니 구경하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아이 하나마다 제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제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하며, 제 앞길을 내다보게 합니다. ‘너 지금 얼마나 즐겁니?’ 하고 자꾸자꾸 말을 겁니다. ‘너한테 소중한 일은, 사람은, 사랑은, 놀이는, 세상은 무엇이니?’ 하고 끊임없이 묻습니다. 저는 요사이 사랑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데, 사랑은 언제나 제 곁에 있었으며 앞으로도 곁에 있겠구나 싶습니다. 언제나 곁에 있었지만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이며, 좀더 가까이 다가서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없다고, 잃었다고 생각했구나 싶습니다.

 ..

 다만, 이 만화책을 보는 내내 한 가지 아쉬웠습니다. 영어로 지은 책이름 《해피투게더》를 보고는 정나미가 떨어졌거든요. 니노미야 토모코라는 사람이 그린 《GREEN》이라는 만화책을 볼 때에도 그랬습니다. 책이름을 왜 이렇게 지을까요. 이렇게밖에는 못 지을까요. 《GREEN》은 도시에서만 살던 아가씨가 농사짓는 재미와 보람을 느끼며 시골 총각한테 시집가서 살아가는 줄거리로 된 만화책입니다. 만화는 퍽 짜임새있고 재미도 있지만, 책이름 ‘그린’만 보아서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종잡을 수 없습니다. ‘해피투게더’도 마찬가지. 일본사람들이 영어 쓰기를 좋아한다지만, 우리 말로 옮기면서 책이름을 우리 삶과 문화에 걸맞게 풀어내 주면 한결 나았지 싶은데. “함께 웃는다”나 “다 함께 즐겁게”나 “함께 있어서 좋아”처럼. (4340.2.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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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가 잠깐 덮습니다. 문득, 요즈음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요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한때 책이 없어서 못 팔 만큼 되었지만, 이제는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책을 보지 못했고, 그다지 볼 마음이 없지만, 책을 더 안 찍기로 했다니 사서 볼 길은 없군요. 헌책방에 나온다면 그때는 사 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제 나름대로 든 몇 가지 생각을 적어 보고 싶습니다.


.. 당시 일반 시민들은 개인적인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조선인 차별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또 특별히 식민지 지배사상의 오염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어느 나라나 편집광이나 맹신자는 있기 때문에 유언비어가 일반 민중 차원에서 발생했다는 것을 명확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 조선인에 대해 “선천적으로 배신자이고 거짓말꾼이며 무능력자이고 사회의 부적격자”라고 부르고, ‘언제나 너희들은 이등국민이다’라며 치안 단속의 대상으로 삼아 왔던 관헌집단의 존재는 재일 조선인 역사의 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방 전 재일 조선인으로서 ‘특고내선계 나리’들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  《강덕상-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역사비평사,2005) 91, 104쪽


 ㄱ.사람을 괴롭히는 짓

 
 《요코 이야기》에 담긴 줄거리를 모두 거짓이라고만 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한국땅에서 물러나야 했을 때, 그 북새통에서 일본사람들이 겪어야 한 일들은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요. 그동안 ‘이등국민’으로 깔보고 짓밟던 조선사람들한테 돌을 맞고 집과 재산을 빼앗긴 채 몸만 달랑 빠져나와 부리나케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했으니 말입니다. 낫이며 도끼를 들고 일본사람들 때려죽이려고 돌아다니던 조선사람이 없었을까요? 틀림없이 있었겠지요. 저라도 그때 일본놈들 죽이려고 온갖 곳 돌아다녔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진 뒤 조선땅에서 ‘고향 일본으로 돌아가는 사람을 들볶던 조선사람’이 저지른 잘못과, 수십 해 동안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백성들을 들볶고 괴롭히던 잘못은 어떻게 다를까요.

 집과 재산을 모두 놓고 고향나라로 돌아가야 한 일본사람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조선땅에서 저지른 죄값(?)을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느끼면서, ‘아, 나도 얼마 앞서까지만 해도 저렇게 조선사람을 괴롭혔지’ 하고 뉘우쳤을까요. 또는, 자기들이 지난날 저질렀던 일은 까맣게 잊고,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만 놓고 ‘저 나쁜 조선놈들’ 하고 생각했을까요. 소설 《요코 이야기》에는 어떤 눈길과 생각이 담겼을까요. 궁금합니다.

 
 ㄴ.전쟁문학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 ‘문학동네’는 인터넷 누리집을 닫고(이제는 인터넷검색조차 안 됩니다) 해명글을 올려놓았습니다. 해명글을 보면, “『요코 이야기』의 출간을 결정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일본민족=가해자, 우리민족=피해자라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없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의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고 적습니다. 이 해명글에 나오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문제를 다룬 적이 우리 문학 발자취에서 한 번도 없는지, 또는 제대로 다룬 적이 없었는지도요.

 전쟁폭력은 ‘여성한테만’ 쏟아졌을까요. 여성한테 좀더 많이 폭력이 저질러졌다고 하겠으나, 이 나라에 살며 친일부역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여자니 남자니 어른이니 아이니 할 것 없이 똑같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이런 발자취와 이야기들, 이 가운데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 이야기는 꾸준하게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이런 아픔을 달래고 추스르는 움직임도 적잖이 있습니다. 다만, 이런 책이나 움직임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사람이 잘 안 보인다뿐입니다. 몇 해 앞서 이승연 씨가 ‘종군위안부 알몸사진’을 찍으며 말썽을 일으킨 일을 떠올려 봅니다. 이승연 씨와 사진 찍은 회사에서는 ‘조금도 상업주의 의도가 없었다’고 몇 차례나 힘주어 말했지만, 상업주의 뜻이 없었다면 처음부터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있는 〈나눔의 집〉에 찾아가 할머님들한테 이런 일을 해서 사람들한테 널리 알리겠다고, 할머님들 아픔을 뼛속 깊이 느끼며 이런 아픔이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겠지요. 그러면서 할머님들 눈물 뜻을 속깊이 헤아렸겠지요. 하지만 이승연 씨나 회사에서 보여준 모습은 어떠했나요. 처음부터 상업주의였기 때문에 〈나눔의 집〉 할머님한테 찾아가기는커녕 귀기울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들끓던 여론도 곧 잠자겠거니 하다가, 외려 여론이 나빠지니 뒤늦게 사과를 하고 무릎을 꿇고 빌었지만, 종군위안부로 몸과 마음을 다친 할머님들 가슴에는 또다른 날선 칼이 들쑤시고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에 제대로 눈길을 두는 우리들이었을까요? 윤정모 님이 이런 이야기로 소설을 쓰고, 이토 다카시라는 일본 사진작가가 종군위안부 할머님 삶을 사진이야기로 남겨 놓고, 정대협 사람들이 할머님들 증언자료를 모아서 책으로 묶어내는 동안, 우리들 눈길은 얼마나 쏟아졌을까요.

 적어도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만큼이라도, 문학책을 낸다는 출판사에서라도 이런 움직임에 따순 손길을 보내 본 적이 있었는지요. 그러면서 고작 펴내는 책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 이야기를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이름을 붙인 《요코 이야기》뿐인지. 이것도 출판 다양성이라면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여태껏 여성이 받은 전쟁폭력을 다룬 살뜰한 책이 제대로 없는 판이라면 모르되, 그런 책이 있어도 눈길을 거의 안 두었으면서, 《요코 이야기》 하나만 앞에 내세워도 좋은지 모르겠네요.

 나아가, 《요코 이야기》를 내치는 왼손이 있다면, 일제 식민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살피고 돌아보는 책을 찾아서 손에 쥐는 오른손도 있어야지 싶어요. 아울러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느끼고 헤아릴 수 있는 책을 찾아볼 수 있는 눈길도 추스르고요. 우리 스스로 일제강점기 때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을 적바림할 수 있는 움직임도 있어야겠고, 이런 적바림을 문학으로 빚어내는 움직임도 있어야겠으며, 문학으로 빚어진 열매를 반갑게 맞아들이고 널리 읽고 나누는 움직임까지 있어야지 싶어요.

 
 ㄷ.언론과 교육

 
 우리한테는 얼마나 언론 자유가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친일부역자 죄값을 달게 물은 적이 있는지, 일제 강점기 때 죽을 고생을 했거나 끝내 죽고 만 사람들 아픔과 슬픔을 달래거나 씻어 주는 언론매체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친일부역자들은 언제 한 번 죄값을 달게 받았을까요. 이 땅에서 친일부역자들이 판치는 모습을 막거나 붙잡을 수 있었나요. 아직까지도 친일부역으로 조선총독부한테 물려받은 땅을 ‘찾겠다’는 소송을 거는 친일부역자 후손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움직임을 막거나 꾸짖는 손길이나 움직임은 거의 안 보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피해자들은 지금 어찌 지내고 있나요. 한국땅에서, 일본땅에서, 중국땅에서, 러시아땅에서, 또 중부아시아땅에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은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꾸리고 있나요. 가만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이 나라 역사교육도 짚어 보면서.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역사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지요? 시험문제에 나오는 지식으로만 가르치지 않나요. 아이들이 일제강점기 역사를 있는 그대로 돌아보고 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도록 가르치는가요. 교과서 달달 외우기와 시험점수 따지기에만 푹 빠진 이 나라 학교교육에서 우리는 무엇을 듣고 보고 배우고 깨달으며 살아가나요. 이런 흐름을 헤아릴 때, 《요코 이야기》는 이 나라에서 살아가는 어른과, 자라나는 아이들한테 어떤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을까요. 역사 교육이 엉터리인 한국에서 소설 《요코 이야기》는 얼마나 ‘전쟁이 일으키는 아픔’을 우리들 가슴마다 깊이 새겨 놓을 수 있을까요.

 
 ㄹ.책

 
 문득, 이 나라에서 역사ㆍ문화ㆍ사회를 샅샅이 살피고 파헤친 책이 얼마나 대접받는지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을 때 얼마나 언론매체 눈길을 탔을까요. 얼마나 제대로 소개가 되었을까요.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이 책은 일본사람이 힘겹게 취재해서 나온 책입니다. 그것도 퍽 예전에. 2005년에 한국말로도 나왔습니다)라는 책이 나왔을 때 알아본 언론사 기자는 몇이나 되었을까요. 소개는 몇 줄이나 했을까요. 캄보디아에 살아 있던 ‘훈 할머니’를 찾았다고 호들갑을 떨며 ‘특종 취재’로 법석까지 부리던 언론매체 가운데 《버려진 조선의 처녀들》(2004)이라는 책이 나왔을 때 한 줄이라도 소개를 해 준 곳이 몇 군데나 되었지요? 임종국 선생이 《정신대실록》이라는 책을 펴냈을 때, 1990년대 첫머리부터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한울)라는 책이 나와서 3권까지 나온 뒤, 출판사를 옮겨 5권까지 나오도록, 또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라는 책이 나왔을 때에도, 이 책을 알아봐 준 언론매체는 어디가 있을까요.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이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이 나와도, 일본 사진작가가 취재한 《종군위안부》(눈빛)라는 사진책이 나왔어도, 이런 책을 하나라도 사서 읽은 지식인은 얼마나 되며, 이런 책을 기꺼이 소개하고자 나선 출판평론가는 누가 있으며, 여성학자와 여성운동가 가운데 이런 책을 둘레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읽고 공부한 이는 몇이나 될는지요.

 
 ㅁ.군복 입은 남자들

 
 《요코 이야기》를 낸 출판사에서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을 말하고,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위한다면『요코 이야기』처럼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고 말합니다.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거짓없는 좋은 뜻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요. 우리 현실을 안 보고 말로만 좋은 이야기를 읊을 수는 없겠지요.

 일제강점기가 끝난 1945년 뒤로 이때까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을 이룬 적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부역 노릇을 했던 사람들은 고스란히 살아남아서 미군정기 때 돈과 이름과 힘을 얻었고, 이들은 이승만 독재정권 때 행정조직과 공무원 구석구석을 차지합니다. 그 뒤 이어진 박정희 독재정권 때는 아주 탄탄히 뿌리를 내렸고, 이어진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에는 이 나라 어느 두메에도 이들 손아귀가 안 뻗친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우리 나라입니다. 우리 사회요 역사요 발자취입니다. 자유와 민주와 평등과 통일과 평화를 외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붙잡혀 감옥살이를 해야 했고, 끔찍하게 고문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옳은 소리 했다가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저 입다물고 고개숙이며 사는 게 낫다는 몸가짐을 익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우리 나라이며, 이런 흐름은 아직도 굳게 이어져 오고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우리 사회에서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이란 무엇일까요. 다른 방식은 《요코 이야기》라는 소설인지요.

 글쎄, 《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같은 책에서는 ‘여성한테 쏟아진 전쟁폭력’을 찾을 수 없을까요. 《한국의 히로시마》 같은 책에서는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바라는 길’을 찾을 수 없을까요. 《역사교과서와의 대화》 같은 책에서는 ‘군복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역사’를 찾을 수 없을까요.


 ㅂ.내가 참말 하고 싶은 이야기


 저도 《요코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차분하게 돌아보고 싶습니다. 참말로 이 책에 무슨 줄거리가 담겼는지 제 눈으로 보고 싶습니다. 나중에라도 꼭 헌책방에서 찾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자니 힘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몇 가지 다른 책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맨발의 겐》(아름드리미디어)이라는 만화책. 일본에서 나온 ‘역사 다룬 만화책’ 가운데 일제식민지와 태평양전쟁을 바탕으로 균형을 어느 만큼 잘 잡고 자신들 잘못과 전쟁문제를 날카롭게 잡아챘다고 해서 널리 칭찬을 받았고, 나라안에도 10권까지 번역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히로시마》(사계절)라는 그림책. 이 그림책은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은 ‘철저히 피해자이기만 한 것’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평화와 사랑을 찾아야 한다’고 외칩니다. 이 그림책은 《맨발의 겐》과는 달리 따가운 눈총을 많이 받았습니다. 만화책 《맨발의 겐》도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가 주인공이 되어 나오지만, 이 주인공은 ‘미국놈 미워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일본 권력자와 천황제’를 남김없이 비판합니다. 하지만 《히로시마》는 ‘일본이 왜 원자폭탄을 맞았는가?’ 하는 뉘우침이나 돌아봄이 없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되뇌이는 말은 ‘전쟁은 나빠, 평화를 사랑하자’입니다.

 그림책 《히로시마》를 펴낸 출판사도 《요코 이야기》를 펴낸 출판사와 거의 비슷한 말로 ‘전쟁문학을 봐야 하는 까닭’을 이야기했습니다. 말은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책으로 왜 《히로시마》나 《요코 이야기》 같은 책을 골라야 했을까요? 그 많은 전쟁문학 가운데 우리 나라에도 번역해서 펴낼 만한 책이 이런 책밖에 없었을까요?

 일본에서는 《혐한류》(2005)라는 만화책이 나와서 꽤나 많이 팔리고 있습니다. 저도 이 만화책을 헌책방에서 한 권 우연하게 찾아서 샅샅이 읽었습니다. 모두 아홉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진 《혐한류》는 ‘한국이 일본을 미워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아무런 근거 없는 헐뜯기라고 둘러대면서 ‘한국이야말로 일본 문화를 베껴먹기로 훔치는 도둑나라이고, 거짓말과 노예근성이 가득한 못된 나라이다’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만화책을 보는 동안, ‘혐한류라는 만화책을 보며 우리 사회에 깃든 편향성과 온갖 문제를 비판하고 뉘우치자’는 말을 앞세워 번역할 출판쟁이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런 출판쟁이가 없는데,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이런 책도 나올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양성’을 빼면, 이런 책은 무슨 값이, 무슨 뜻이, 무슨 생각이, 무슨 가르침이 남을까요.

 《요코 이야기》 말썽은 시간이 지나면 오래지 않아 잊혀지리라 생각합니다. 생각의나무 출판사 사재기 말썽도, 한젬마 대리창작 말썽도, 정지영 대리번역 말썽도 벌써 잊혀진 옛일이 되었잖아요. 《마시멜로 이야기》는 이제 광고 한 번 안 때리고도 베스트셀로 높은자리를 아무 어려움없이 차지하는 책으로 튼튼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젬마 말썽은 이 일을 세상에 알린 〈한국일보〉를 빼놓고는 아예 기사로 다루지 않습니다.

 숨을 돌리며 생각을 마무리지어 봅니다. “《요코 이야기》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외치는 분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은 ‘이 나라 역사를 돌아보도록 하는 책’을 부지런히 읽어 줄까요. ‘이 나라에서 전쟁피해자로 아파한 사람들 이야기’를 얼마나 따순 눈길로 살펴봐 줄까요. 제가 지금까지 읽은 전쟁이야기(전쟁피해와 군대와 학살을 둘러싼 갖가지 이야기) 가운데, 《요코 이야기》 때문에 가슴이 아팠거나 씁쓸함을 느꼈거나 화가 잔뜩 치민 분들께서 다음과 같은 책들을 하나하나 살펴봐 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얄궂은 책 비판’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살갑고 훌륭한 책 읽기’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 될 테니까요. (4340.2.20.불.ㅎㄲㅅㄱ)


 1.몽실언니 (권정생)
 2.엄마 없는 아이와 아이 없는 엄마와 (츠보이 사카에)
 3.너를 부른다 (이원수)
 4.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윤정모)
 5.노근리 이야기 (박건웅)
 6.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 (모리카와 미치코)
 7.종군위안부 (이토 다카시)
 8.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5)
 9.맨발의 겐 (나카자와 케이지) (1∼10)
 10.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 (강덕상)
 11.나무소녀 (벤 마이켈슨)
 12.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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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님의 ""독서가"에서 "수집가"가 되는 것에 관하여..."

책을 좋아하는 마음이면 넉넉합니다. 여기에 책을 아끼는 마음까지 더할 수 있다면 한결 좋고요. "읽는이(독서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모으는이(수집가)"는 책을 아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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