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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 백작 - 농부는 백가지 일을 하고 백가지 작믈을 기른다
후루노 다카오 지음, 홍순명 옮김 / 그물코 / 2006년 7월
평점 :
- 책이름 : 백성백작
- 글쓴이 : 후루노 다카오
- 옮긴이 : 홍순명
- 펴낸곳 : 그물코(2006.7.22.)
- 책값 : 8000원
이 책 하나 14 - 백성백작
: 추위를 견디니 달콤한 봄입니다
엊그제만 해도 겨우내 긴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무논에서 왁왁 울어댔습니다. 멀리서도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고 눈이 오며 확 쌀쌀해지니 개구리 소리가 잦아듭니다. 설마 무논에서 꽁꽁 얼어붙었을까요. 다시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려웠을 텐데, 어찌 되었을는지.
.. 나는 30년 가까이 벚꽃 피는 계절에 이런 일만 해 왔다. 여러 해 농사를 지었건만 씨를 뿌리고 싹이 날 때까지는 불안과 즐거움이 엇갈리는 나날이 계속된다. 올해는 토마토, 가지, 피망 등 모두 순조롭고 균일하게 싹이 터 두 잎을 벌리고 있다. 그렇게 보통은 표현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는 균일하지 않다. 쌍잎의 방향, 본잎이 나는 방식 등 어느 하나인들 같은 모가 없다. 인간의 얼굴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듯이 자연계는 진정한 뜻으로 다양성에 충만해 있다. 농업은 생산력을 올리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가능한 한 이 다양성을 균일화하는 행위일 것이다 .. 〈188∼189쪽〉
굳이 옛사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먹는 밥과 반찬을 보면 그이 삶과 성격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김치 하나만으로도 밥을 뚝딱 해치운다고 했습니다만, 김치는 배추김치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무김치도 갓김치도 오이김치도 겉절이도 물김치도 있습니다. 무채도 있고 깍두기도 있으며 섞박지도 있습니다. 따로 김치를 담그지 않고 무나 배추나 오이 들을 날것으로 먹어도 좋습니다. 날이 풀리는 봄이면 들풀과 멧나물을 뜯어서 흙만 털고 먹어도 좋고요. 이처럼 밥 한 그릇을 비워도 온갖 반찬으로 즐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모습을 고이 간직한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자기 입에만 달짝지근하게 느껴지는 반찬에만 손을 대고 흰 쌀밥만을 먹는 사람은, 고이 지닌 자기 모습을 못 찾거나 못 보지 싶어요.
.. 우리들은 달빛 아래 낫으로 벤 벼를 모아 콤바인에 떨었다. 나는 달빛 아래 가족이 함께 일하는 행복을 갑자기 느꼈다. 유기농업의 가장 좋은 점은, 가족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으로 돈가스와 맥주가 최고였다 .. 〈165쪽〉
한 사람이 한 해 동안 먹을 만한 곡식을 거두는 논밭은 아주 조그마해도 넉넉합니다. 식구가 늘면 조금 더 있어야 하지만, 네 식구 논밭은 50평으로도 좋습니다.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누고 싶다면 100평쯤이면 꽤 넓을 테지요. 이만한 크기라면 기계 없이 손으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기계란 한꺼번에 많이 심고 농약과 비료로 한꺼번에 다스리며, 마지막에도 한꺼번에 거두어들여 일손을 적게 들이고 더 많이 얻어서 돈을 벌려는 생각에서 씁니다.
장사를 할 때 먹고살 만큼만 벌겠다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먹고살 만큼을 넘어, 다른 데에도 돈쓸 일이 있기 때문에 하루 열 몇 시간씩 몸이 무너지도록 일에 시달리고 맙니다.
.. 이곳은 확실히 포도밭이 넓다. 그렇지만 한 집 앞 면적은 작아, 360평에 불과하다. 1년 수입은 15만 엔쯤이라고 한다. ‘사치만 하지 않으면 가족 네 사람 먹고 지낼 만해요.’ 햇빛에 그슬린 얼굴에 웃음을 띄우면서 농민 우씨는 말했다 .. 〈159쪽〉
없는 이한테는 ‘사치’를 말할 것이 없습니다. ‘살아남기’, ‘살아가기’가 걸린 일이니까요. 그렇다면 있는 이들은 어떻게 해서 그 많은 재산을 쌓을 수 있었을까요. 있는 이들 재산은 이들이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받은 셈인지요. 또한, 없는 이들은 일한 대가대로 알맞게 버는 셈인지요.
우리 사회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어서, 두 사람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일을 해도 받는 돈이 다릅니다. 여기에 학력 푸대접이 있어서, 둘이 똑같은 날 회사에 들어가 똑같은 시간을 똑같은 일을 해도 둘이 받는 돈이 다릅니다. 같은 물건이라도 백화점에서 파는 값과 길가 좌판에서 파는 값이 다릅니다. 사람마다 자기가 일한 만큼 올바르고 알맞는 대접을 받고 대가를 얻을 수 있다면, 어느 누구라도 몸이 망가지도록 일에 시달려야 할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사람 대접, 일한 대접을 못 받으니까 삶이 팍팍해지고 일이 괴로울밖에 없다고 느낍니다.
.. 한편 1950년대 논에는 여러 가지 물고기―물장군, 소금쟁이, 새우, 거머리, 참개구리…… 잠자리도 고추잠자리만 아니라 실잠자리, 가는실잠자리, 갈구리측범잠자리, 왕잠자리, 밀잠자리, 검은물잠자리, 물잠자리 등 다양한 잠자리들이 있었다 … 논에 물고기가 없어지게 된 원인은 복합적이다. 농약과 제초제 이전에 많은 물고기가 죽었다. 그러나 결정적 원인은 논의 경지정리로 연못과 툼벙이 메워지고, 물길이 3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데 있다 … 독자 여러분, 논에 물고기가 살았던 때를 기억해 보세요. 모르는 분은 상상해 보세요. 논이나 물길에 물고기가 살고 어린이들이 물고기를 잡습니다. 먹을거리 교육이다, 환경이다 하면서 인공 정보를 부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줄 필요가 없습니다. 논에 물고기가 뛰노는 풍경을 재생하면 됩니다. 이것이 아마 아파트 세대의 의무일 것입니다 .. 〈154∼155쪽〉
부모들은 자기가 낳은 아이들이 사람 대접을 받기를 바라며 학교에 넣습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커 가는 길에 대학교를 굳이 다니지 않아도 올바르고 씩씩하고 훌륭하며 똑똑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졸업장이 없으면 사람 대접을 못 받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열두 해에 걸쳐 입시교육으로 몰아세웁니다. 자격증이라는 종이쪼가리가 없어도 차근차근 일을 배우면 무엇이든 못할 일이 없는 우리들이지만, 이 자격증 문서를 보고 사람을 뽑고 일삯을 주기 때문에, 현장과 동떨어진 학원에 돈을 쏟아붓고 시간을 헤프게 씁니다.
세상 어느 지식이 쓸모가 없겠느냐만, 너무 많은 세상 지식은 외려 우리를 좁은 우물에 가둔 채 더 널리 더 멀리 더 깊이 바라보지 못하게 가로막습니다. 책을 보며 물고기 이름을 외우고 꽃피는 철을 익힌들 무엇하겠습니까. 길가에 자라는 풀이름을 모르고, 어시장에서 물고기 한 마리 사서 다듬거가 반찬으로 다룰 줄 모르는데. 한국사람들이 꼬맹이 때부터 영어를 빈틈없이 배운들 무엇하겠습니까. 정작 한국말은 제대로 할 줄 모르고, 영어 낱말과 말투를 어설피 한국말에 뒤섞으며 지식 자랑을 하는데.
.. 유기농업의 일 가운데 나는 풀매기를 가장 좋아한다. 혼자면 천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여럿이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기계를 사용하는 작업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 요컨대 잡풀도 해충도 자연의 다양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농업은 생태계 진화의 법칙을 따르면서 이 법칙을 인공적으로 억제하려고 한다. 그러기 위하여 노동력을 투입한다. 나의 경우 스낵 완두콩의 제초작업니다. 요즘 ‘농업은 환경을 지킨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지만, 생태계 진화의 일반 법칙으로 비추어 보면, 이 표현은 좀 이상한 말이다. 농업은 다양해지려고 하는 환경을 오히려 억누르고 있다. 잡풀이나 해충이 생태계를 다양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것을 사람은 자기 필요에 맞추어 무시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한다 .. 〈128∼129쪽〉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좋아합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 혼자일 때는 제 빠르기에 맞추어 달리며 둘레를 구경할 수 있고,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길 수 있습니다. 여럿일 때는 함께 바라보는 둘레 모습에 놀라워하고 기뻐하기도 하다가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요사이는 시골도 도시도 차가 지나칠 만큼 늘어나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에 잠기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잠깐 생각에 잠겼을라치면 앞뒤에서 빵빵거리는 차들 때문에 화들짝 놀랍니다. 갑자기 밀어붙이는 차에 치이지 않으려면 마음이 조마조마, 마음을 바짝 조여야 해요. 자동차가 달릴 때 나는 소리는 귀를 째듯 시끄럽습니다. 게다가 도시는 큰길가뿐 아니라 골목길에서도 한갓지고 조용하게 이야기를 나눌 만한 터전이 못 됩니다. 갖가지 소리들이 마음을 어수선하게 흔듭니다.
오늘날 문명은 우리들이 ‘온갖 소리에 무덤덤하도록 길들이는’ 문명일까요. 더 크고 많고 빠르고 힘센 것을 좇도록 하면서 온갖 소리에 익숙해지도록 내모는 문명일까요.
.. 1950년대 경지정리를 하기 전 우리 마을의 논은 모양이 다양했다. 세모꼴, 바나나꼴, 부채꼴, 긴 막대꼴 등 여러 모습이었다. 논의 높낮이도 제각각이었다. 논 한복판을 손으로 판 배수로가 흐르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 버드나무가 자랐다. 그 당시 논의 둑에는 감나무나 치자나무가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다. 경지 정리 이후 논은 대체로 100m×30m의 긴 네모꼴로 정리되었다. 그래서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 등 기계작업의 효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논의 풍경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워 아무 재미도 없게 되었다. 일본에서 가장 보기 지루한 풍경이 전개되고 있다 .. 〈122∼123쪽〉
학교 건물을 보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느껴집니다. 높은 울타리, 모두 똑같이 네모난 상자 같은 건물, 굳게 닫힌 창문과 전깃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운 골마루와 교실, 아이들이 뛰어놀지 않는 빈 운동장, 겉보기로 좋으라고 플라스틱 잔디를 깔아 놓은 운동장, 똑같은 옷(학교옷)에 똑같은 머리길이와 머리모양, 똑같은 신에 비슷비슷한 가방을 멘 아이들…… 저 아이들은 가슴에 붙여야 하는 이름표에 적힌 글자만 다를 뿐, 모두 틀에 박힌 붕어빵처럼 똑같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고 세상일을 똑같은 눈길로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도록 길들여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줄고, 아버지나 어머니가 모는 자가용에 아늑하게 타서 학교 문앞까지 가는 아이들이 늡니다. 어버이 자가용이 아니더라도 마을버스나 학원버스가 학교 문앞과 집 둘레 골목길 또는 아파트 들머리를 오가며 아이들 다리가 힘을 안 써도 되게 해 줍니다.
제 어릴 적 동무들과 국민학교를 다니던 무렵에는, 다 다른 옷차림에 머리모양에 머리길이에 누가 누구인지 척 보면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초등학교 아이들조차 비슷비슷 매한가지로 느껴집니다. 그나마 조금씩 다르구나 느껴지던 초등학교 아이들은 중학교라는 곳에만 들어가면 한결같이 붕어빵이 되고 맙니다. 한국땅에서 가장 재미없어 보이는 아이들, 가장 지루하고 딱딱하고 메말라 보이는 아이들이라고 할까요. 모두 어슷비슷하게 되면, 이 아이들 머리통에 지식쪼가리 집어넣기는 수월할 테지만, 이 아이들이 저마다 자기 꿈을 간직하고 키워나기란 별따기와 같을 테지요.
.. 밭에 채소만 여러 해 심으면 잡초가 늘고 해충이 늘고 이어짓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 는다. 그래서 3년 밭으로 사용하면 다시 논을 만든다. 거기 벼를 심으면 벼만 계속 심던 논보다 튼튼하게 잘 자란다. 거꾸로 논을 밭으로 만들면 잡초나 해충 발생이 매우 적다 .. 〈104쪽〉
저는 책을 한 권 사서 읽을 때 으레 다음처럼 합니다. 먼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힘껏 해서 돈을 법니다. 돈을 차곡차곡 모아 둔 뒤 지갑을 채우고 자전거를 타고 책방으로 나들이를 떠납니다. 책방은 가까운 곳에도 있지만 제법 먼 곳에도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지나고 찻길도 가로지르노라면 이곳저곳에서 저마다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대낄 수 있습니다. 어느덧 가고자 한 책방에 다다르면, 자전거를 세우고 들어갑니다. 땀을 들이며 느긋하게 몇 시간 동안 책을 고릅니다. 딱히 어떤 책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은 안 하기 때문에, 그날그날 책방에서 만난 온갖 책을 하나씩 살피며 제 주머니에 든 돈에 알맞는 만큼 책을 고릅니다. 그리곤 가방에 넣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새책은 새책대로 읽고, 헌책은 걸레로 먼지를 닦아 줍니다. 걸레는 제가 손빨래로 빨아 놓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는 한 손에 볼펜을 듭니다. 읽으며 제 눈길을 끌거나 마음에 와닿는 대목에 밑줄을 긋고 빗금을 치거나 별을 그립니다. 빈자리에 이것저것 적바림할 때도 잦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책꽂이에 얌전히 꽂아 두는데, 꽂아 두기 앞서 스캐너로 책 겉그림을 긁고, 책읽은 느낌도 몇 줄이나마 적어 봅니다.
.. 그렇게 말하면 ‘뙤약볕 아래 열심히 논에서 일꾼으로 일했던 오리 친구를 잡아먹다니 가엾지도 않아요?’라고 걱정을 듣는 일도 있다. ‘당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채소, 쌀도 먹을 것 아니에요? 그들은 불쌍하지 않습니까?’, ‘청둥오리도 소도 돼지도 닭도 생선도 쌀도 채소도 인간도 생명은 하나, 모두 같습니다.’ 그런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마도 문제의 본질은 청둥오리가 가엾다기보다 ‘왜 사람은 평상시 먹는 것에 대하여 가엾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에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 쓰고 버리는 시대에 우리들은 ‘먹을거리’가 생명이라는 당연한 것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 〈97쪽〉
밥 한 그릇에 우주가 담겼다는 말을 처음에는 너무 대단한 말이라고 느껴서 살갗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고 뭇 목숨붙이를 가만히 돌아보는 동안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데, 밥알 하나도 소중한 목숨이고, 김치 한 조각도 소중한 목숨입니다. ‘밥’과 ‘김치’이기 앞서, 이들은 저마다 땅에 뿌리내리며 살아가던 풀목숨이었습니다.
물고기를 먹든 뭍고기를 먹든 똑같습니다.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르기 앞서는 모두 목숨이었어요. 우리가 즐기는 밥상에 오른 뒤에도 목숨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목숨이 내 몸속으로 들어와 나라는 목숨 하나가 하루 더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나 하나 살자면 다른 목숨 몇을 늘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목숨붙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서로가 서로한테 힘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사람 삶도 ‘더 있는 사람이 나누어 덜 있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한테 더 있는 것을 기꺼이 쓰거나 나누고, 나한테 모자란 것을 기꺼이 얻거나 받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밥알 하나 함부로 흘릴 수 없고, 땅바닥에 떨어진 밥풀도 스스럼없이 주워서 먹습니다. 모두모두 소중한 목숨이니 이웃이나 동무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푸대접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일한 대가를 알뜰히 받을 수 있도록 마음을 쓰게 됩니다. 생각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르다고 해서 적이 될 수 없습니다. 누구나 소중한 목숨이니, 고달프거나 힘겨운 이를 보면 따순 손길을 나누고 싶고, 한손을 내밀어 돕고 싶습니다.
.. 그렇기는 하나 요즘 논밭에서 일을 거들거나 노는 아이들이 매우 줄었다. 일본 논밭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그것은 일본의 대지에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라는 편리하고 위험한 독물을 대량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은 또 경제의 고도 성장과 궤도를 같이한다 … 밭을 ‘간다’는 것은 마음을 가는 것이고, 동시에 일을 거드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는 것이다. 우리는 돈만 내면 외국의 수입 농산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았던 것같이 외국의 논밭을 부모와 자식들이 갈 수는 없다 .. 〈88∼89쪽〉
우리가 읽는 책은 돈을 주고 사서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돈을 내고 사거나 빌려 깃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입는 옷은 돈을 치르고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돈 하나면 거의 모든 옷밥집이며 문화살이를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참말로 돈 하나면 무엇이든 살 수 있을까요.
참으로 훌륭하다고 하는 책, 마음을 살찌운다고 하는 책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요. 책이라는 ‘물건’이라면 얼마든지 살 수 있겠지요. 하지만 책에 담긴 ‘줄거리’는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돈을 치러서 책이라는 ‘물건’을 산다고 해서 책에 담은 ‘줄거리’를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을는지요. 값싼 헌책 한 권을 사면 ‘줄거리’를 못 얻을까요.
큼직큼직한 책방에 마일리지 쌓으러 가고, 인터넷책방에서 턱없이 깎아주거나 끼워팔기마저 하는 책을 손쉽게 산다고 해서 ‘책읽기’가 제대로 이루어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책을 산다면, 틀림없이 책이라는 ‘물건’은 우리 손에 쥘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 하나가 이루어지는 ‘땀방울과 흐름’은 못 느끼지 싶어요. 책 하나에 담긴 ‘줄거리’를 빚어내려고 애쓴 글쓴이 땀방울, 책에 담는 줄거리를 알뜰히 엮어내어 살가이 보여주려고 힘쓴 출판사 손길, 애써 꾸려낸 책이 우리들한테 두루 보여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 책방사람 움직임, 책방을 둘러싼 우리네 마을과 사회 터전, 이 여러 가지까지 함께 느끼며 책에 담은 ‘줄거리’를 느끼자면,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 퇴비만으로 키운 밀가루에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부추를 썰어 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쳐서 굽기만 해도 정말 맛이 있다.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전혀 없다. 원래 밀에는 밀의 맛이 있고, 쌀에는 쌀의 맛이 있고, 무에는 무의 맛이 있다. 그 맛을 내는 농법과 요리법, 즉 자연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 〈79쪽〉
시골집에서 밥을 해서 먹을 때와, 서울 같은 큰도시에 있는 밥집에서 돈을 치르고 사먹을 때 맛이 크게 다릅니다. 밥하는 사람 마음도 다르겠지만, 쓰는 물도 다르니까요. 제아무리 유기농으로 지은 쌀로 밥을 한들, 도시에서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 좋은 쌀을 씻는 물이, 그 좋은 쌀이 익으면서 어우러지는 공기가 깨끗하지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깨끗한 물을 멀리서 사들인 뒤 짓는다면 밥이 맛있을까요? 글쎄, 얼추 비슷해지기는 해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나 혼자만 깨끗한 물 길어 와서 쓰면 뭐해요. 이웃들은, 다른 사람들은 더러운 물에 더러운 공기로 살아야 하는걸요.
시골에서든 도시에서든 누구나 맛있는 밥을 지어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어느 곳에 살든 깨끗한 물과 공기를 즐기며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씽씽 달릴 찻길을 끝없이 새로 닦는 공사판보다, 사람들 살림집이 조금 낡았다고 해서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알뜰살뜰 살아오던 사람들을 죄다 내쫓고 재개발한다고 싸그리 무너뜨리는 막개발보다, 서로서로 웃고 어우러지며 살아갈 신명나는 한마당을 가꾸어야지 싶습니다.
.. 아이들을 죽순 캐는 데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눈높이가 낮아서일까, 죽순을 정말 잘 발견한다. 흙 표면에 낙엽을 뾰죽이 치밀어 올리는 죽순을 차례차례 발견하면서 좋아라 날뛰고 있다. 죽순 찾기에 싫증이 나면 나무를 오르거나 언덕에서 미끄럼을 탄다. 뒷산은 아이들의 천국이다. 부모들이 일하는 옆에서 놀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풍경의 하나다 .. 〈24쪽〉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이어서 하는 일을 보기 힘들어지는 우리 삶터입니다. 어버이가 하는 일을 딸아들이 남부끄럽다고 생각하는 탓도 있고, 어버이부터 딸아들은 돈을 더 많이 벌고 이름을 한껏 날리며 몸을 덜 쓰며 아늑하게 일할 자리를 얻어 주길 바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들, 어버이가 아닌 딸아들 나이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어떠한가요.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은 우리들이 낳아서 기를 딸아들한테 물려줄 만한지요. 자기가 아주 소중하게 여기는 동무나 동생들한테 물려줄 만한 일을 하고 있는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한테 지금 자기가 하는 일을 가르쳐서 이어주고 싶은지요.
어버이 된 사람으로서 먹고사는 길로 할 만한 일이라면, ‘자기가 낳아서 기르는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자기가 사랑하며 온삶을 같이 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일이어야지 싶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라면, 자기 딸아들한테든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이웃이나 동무한테든 자기가 지금 하는 일을 물려줄 수 없겠지요.
.. 식물의 잎은 태양의 빛을 받게끔 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속이 앉은 배추 쪽이 본래의 모습이라 할 수 없다. 시금치도 연둣빛을 띠고, 잎끝이 조금 갈색이 되어 있다. 데쳐서 먹어 보면 뿌리도 잎도 달아 맛이 각별하다. 잎이 땅바닥에 기는 당근도 입안에서 녹듯이 부드럽고 달다.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일 것이다 .. 〈14쪽〉
추위를 견뎌냈기 때문에 부드럽고 단 빨간무입니다. 추위를 견뎌내지 못한 빨간무라면, 비닐집에서 키운 빨간무라면 부드럽고 달 수 없습니다. 산에 들에 자라는 산딸이나 나무딸이나 들딸은,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을 있는 그대로 머금어서 달고 새큼하고 달짝지근하고 시기도 합니다. 비닐집에서 비료와 물만 잔뜩 머금고 굵직굵직하게 나오는 비닐딸은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설탕을 묻혀 먹지 않으면 단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퍽퍽하거나 푸석푸석하지요. 땅에 없는 기운을 비료로 먹였으니까요. 햇볕이 아닌 전깃불을 먹였으니까요. 하늘을 흐르는 바람과 땅을 흐르는 물이 아닌 갇힌 공기와 억지로 퍼올린 수도물을 마셨으니까요.
이야기책 《백성백작》은 “농부는 백 가지 일을 하고, 백 가지 작물을 기른다”는 이야기를 우리한테 건넵니다. 농사꾼만이 아니라 농사꾼 아닌 우리들 모두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으로 이 세상을 보듬고 살아갑니다. 아니,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들은 백 가지 일을 하며 백 가지 사람을 만나고 백 가지 생각을 품기보다는, 한두 가지 일만 하려들고 몇몇 사람만 만나려 하며 좁은 생각 몇 가지로 울타리를 쌓고 재미없거나 따분하게 자기 삶을 옥죄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들은 언제쯤 높은 울타리를 걷어내고 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과 맑은 물을 함께 즐기는 너른 땅으로 뛰어나올 수 있을까요. (4340.3.6.불.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