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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의 눈물 ㅣ 책꾸러기 13
다지마 신지 지음, 계일 옮김, 박미정 그림 / 계수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숲노래 숲책 / 환경책 읽기 2024.11.26.
숲책 읽기 231
《여우의 눈물》
다지마 신지 글
박미정 그림
계일 옮김
계수나무
2012.5.25.
이 삶이 즐거우려면 여러 길이 있습니다. 첫째로, 언제나 손수 그리고 짓고 가꾸고 일구면서 푸른숲을 품는 길입니다. 둘째로, 차분하면서 곱게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루를 누리면서 나답게 나로서 나를 사랑하는 길입니다. 셋째로, 별빛을 온몸에 담아서 파란하늘빛으로 깨어나서 꿈씨앗을 심는 길입니다. 이밖에 여러 기쁨길이 있을 텐데, 기쁨길이란 ‘남 아닌 나’를 바라보면서 사랑하는 길입니다.
다만 ‘남 아닌 나’란 ‘나만’이 아닙니다. ‘나만 보기’는 ‘나사랑’하고 멉니다. ‘나보기’는 ‘나만 보기’일 수 없습니다. ‘나보기·나사랑’은 다 다른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차분히 참하게 차근차근 새기면서, 오늘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남 아닌 나’인 줄 알아보는 살림살이입니다.
숨을 쉬는 이는 바로 나입니다. 수저를 쥐고서 밥을 먹는 이는 바로 나입니다. 똥오줌을 누고 잠자리에 드는 이는 늘 나예요. 걷고 달리고 앉고 서는 이는 언제나 나입니다. 내가 나를 나로서 나답게 바라볼 때라야 ‘내 곁에 있는 너’를 알아차려요.
《여우의 눈물》은 다지마 신지 님이 여민 《가우디의 바다》라고 하는 꾸러미에서 한 자락을 따로 여민 작은이야기입니다. 《가우디의 바다》는 1990년에 처음 한글판이 나왔는데 영 사랑받지 못 하고서 자취를 감추었어요. 1990년 무렵 ‘매캐(공해)’를 둘러싼 걱정거리가 조금 고개를 내밀기는 했으나, 숱한 사람들은 ‘매캐를 걱정하기보다 돈(경제발전)이 먼저!’라고 소리높였어요. 오늘날에도 이 얼거리는 그리 안 다릅니다. 허울은 ‘친환경·재생에너지’라고 내세우지만, 막상 ‘친환경·재생에너지’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돈을 들이부으면서 들숲바다를 몽땅 까뒤집는 또다른 삽질로 흐르기만 합니다.
어린이부터 읽는, 또는 어린이를 무릎에 앉히고서 어른이 함께 읽는 《여우의 눈물》입니다. 이 작은이야기는 ‘아이 여우’하고 ‘엄마 여우’가 나오고, ‘서울사람(도시 회사원·사장)’이 나란히 나옵니다. 그리고 ‘서울사람을 부러워하면서 여우살림을 버린 슬픈 넋’이 함께 나오지요.
처음에는 엄마 여우가 눈물을 흘립니다. 아이 여우는 엄마 여우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못 알아볼 뿐 아니라, 엄마가 흘리는 눈물조차 안 보고서 쌩하니 서울로 달려갑니다. 서울에서 일자리를 얻어서 더는 ‘숲에서 먹이사냥’을 안 해도 가게에서 손쉽게 고기를 사다먹을 수 있는 아이 여우는 꽤나 서울살이가 마음에 든다지요. 그렇다면 아이 여우는 왜 뒤늦게 눈물을 흘릴까요? 왜 아이 여우는 처음부터 더 깊고 넓게 안 헤아린 채 탈바꿈(사람으로 몸을 바꾸기)을 해버리고 말았을까요? 뒤늦게 눈물을 흘린 뒤부터 새롭게 걸어갈 꿈길을 그리려는 마음은 왜 없을까요?
막다른 벼랑으로 스스로 치달렸기에 끝장나지 않습니다. 뒤돌아서서 숲으로 가면 됩니다. 다시 여우몸을 찾을 길이 없다면, 사람몸으로 서울을 숲빛으로 갈아엎거나 바꾸는 꿈씨앗을 심을 수 있습니다.
눈물은 빗물하고 같습니다. 뜨겁게 온몸을 녹여서 스스로 허물을 씻어내고서 나비로 거듭나는 날개돋이 구실을 하는 눈물입니다. 눈물에 젖어서 허물씻이부터 하고 난 뒤에 새롭게 일어설 줄 안다면, 이제부터 참삶으로 나아갈 만합니다.
그리고 이슬과 빗물은 시골이나 숲뿐 아니라 서울에도 찾아옵니다. 모든 곳에는 새벽이슬과 밤이슬이 내려요. 모든 곳에는 비가 오고 눈이 옵니다. 달래고 씻은 뒤에는 살리고 북돋울 일입니다.
ㅅㄴㄹ
‘칫! 여우가 심사숙고를 해?’ 하고 비웃지 마십시오. 여우도 고민할 때에는 고민하고, 울어야 할 때에는 ‘캐앵’ 하고 울기도 하면서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7쪽)
작년 가을, 산이 반으로 잘리더니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멋있다! 부러워!” 곤키치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회사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출근을 합니다. 그러나 주말이 되면 한껏 멋을 부리고는 초록빛 가득한 산에 가서 하얀 공을 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요. (8쪽)
“더 이상 여우로 살기 싫어!” 그 소리는 들을 지나 산을 넘고 머나먼 바다 건너 지구를 한 바퀴 돌아 메아리가 되어 다시 곤키치에게 돌아왔습니다. “나는 사람이 될 거야, 사람이…….” (13쪽)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곤키치를 엄마 여우는 말없이 보고만 있었습니다. 한 방울, 두 방울 ……. 엄마 여우의 두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18쪽)
“아아…….” 곤키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나는 여우가 될 수 없어. 설사 여우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는 산에서 살아갈 수 없어. 나는 진짜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까.” (59쪽)
《여우의 눈물》(다지마 신지/계일 옮김, 계수나무, 2012)
#田島伸二 #コンキチ #人間になってみたキツネ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