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말을 찾기까지

[오락가락 국어사전 9] ‘때’를 알맞게 살펴서 쓰기



  어느 때에 어느 말을 써야 알맞은가를 잘 다루어야겠습니다. 우리 사전이 제때를 가리는 길을 슬기롭게 밝히지 못하더라도 우리 스스로 말결을 살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말결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말넋을 찬찬히 가꾸면서, 말길을 새로우면서 곱게 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빼앗다 : 1. 남의 것을 억지로 제 것으로 만들다 2. 남의 일이나 시간, 자격 따위를 억지로 차지하다 3. 합법적으로 남이 가지고 있는 자격이나 권리를 잃게 하다 4. 남의 생각이나 마음을 사로잡다 5. 남의 정조 같은 것을 짓밟다

약탈당하다 : x

약탈(掠奪) : 폭력을 써서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음



  빼앗는 일이라면 ‘빼앗다’라 하면 됩니다. ‘약탈’ 같은 한자말은 “→ 배앗다”로 다루고, ‘약탈당하다’는 “→ 배앗기다”로 다루면 됩니다.



색맹(色盲) : [의학] 색채를 식별하는 감각이 불완전하여 빛깔을 가리지 못하거나 다른 빛깔로 잘못 보는 상태 ≒ 색못보기·색소경

색못보기(色-) : = 색명

색소경(色-) : = 색맹



  빛깔을 가리지 못하는 눈을 나타낼 적에 한자말로 ‘색맹’을 쓰곤 하는데, ‘색못보기’라는 비슷한말이 있다지요. 이러한 비슷한말을 헤아린다면 ‘빛못보기’나 ‘빛깔못보기’처럼 새말을 지어서 한결 부드러이 나타내 볼 만합니다. 이 얼거리를 살리면, 글을 못 읽는 이를 두고 ‘문맹’ 아닌 ‘글못보기’처럼 나타낼 수 있어요.



장님 :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시각장애인(視覺障碍人) : [사회]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인 요인으로 시각에 이상이 생겨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또는 아주 약한 시력만 남아 있어서 앞을 보기 어려운 사람



  사전을 살피면 ‘장님’이라는 한국말을 낮잡는 데에 쓴다고 풀이하지만, 이는 올바르지 않아요. 한국말을 낮추고 한자말을 높이는 이런 얼거리는 바로잡아야 합니다. “눈으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 같은 수수한 뜻풀이를 붙여야지 싶습니다. ‘색명·문맹’하고 얽혀 ‘눈못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녹음 : [화학] = 융해(融解)

용해(溶解) : 1. 녹거나 녹이는 일 2. [화학] 물질이 액체 속에서 균일하게 녹아 용액이 만들어지는 일. 또는 용액을 만드는 일



  녹는다고 하니 말 그대로 ‘녹음’이요, ‘녹기’라 해도 되지요. 굳이 ‘용해’를 화학에서 쓰는 학문말로 삼아야 하지 않습니다. ‘용해’를 “→ 녹음”으로 다루면서 ‘녹음’에 뜻풀이를 제대로 붙일 노릇입니다.



다정(多情) : 정이 많음. 또는 정분이 두터움

정(情) : 1. 느끼어 일어나는 마음 2. 사랑이나 친근감을 느끼는 마음

정분(情分) : 사귀어서 정이 든 정도. 또는 사귀어서 든 정



  ‘다정·정·정분’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정(情)’은 ‘뜻’을 나타내는 한자요, 이는 ‘마음’하고 이어집니다. ‘정분’은 “→ 마음. 마음이 넉넉함”으로, ‘정’은 “→ 마음. 살가운 마음”으로, ‘정분’은 “→ 마음. 사귄 마음”으로 뜻풀이를 가다듬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살뜰마음·알뜰마음’이라든지, ‘포근마음·따순마음’이라 할 수 있고, ‘맘’이라는 준말을 새롭게 살려서 써 보는 길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산란(産卵) : 알을 낳음. ‘알 낳기’로 순화

알낳기 : x



  ‘알 낳기’로 고쳐쓸 ‘산란’이라지만 정작 ‘알낳기’는 사전에 없어요. 이래서야 사전이 사전답지 않습니다. ‘알낳기’를 올림말로 실으면서 ‘산란’은 “→ 알낳기”라고만 다루면 됩니다.



때 : 1.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 2. 끼니 또는 식사 시간 3. 좋은 기회나 알맞은 시기 4. 일정한 일이나 현상이 일어나는 시간 5. 어떤 경우 6. 일정한 시기 동안 7. = 계절 8. 끼니를 세는 단위

시기(時期) : 어떤 일이나 현상이 진행되는 시점. ‘때’로 순화

시기(時機) : 1. 적당한 때나 기회 2. [불교]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 따위의 시(時)와 각 시에 따른 자질(資質)의 중생

기회(機會) : 1. 어떠한 일을 하는 데 적절한 시기나 경우 2. 겨를이나 짬



  ‘때’로 고쳐쓸 ‘시기(時期)’라지요. 그런데 ‘시기(時機)’도 ‘때’로 손볼 만합니다. ‘기회’라는 한자말은 ‘시기’하고 돌림풀이가 되는데, ‘기회’도 ‘때’로 손질할 만합니다. 두 가지 한자말 ‘시기’는 “→ 때”로, ‘기회’는 “→ 때, 자리”로 손질해 줍니다.



타이밍(timing) : 1. 동작의 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순간. 또는 그 순간을 위하여 동작의 속도를 맞춤. ‘때맞춤’으로 순화 2. 주변의 상황을 보아 좋은 시기를 결정함. 또는 그 시기. ‘적기(適期)’로 순화

때맞춤 : x

때맞추다 : 시기에 알맞도록 하다

제때 : 1. 일이 있는 그때 2. 정해 놓은 그 시각 3. 알맞은 때

적기(適期) : 알맞은 시기 ≒ 적시기



  ‘때맞추다’가 사전에 있습니다. ‘때맞춤’도 사전에 실을 만합니다. ‘적기·적시기’는 사전에서 덜어내어도 되고, “→ 제때”로 다루어도 되겠지요. 가만히 보면 영어 ‘타이밍’은 “→ 때맞춤, 제때, 때”로 다루면 되겠습니다.



일람표(一覽表) : 여러 가지 내용을 한 번에 죽 훑어볼 수 있도록 간단명료하게 꾸며 놓은 표 ≒ 보기표

보기표(-表) : = 일람표



  죽 보도록 마련한 표라면 ‘보기표’라 하면 되지요. ‘보기표’라는 낱말을 제대로 풀이한 다음, ‘일람표’는 “→ 보기표”라고만 다루어야겠습니다.



실로(實-) : = 참으로

참으로 : 사실이나 이치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과연 ≒ 실로·성시(誠是)·참



  ‘참으로’ 한 마디이면 됩니다. ‘실로’를 비롯해 ‘성시’ 같은 한자말은 사전에서 털어도 됩니다. 굳이 올림말로 다루려 한다면 “→ 참으로, 참말로, 참”이라고만 다루어 줍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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