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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 아이들 이야기글 모음 ㅣ 이오덕의 글쓰기 교육 9
이오덕 엮음 / 양철북 / 2018년 2월
평점 :
요즘 아이들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이오덕 엮음
(1979.1.22. 청년사)
(2018.2.2. 양철북)
어제 학교에서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나물을 뜯으러 가니까 우리 큰엄마 무덤 앞에 할미꽃이 예쁘게 피어 있습니다 그걸 보다가 내비 두고 딴 데 가서 나물을 뜯어 가지고 와서 집에 갖다 놓고 다시 우리 큰엄마 무덤 앞에 가서 할미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까 하얀 털이 보얗게 묻어 있습니다(할미꽃, 상주 공검 2년 권명분 1959.2.27.)
노란 풀잎들은 이제 봄이라고 올라옵니다. 노란 풀잎은 아기처럼 부드럽고 작았습니다. 나는 풀잎을 만져 주었습니다. 풀잎들은 좋다고 웃는 것 같습니다. 그래 나는 그것을 보고 참 기뻤습니다(풀잎, 상주 공검 2년 임도순 1959.3.16.)
시골을 떠난 이가 대단히 많습니다. 시골에서 먹고살 길을 찾을 수 없어 서울로 떠난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서울은 도시를 가리키는 이름이면서 한국에서 첫손 꼽는 도시 이름이기도 합니다.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 살면서 마을 할매나 할배가 ‘서울’을 말할 적에는 행정구역 서울이기보다는 도시인 서울을 말하기 일쑤입니다. 다른 시골에서도 엇비슷해요. 예부터 시골이 아닌 곳을 서울이라고 했어요.
우리는 지난날을 쉬 잊고 마는데,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이 서울에서 살지만, 지난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시골에서 살았어요. 지난날에는 임금을 비롯한 몇몇 사람이 서울에서 살았어요. 또 궁궐이 서울에 있기 앞서 그 고을에서 흙을 부치며 살림을 이은 텃사람이 그곳에서 살았고요.
나는 동생을 보았습니다. 내 동생은 젖이 먹구져서 울었습니다. 달개도 안 되고 자꾸 웁니다. 나도 눈물이 나서 동생을 업고 가두둘 가서 동생을 젖을 먹여 가지고 왔습니다 (담배 심기,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2년 권순교 1969.5.25.)
오늘 소 뜯기로 가니까 어디서 논매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우리도 크면 저런 농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 상주 청리 4년 최인모 1964.7.20.)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시골 어른이 됩니다. 시골 어른은 새롭게 시골 아이를 낳습니다. 시골사람은 시골살림을 가꾸고 시골노래를 부릅니다. 시골노래를 부르면서 시골살이를 누리는 동안 시골마을이 사랑스럽고 시골숲이 푸릅니다.
시골이 가장 나은 삶터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시골이든 서울이든 우리 스스로 사랑을 짓고 나누며 돌볼 줄 알면 넉넉하리라 여겨요. 그런데 왜 예부터 ‘서울 깍쟁이’ 같은 이름이 돌았을까요? 왜 예부터 ‘시골뜨기’라는 이름이 퍼졌을까요?
‘시골 깍쟁이’나 ‘서울뜨기’라는 말은 없습니다. 이런 말을 쓰는 사람도 없을 테고요. 이 얼거리를 헤아려 본다면, 서울에서 살면 깍쟁이처럼 된다는 뜻이고, 시골사람은 서울사람한테 등골이 뽑히는 어수룩한 모습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서울사람이 무뚝뚝하거나 제 밥그릇만 챙긴다고는 여기지 않아요. 서울사람이면서 아름답고 착하며 너른 마음씨를 건사하는 이웃이 많아요. 시골사람이면서 씁쓸하고 얄궂으며 좁은 마음씨로 휘둘리는 이웃이 있고요.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시골 어린이 글모음을 읽으면서 자꾸만 묻고 싶습니다. 이오덕 어른이 195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멧골자락 어린이를 마주하면서 삶을 읽고 살림을 바라보는 동안 어떤 이야기를 먼먼 뒷날 어른하고 어린이한테 남기고 싶었는가를 묻고 싶습니다.
오늘 아침을 먹고 나와 순희와 빨래를 했습니다. 내가 두 가지 빨 동안에 순희는 한 가지밖에 못 빨았습니다. 내가 일곱 가지, 순희가 여섯 가지 빨 때 또 순희네 새형님과 순희네 어머니와 빨래를 한 버지기, 한 세숫대씩 가지고 와서, 나는 우리 것을 다 빨고 순희네 것을 빨아 주었습니다 20가지 빨아 주고 내가 발을 씻으니 순희네 새형님과 순희 어머니가 고맙다 합니다 (빨래,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3년 김후남 1969.5.25.)
산 그림자가 마당에 들 때 저녁밥을 했습니다. 보리쌀을 씻고 또 씻어 가지고 물을 바개수에 부어 가지고 또 씻었습니다. 그래서 고만 씻고 솥에 물을 부어 놓고 앉혔습니다. 앉혀 놓고 불을 넣었습니다. 불을 넣어 놓고 밥이 퍼지나 상근 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퍼졌습니다. 그래서 나는 장재기를 꺼냈습니다. 한 가재이만 나두고 다 꺼냈습니다. (밥하기, 안동 임동동무 대곡분교 3년 성숙희 1969.6.)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라는 시골 어린이 글모음에는 어차피 우리는 시골지기가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어린이 마음이 환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시골지기가 되겠구나 하는 마음을, 나고 자란 터를 새로 일구면서 살자는 뜻이 드러나요.
어린이로서 어른을 바라보는 눈길이 드러납니다. 어린이로서 어른한테서 느낀 아쉽거나 안타까운 생각이 드러납니다. 어린이로서 어른한테서 기쁘게 배우고 고마이 받아들이는 슬기로운 살림살이가 드러납니다.
그래요. 그렇더군요.
어린이는 모두 배웁니다. 즐거움도 배우고 미움도 배워요. 기쁨도 배우고 슬픔도 배워요. 사랑도 배우고 따돌림도 배워요.
그렇지만 어린이는 어른하고 다르더군요. 어른들이 미워하거나 싸우거나 괴롭히는 짓을 보여주더라도 이런 모든 얄궂은 틀을 훌훌 털어버리는 몸짓을 보여주곤 해요. 그리고 어린이인 터라 어른이 보여주는 모든 얄궂은 틀을 고스란히 물려받아서 따라하는 몸짓을 보여줘요.
더 파고든다면 어른들 모습이란, 이 어른들이 예전에 어린이였을 적에 옛날 어른한테서 보고 듣고 배운 모습이지 싶어요. 먼먼 옛날부터 흐르고 흐른 얄궂은 모습을 우리 어른들이 바로잡거나 고치거나 가다듬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이 이를 똑같이 따라할 수 있어요. 때로는 우리 어른들 어리숙한 짓을 털어낼 아이들이 있을 테고요.
교실에서 밖을 내다보니 아가시 꼭두배기가 고개를 들고 우리 공부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다가 바람이 불면 고개를 요리조리 돌립니다. 바람이 시기 불면 온 둥치가 막 날립니다. 가재이는 우리 교실에 걸어올라 카는 것 같습니다 (아가시아, 상주 청리 3년 김용구 1963.6.14.)
마늘밭 밑에는 샘물이 있고 옆에는 또 우리 밭이 있다. 위에는 논이 있고 논 옆에는 장길이 있다. 한참 하다가 땀이 하도 흘러서 물을 좀 먹고 또 시작했다. 작은누나는 삽가래로 뜨고 나는 흙덩어리를 털었다. 또 땀이 나서 낯을 씻고 물을 먹고 발을 적셔서 시작했다. 숙이는 물이 땀으로 되어서 나보다 더 많이 났다 (마늘 캐기, 안동 길산 3년 이상덕 1977.7.)
여덟 살 나이라면 밥을 지을 줄 알던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열 살 나이라면 어린 동생쯤 얼마든지 업고 다니면서 어를 줄 아는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열두 살 나이라면 어른 못지않게 지게나 등짐을 짊어지고서 살림 한 자리를 톡톡히 맡던 예전 시골 어린이 모습을 읽습니다.
오늘 우리 어린이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우리 어른은 어떤 모습인가요?
떠난 어른은 어린이 글모음에서 군말을 안 붙입니다. 오직 시골 아이 글만 줄줄이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부터 새봄을 지나 여름하고 가을을 맞이하는 한 해 네 철을 가로지르는 이야기를 가만히 보여줍니다.
눈물짓는 아이들 삶을 아이들이 손수 적도록 이끌어 줍니다. 웃음짓는 아이들 노래를 아이들이 스스로 활개치도록 북돋아 줍니다.
글쓰기란 이렇군요. 잘남도 못남도 없는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글쓰기로군요. 오직 고운 사랑 한 가지로 마음을 가꾸는 길을 우리가 스스로 여는 글쓰기로군요.
내캉 용한이와 미술이와 교문을 나왔을 때 미술이가 넌 엄마 물에 빠졌다고 했다. 용한이와 내캉은 울면서 집으로 왔다. 누나는 나가고 밖에서 울고 있으니 작은누나가 왔다. 나는 엄마 물에 빠졌다고 했다. 나는 누나보고 용한이와 강에 가 봐라고 하고 나는 할머니 못 나가게 한다고 했다. 누나와 용한이나 나가디만 또 집으로 오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신 일, 안동 길산 6년 김요섭 1978.7.20.)
나는 어제 담배 조리를 하고 나니 손이 검었습니다. 또 손을 씻고 보니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엄마 손에는 냄새가 더 많이 났습니다. 나는 엄마한테 냄새가 왜 이렇게 나노 물어보았습니다. 엄마는 담배 조리를 또 했습니다. 방에 가서 시계를 보니 9시였습니다. 나는 그만 잤습니다. 하늘에는 별이 반짝반짝 놓여 있었습니다. 별이 예쁘게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담배 조리, 안동 길산 2년 이인경 1978.9.16.)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윽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일을 아이가 쪽종이에 적습니다. 이 아이는 오래지 않아 멧골집을 떠납니다. 맏이로서 어린 동생들을 홀로 건사할 수 없어서 텃마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갑니다. 그때 이오덕 어른은 이 어린 제자한테, 학생한테 어떤 말을 건네고 어떤 손길을 보냈을까요. 두 어버이 죽음을 그야말로 차분히 적바림한 아이를 지켜보아야 한 이오덕 어른은 아이한테 어떤 말을 들려줄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오늘날 ‘제3세계 어린이 노동’을 이야기합니다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나라도 얼마 앞서까지 ‘제3세계’인 줄 잊기 일쑤입니다. 서울에서뿐 아니라 시골에서 여덟아홉 살 아이들이 ‘담배 조리’를 한 줄 잊거나 모르기 일쑤이지요. 새벽부터 밤까지 어버이 곁에서 쉴 틈이 없이, 아예 놀 틈조차 없이 일손을 거들던 시골 아이들은 먼먼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입니다.
돌미는 산에서 추워서 울고 있습니다. 소나무도 산에서 추워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소나무는 바람이 부니까 싫다고 떠드는 소리가 왕왕하고 들립니다. 돌미하고 소나무하고 친한 친구가 되어서 이야기를 하며 벌벌 떠는 것 같습니다 (산,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2년 김민한 1969.10.9.)
어제 점심때 새끼를 꼬고 있었다. 아버지는 짚을 많이 쥐고 하는데 보니 새끼가 아주 굵고 내가 까 논 것은 아주 가늘다. “아버지요, 왜 고키 굵기 까요?” “집 일 새낑깨 굵기 까지 웃째.” “나는 가만히 앉아서 깍까?” “그래 아문따나 깔라마.” 나는 짚뿍시기에 앉아 새끼 까 놓은 것을 붙들고 짚을 둘 집어 들고 양쪽에 끼어서 손으로 비비니 부시륵부시륵 한다. 그래 나는 막 빨리 깠다 (새끼 꼬기, 상주 청리 3년 깅경수 1963.11.18.)
200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일하는 어린이’가 드물다 하지만, 이 얘기도 남녘 얘기일 뿐입니다. 한겨레인 북녘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북녘 어린이’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를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자라날 만한가도 생각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참말로 ‘일을 안 하는 남녘 어린이’는 앞으로 슬기롭거나 씩씩하거나 튼튼하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러운 ‘마을일꾼·집일꾼·나라일꾼·누리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손에 물을 안 묻히고서 시험공부만 잘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어떤 몫을 맡을까요?
밥을 할 줄 모르고, 옷을 기울 줄 모르며, 집을 지을 줄 모르는 아이들이 앞으로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일을 고되게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참말로 일을 고되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일을 모르기에 놀이를 모르지 싶어요. 즐거이 나누는 일하고 멀어지기에 즐거이 나누는 놀이하고도 멀어지는구나 싶습니다. 일할 줄 모르면서 살림할 줄 모르는 어른이 되고, 일하는 기쁨을 모르면서 사랑하는 기쁨을 모르는 어른이 되지 싶어요.
어머니가 “머심아를 해 입히야지 지집아를 해 입히마 되여?” 이캅니다. 그래 내가 “지집아는 머래여, 지집아나 머심아나 다 같지.” 이캉개 어머니가 “떠 줄라 캐도 돈이 있어야지.” 이캅니다. 그래 내가 “엄마 주머니에 있대.” 이캉개 어머니가 “내 주머니에 봐라, 돈 십 환도 없다.” 이카미 주머니를 보이줍니다. 그래 주머니를 보니 십환도 없습니다 (치마, 상주 공검 2년 정영자 1959.1.31.)
목화가 두 다물 남았는 것을 열심히 땄습니다. 목화를 따니 손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내가 돌배나무 밑에서 쉬다가 또 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손을 빨리 빨리 놀려서 따다가 목화나무에 똑바로 눈 밑에다 찔렸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따 가지고 내가 보따리에 싸 가지고 이고 다라기에 미고 큰언니는 홑이불에 이고 작은언니는 다라기에 봉실봉실한 것을 이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목화, 안동 임동동부 대곡분교 3년 심필련 1968.12.9.)
상냥하게 웃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읽어 봅니다. 상냥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뜻을 조용히 읽어 봅니다. 《우리도 크면 농부가 되겠지》는 어른인 우리들이, 푸름이인 우리들이, 어린이인 우리들이 앞으로 크면 스스로 무엇이 되려 하느냐를 넌지시 묻는 책이지 싶습니다.
지난날 멧골 아이들은 이오덕 어른한테 “그러면 이오덕 어른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하고 물었지 싶어요. 마흔 살 어른이지만 쉰 살 어른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되겠는지 묻고, 쉰 살 어른이지만 예순 살 어른이 되면 어떤 몸짓이 되겠는지 물으며, 예순 살 어른이지만 일흔 살 어른이 되면 어떤 살림이 되겠는지 묻는다고 할까요.
어린이만 큰다고 느끼지 않아요. 어른도 큽니다. 열 살 어린이는 무럭무럭 커서 스무 살에 어떤 꿈을 펴려는지 생각을 짓습니다. 자, 마흔 살 어른이나 예순 살 어른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크려’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어요. 서른 살 어른이나 일흔 살 어른인 우리는 앞으로 ‘커서’ 어떤 새로운 어른으로 우뚝 서려는지 차근차근 헤아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이오덕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