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등여행기 -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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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98


모든 걸음은 여행이 되어
― 삼등여행기, 도쿄에서 파리까지
 하야시 후미코/안은미 옮김
 정은문고, 2017.6.13.


나는 하얼빈의 여름보다 겨울을 좋아합니다. 역시 추운 나라의 풍경은 추울 때가 제일. 공기가 와삭와삭 유리 같아 상쾌한 기분입니다. (12쪽)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겠구나 싶어 우연히 스쳐가는 이 친절한 사람을 적어도 눈으로라도 배웅하자는 마음에 악수를 한 뒤 곧장 커튼 사이로 플랫폼을 씩씩하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엿봤습니다. (19쪽)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한 바퀴 도는 몸짓을 나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안에서 오가는 몸짓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나 배쯤 타고서 수백 킬로미터나 수천 킬로미터를 오가야 비로소 나들이나 여행이라는 이름이 걸맞을까요.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도쿄부터 파리까지 기차를 타고 떠나서, 다시 파리에서 도쿄로 배를 타고 돌아온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1903년에 태어나 1951년에 숨을 거둔 하야시 후미코라는 분으로, 이 마실길을 《삼등여행기》(정은문고, 2017)라는 책으로 남겼습니다.


창에 이마를 대고 자작나무가 눈보라에 부러질 듯 비틀비틀하는 숲을 바라보는 내게 페름 군이 탱고의 한 구절을 불러줍니다. 어찌하여 러시아인은 이토록 노래를 사랑하는 걸까요. (28쪽)

러시아는 어째서 기계공업에만 손을 대고 내수 물자를 풍부하게 하는 데는 손을 놓고 있는지, 나쁘게 말하면 삼등 열차의 프롤레타리아는 모두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38쪽)


  1930년대에 무척 먼 마실길에 나서는 분은 짐을 바리바리 꾸렸다고 합니다. 부산을 떠나 러시아를 가로질러 프랑스까지 이르는 기찻길은 하루이틀 달리는 길이 아니라고 해요. 기차에서 숱하게 먹고 자면서 지내야 한다지요. 기차에서 밥을 사서 먹을 수 있으나 냄비를 챙겨서 손수 지어 먹을 수 있고, 차도 주전자를 챙겨서 손수 끓여 마실 수 있다고 합니다(요즘도 이렇게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더욱이 한겨울에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달리자면 이불도 챙겨야 한대요.

  우리는 1930년대라는 일제강점기라는 나날을 살았기에 《삼등여행기》를 읽으면서 그무렵 조선사람은 어떤 삶과 살림이었나를 헤아릴 수 있어요. 억눌린 나라에서 바라보자면 일본사람 여행기는 별나라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남긴 분이 바라본 기찻간 모습이라든지, 유럽 모습이라든지, 유럽에서 도시하고 시골 모습이라든지, 여러 나라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느끼는 생각은 곰곰이 돌아볼 만하구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프롤레타리아는 변함없이 프롤레타리아입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죄다 특권자는 역시 특권자입니다. 3루블의 기차 식당에는 군인과 인텔리풍의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복도에 서서 잠을 청하는 사람들 중에 군인이나 인텔리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모습이었습니다. (51쪽)

삼등 열차는 하나의 가족 같으니 어찌 된 일일까요? 한가로운 익살꾼이 많은 덕에 언제까지나 명랑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64쪽)


  일제강점기에 조선사람 가운데에도 누군가 이 책쓴이처럼 기차를 탔으리라 봅니다. 다만 조선사람이 남긴 기차 여행기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빌붙은 누가 이 기차를 탔을 수 있고, 독립운동을 하는 누가 이 기차를 탔을 수 있어요. 어떤 조선사람은 일등칸에 탔을 테고, 어떤 조선사람은 삼등칸에 탔을 테지요.

  《삼등여행기》를 읽으면서 1930년대 그무렵 어느 조선사람이 이 기차를 탔다면 어떤 눈으로 이웃나라 사람들을 바라보았을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삼등칸에 탄 ‘삼등 사람’을 지난날 조선사람은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하고 어림해 보고, 오늘 우리는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을 어떤 눈으로 마주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는 소수의 지식계급이라고 합니다만 흥, 놀라운 이야기네요. 파리를 지탱하는 건 백성과 이방인입니다. (85쪽)

파리는 경찰관 아저씨도 그냥 인사하며 지나갑니다. 아니, 경찰관조차 슬렁슬렁 돌아다니다 채소 가게 여종업원과 키스하는 판국입니다. (142쪽)


  삼등칸은 한식구 같았다는 책쓴이 말을 곱씹습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네 삼등칸도, 대중교통도, 시골버스도 그야말로 북적북적합니다. 느릿느릿 가는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여느 사람들은 천천히 달리는 이 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 마련입니다. 높거나 대단한 이야기는 없더라도, 수수하면서 살가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여느 삶터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엇비슷하게 흘러요. 책쓴이가 프랑스 파리에서 곁일로 살림돈을 벌며 살아가는 동안 지켜본 ‘삼등칸 같은 터전에서 살아가는 여느 프랑스사람’은 그야말로 살뜰하면서 살가운 몸짓이었다고 합니다.

  정치이며 언론이며 언제나 일등칸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하기 마련입니다. 얼핏 보면 정치 지도자나 몇몇 지식계급이 나라를 이끄는 듯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쓴이 말마따나 나라를 받치고 이끄는 힘이란 삼등칸 사람들한테서 비롯하지 싶습니다. 저잣거리에서, 골목집에서, 시골마을에서 아주 작고 수수한 손길이 흐르고 모여서 나라를 이루지 싶어요.


퐁텐블로에서 이틀, 바르비종에서 사흘이니 실로 팔랑개비처럼 분주한 여정이지만 파리 같은 도시에서보다 시골에서 알고 얻은 것이 더 많습니다. (191쪽)


  1930년대에 일본을 떠나 러시아를 가로질러 유럽에서 한동안 머물던 하야시 후미코라는 분은 일본을 견디기 어려웠을는지 모릅니다.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는 군국주의가 물결치고, 숱한 지식인이 이에 어깨춤을 추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싸움판을 더 키우는 일본이 고향나라라고 한다면 무척 슬플밖에 없겠지요.

  여행길이란 이곳을 떠나 저곳에 머물면서 새바람을 쐬는 일이지 싶습니다. 이곳에 고인 바람을 걷어내어 새바람이 흐르도록 스스로 거듭나려는 몸짓이지 싶습니다.

  마당을 거닐거나 뒤꼍에서 호미질하는 손길도 여행이 될는지 모릅니다만, 부엌에서 밥을 짓고 마루에서 해바라기를 하는 하루가 마실길이 될는지 모릅니다만,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다른 고장에서도, 스스로 새롭게 보는 눈을 틔우면서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면 여행이요 마실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작은 곳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줄 아는 눈이기에, 멀리 돌아다닐 적에도 새롭게 아름다움을 마주하면서 받아들이리라 여겨요. 수수한 사람이 수수한 노래를, 투박한 마을이 투박한 바람을, 낮은 걸음걸이가 보드라이 이야기꽃을 나누어 줍니다. 2018.3.2.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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