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하지 않는 글쓰기 1



  ‘높은 분 격려 순시’하고 ‘아침잠’을 놓고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해가 높이 떴는데 ‘왜 처 자느냐’는 말을 높은 분이 했단다. 이런 글을 읽고서 우리는 참말로 ‘군대 위계질서로 흐르는 나라’에서 사는구나 하고 느낀다. 그리고 내가 군대에서 겪은 일이 아주 또렷이 떠오르면서 부르르 하고 떨었다. 군대를 떠난 지 스무 해가 넘어도 잊히지 않는 일이 수두룩한데, 이 가운데 하나는 ‘여덟 시간 3교대 경계근무’이다. 하루를 여덟 시간씩 셋으로 나누는 경계근무는 어느 때에 여덟 시간을 꼬박 자리를 지켜야 하더라도 고되다. 한밤이든 아침이든 한낮이든 그야말로 죽을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짓을 여섯 달 동안 해야 한다. 한 달은 한밤, 다음달은 아침, 이다음에는 한낮, 이렇게 다달이 3교대 돌이를 바꾸면서 여덟 시간짜리 경계근무를 선다. 더욱이 내가 강원도 양구에서 군대살이를 하던 1996년에 북쪽 군인이 잠수함을 이끌고 동해에 내려서 강원 멧골을 누벼 주신 터라, 끔찍한 철책을 떠난 뒤에 곧장 ‘스물네 시간 미친 경계근무’를 서야 한 적이 있다. 교대할 사람이 없는 ‘스물네 시간 경계근무’를 시킨 높은 분은 아무 말이 없다. 그냥 잠을 자지 말고 몇날 며칠이고 그대로 참호에 처박히라고 하더라. 이 짓을 이레를 넘기고 열흘 즈음 될 무렵 비로소 풀어 주었다. 하하. 고마운 사단장님인지 군단장님인지 ……. 진도개인지 똥개인지 한 마리인가 두 마리인가를 내려서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하게 참호에 처박아 놓은 적이 있다. 똥도 오줌도 누지 말고 밥도 먹지 말란 소리였지. 그렇다면 나는 그때 그러한 끔찍한 짓거리가 슬펐는가? 아니다. 그때를 돌아보면 슬프지 않다. 차라리 내 목을 긋거나 총으로 가슴을 쏘아서 죽여 주기를 바랐다. 살아도 살았다 할 수 없는 죽음 같은 나날이었다. 오죽했으면 철책 곁에서 여섯 달 동안 그 따위 미친 3교대 여덟 시간 경계근무를 서고 나서 곧장 스물네 시간 더 미친 경계근무로 하루하루 지새워야 한 뒤에 비로소 한 달짜리 휴가를 얻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던 날, 날짜를 잊고서 그저 깊은 잠에 허우적허우적 빠져들었을까. 슬퍼하지 않는 글쓰기란 무엇인가. 우리 삶은 모두 쓸거리가 된다. 기쁨도 쓰고 슬픔도 쓴다. 생채기도 쓰고 고름도 쓴다.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한 아픔마저 얼마든지 글로 쓴다. 바로 그자리 그때에는 차마 글로 못 쓰지만, 스무 해쯤 지나고 보니 이럭저럭 닭살 돋은 팔뚝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지난일을 몇 토막 글로 적바림해 본다. 2018.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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