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저만큼 떴어



  ‘높은 분’이 왔기에 다들 일어나서 차려 하며 서는 일을 떠올립니다. 높은 분은 아침이나 낮에 움직이시지요. 그러나 ‘낮은 놈’은 때나 자리를 가리지 않고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이런 일을 흔히 겪었습니다. 군대에서는 ‘낮 근무’하고 ‘밤 근무’가 있고, 비무장지대라고 하지만 정작 완전무장지대인 철책에서는 3교대를 해요. 3교대란 하루를 셋으로 갈라서 8시간 동안 꼼짝 없이 혼자서 그 자리를 지키는 경계근무입니다. ‘높은 분’이 보기에 8시간 경계근무는 그리 안 어려울 수 있어요. 딱히 다른 일을 안 하고 그저 한 손에 총을 들고 여덟 시간 동안 한 자리에 서서 가만히 한 곳만 바라보면 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봐요. 00시부터 08시까지 여덟 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섰다면 08시에 초소로 돌아와서 비로소 눈을 부치겠지요. 그리고요, 군대라는 곳에서 00시에 경계근무를 나가야 하더라도 21시까지 청소랑 이것저것 모두 마친 뒤에 22시까지 저녁점호를 받고서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는데 00시부터 여덟 시간 경계근무에 나가야 하면 적어도 23시 30분에는 일어나서 장비를 챙겨야 해요. 계급이 낮으면 저녁은 저녁대로 온갖 치다꺼리를 다 하고서 밤새 꼬박 쉴 틈이 없이 철책 곁에 멍하니 서서 아침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08시에 경계근무를 바꾸어 비로소 쉴 수 있어도 12시에 일어나서 낮밥을 먹어야 해요. 참 갑갑한 얼거리입니다. 이런 흐름에서 대대장이건 연대장이건 사단장이건 군단장이건 뭔 놈이건 ‘전방 순시’를 한답시고 찾아오면 그나마 네 시간 눈붙이기조차 못 하고 일어나서 차려 하고 서야 합니다. 어깨에 꽃이나 별이라는 계급장을 단 분들은 으레 말하지요. “해가 저만큼 떴어!” 하고. 겨울올림픽에서 얼음판을 지치는 이상화라고 하는 선수하고 얽힌 이야기를 얼핏 듣고는 군대에서 겪은 일이 떠오릅니다. 그분들은 늘 말씀하시더군요. “아니, 이 녀석들, 한낮인데 왜 퍼질러 자고 지랄이야!” 속으로 그분한테 여쭈었지요. “이보셔요. 밤새 우리더러 한잠도 못 자게 했는데, 어쩌라고요?” 2018.2.20.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노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