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둘레에 퍽 자주 한 말 가운데 “텔레비전 소리가 듣기 싫어서 어버이 집에서 뛰쳐나왔다”가 있습니다. 곁님이 보름쯤 앞서 이 말을 문득 저한테 물었습니다. 곁님하고 함께 산 지 열한 해 만에 속마음을 조금 내비쳤는데, 우리 아버지가 집에서 늘 시끄럽게 틀어놓는 텔레비전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서 1995년 봄에 드디어 어버이 집에서 뛰쳐나오기도 했지만, 이 하나 때문에 어버이 집을 뛰쳐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간 대학교가 집하고 워낙 멀어서 날마다 대여섯 시간을 전철하고 버스에서 보내기에 몹시 고달파 대학교 앞 신문사지국에서 일하며 먹고살려고 집을 뛰쳐나왔다고 해야 옳습니다. 신문사지국에 들어가 보니, 이곳에서도 지국장님이나 다른 형들이 늘 텔레비전을 켜 놓아 아주 죽을맛이었거든요. 이제 와 돌아보면 제가 열아홉 살 그무렵 우리 아버지더러 “아버지, 텔레비전 좀 꺼요. 집에 오셨으면 아들하고 얘기해야지요.” 하고 말을 붙여 볼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참말 한 번조차 없어요. 더욱이 아버지도 먼저 스스로 텔레비전을 끄고서 이녁 아들을 불러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부른 적이 없고요. 틀림없이 우리 아버지도 가부장 권력이라는 틀을 깨고 싶으셨을 텐데 발판이 없었지 싶어요. 이런 틀을 깨는 데에 형하고 저는 여러모로 아버지하고 싸우며 오랜 나날을 보냈지 싶습니다. 곰곰이 돌아보니 우리 아버지는 참 오랫동안 울 안에 갇혀서 스스로 못 나오셨으나, 이녁 동생(나한테는 작은아버지)하고 하나둘 사이를 끊으면서 달라졌고, 교장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 하루 내내 ‘집에서만 살면’서 조금씩 달라졌지 싶습니다. ‘제사상·차례상’ 안 차리겠노라 한 지도 꽤 되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그런 명절상 그만 차리자고 먼저 말을 꺼낸 지 훨씬 오래되었고, 제가 아버지한테 이 짓 하지 말자고 말씀을 여쭌 지도 오래되긴 했지만, 어쨌든 아버지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하고 참 오랫동안 우리를 물리치다가 시나브로 마음을 돌려 ‘마음으로만 모시기’를 합니다. 제 몸은 아버지하고 어머니한테서 받은 선물이니 제 몸이 움직이는 결은 두 어버이 흐름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저는 아버지를 닮아 더디 바뀌거나 거듭나는 몸이지 싶은데, 이를 비로소 깨달았다면 조금 더 빨리 바뀌거나 거듭나는 몸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일흔 넘은 아버지가 앞으로 훨씬 빨리 바뀌거나 거듭나면서 이 땅에서 삶을 짓는 동안 새로운 기쁨을 누려 보도록 북돋울 수 있으리라 봅니다. 라면조차 끓이지 못한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처음으로 밝힌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지난 2017년 12월에 내놓고 이 책만큼은 아버지한테 안 부쳤어요. 아버지 옛이야기를 들추어서 아버지한테 쑥스럽더군요. 2018년 설날이 지난 이즈막에 넌지시 일반우편으로 보내 볼까 싶습니다. “할아버지가 잔칫밥을 손수 차리는 날, 두 아이를 이끌고 할아버지하고 춤추고 노래하러 마실을 가겠노라”는 쪽글 하나를 적어 넣어서. 이제 우리 아버지, 아이들 할아버지가 텔레비전은 참말 집에서 치워 버리고서, 아이들하고 활짝 웃으면서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빌어요. 2018.2.1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페이스북으로 며느라기 만화를 보니

우리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하고 형 나, 이렇게 세 사람 말을

이럭저럭 퍽 더디지만 그래도 제대로 받아들여서

아주 더디게 달라지는, 그러나 곱게 거듭나는

그런 모습이네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며느리' 보기를 그렇게 바라던 우리 아버지인데

우리 아버지가 스스로 '며느리'가 되면 될 일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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