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의 한구석에 - 상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751



토끼 그림이 있으면 바다를 싫어할 수 없어

― 이 세상의 한구석에 上

 코노 후미요/강동욱 옮김

 미우, 2017.10.31.



“저녁 굶으면 불쌍하잖아. 아무리 도깨비라도.” “그 사람 도깨비였어?” (17쪽)


‘아아, 역시 너무 흥분이 돼서 잠을 설쳤다. 셋이 바다를 건너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엄마 아빠 얘기는 듣지도 않는다.’ (21쪽)



  지난 2005년에 《저녁뜸의 거리》라는 만화책이 한국말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만화책은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자란 분이 히로시마에서 마주한 이웃이자 동무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만 그린이는 피폭 1세도 2세도 아니요, 살붙이 가운데 피폭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서 살며 전쟁을 마주하고 원자폭탄을 맞고 전쟁 뒤를 살아간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만화로 옮겼다고 해요.


  《저녁뜸의 거리》라는 만화책은 한국에서 조용히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이러다가 2017년에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만화책 세 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만화책을 바탕으로 빚은 만화영화가 한국에서 극장에 걸렸지요.



“스즈, 여기 놔두고 옷을 개렴. 놔두면 나중에 먹으러 올 거야.” “할머니, 옷도 여기 놔두면 입으러 올까요?” “스즈는 마음씨도 참 곱구나.” (32쪽)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만화책은 책에 붙은 이름 그대로 ‘온누리’ 가운데 ‘한 구석’에서 나고 자란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살림을 꾸렸는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들 작고 수수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일본 히로시마 한켠에서 가시내로 태어나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가 시집을 가서 시집에서 새롭게 온갖 집안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마을에서 시키는 마을일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라고 할 만한 데는 다녔으나 학교를 더 다닌 적이 없는 1930년대 어린 가시내가 만화책에 나옵니다.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기보다 꾸벅꾸벅 졸지만, 늘 그림을 그리면서 논답니다. 가만 보면 집에서 늘 온갖 집안일을 하는 아이인 터라, 바닷가에서 맨손으로 김을 뜨고 말리고 걷고, 또 이렇게 갈무리해서 띄운 김을 상자에 담아 도시(읍내)로 가서 내다 파는 몫까지 하는 아이인 만큼,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 만합니다.


  이 대목에서 더 헤아려 보아야지 싶어요. 저는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우리한테 쑤셔넣은 ‘반공 교육’이라든지 ‘데모는 나쁜 짓’이라고 하는 말을 고스란히 믿으면서 감쪽같이 속은 채 자랐습니다. 제 또래도 으레 비슷했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민주물결을 안 가르쳤어요. 철들기 앞서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르거나 배우지요.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인데, 일본으로서는 제국주의 권력자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서 제 나라(일본) 아이들한테 참다운 역사나 사회를 가르쳤을까요? 그리고 그무렵 집안일에 바쁜 일본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나 사회’를 얼마나 귀여겨들으면서 얼마나 믿었을까요? 아니 학교 교육에 마음을 쓸 틈이란 없겠지요. 지난날에는 밥을 차릴 적에도 나무를 해서 불을 피우고 솥에 물을 맞추고 하나하나 손으로 했으니까요.



“(바다에서) 토끼가 뛴다. 전복 사고가 있었던 그 설날도 바다가 이랬는데. 그리고 싶으면 네가 대신 그리든가. 이 개떡같은 바다라도.” “미즈하라. 방금 한 말 무슨 뜻이야?” “어? 아, 그런 말 안 써? 봐. 하얀 파도가 일면 하얀 토끼가 뛰는 것 같잖아.” (46∼47쪽)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만 한다니까. 완성되어 버리면 집에 가야 되잖아. 이런 그림이 있으면 바다를 싫어할 수가 없잖아.” (50∼51쪽)



  만화책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 나오는 아이는 틈이 나면 그림을 그립니다. 이 아이는 대단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동생하고 오빠를 그리고, 마을을 그립니다. 동무를 그리고, 읍내를 그립니다. 하늘을 그리고 바다를 그려요.


  드센 물결이 치는 바다를 바라보던 동무가 ‘토끼 물결’이라고 말하자, 참말 물결이 토끼뜀처럼 보이는구나 싶어 토끼 바다를 그려요.


  밥을 짓는 부엌을 그립니다. 김을 뜨는 바닷가를 그립니다. 갯벌을 그리고, 수박을 그리며, 천장에서 산다는 도깨비를 그립니다. 할머니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지요.


  그림을 좋아하던 아이네 오빠는 군대에 갑니다. 아마 끌려갔겠지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네 동무 가운데 사내는 하나같이 군대에 가요. 다들 끌려갑니다. 그리고 군대에 간 사내들이 숱하게 죽어 나가니, 집이나 마을에 남는 가시내는 온갖 일을 떠안습니다.


  언뜻 보자면 만화책에 흐르는 살림살이는 ‘살짝 평화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1930∼40년대가 이토록 살짝 평화로울 수 있으랴 싶지만, 곰곰이 따져 본다면 살짝 평화스러움이라기보다는, 아무리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슬프더라도 ‘하루하루 밥을 먹으며 산다’고 할 만합니다. 평화로운 모습이 아닌, 고되어서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지 싶어요.


  날마다 나무를 하고, 날마다 불을 지펴요. 날마다 빨래를 하고, 날마다 비질이며 걸레질을 해요. 날마다 집안일을 할 뿐 아니라 돈을 버는 일(바닷가에서 김 뜨기)을 함께하지요. 한겨울에 맨손이 얼어붙으면서 갖은 일을 합니다.


  이런 작고 수수한 사람들한테 일본 권력자는 전쟁질을 시키거나 떠안깁니다. 사내한테는 총을 쥐라 하고, 가시내한테는 집안일에 얽매이게 내몹니다. 젊은 사내는 풋풋한 나이에 총알받이가 되고, 나이든 사내는 군수공장에서 ‘나라가 시키는 대로’ 전쟁무기 때려짓는 일을 합니다.



“다 큰 어른이, 6살 애랑 경쟁하겠다고……. 망신은 슈사쿠의 몫이거늘.” “자, 자아! 시험 재배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실제로 경작 계획을 짜 볼까.” (133쪽)



  일본이라는 나라는 틀림없이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을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권력자는 사람들을 얼마나 곱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길을 걸었을까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 사이를 가른 신분이나 계급을 되새겨 보아야지 싶어요. 조선이 무너지고 새로 선 나라에서 정치권력자는 오랫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찬찬히 짚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이런 정치권력자 밑에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꾼 작고 수수한 사람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총알받이로 끌려간 젊은 사내는 바로 우리요, 우리 식구요, 우리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채 집안일을 도맡아야 한 모든 가시내도 바로 우리요, 우리 식구요, 우리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만화책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따로 전쟁을 따지거나 평화를 노래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작고 낮으며 수수한 목소리로 ‘바로 이곳에 사람이 살아갑니다’를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하고 갖은 일을 하던 아이가 살아가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온갖 일을 하며 자라다가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아가씨가 시집에서 새롭게 집안일이며 마을일을 하면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그림으로 옮겼는가를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 2전만 줘. 연필을 잃어버렸어.” “하나도 없니?” “아직 하나 있긴 한데.” “없으면 다음주 용돈 받을 때까지 버텨. 네가 낙서만 안 하면 되잖아.” (37쪽)



  우리도 우리 스스로 지난 1930∼40년대를 ‘한국 시골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이 될 만한가를 그려 보아야지 싶어요. 지식인이나 정치인이나 사내들 목소리나 눈높이가 아닌,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이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하며 자라다가 어른이 되어도 집안일을 그대로 하고 아이를 낳고 밭일 논일 몽땅 하던 ‘한국 시골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오늘 이곳도 ‘작고 수수한 서울 언저리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아주 다른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볼 만하지 싶습니다.


  토끼 물결 그림이 있어 바다를 사랑합니다. 새끼손가락 끝마디보다 짧은 몽당연필을 아껴 가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를 사랑합니다. 만화책(+ 만화영화) 주인공인 아가씨는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는 이야기를 라디오로 듣고 난 뒤에 마을에 걸린 태극기를 처음으로 보고는 ‘학교와 나라와 마을에서 아무도 안 가르친 역사와 사회가 있’는 줄 비로소 깨달아요. 이때부터 ‘남이 시키거나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겠노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다짐해요. 남(정치권력)이 무엇을 시키거나 가르치려는가를 헤아려 보지 않고서 그대로 따르던 길을 끝낼 줄 아는 몸짓, 작고 낮으며 수수한 이웃 목소리를 듣기, 우리 앞길을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2018.2.1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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