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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루미늄의 역사 - 현대의 모순을 비추는 거울 ㅣ 역사를 바꾼 물질 이야기 1
루이트가르트 마샬 지음, 최성욱 옮김 / 자연과생태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127
알루미늄은 무시무시한 자원 먹깨비
‘살림’하고 ‘쓰레기’ 사이를 오간다
― 알루미늄의 역사
루이트가르트 마샬/최성욱 옮김
자연과생태, 2011.10.20.
요즘에 와서야 빈 캔을 모으자고 난리법석을 피우지만, 1950∼60년대만 해도 거의 예외 없이 버려졌다.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자 예전 같으면 한 번 더 사용할 물건까지 버리는 낭비생활에 길들여졌고, 그 결과는 즉시 나타났다. (22쪽)
무거운 다용도 유리병을 들고 다니는 것은 맥주회사나 중개상인 모두에게 아주 불편했다. 그리고 유리병 운반은 돈이 많이 들었다. 또 가게에서 판매대에 진열할 때도 넓은 면적을 차지했으며, 빈병 회수를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해야 했다. (25쪽)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것한테 둘러싸이면서 살아간다고 할 만합니다. 겉보기로는 반들반들하거나 눈부시지만, 살짝 손을 거치면 어느새 빛을 잃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이 잔뜩 있어요. 바로 ‘살림’하고 ‘쓰레기’ 사이에 있는 숱한 물건입니다.
가게마다 반들반들하거나 눈부신 상자나 비닐로 덮인 물건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이 물건을 돈을 치러서 장만할 수 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새것이면서 살림이라 할 수 있는데, 겉을 벗겨 알맹이를 쓰거나 누리거나 먹거나 하면, 어느새 모든 껍데기는 쓰레기가 됩니다.
빵이나 과자를 담은 비닐이나 종이상자 모두 껍데기만 있으면 쓰레기예요. 마실거리를 담은 팩이나 깡통도 껍데기만 있으면 쓰레기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무기 수요가 줄어들자 알루미늄은 남아돌게 되었다. 알루미늄 생산회사와 제품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시장개척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고, 만능 금속인 알루미늄을 새로운 시장개척에 폭넓게 적용하려 했다. (44쪽)
《알루미늄의 역사》(자연과생태, 2011)라는 책을 곰곰이 읽어 보았습니다. 우리가 아주 쉽고 흔하게 쓰는 ‘알루미늄’이 무엇인가를 알아야겠다고 여겼습니다. 언제부터 알루미늄을 살림에 썼고, 알루미늄을 얻어서 누리자면 어떤 길을 거쳐야 하며, 알루미늄을 쓰고 난 뒤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알아야지 싶어요. ‘만능 금속’이라는 이름이 붙는 이 쇠붙이가 우리 곁에 어마어마하게 많거든요.
전쟁이 지속됨에 따라 보크사이트 재고량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 보크사이트 부족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나치는 점령지역을 무자비하게 수탈한다. 여기서 프랑스는 독일이 특별히 관심을 가진 나라였다. (226∼227쪽)
채굴방법은 어쩔 수 없이 많은 양의 폐기물을 부수적으로 발생시킨다. 농경지건 숲이건 상관없이 이 원료가 매장된 층 윗부분에 있는 모든 것을 먼저 걷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 보크사이트 채굴은 대형 굴착기와 트럭을 이용해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엄청난 양의 배기가스와 미세먼지들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노천채굴을 위해서는 파낸 흙을 실어 나를 효율적인 교통인프라가 필요하다. (268∼269쪽)
시골에서나 서울에서나 비닐자루나 깡통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속이 꽉 찬 먹을거리나 마실거리였을 테지만, 먹거나 마신 사람이 가볍게 버린 탓에 여기저기에서 구릅니다. 빈 껍데기, 이른바 쓰레기를 집까지 가져가서 알맞게 나누어 한길에 내놓는 손길이 널리 퍼지기는 했습니다만, 그냥 아무 곳에나 버리는 손길도 꽤 많습니다.
쓰레기통이 있다 하더라도 종이랑 알루미늄이랑 쇠랑 플라스틱이랑 비닐이랑 병을 차곡차곡 갈라서 놓도록 마련하는 일은 드뭅니다. 더욱이 이렇게 갈라 놓았어도 아무 데나 엉성하게 집어던지는 사람이 많아요.
‘재활용 분류 쓰레기통’ 앞에 설 적마다 아이들이 언제나 묻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아무 데나 버려? 여기는 병이라고 적혔는데 왜 여기에 플라스틱을 버리는 사람이 있어? 여기는 플라스틱이라고 적혔는데 왜 여기에 병을 버리는 사람이 있어?”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꾸하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이 한글을 읽을 줄 몰라 아무 데나 넣는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지요. 참말로 한글을 못 읽어서 아무 데나 넣지는 않을 테니까요. 아마 재활용 분류 쓰레기통 앞에 서더라도 글씨를 안 쳐다보고서 그냥 집어던진 뒤에 돌아서지 싶어요.
수력발전소 혹은 전기를 이용해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이 창출한 이익은 지역주민에게 거의 돌아가지 않는다. 수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는 그들에게 유용하지도 않다. (304쪽)
195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유럽 할 것 없이 알루미늄 제련소는 이 독가스를 거의 정화하지 않고 그대로 배출했다. 이 불소로 인해 인근 식물들이 말라죽었고, 동물과 인간 할 것 없이 뼈가 굳어져 쉽게 부서지는 골격불소증이나 골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309쪽)
《알루미늄의 역사》를 읽으면 이 지구별에서 알루미늄을 널리 쓴 발판은 전쟁이었다고 밝힙니다. 더 가벼운 전쟁무기를 쥐어짜려고 알루미늄이라는 쇠붙이를 쓰기로 했고, 전쟁무기를 엄청나게 쏟아내려고 알루미늄을 캐내고 다듬자니 전기를 또 엄청나게 써야 하는데, 이러자니 숲을 엄청나게 망가뜨려서 수력발전소를 세운다든지 석유를 다시 엄청나게 때야 한다든지 …….
한마디로 간추리자면 알루미늄은 사람들한테 이바지를 하려고 태어난 쇠붙이는 아니라고 합니다. 지구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쇠붙이입니다만, 이웃나라로 더 손쉽게 쳐들어가서 더 손쉽게 땅을 빼앗고 사람들을 억누르려는 뜻에서 알루미늄을 널리 썼다고 해요. 유럽에서 피가 튀는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쟁 동안에 세운 엄청난 ‘알루미늄 제조 공장’을 놀릴 수 없다고 여겨, 또 ‘알루미늄 광산이며 여러 곁가지 산업’을 북돋우려고, ‘전쟁무기 공장’을 ‘생활용품 공장’으로 바꾸었다는군요.
이러면서 값싸고 가벼운 알루미늄 깡통이나 그릇이 퍼졌고, 이 값싸고 가벼운 알루미늄 깡통이나 그릇을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삶이었다고 합니다.
2차 알루미늄이 에너지 절감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고철 알루미늄을 재처리할 때 분쇄기와 분류기, 기름 분리기와 건조기, 정화기를 따로 이용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에너지 소비는 불가피하다. (329쪽)
알루미늄으로 겉을 감싼 물건은 하나같이 가게에 있습니다. 우리가 가게에서 깡통들이 마실거리나 물건을 장만한다면, 아무리 되살림을 잘 해낸다고 하더라도 알루미늄이란 어떻든 자원을 엄청나게 잡아먹는다고 해요. ‘알루미늄 캐내기’뿐 아니라 ‘알루미늄 되쓰기’ 모두 무시무시한 자원 먹깨비랍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슬기로울까요? 이도저도 꽉 막혀 보이기는 하지만, 길은 없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알루미늄을 안 쓸 수 있는 살림으로 간다면, 실낱 같은 빛줄기를 찾을 만하지 싶습니다. 가게에서 사다가 쓰는 삶이 아닌, 집에서 손수 지어서 쓰는 삶이 된다면, 또 가게에서 사다가 쓰더라도 집에서 그릇을 챙겨 다니면서 ‘집에서 챙긴 그릇에 물건 알맹이’만 담아서 쓸 수 있다면, 자원 먹깨비인 알루미늄을 차츰 줄일 만하지 싶습니다.
소비생활이 아닌 살림짓기로 나아갈 때에 비로소 길을 연다고 할까요. 우리가 어른이자 어버이로서 아이들한테 소비문화를 보여주거나 가르치기보다는, 다 같이 집이나 마을에서 살림짓기로 나아가는 새길을 가꿀 수 있어야 한달까요. 커다란 공장에서 잔뜩 만들어서 유통업체를 거쳐 잔뜩 사다 쓰도록 하는, 이른바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끊자는 몸짓이 된다면, 마을에서 작게 지어서 마을에서 쓰는 두레살림을 편다면, 삶도 나라도 사회도 지구별도 제자리를 찾으리라 봅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정말 중요한 문제는 포장 재료의 선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회용시스템이냐 아니면 재사용시스템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67쪽)
《알루미늄의 역사》는 알루미늄이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두 짚습니다. 이 책은 우리더러 ‘알루미늄을 안 쓸 적에 가장 훌륭합니다’ 하고 외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첫 쪽부터 끝 쪽까지 읽고 보니, 글쓴이는 이 말을 밝히지 않았어도 우리가 ‘알루미늄을 안 쓸 수 있는 살림을 저마다 찾아야 하지 않나?’ 하고 묻는구나 싶어요. 환경보호라는 대단한 이름이 아닌, 살림살이라는 수수한 말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살아내자는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들려주어야겠습니다. 2018.2.9.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